당신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상당한 규모를 가진 신루 박물관의 야간 경비 일을 지원했다.

당신이 면접을 위해 간 박물관에서, 

면접관들은 당신에게 종교가 있는지, 혈액형이 무엇인지, 집중력이 뛰어난지 등을 물어보았다.


당신은 이에 답하고, 면접관들이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걸 본 뒤 박물관을 나왔다.


그리고 몇시간 뒤, 박물관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 안녕하십니까, 신루 박물관의 채용 담당자입니다.

본론에 앞서 안 좋은 소식을 전해드려 죄송한 마음입니다.

XX님의 뛰어난 자질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저희 신루 박물관에서는 다른 면접자를 채용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XX님에게 번영과 행복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




그런 상당한 보수의 일에 탈락을 한 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곧 이것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틀 뒤, 당신에게 한 통의 문자가 왔다.



[ 안녕하십니까, 신루 박물관에서 연락드립니다. 앞선 지원자가 개인 사정으로 급히 일을 그만두게 되어,

XX님에게 다시 연락드립니다. 혹시 근무를 원하신다면 답장 바랍니다. ]



그 문자를 본 당신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내지른 뒤, 문자에 답장했다.


문자에 빠르게 답장한 당신은, 담당자의 답장을 확인했다.



[ 오늘 밤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근무하시면 됩니다.

옷을 제외한 그 어떠한 개인 물품도 들고 오시면 안 됩니다.

입구에 도착하시면 입구 앞 카펫 밑에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십시오.

들어가시는 대로 바로 경비실로 향해 주십시오.

자세한 업무 관련 상담은 근무가 끝나신 뒤의 아침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



뭔가 더 물어볼까 했지만, 더 알 내용은 없는 것 같아, 확인 문자만 보낸 뒤 어두운 거리를 걸어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입구에 도착하자, 폐관 시간임에도 불이 켜진 내부가 보인다.

입구 아래쪽의 WELCOME 카펫을 들어, 열쇠 꾸러미를 집어든다.


입구에 맞는 열쇠로 안에 들어가자, 불이 켜진 박물관의 로비를 걸어 들어간다.

다양한 주제의 전시관들을 지나, 박물관 깊숙한 곳의 경비실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경비실 안에 들어서자, CCTV 모니터와 테이블 위에 놓인 손전등, 직육면체 전자시계,

그리고, 누군가 가져다 놓은듯한, 몇 개비가 남아있는 담뱃갑과 처음 보는 꽃이 보인다.


테이블의 끄트머리가, 무거운 무언가에 부딪히며 부서진 모양새다.

옅은 갈색의 얼룩도 보인다.


모니터가 올려진 테이블 아래쪽에 서랍들이 보이길래, 맨 위 서랍을 열어 보았다.


손때가 탄 녹음기가 밀려 나온다.


호기심이 일어, 녹음기를 쥐고 몇십 분 길이의 유일한 녹음 기록을 재생시켰다.




아, 큼, 흠흠.

난 네 선배쯤 되는 이 박물관의 야간 경비원이야.


일단, 네가 테이블 위에 떡하니 놓인 이 녹음기를 틀어 볼 정도의 지능 보유자니까,

네 생존 확률이 2% 오른 거나 다름없어. 축하해.


누가 갖다놓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녹음기가 테이블 안에 있더라고. 그 망할 직원 놈들이 갖고 놀라고 갖다놨나 봐?


일단, 네가 이 박물관에 나처럼 돈에 눈이 멀어 들어온 걸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내가 이제부터 말하는 내용을 메모장이나 뭐 어디다가 받아 적든지, 완전히 외우든지 해.


농담 아니야.


으음, 거지 같은 게 하나둘이 아니라 뭐 먼저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 그래. 일단, 만약에-! 네가 그 채용 담당자인지 뭐시깽이인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개인 물품을 들고 왔다고 치자.

그러면, 지금 당장 다른 거 다 무시하고, 경비실을 뛰쳐나가서 박물관 입구로 도망가.


진짜 농담 아니야. 12시 되기 전까지가 유일한 기회야.


만약에, 12시가 넘고 불이 꺼졌다?

