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오늘은 너희들한테 내가 8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지냈던 이상한 마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

어릴 때부터 나는 내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짐작하긴 했어.

유독 나한테 그렇게 차갑게 굴고,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주워온 자식처럼 키웠었거든.

왜 그렇게 했는지는 나중에 가서야 알았지만 말이야.

나는 8살이 되던 날 그 이상한 마을에 버려젔어.


정확히는 맡겨젔다고 말해야 하려나? 나는 8살부터 13살까지 그 보육원에서 지냈어.

그 안에는 나처럼 밖에 있다가 이곳으로 들어온 아이들이 한가득 있었어.

그리고 TV, 핸드폰, 컴퓨터 같은 전자기기가 일절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만 빼면 바깥하고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을이었지.

하지만 이 마을은 이상하리만치 지켜야 할 게 많이 있었어.


그 규칙들 중 일부는 어른들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정해둔 것도 몇 개 있었지만

나는 무언가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규칙을 정해둔 거라 생각해.

마을에서 가지 말라던 곳에 갔던 아이는 다음 날 십자가에 매달려서 웃고 있었어.

자세히 보니까 얼굴 가죽이 다 뜯어져 있었고, 그걸 입꼬리를 억지로 치켜세워서 웃는 모양으로 만들어뒀더라고.

그 아이가 거기 묶여서 꺽꺽 거리는 신음 소리와 함께 몸을 움찔움찔 떨고 있었지.


이건 나만 알고 있던 건데 나는 마을 어른들이 그 아이를 끌고 어디론가 가는 걸 봤어.

희미하게나마 비명소리도 들었지, 규칙을 어긴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건 어른들이었어.

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생각해 봤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더라고

그 뒤부턴 아이들이 규칙을 적극적으로 지키기 시작했어, 일종의 본보기였던 셈이지.

이것만 보면 결국 사람이 벌이는 짓 아니냐 할 테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야.


다른 시설들은 그래도 바깥하고 다르진 않았는데 유독 화장실만큼은 구식이었어.

화장실 천장은 유독 높았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5m쯤 됐지

볼 일을 볼 때는 어떤 소리가 나도 천장을 쳐다보지 말라는 규칙이 있었어.

실제로 그 소리는 꽤 자주, 여러 번 들을 수 있었고 말이야.

아, 그땐 그냥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기는 해.

소리는 5m 위에서 들렸으니까.


분명히 메뉴 반찬에 고기가 있었는데도 고기를 주지 않는 날이 있었어.

오늘은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날이라며 아이들에게 야채만 먹을 걸 지시했지.

당연히 애들은 곳곳에서 원성이 터져 나왔지만 어른들한테 대들지는 못했어.

그런 날은 밤에 항상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나는 창밖으로 몰래 내다봤어. 산에서 하얀 안개 같은 게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어.

그건 안개와도 같았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어.


달이라는 게 생각보다 지상하고 가까워지지는 않더라고.

마을에서는 일정 주기마다 달이 땅 가까이에 내려오는 날이 있었어.

어린 나는 그 찬란히 빛나는 그걸 보고는 달이 가까이 내려오는 날이 있나 보다고 생각했었지.

밤 하늘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커다란 구슬이 온 세상을 푸르스름한 은빛으로 물들이던 광경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바깥으로 나온 뒤 안 건데 그게 달은 아니었던 거 같네.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은 존재하지 않았어.

어디로 향해 간다고 해도 결국 마을로 다시 돌아오게 됐었지.

탈출해 보려고 발버둥 치던 애들이 몇 명 있긴 했었어.

전부 십자가에 매달리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더라고.


마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는 건 별로 좋지는 않았어.

누구는 부모를 닮아서 그릇이 너무 작더라

걔는 부모를 닮아서 질이 너무 안 좋더라

뭐 이런 이야기나 하는데, 도통 알아듣진 못하겠더라고.

가끔 뭔지 모를 섬뜩한 이야기들도 하고 말이야.


그래도 초등학생 때는 그냥저냥 지낼 수 있었어.

아직 어려서 그런지 어른들이 우리를 좀 많이 보호해 주려 했었거든.

마을에 있는 그것들도 어린 우리한테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말이야.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턴 기숙사로 가게 됐어.

마을의 규모가 크지는 않아서 중고등학교 내내 같은 기숙사를 쓰게 됐지.


