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학살이 있고 어느덧 닷새라는 시간이 지났다. 방금 막 황궁으로 복귀해 나자릭 지하대분묘 라는 지옥의 문턱, 정확히는 지옥 그 자체를 경험하고 온 지르크니프는 집무실에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깃펜을 잡고 있었다. 어떤 글을 적어야 할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보통 때라면 걱정도 하지 않았을 간단한 업무에 이렇게나 긴장한 적은 처음이었다.


' 그건 옥좌에 앉아 있는 『죽음』 그 자체. 지금 이 옥좌에 앉아있는 나라는 존재는 그에게 뭐지? '


평의국와 성왕국으로 보낼 편지를 작성하며 지르크니프는 몇 번이나 종이를 꾸겨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이미 가득 찬 쓰레기통에서 종이가 튕겨져 나와 바닥에 나뒹군다. 표정을 구기며 지르크니프가 벨을 흔들었다.


" 부르셨습니까. "


" 방을 조금 치워주게. "


" 네. "


전속된 메이드가 들어와 조용히 지르크니프의 어질러진 방을 치우기 시작한다. 자신이 작성할 내용을 들킬 수는 없었기에 종이를 구기기 전에 약간이나마 적었던 내용들도 모두 지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가를 바라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보았던 그 날씨 그 온도 그 감각이었다. 5 위계니 6 위계니 하는 마법과 관련된 내용은 모르겠으나 인간의 영역에서 할 수 없는 마법인 날씨를 조작하는 마법, 그 마법으로 느꼈던 따듯함이다.


" 물러가겠습니다. "


" 어. "


방이 정리되어, 지르크니프의 집무실은 방금 새로 지은 방처럼 깨끗해져 있었다. 쓰레기통은 완전히 비워지고, 사용했던 종이의 숫자만큼 그대로, 사용할 종이가 다시 채워져 있다. 단순한 인사치레와 상업 업무에 관한 내용이다 단지 그 뿐이었다. 적어야 할 것은 그런 내용 뿐이다.


' 그렇지만... 대체 왜 이렇게 떨리는거지! '


플루더의 마법으로 2중, 3중으로 탐지계 마법을 막는 보호를 펼치고 있기에, 플루더는 이 정도라면 절대적으로 안심해도 좋다고 하였으나 안전하다고 믿으며 지내는 것은 바보다. 그리하여 벌어지는 것이 바로 전쟁이며 혁명이다. 지르크니프는 그러한 안전에 취할 바보는 아니었다.


" 흠... "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아래로 눈을 흘겼다. 이전에 자신이 불렀던 붉은 머리의 소녀, 트레이시가 이제는 3기사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 제국의 자랑 4기사중 한 명, 바지우드와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투기장을 가끔 보아온 바로 검의 실력은 바지우드의 압승, 그러나 실력과는 별개로 바지우드 또한 힘에 부친 것인지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 쉽사리 놓아줄 순 없지. 이쪽에서 알아갈 유일한 패니까. "


이전, 다크엘프들이 왔을 때를 떠올렸다. 그들의 입에서는 서로 간은 모르는 체를 한 모양이지만. 그들의 행색은 너무나도 어색했다. 더불어, 그녀들이 나자릭 지하대분묘의 소속이라면 앞뒤가 너무나도 맞아떨어졌다. 제국 내부에서부터 암암리에 활약하고 있었던 것일까. 혹은 평범한 워커였으나 이전 임무에서 정신 지배라도 당한 것일까. 후자의 경우를 지르크니프는 높게 생각하고 있었다.


' 이대로 모르는 척, 그녀들을 내 수하로 만들어 아인즈 울 고운에 대한 정보를 빼낸다. 그리고, 중요한 반목 역할을 맡게 한다. 만약 그녀들이 정말로 그들과 관계없는 자들이라도 상관없어. 실력은 있어 보이고, 여차하면 잃어버린 4기사 중 한 자리를 맡게 하는 것도 괜찮겠지. '


" 폐하, 플루더 팔라다인 입니다. "


" 들어오라 해라. "


노크 소리와 함께 기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이 나라의 전략적 요소로 사용될 정도의 인재, 플루더 팔라다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 보호도 없이 혼자 계신 겁니까. 폐하. "


" 훗, 그런 드래곤을 타고 황궁에 침입한 자들이다. 오히려 보호를 하겠다고 단체로 몰려 있으면 어떤 의심을 사겠나. 그리고, 또 그런 대규모 마법에 단체로 죽을 일은 피해야지. "


플루더의 질문에 지르크니프가 씁쓸한 미소를 건넸다. 플루더가 지르크니프의 손짓에 따라 집무실 안에 있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댄다. 그와는 반대로 지르크니프는 안절부절 떨며 자리에 도통 앉지 못했다.