아, 너 진짜 좆된 거야.


책상에 머리를 박든, 혀를 깨물든 해서 지금 당장 자살해.


진짜로.


그게 너한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의 기회야.

그 놈들한테 잡힌 뒤에는 선택지라 부를게 안 남을걸?


오히려 그때 왜 안 그랬나 후회나 하겠지.


아, 후회할 정신이 남아 있지도 않으려나?


여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네가 그 개인 물품 반입 금지를 아주 잘 지켰어! 그렇다고 칠게.

그러면, 이제 넌 적당히 버티기만 하면 돼!

아침까지 경비실 밖으로 나가지 마! 절대로!


야간 경비? 순찰? 그런 건 개나 줘버려. 어차피 밤에 들어온 새끼는 다 뒤질 텐데 뭐하러?


심심할거 같다고? 개소리야. 밤새 경비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거지같은 소리에 벌벌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걸?


어휴, 그리고, 아마 새벽 3시쯤 누가 문을 아주 많이 두드리면서 열어달라 할거거든? 열어주지 마.

걔가 아마 너만 아는 것들도 씨부렁거리면서 열어달라 할 건데, 그건 그냥 지 스스로 열어주면 안 된다 광고하는 거잖아?


오, 마침 왔네. 반가워요, 씨부랄 새끼야!


녹음기의 목소리 뒤편으로, 똑똑 거리는 노크 소리와, 처음 듣는 이름을 부르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진짜 짜증 나. 다 꺼졌으면 좋겠네.


여튼간에, 내가 말한 것들만 다 지켜. 못 외웠거나 못 적었으면, 얼른 다시 돌려 듣고 적거나 외우거나 해.


바이바이.



녹음이 끝나나 싶었으나, 잠깐의 소란스런 바스락거림 이후,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반가워요. 저는 2014년, 10월 4일에 경비 업무를 하는 마빈이라고 해요.


앞선 녹음본에 추가 녹음을 하는 중이에요.


일단, 무조건 나가지 말라는 말은 안 따르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무조건 4시 전에 한 번 이상은 나간 뒤에, 근대사 전시관에 전시된 큰 괘종시계를 열어서,

시계를 몇 시간 전으로 돌려놓으세요. 몇 시간이든 좋아요. 시곗바늘이 4시를 향하지만 않으면 돼요.


그리고, 복도의 불은 랜덤한 간격으로 꺼졌다 켜져요.


불이 꺼져 있을 때는, 썩어가는 냄새가 적당히 나면 정상이에요.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테니까, 그 정도는 참길 바라요.


그리고, 딱딱거리는 캐스터네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면 당장 멈춰요.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고.

그 소리가 멀어지면 다시 움직여도 좋아요.


근데, 당신 그 소리가 뒤쪽에서 갑자기 멈추면, 최대한 미친 듯이 뛰어요.

잡히지만 않을 수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그게 당신 달리기보다 훨씬 더 빠를 거라는데 내 하나 남은 손목을 걸죠.


불이 켜지면, 진짜 조심해야 해요.


그것들이 당신을 볼 수 있다는 의미니까요.


그리고, 불이 켜진 동안은 그림자들이 당신을 쫓아올 거에요.


아주 눈 크게 뜨고 다니라고요.


그래야 찌르기 좋으니까.



녹음이 또 끝나나 싶은 정적이 들려온다. 하지만 아직도 녹음기에 표시된 녹음 기록의 길이는 남아있다.


바스락대는 소음이 잠깐 들렸다가, 달그락하고 녹음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린다.



어, 여보세요? 아, 이게 아니지. 음, 흠, 반갑습니다.


저는 2014년 10월 8일에 근무를 서는 로즈라고 해요.


어, 돈 때문에 6일부터 시작했거든요, 근데, 매일 아침이 되어서 박물관을 나갔는데,

눈을 떠보니까 다시 12시의 박물관이에요.


이제 진짜 너무 무서워서, 선배님들이 녹음해두신 거 돌려 들으면서, 대화하듯이 지내는 중이에요.


어제는요, 마빈 선배님이 저랑 대화해 주셔서 너무 재밌었다니까요.


