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해가 보이지도 않는 시간에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린다. 벽에 기대어 두시간 마다 교대로 근무를 서고 있던 리자드맨, 자류스가 방문을 연다. 그 대상이 아르셰임을 확인하고 자류스가 길을 열어준다.


" 트레이시. "


침대로 다가온 아르셰가 자고 있는 트레이시의 어깨를 살며시 흔든다.


" 으응~ "


트레이시는 아직 졸린 것인지 눈은 뜨지 않은 채로 고개만 돌려 아르셰에게 대답한다.


" 일어나, 갈 시간이야. "


" 아! "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트레이시가 눈을 크게 뜬다. 모이기로 약속한 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아르셰는 알고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그녀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아르셰가 배려한 것이다. 트레이시는 이곳에서 잘 때 빌린 아르셰의 옷을 대충 벗어 놓고 급하게 자신의 갑옷을 챙겨 입는다. 그녀가 갑옷을 거의 다 입었을 때쯤 자류스 또한 사슬류를 깨운다. 준비가 끝난 트레이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르셰가 생긋 미소를 지어 방을 나선다.


" 우웅, 언니이... 어디가아~? "


잠이 덜 깬 채로 눈을 비비며 작디작은 여자아이 한 명이 아르셰에게 다가왔다. 조용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트레이시가 갑옷을 갈아입는 소리에 깬 모양이다. 그녀의 이름은 우레이리카, 아르셰가 말했던 여동생 중 한 명이다. 아르셰가 그녀를 살며시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 일 하러 갔다올게. "


" 벌써? "


" 응. 쿠데는? "


" 자고 있어. "


" 그래... "


작은 인간을 감싸는 커다란 인간의 두 팔. 그 모습을 보면서 자류스가 눈을 흘렸다.


" 아이... 인가... 크루슈... 잘 있겠지... "


" 떠난지 며칠이나 됐다고 아내 걱정이냐. 금술좋구만. "


" 그치만 이젠 내 여자니까, 걱정되는걸. "


" 하하하, 너도 좋은 아이를 가져야겠지. "


우레이리카를 보며 사슬류가 눈을 떨궜다.


" 그래... 이번 일이 끝나면 코퀴토스 님께 부탁드려야겠군. "


" 무얼 말이냐. "


" 아이와 지낼 시간을... 조금만 내어 달라고 말이지. "


" 무슨... 너, 설마. "


자류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 크루슈가 임신했어. 이제 얼마 안 남았거든. "


" 하지만 아우야. 그건 우리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더냐. "


" 알고 있어, 그렇지만... 분명 이해해 주실거라고 믿어... 트레이시 아가씨 께서도 분명... 앗. "


크루슈에 대한 기억으로 그 트레이시가 자신들의 앞에 있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 실컷 떠들어 댄 무례에 자류스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 죄송합니다. 아가씨! 딱히 아가씨께... "


" 보기 좋네... 저런거... "


" 예? "


트레이시가 나지막이 말했다. 자류스가 아르셰와 우레이리카를 보고 있었을 때, 그녀 또한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아르셰는 저 애들을 사랑하는 것 같아. 결혼이라도 할건가? 아, 응? 무슨 말 했어? "


" 어어... 아니요, 아무것도. 그렇지만 그런 의미의 사랑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


" 달라? "


트레이시가 고개를 돌려 갸웃거렸다. 자신은 눈앞에 있는 저 소녀, 아르셰가 행복했으면 했다. 그리고 그 아르셰의 행복을 바라는 자신은 아르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르셰 또한 저 동생들의 행복을 바라므로 그녀는 동생을 좋아한다는 것이 된다. 그렇게만 단정 짓고 있었다.


" 아니요,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그 사이의 미묘한 차이와 그 외의 감정을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저건... 그러니까... "


" 가족 이니까요. "


말을 잇지 못하는 자류스 대신 사슬류가 대신 답했다. 그리고는 자류스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 보통의 가족이란 그런 겁니다. 아가씨께서도 아인즈 님께 사랑을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


언데드에게서 태어나 감정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탓일까. 그녀는 이러한 감정적인 이야기에 서툴렀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데드에게 사랑이라, 분명 누군가가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셋 중 누구 하나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나 트레이시 본인은 더욱. 자신이 어떤 잘못을 해도 아인즈는 너그럽게 용서하며 다음 기회를 선물해 주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모두 들어주었다. 그것을 그들은 사랑이라고 표현해 주었다.