" 영감, 조금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 "


" 무엇이온지요? "


" 영감이 눈으로 보기에, 그 아인즈 울 고운 이라는 자의 마법 실력은 어느정도지? "


" 안타깝게도 그런 정보를 방지하는 마법을 사용하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옥좌의 옆에 있던 자들 대부분은 인간으로서는 이미 저를 한참 넘어선 존재도 여럿 있었습니다. "


" 그래, 역시 그렇기에 나는 이 방에서의 불안함을 지울 수가 없다. 영감이 아무리 실력이 좋은 마법사라고 해도, 영감보다 뛰어난 존재가 그렇게 많았다는 소리니까... 그렇지만... "


나자릭 지하대분묘, 옥좌의 홀에서 플루더가 상대방의 마법 위계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 것이 떠올랐다. 그것이 처음에는 아인즈 울 고운을 보았을 때라고 생각했으나 그의 실력은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 그런 놈들이 여럿... 한 명만으로도 나라가 전복될 판이다. 그게 여럿이라는 건가... 역시... '


그 자리에 있는 자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편으로 돌아서게 할 필요가 있었다.


" 그래서, 영감은 안 가는건가? "


" 예? 가다니... "


" 그렇게나 마법을 배우고 싶어 했었잖나. 지금이라도 배신하면 그자들이 받아줄지도 모르는데. "


플루더가 표정을 굳혔다.


" 만약 그 아인즈 울 고운이라는 존재가 전설로만 전해지는 10위계 이상을 사용한다면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아직은 황제를 보좌해야 하니까요. "


" 훗, 그런가. "


지르크니프가 다시 한번 씁슬한 웃음을 플루더에게 보냈다.


"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



***



" 이것으로 계획의 전반은 종료되었습니다. 아인즈 님. "


" 훌륭하게 처리했구나, 데미우르고스. "


옥좌의 홀에 앉은 아인즈에게 데미우르고스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인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데미우르고스를 칭찬했다.


" 그래, 분명히 플루더 팔라다인 이라고 했던가. 그를 먼저 만나고 왔다고 들었다만. "


" 그렇습니다. 아인즈 님의 시야를 기준, 가장 왼쪽에 있던 백발노인의 인간입니다. "




모몬과 나베가 제국으로 향하기 이전. 자신의 방에서 오늘도 진전없는 마법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던 플루더는 깜짝 놀라 주위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개발해낸, 전이나 이동을 탐지하는 마법인 『전이탐지(轉移探知)』를 통해 이곳 마법학원에 전이 마법의 사용자가 나타났음을 그의 머릿속에 들리는 경고음으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 전이 마법!? 지난 수십 년간 근방에서 이 마법을 사용하는 자를 본 적 없었거늘...! "


" 호오, 인간치곤 마법에 대해서 꽤 공부는 한 모양이군요. "


플루더가 다시 한번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보인 것은 여리여리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마른 체형의 남성, 주황색의 정장 복장에 안경을 쓴 신사적인 기품이 넘치는 정적인 자세로 스스로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리고 있었다.


" 이... 이건은...!!! "


그러나 플루더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그러한 일반적인 겉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엄청난 힘의 차이. 상대의 마법 위계를 알 수 있는 탤런트로 이미 그가 7,8 정도가 아닌 10위계 마법의 사용자임을 단순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 그것이 소문으로 들었던 탤런트입니까? 이야기가 빨라서 편하군요, 힘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건 이야기를 단축시킬 수 있으니까요. "


" 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


그 말에 데미우르고스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 나자릭 지하대분묘 소속, 제 7계층의 수호자. 데미우르고스. 라고 합니다. "


" 나자릭 지하대분묘? "


이미 200년 넘게 살았음에도 처음 들어보는 지명에 플루더가 당혹을 멈추지 못했다.


" 에 란텔 근교에 있는 위대하신 분의 땅입니다. "


" 위대한...? 당신은... 당신이 그 곳의 주인이 아니란 말입니까!? "


어느샌가 플루더는 스스로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데미우르고스의 지배의 주언은 아니다. 그저 스스로가 감격하여 그에게 조아린 것이다.


" 부디...! 부디 부탁드리옵니다! 저에게... 저에게 당신의 마법을...! 그 심연을...! "


" 이야기는 이쪽에서 부텁니다. "


" 아... 예! 이쪽으로! 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


플루더가 황급히 일어서 자주 앉을 일이 없던 푹신한 의자와 보존 마법이 부여된 달콤한 과자가 올려진 테이블로 향했다. 데미우르고스는 처음부터 어딘가 미소를 짓는듯한 얼굴 그대로 천천히 움직여 플루더가 준비한 자리로 이동했다.