그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하신 거에요?


진짜, 자연사 전시관에서 그걸 깨우실 생각을 하신 게 너무 창의적이신 거 같아요!


너무 행복해요.


저, 지금 그거 깨우러 가는 길이거든요.


저기 앞에 큐레이터님이 계시네요.



그르륵대는 괴상하고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로즈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아하하하, 진짜, 농담도 참. 눈알 하나면 되는 거죠?





자, 여기 있어요.


이제 진짜 캄캄하네요. 그래도 걱정할 건 없어요!

전 길을 다 외웠거든요.


자연사 박물관에 들어왔나 봐요. 발소리가 달라졌거든요.


아, 난간이다.


자, 녹음기는 여기다 둘게요.


녹음기가 부드러운 카펫 위에 놓이고, 누군가가 금속제 난간을 밟고 올라서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가 딱딱한 돌 바닥에 질퍽하며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녹음기는 한참이나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다가, 갑작스레 잡신호가 가득 낀다.


곧 이어,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아, 2014년. 10월 18일. 이름은 알 거 없다.


진짜 힘들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를 모르겠어.


그냥 죽을까?


후우, 그럼 일단 죽기 전에 뭐라도 남길게.


이 녹음을 듣고 있다는 건, 넌 이미 좆됐다는 거야.


이 미친 박물관이, 진화하고 있는 거 같아.


널 잡아 찢어 죽이려고.


솔직히 말하면, 죽는 것도 아닌 거 같아.


복도에 돌아다니는 그 망할 거인 있지?


아, 모를 수도 있겠구나. 곧 만날 테니까 일단 들어.


그 거인 면상이 아주 많이 구부러져서 모를 수도 있을 거야.


나도 잠깐은 그랬는데, 그 면상, 여자 얼굴이야.


명찰도 달고 있더라. 마틸다 로즈라고.


진짜, 난 왜 이딴 곳에 들어온 걸까.


개인 물품 반입 금지래서, 담배는 어떻게 피울까 고민 많이 했거든.


복도 가다 보니까 있더라. 바닥에 떨어진 게, 꼬락서니가 딱 누가 피우려다가 떨군 모양새라, 주워왔다.


자꾸 누가 나한테 말을 걸더라.


머릿속에서 울리는 기분이라 안 좋아.


이게 그 대화일까?


진짜 자살하고 싶다.


우울해.


짜증 나.


열받아.


...



누군가가 문을 쿵 쿵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곧이어, 의자에서 누군가 일어나는 소리,

문이 끼익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반갑네. 어서 와. 마틸다 로즈.




무언가가 갈기갈기 찢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참 뒤, 다시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예. 이걸 듣고 계신 희생자분들.

반갑습니다. 저는 잭이라고 합니다.


2014년 11월 1일 근무 중이고요, 앞선 선배님들한테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것들만 정리해 둘게요.


근대사 전시관에서 시곗바늘 돌리는 건 진짜입니다.


그리고 불 꺼졌을 때 당신 옆을 지나가는 딱딱이들도 진짜 있어요.


어, 그리고, 또, 그 복도에서 시체 냄새 난다는 거, 조심하셔야 해요.

그거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거니까, 당장 달려서 그 전시관에서 나오셔야 해요.


그리고, 녹음엔 없었던 거 같은데, 누더기 인형처럼 생겨서 돌아다니는 것도 피하셔야 해요.


아, 으, 진짜. 손가락이 없으니까 이렇게 불편하네요.


녹음 종료할게요.



한참 뒤, 조금 전 들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처절하게 비명으로 울려 퍼진다.



흐히히, 신나네요. 큐레이터님이랑, 다른 가족분들이랑 이렇게 즐겁게 먹고 있어요!


생일 축하 파티엔 역시 촛불이 빠지면 안 되겠죠?



끄아아악 하는 비명이 들려오고, 무언가 불에 치이익 하고 그을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참동안 녹음기를 쥔 무언가가, 쩝쩝대며 무언가를 먹어치운다.




.....녹음 기록은 여기서 완전히 종료되었다.





그리고, 당신은 끼익 열린 경비실 문틈 사이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