" 그런건가... "


감정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트레이시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아르셰의 손을 잡은 우레이리카를 바라보며 그렇구나 하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



" 미안 늦었어. "


급하게 뛰어오는 아르셰를 헤케란이 손을 흔들며 맞이해 주었다. 그러나 포사이트 이외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야 이곳은 정해둔 약속 장소가 아닌, 그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먼저 포사이트 멤버끼리 모이기 위해 이곳, 노래하는 사과를 출발지로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 뭐, 딱히 사정을 묻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로버딕이 여관으로부터 따라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듯한 차가 담긴 컵 한잔을 건네며 웃었다. 이것이 아르셰와의 마지막 임무였다. 그러니 적어도 오늘 만큼은 그녀와 절대로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이미나 또한 웃으며 미리 로버딕에게 받아둔 차를 시원하게 넘겼다. 따른것이 오래되었는지 이미나의 차는 이미 식어 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 출발 할까. "


헤케란이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접선지로 이동했다. 의뢰인, 백작의 영지에 이미 자신들 포사이트 이외에 다른 워커 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 이야 엄청난 숫자에 어디서든 봤던 얼굴들이 잔뜩인걸? 의뢰인의 유복함에 박수~ "


헤케란이 감탄하며 박수를 치는 것을 로버딕이 말리며 앞을 가리켰다.


" 리더가 모여있습니다. "


" 알았어 알았다구. "


포사이트의 뒤로 따라온 트레이시와 그 리자드맨에게 몇몇 인원들의 눈길이 따갑게 느껴졌다. 포사이트라면 워커들 중에서는 유명인사, 그러나 그런 포사이트와 함께 온 소녀와 두 리자드맨 노예는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모르는 워커인가 혹은 포사이트의 새로운 멤버인가 그런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트레이시가 기지개를 켜며 신음했다.


" 흣~ 흐아아아아~ "


" 피곤하십니까? "


로버딕의 질문에 트레이시가 눈을 감은채 고개를 흔들었다. 졸립다는 것을 숨길 생각은 있는건지 하며 아르셰와 로버딕이 크게 웃었다. 바라보다 못한 이미나가 붉은색이 섞인 풀잎을 건네 트레이시의 볼에 착 하고 붙인다. 그러자 잠시 후 트레이시의 두 눈이 번쩍 뜨여 빠르게 고개를 흔들며 볼에서 붉은 풀잎을 떼어냈다.


" 어때? 잠이 확 깨지? "


" 뭐, 뭐, 뭐야 이게! "


" 굉장히 매운 요리에 쓰이는 재료인데 이렇게 쓸 수도 있어. "


하프엘프인 그녀 스스로가 자연에서 터득한 방법이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방금전까지 있었던 졸음과 아픔이 함께 확 사라져 트레이시는 금방 눈을 크게 뜰 수 있게 되었다.


" 음... "


이제야 주변의 눈초리가 느껴졌는지 트레이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 눈치채셨습니까. 다들 트레이시씨를 보고 있는겁니다. "


" 나를? "


트레이시는 그저 리자드맨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으나 로버딕의 말에 그 대상이 자신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리더 무리에서도 마침 트레이시를 바라보며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 헤케란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리더 중 천무라는 이명이 붙은 에르야ㆍ우즈루스가 이미나를 바라보며 조금 눈살을 찌푸렸으나 즉시 헤케란이 무언가 말을 하며 그를 막아섰다.


리더간의 면담이 끝나고 헤케란이 돌아와서 잠시, 휴식이 끝난 사이에 찾아온 백작의 집사가 워커들을 맞이했다. 그의 주인이 고용한 팔족마, 슬레이프니르를 여럿 대여해 마차를 이끌게 한 것에 모두가 놀라 경악과 감탄이 섞인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후 야영지에서 경호를 맡을 모험자가 등장했다.


" 소개하겠습니다. 아다만타이트 모험자, 칠흑의 모몬과 나베씨 입니다. "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아다만타이트 모험자, 거기에 최근 단둘만의 팀으로 이뤄낸 엄청난 업적들이 그들의 입에서 서로의 귀로 오고 갔다. 그러나 놀란 것은 워커들 뿐 아니라 트레이시도 마찬가지였다.