이쯤 오면 아이들끼리도 엄청 친해졌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건 나처럼 밖에서 들어온 애들이거든.

이 마을 안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같은 학교를 다니는데, 서로 얽히지는 않았어.

그 아이들하고 우리하고는 지켜야 할 규칙 같은 게 달라서 본의 아니게 서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더라.

우리도 보육원 때부터 함께 커온 애들이랑 더 친해질 수밖에 없었고 말이야, 응.

여기서부터는 다 같이 으쌰 으쌰 해서 함께 밖으로 나가자 이런 상황이었지.


본격적으로 위험한 일들은 중학생 때부터 일어났어.

이 마을에서는 신성시하며 모시는 것들이 있고, 불길해 하며 멀리하는 것들이 있어.

규칙들은 우리가 신성한 것들을 만날 때까지 불길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함이라 하더라.

그게 과연 신성한 건지는 모르겠네?


입학식 날 세례라는 것을 받는데 마을 뒷산에 있는 한 신사로 들어가더라.

거기에는 눈알이 주렁주렁 열린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멀리서 볼 땐 눈알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무슨 열매처럼 생겼더라고.

그 앞에 가서 신체의 일부를 떼어바치고 오면 신성한 그것이 우리들을 어느 정도 지켜준다 하더라.

보통은 새끼 발가락 정도만 갖다 바쳐, 내 왼발에 새끼 발가락이 없는 이유기도 하지

그런데 바치는 부위가 크면 클수록 그것의 은총 또한 커져서 눈알을 바치는 녀석도 있더라고.

왼쪽 눈을 바친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별다른 위험 없이 학교생활을 했어.


자질구레한 것들은 세례식만 받으면 해결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기숙사에는 꼭 지켜야 할 규칙이 두 개 있었어.


12시가 되면 절대로 밖으로 나와서는 안돼. 오전 7시가 될 때까지는 무조건 안에만 있어야 해.

이거 때문에 기숙사 안에는 요강이 하나씩 배치돼 있었어.

밤이 되면 무언가가 복도를 돌아다니며 우리들을 문밖으로 불러내려 해.

어른들, 선생님, 사감, 친구 등 목소리는 다양하지만 그게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아.

그것이 걷는 발소리는 항상 바뀌었거든, 문 앞으로 걸어올 때는 항상 사람의 발소리처럼 저벅저벅, 터벅터벅

우리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것의 발소리는 쇠고랑 같은 걸 땅에 끄는 소리로 바뀌었지


오후 7시 전에는 절대로 기숙사에 들어가면 안 돼.

어른들이 통제하려고 만들어 둔 거라 생각해서 시험 삼아 창문으로 들어갔던 애가 있었어.

분명 걔가 들어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순식간에 사라져있더라.

빈 방에서는 서걱서걱, 으적으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라고.

이쯤부터 있던 규칙들은 다 우리를 무언가로부터 지키려고 있던 거야.


우린 7시까지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으니 마을에서 어떻게든 시간을 때워야 했어.

마을 내에서도 여러 가지 위험한 일들이 자주 일어났었거든.

애들끼리 서로 정보 공유하면서 여기저기 숨을 만한 곳을 찾고 다녔지.


아, 그러다 보니 거길 발견했어.

어떤 낡고 허름한 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벽지가 살짝 들어올려져있더라고.

벽지를 뜯어보니깐 그 안에 피로 쓴 글씨들이 검붉게 말라비틀어져 있었어.

살려줘,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 제발 누가 좀 도와줘 이런 절규에 가득 찬 글귀들이었어.

그중에 인상 깊었던 글이 있었지.

밖에서 온 아이들 중 나간 아이들은 10명 중 1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도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이런 내용...


무서워서 그냥 도망쳤어.

그 집을 다른 애들한테 말할까 생각도 했지만

내가 말한다고 달라질 건 없잖아.

그냥 나만 알고 있기로 했어.


이상한 일은 학교에서도 일어났어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중 갑작스레 졸음이 몰려들어 눈을 감았다 뜨면 교실에는 나 혼자 남아있더라.

무조건 해는 지평선 아래로 머리를 숨기고 있을 거고, 하늘은 희미한 노을빛 반대편부터 검푸른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을 거야.

이때는 최대한 신속하고 신중하게 1층의 탈의실의 8번 락커함으로 가야 해

하늘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기 전에 행동해야만 해.


8번 락커함은 부적이 잔뜩 붙어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숨어있어야 해.

