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나즈막히 말했다.


"너는 글을 쓰거라."


그러자 양초가 넘어졌고, 작은 불빛마저 아스라이 사라졌다. 어둠은 어머니와 나의 그림자를 한데 섞어 방 곳곳에 펴발랐고, 나는 도무지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썩, 썩, 썩. 곧이어 도마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매우 정연하였다. 나는 그 소리가 달빛이 창호지를 두드리는 소리라고 생각했으나, 오래 전에 뚫어놓은 그 구멍들 사이로는 밤바람과 풀벌레 소리만이 드나들었다. 하나, 하나, 새어나가는 칼질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는 차마 내 손을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찾고자 하였지만 어둠은 어머니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고 도마 소리마저도 안개에 흠뻑 적셔 흐릿하게 하였다. 나는 먹을 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어둠을 써는 소리를 한 차례 두 차례 넋놓고 들어야 했다. 어머니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내 손을 보았다. 도저히 붓을 잡는 자의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어머니, 이런 팔로는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제발, 내 손을 붙들어 주십사 부탁하고자 하였지만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게는 남은 기회가 없었다. 어머니를 더 이상 실망시켜선 안 되었다. 나는 정신을 붙들고 손을 넉 뼘 정도 움직여 벼루를 문질렀다.


어머니의 칼질 소리를 벼루 가는 소리가 뒤따랐다.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손끝의 감각마저 그 도마 위로 오르는 듯 하였다. 동에서 남으로, 남에서 서로, 서에서 북으로 팔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벼루가 검듯 먹도 참으로 검었다. 어둠은 내 검은 눈동자에 먹이 얼마나 갈렸는지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창호지 밖에 서 있는 것들을 오롯이 느끼며, 결국 붓을 들었다. 약지와 소지를 뒤로 하고, 남은 세 가락들로 붓을 단단히 쥐었다. 경직된 자세로 팔을 넉 뼘 가량 움직여 벼루가 있어야 할 곳에 팔을 천천히 내려놓고 초가리를 연지에 담그듯이 했다. 내 감이 들어맞았는지 손끝에 저항감이 느껴졌다. 옳다, 제대로 먹을 찾은 것이구나. 타는 속을 애써 억누르며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얼굴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썩, 썩. 그 피비린내 나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나도 멈추어서는 안 되었다. 서둘러 붓에 남은 먹물을 덜어내고 다시 암흑 속으로 붓을 옮겼다.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촛농이 흐르기 전에 어머니는 분명 내 정강이 앞에 화선지를 깔아주셨다. 나는 기억 속의 장소로 손을 옮겼다. 그리고 붓을 놀렸다. 나는 첫 획을 써내리자마자 그 결과를 직감할 수 있었다.


내 팔은 여전히 심하게 떨고 있었다. 도저히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를 않아 내가 어떤 글씨를 적는지도, 정말 글씨를 쓰고 있기는 한 건지도 알 수가 없어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 모습을 보고 계실까. 모르겠다. 나는 눈물이 그림자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보며 다음 획, 그 다음 획을 이어 적었다.


내가 마지막 획을 긋자 어머니의 칼질이 멈추었다. 나는 이 순간 어둠이 생애 가장 가까이에 있음을 느꼈다. 아, 드디어 이 집은 어머니마저 삼키고 말았구나. 그 도마 소리도, 문틈을 구렁이처럼 넘나들던 풀벌레들도. 이제는 달빛의 형상조차 뿌옇게 번지고 말았다. 어머니, 어머니. 저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화륵ㅡ




그러자 초가 다시 피어났고 희미한 주홍빛이 방 한가운데서 일었다. 나는 정신이 아찔하여 퉁퉁 불은 눈으로 가늘게 흔들리는 심지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그곳에 없었다. 어머니의 할머니가 물려주셨다던 그 도마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나는 손에 힘이 풀려 붓을 더 이상 집을 수 없었다. 떨어진 붓은 먹을 토하며 방 가장자리로 굴러 들어갔다.


그제서야 나는 어머니가 어둠 속에서 무엇을 썰던 것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두 손으로 도마를 쥐며 그림자 속의 어머니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도무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 모습을, 내 기억 속의 칼을 쥔 채로 어머니의 동작을 따라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촛불을 껐다. 어디선가 먹을 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