" 저것이 인간들 중에서는 최강인 존재인 거냐, 아우야. "


" 예, 아다만타이트 라는 존재는 혼자서 나라 하나를 집어 삼킬 정도라고 하더군. "


그녀의 뒤에서 이런 이야기를 평범하게 하고 있을 수 있던 이유는 그들이 모몬의 모습을 한 아인즈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트레이시가 어째서 놀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음, 아가씨.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


" 아버지가 왜... "


" 예!? "


" 주군께서!? "


" 뭐라고? "









아주 작게, 이야기한 것을 들은 존재들 중, 아르셰가 되물었다. 트레이시가 급하게 손가락을 입에 올려 쉿 하고 그녀의 입을 막았다. 아르셰가 고개를 끄덕여 그 뜻을 이해하고 소리를 낮췄다. 리자드맨들의 목소리 또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으나 모몬의 존재가 그런 걱정을 날려버릴 정도로 압도적이었기에 아르셰를 제외한 누구도 그들의 말을 듣지 못했다. 물론 트레이시에 대한 아르셰의 호감이 모몬에 대한 관심보다 높았기 때문도 있었다.


그런 포사이트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크게 놀라고 있던 한 인물이 있었다. 검은색 갑옷을 둘러 칠흑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 자. 칠흑의 모몬을 연기중인 아인즈였다.


' 왜 또 트레이시가 여기에 있는거지!? 데미우르고스!!! '


데미우르고스로부터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아인즈는 평범하게 모험자 조합의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여정의 호위를 맡게 되었다. 제국으로 이동하고는 있으나 워커들의 호위라면 딱히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으나 그런 워커 무리 사이에 트레이시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아인즈는 일절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생각의 굴레에 빠져 있었다.


' 침착하게 우선 이 여정의 목표부터 떠올려보자... '


그녀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우선 아인즈는 이번 모험의 목적인 워커의 목적을 알아내기로 다짐했다.


' 이들의 목적지는 아직 듣지 못했는데... 이만큼의 인원이 모인다는 것은 위그드라실로 치환하자면 던전 공략이겠지. 던전 공략이라... 나자릭이 이곳에 전이해 왔을 때 주변 국가들은 이미 근방의 조사를 끝낸 상태였어. 그렇다면 이들이 갈만한 장소는... '


" 아. "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며, 그 끝을 몰라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며 새로 공략이 필요한 던전. 그러한 존재라면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나자릭 지하대분묘였다. 즉 이 워커들은 그들 기준으로 새로 발견한 던전인 나자릭을 공략하기 위해 고용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 왜 그러십니까. 모몬 니... 씨. "


"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


' 데미우르고스!!! 대체 무슨 계획을 짠거냐!!! 설마 이 인원들이 나자릭에 발을 들이는 거라면 절대로...! 아니... 잠깐만... '


자신과 동료들이 함께 일구어낸 나자릭에 외부의 인원을 들인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에 분노에 찬 아인즈였지만 그러한 감정은 금방 억제되어 냉정을 되찾았다. 이는 한가지 기회이기도 했다. 만에 하나 나자릭이 공격받는다면 그것을 격퇴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는지, 또 그것을 격퇴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나 들지. 현재 보고 있는 워커 들은 모험자로 치면 오리하르콘이나 미스릴 수준은 되는 수준이므로 이 세계인 중에선 어느 정도 강자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었다.


' 확실히 테스트에는 충분하겠군... 아! 데미우르고스의 계획은 혹시 그런거였나! 이 세계의 공세도 확인하고 수호자들의 대처도 확인할 수 있겠군. 음 음, 이 정도 계획이라면 외부인의 출입은 어느정도 용납할 수 있지. 마침 잘 됐네, 그럼 이번 기회에 나도 나서볼까. '


" 나베. 야영지에 도착하고 나면 판도라즈 액터를 대신 내세우마. "


" 알겠습니다. "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아인즈가 나베랄에게 말했다.


" 모두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슬슬 마차에 올라타시기 바랍니다. "


집사의 말을 시작으로 워커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활짝 펼쳐진 거미줄에 다가가는 나비처럼,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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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마 안남았어 아르셰!


아르셰 뿐 아니라 좋아하는 캐릭터는 전부 다 가질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