그리고 가는 도중 발소리 들리면 무조건 숨고

그 발소리는 기숙사 새벽에 들려오던 그것과 똑같은 소리였어.

아침이 되면 선생님들이 락커함부터 열어보니까 누군가 열어주기 전 까진 밖으로 나오면 안 돼.


학교에서 하던 수업은 바깥하고 크게 다르진 않던 거 같더라.

수학이나, 과학이나 뭐 이런 것들은 비슷비슷했어.

우린 특이한 과목 두 개가 추가되어 있었지. 신학이랑 기체조.


기체조 나름 효과가 있어.

중국의 그 뭐냐, 파륜궁? 그거처럼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건데

나름 뜨거운 게 몸속을 순환하는 느낌도 들고 건강해지는 느낌도 들어.

나는 이거 건성건성으로 했지만 말이야.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줘서 그런지 나 말고 다들 열심히 하더라고.


신학은 마을의 신성시되는 장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기도하는 거였지.

일본의 신사 비스름한 곳도 있고, 돌로 된 제단 같은 곳도 있었지만 두 곳이 가장 기억에 남네


한여름인데도 서늘한 한기가 가득해서 땀방울이 얼어붙도록 추웠던,

그런데도 그 중앙에는 수증기조차 올라오지 않는 뜨거운 호수가 있던 곳


분명 울창한 숲 속인데도 벌레 울음소리는커녕 정적만이 맴돌던 숲

유난히 생기가 넘쳐 보이던 나무들, 이곳만 가면 뭔가 섬뜩했어.


그 외에도 까마귀나 고양이 같은 짐승들이 그렇게 크더라.

그 마을에 있던 것들은 크기랑 생김새가 바깥이랑 많이 달랐거든.


사람 흉내를 내는 것들이 그렇게 많이 있어가지고 애들끼리 암구호도 정해두고 그랬어.

어른들이 말 걸면 대부분 그것들이더라, 이 마을 어른들은 우리한테 말을 거의 안 걸거든.


아, 신학 시간에 들은 건데 이 마을도 나름 목적이 있더라.

이 마을은 오직 이 마을에서 자란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다더라고

내 부모도 이 마을 출신이라 내가 들어올 수 있던 거였고

마을의 목적은 바깥에 있는 인간들에게 최대한 우리 마을 출신들 피가 많이 섞이게 하는 거?

그렇게 되면 마을 안에 있는 신성한 것들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된다더라고.


여하튼, 나는 잘 살아남았고 졸업을 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밖에서 들어왔던 아이들 10명 중 9명 정도는 그곳에 남더라.

나를 포함한 몇 명만 다시 바깥으로 나가게 됐어.

바깥으로 나가는 애들이 몇십 명 정도는 됐는데

그중 대다수는 그 마을 안에서 나고 자란 애들이더라고, 나처럼 밖에서 들어온 애들이 아니라.


아, 나올 때 이런 말도 들었어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8살이 될 때 이 마을로 보내라고

그러면 너는 번영을 얻을 수 있다고.

처음부터 나를 그럴 목적으로 낳은 거겠지


너네도 조심해, 세상에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인간들이 섞여있을 테니까

걔네랑 결혼하고 그런다고 어떤 문제가 있진 않겠지만

그것들 목적을 이뤄주는 데 도움을 주진 마

혹시라도 연인의 고향을 물었을 때 세상에 없는 지명을 대답했다면 의심 한번 해봐

실수가 아닐 수 있으니까.


솔직히 말할게, 벽지를 뜯어본 뒤 나는 몰래 걸레를 들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어.

거기서 피로 쓴 글씨를 박박 문대 지웠어.

다른 애들이 볼 수 없게, 나만이 그걸 알고 있게.

그 한 맺힌 절규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갔어.


어쩔 수 없었어.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나갈 수 있는 사람과 남아야 되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으니까.

기체조도 일부러 대충 했어.

전에 들었던 그릇이니 뭐니 하는 걸 좋게 만드는 게 기체조라 생각했거든.

다 함께 살아나가자 해놓고 이런 짓을 해서 미안하게는 생각해.

사실대로 말했으면 내가 여기 없었을 거야.


뭐, 마을의 위치를 말해도 피가 섞이지 않은 너희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거야.

이 이야기를 근거 없는 이야기로 치부하든 뭐든 마음대로 해.

그냥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말해보고 싶었어.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