" 준비한 것을 거절하는 것은, 이후 나자릭의 운영에 대한 예행연습이라 생각해 받아들였지만, 저는 시간이 낭비되는 것은 싫어해서 말이죠. 본론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


" 예! "


" 우리 나자릭 지하대분묘에서는 당신을 거두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


" 거두어... 간다는 말씀은...? "


" 나자릭 지하대분묘를 위해서 일하는 겁니다. 이는 아주 훌륭한 일이며, 저희들의 주인 아인즈 님께서는 일한 자에게는 과다할 정도의 포상을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시기에 포상또한 따라올 것입니다. 마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고작 6위계나 7위계의 마법 정도라면 아인즈 님정도 되시는 분이라면 개미의 겉할기. 얼마든지 좋을 겁니다. "


" 오오... 오오오...! "


자신이 바라던 일이, 자신의 포상이 아닌 상대방의 목적으로서 이루어 졌다. 이 보다 더한 행운은 없으며, 지금의 기쁨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플루더가 의자에서 일어서 다시 한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제가 살아온 시간은 당신과 비교하기엔 짧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비로소 기다려온 일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것과도 같아 기쁨에 의한 찬사를 부디 받아주시옵소서! "


" 허가하네. "


" 그러면, 저는! 저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무엇이든지 명령을! "


" 우선은 제물을. 나자릭 지하대분묘에 제물을 가져오세요. 그리고... "




잠깐 생각에 빠져있던 아인즈는 데미우르고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베도에게 반쯤 협박이었지만 계획의 전모를 들었을 때 조금은 의심하고 있었다. 데미우르고스가 이리도 쉽게 자신의 정보를 내어주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가진 것은 아인즈 뿐만이 아니었다.


" 질문해도 되겠사와요? "


샤르티아가 손을 들었다.


" 허한다. "


" 데미우르고스는 어째서 나자릭에 대한 정보를 잔뜩 밝힌 것이 와요? 그리고, 만약 그 인간이 배신하면 큰일 아니사와요? "


" 그렇다면 배신하는 것으로 좋기 때문이야. "


" 무슨소리시와요? "


" 왕국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만났던 황금의 공주, 그녀의 이야기대로 플루더라는 인간은 마법 공부에 열중한다는 정보가 있었고, 실제로 만나자마자 보였던 그의 반응으로 딱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든. 추가로 그가 배신하여 정보를 흘린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지. 그가 배신하여 섣불리 상대가 선공을 취한다면 그것을 계기로 방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진군을 강행해도 괜찮아, 그것이 대의명분이라는 것이니까. "


샤르티아가 오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배신하여 우리가 존재가 들통나더라도 어차피 이미 외부로 나자릭을 드러낼 생각이었기에 상관은 없고, 거기에 아인즈 님께서 찾아다니시던 탤런트의 존재. 그 탤런트를 가진 존재가 플루더 팔라다인 이라는 정보를 손에 넣었는데, 이번 트레이시 아가씨께서 지배하신 아르셰 라는 인물은 그 플루더 팔라다인과 같은 탤런트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네. 즉 그 플루더 라는 인물은 버려져도 상관 없는 인물이라는 소리지. "


" 아가씨께서 지배하신...? 오오, 그렇다면 아인즈 님께서는...! "


샤르티아의 감탄에 데미우르고스가 미소를 지었다.


" 그 말대로, 아인즈 님께서는 이미 트레이시 아가씨를 제국에 보내셨을 때부터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계셨던 것이다! 바하루스 제국의 밑바닥부터 씨앗을 심어두시고, 워커라는 가장 낮은 계급으로 잠입한 트레이시 아가씨는 지금 제국의 황제와 함께 있다. 이미 제국의 심장부에는 우리 나자릭이 모든 것을 잡고 있게 된 것이지! "


" 오오오오! "


' 에에에에에!? 그런거였어!? '


아인즈는 이전 데미우르고스와의 전언을 떠올렸다. 어느샌가 도 아니라 이미 그때부터도 싸한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자신이 의도한 것이 되어버린 이야기에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 속은 놀란 표정이 가득했다.


" 바, 바로 그렇다! "


" 그럼, 이제 나자릭 지하대분묘가 외부에 나설 때이니... 한가지, 정해둬야할 안건이 있습니다. 아인즈 님께서 왕을 칭하시는 데에는 이의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단순한 왕이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에 어울리는 호칭을 정할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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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모델링이 없는 캐릭터가 생겨서 장면을 만들기가... 흑흑...


이렇게 아인즈의 계획은 데미우르고스가 가져갔다.

아니 원래도 데미우르고스의 계획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