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내용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꽤나 혐오스러울 수 있습니다. 

산모, 아이 등의 주제에 내성이 없으신 분들께서는 주의하여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녹음 시작> 선생, 아마도 우리가 이자리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거요. 


그도 그렇겠지. 당신도 어릴적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기뻐하던 한명의 아이였을 테니. 그 추억이 어제의 일로 덮어쓰였다고 생각한다면 제법 유감이시겠구려. 


뭐, 그런거지. 누구한테는 말이오, 세상이 조금 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보였거든. 소중한건 소중히 다뤄야하지 않겠소? 다른 사람의 선의라는 걸 너무 하찮게 보면 응당 그런 일도 있다는 걸 이 기회에 사람들은 배우게 될거요. 


조금 흥분을 했군. 뭐, 똑똑하신 선생께서 듣고싶은 말을 해주자면 저렇게 되겠지만.. 선생, 사실 난 세상에 뭔가를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아니라오. 나는 글쎄, 굳이 말하자면 절절한 로맨티스트라고 말하는게 적당할거요. 


내게는 아내가 있었소. 웃는게 자연스러운 사람이었지. 어쩌다 나같은 인간이랑 결혼을 했는지, 나도 참 복받은 인생이었소만. 아내는 아이를 좋아했다오. 누구의 아이든, 그 아이가 어떤 아이든 간에, 그저 아이를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걸 좋아하는 여자였소. 이렇게만 말하면 그저 평범하게 아이를 좋아하는 느낌일테니 조금 더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보이는군.


어느정도였냐면, 매년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장난감을 수십개씩은 구해다가 축복의 편지를 손수 써붙여 학교나 보육원 같은곳에 보내는 것이 그녀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방식이었소. 누가 받게될지 모를 편지를, 누가 받게되든 상관 없도록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채워 보내는 것도 큰 일이었다오. 당시엔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손이라도 좀 거들어줄 걸 그랬다는 생각도 요즘엔 드는구려.


나는 그런 아내에게 한시라도 빨리 천사 같은 아이를 선물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소. 그녀는 불임이었소. 하늘도 무심하시지. 나는 되도록이면 가능한 건 모두 시도해봤지만, 전부 무용지물이었다오. 아내는 항상 우리 둘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하곤 했소. 이런 나 하나만으로도 자신에겐 과분하다고 말이오. 그렇게 말하는 얼굴에 근심 하나 서려있지 않아서, 오히려 더 가슴아팠다오.


선생이 보기에도 나는 보잘것 없는 사람일거요. 하지만 자신의 아내에게 만큼은 능력있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있고 싶은게 남편의 마음 아니겠소? 다른건 몰라도 아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아이 하나 만큼은 그 품에 안겨주고 싶었소. 


꽤나 큰 비용이 들어가는 수술이었지. 나는 당시에 막 임상에 들어가던 어떤 수술에 대해 알게 됐다오. 선생이라면 아마 이쯤에서 이 이야기의 결말을 눈치 챘겠소만. 그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가 될거요. 


그 수술은 장기적으로 정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수술이었소. 그도 그럴게 산모의 몸에 지속적으로 자기네들의 '신약'이라는 걸 넣어줬어야 했거든. 처음 제시되었던 예상 금액은 내가 조금 무리하는 선에서 감당할 수 있겠다 생각했었소. 오만한 생각이었지. 한 생명의 무게를 나는 더 조심스럽게 저울질 했어야 됐는데 말이오. 


대략 7개월쯤 됐던 날이었소. 익숙치 않은 몸에 약까지 더해져 제정신이기 힘들었을 텐데도, 그녀는 마치 처음부터 그리 태어났다는 듯 여전히 웃는 얼굴이 아름다웠소. 그런 얼굴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할수가 없었던 거요. 전쟁으로 인해 약을 만드는데 필요한 핵심 성분의 가격이 폭등했고, 이때문에 더이상 나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비용이 들어가고 있었다는 걸. 


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던 중 여태 그녀가 보내왔던 편지에 되돌아온 답장들을 읽어보게 되었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이오만, 이런.. 선생의 표정을 보니 지금 말은 조금 과했나보군. 아무튼,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소. 


무려 20년이었소. 20년간 그녀에게 크리스마스마다 애정어린 선물과 편지를 받은 이들을 모두 세어보니 대략 이천 명이 조금 안되었지. 이들 모두는 아니더라도, 멋지게 성장해 그 은혜에 대해 기억할 일부만이라도 우리를 도와준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소. 나는 아내가 했던 것처럼 손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오. 그토록 많은 편지를 써보니, 다시한번 그녀가 얼마나 큰 사랑으로 그동안을 보내왔는지 알겠더군. 


그런데 말이오 선생, 물론 우리가 이렇게 얼굴을 보고 있으니 선생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이 갈거요. 그 어떤 도움도 돌아오는 일은 없었소. 그래, 단 한장 답장이라도 보내오는 일이 없었지. 하긴, 내 잘못도 있소. 너무 적나라하게 그 금액을 들이밀었으니.. 어쩌면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도움을 청했어야 됐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와서 그런 생각을 해봤자 당시 일어난 일은 바뀌지 않으니 말이오. 그리고 냉정히 생각하면.. 이건 나중에 얘기하는 편이 좋겠군.


여하간, 더는 제정신으로 버티는 데에도 무리가 오고 있었소. 어떻게든 없는 돈을 끌어모으는 것도 한계에 다다를 무렵, 약값은 갑절로 비싸져있었고, 결국 아내는 방치되었소. 만삭의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어떻게든 한달 여만 더 버틸 수 있기를 나는 기도했소만. 


선생, 물 한잔만 가져다 주시겠소?


음. 조금 낫군. 


아, 괜찮소. 내 입장에 걱정까지 받다니, 그만한 사치가 또 있나 싶지 않소? 조금만, 말을 정리할 시간을 주시구려. 


...


그래, 덤덤하게 말하는 편이 좋겠군. 아내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운명을 달리했소. 정리하자면 그걸로 전부인 이야기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하겠소? 그래, 선생은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럼 잠깐만 저 녹음기를 꺼주시겠소? 아무래도 이걸 입에 담는게 기록되는 건 꺼림칙하구려. <녹음 중지>






<녹음 재개>...이젠 괜찮소. 이런, 컵이 깨져있는줄은 몰랐는데. 선생을 위협할 요량은 아니었소만, 폐가 된 것 같으니 사과드리겠소. 


...그것이 차라리 아이였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으리란 생각이 문득 들었소만, 그건 모를 일이니 말이오. 선생의 표정을 보니 이 이야기를 듣는게 꽤 힘들었던 모양이오. 아무튼 이 이야기는 더 하지 않는 걸로 하겠소. 


흠.. 그럼 이제 내 과오에 대한 부분만 남았군 그려. 이제부턴 선생도 자세히 아는 내용일테니 간단히 말하도록 하지. 


문득 나는, 어떤 노래 구절이 떠올랐소.


'And in the End, the Love you take is equall to the Love you make' 


나는 아내가 세상에 남기고 간 사랑이 보답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소. 그녀가 가져가야할 사랑이, 세상에 남아있다고 생각했소. 그게 전부요. 선생, 나를 정신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무엇을 하려는 요량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게 전부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세상에 더 미련이 없소. 지금 선생과 하는 대화의 내용에 따라서는 내 형이 더 가벼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선생께서 잘 설명해주셨소만, 그다지 관심은 없다오. 나는 제정신이오 선생. 오히려, 아내를 만나러 간다면 좋겠군. 그야 그렇지 않겠소?


아내는 지금, 수천명의 아이들을 혼자 돌보... <녹음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