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즈의 말에 지르크니프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분명 그는 괴물이다. 말도 안 될 실력을 지닌 괴물. 모든 계산이 빗나가는 느낌이었다. 병사나 부하를 보내는 것도 아니라 자신이 직접 행차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 목적은 뭐지! 집적 제국을 박살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


" 안색이 안 좋군, 여차하면 쉬고 가겠나. 일은 나 혼자 처리한다고 했으니 딱히 가지 않아도 괜찮다만. "


" 아, 아니! 결코 그럴 수는 없네! 적어도 내 나라니까 말이지. "


" 그런가... 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면 다행이군. "


' 그렇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최대한 놈의 근처에서 놈의 계획을 엿봐야한다. '


" 그럼 아인즈 울 고운 공. 마차에 타겠나! 즉시 달려가면 아마 늦지는 않을걸세. "


" 그럴 필요는 없네. 그러면 너무 늦지 않겠나. "


" 뭐... "


" 샤르티아, 전이문을 열어라. "


"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인즈 님. "


자리에서 천천히, 최대한 위엄있어 보이는 자세로 일어난 아인즈가 샤르티아에게 명령하자, 샤르티아가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곱게 들어 올려 대답했다. 샤르티아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살며시 웃는 모습이 지르크니프에게 보였다.


" 지르크니프 공, 데려온 인원은 이게 전부인간? "


' 역시, 몰살시키려는 건가! 방금 그 웃음도 의심스러웠다. 만약 내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비서관이 눈치채고 병사들을 향해 전군을 이끌라고 지시해놓긴 했지만... 우선은... '


" 그렇네, 우리가 다 일세. "


" 그렇다면 다행이군 시간을 아낄 수 있겠어. "


" <전이문『Gate』> "



***



아인즈와 바하루스 제국의 면면이 사라진 옥좌의 홀에서 샤르티아가 어딘가 기운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너 또 왜 그래? "


아우라가 물었다.


" 그 일이 있었던 후부터 아인즈 님께서 전이문 밖에 사용하라고 호출하지 않으사와요... "


" 그거야 전투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 "


" 그렇지만! 샤르티아는...! 이 샤르티아는...! 더 열심히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단 말이시와요! "







어딘가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샤르티아를 위해 꺼낸 이야기였으나, 이어지는 샤르티아의 말에 아우라가 조금 당황해 눈을 피했다.


' 또 귀찮은 이야기를 꺼낼 것 같기도... '


그런 생각을 하며 아우라가 코퀴토스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에 데미우르고스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현재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운 상태다.


" 음... 지고의. 존재. 께서. 명령. 하신. 일이. 다. 샤르티아. 겸허. 하게. 받아들. 이거라. "


" 알고있사와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


" 있지, 샤르티아. 윽. "


고개를 휙 돌려 코퀴토스를 바라보는 샤르티아가 아우라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휙 돌린다.


" 너는 전이문을 사용할 줄 아니까 전언도 받고 하는 거겠지만. 나는 최근엔 더 일이 없거든? 그러니까 네가 나보다도 아인즈 님께 더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지. "


' 이렇게라도 기운이 났으면 좋겠건만... '


" 그, 그런것이와요!? 그렇지만 역시 저는... "


" 뭐가 그렇게 불만인거야? "


" 부, 불만이 아니사와요! 더 활약하고 싶은 것이와요! "


" 아인즈 님께 직접 이야기해 보는 게 어때? "


" 그, 그럴 수는... "


" 하아... 나중에 내가 아인즈 님한테 슬쩍 이야기해 볼 테니까 지금은 잠자코 있어. "


" 정말이시와요!? 정말로 정말로! "


아우라의 말에 샤르티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뀐다.


" 정말이라니까. 정말... 귀찮게 구네. "


" 정말로 감사하시와요! 나중에 이 은혜는 꼭 갚겠사와요! "


" 아, 안 갚아도 되니까 달라붙지 마! "


자신을 꼭 껴안는 샤르티아를 밀어내며 아우라는 자신의 창조주 부글부글찻주전자의 이름을 되새겼다. 둘의 실랑이는 안중에도 없이 코퀴토스는 어딘가 보이지도 않는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코퀴토스! 샤르티아좀 떼어내줘! 코퀴토스! "


" ... "


" 코퀴토스!? "


" 음! 아인즈. 님. 께서. 계시지. 않는. 다고. 는. 하지만. 적당히. 해두. 거라. 샤르티아. "


아우라의 이야기에 아주 잠깐 정신이 든 코퀴토스가 창을 땅에 내리찍어 금속음을 내었다. 어딘가 이상한 모습에 아우라와 샤르티아가 하던 짓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넋이 나갔거나, 기운이 빠진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는 모습은 평소의 코퀴토스 답지 않았다.


" 저기, 무슨 일 있어? "


아우라의 질문에 코퀴토스가 그제야 차가운 한숨을 내쉰다.


" 아우라. 와. 샤르티아. 는. 걱정. 되지. 않는. 건가. "


" 걱정? "


" 트레이시. 아가씨의. 일. 말이. 다. "


" 아가씨가 왜? 방금 제국의 황제 옆에서 잘 계셨잖아. "


왜냐고 묻는 아우라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코퀴토스가 큰 소리를 내었다.


" 왜냐고. 묻는. 것인가!!! "


" 으왓! 깜짝이야! "


" 무, 무슨 일이시와요!? "


" 아가씨. 께서. 아가씨. 께서. 그런. 인간. 의. 땅에. 가. 계신단. 말. 이다! 무슨. 일이. 벌어. 질지. 어떻. 게. 알겠. 는가! 갑자기. 습격. 이. 라도. 받으. 시면! 어쩌나! 하물. 며. 며칠. 동안. 나자릭. 으로. 복귀. 하지. 도. 못하. 셨으. 니. 거기. 서. 먹는. 음식에. 탈. 이라도. 난다면! 분명. 맛. 이나. 영양. 도. 생각. 하지. 못. 한. 그런. 걸. 드시. 고. 계실. 것이다! 호문. 쿨루스. 이신. 아가씨. 께서. 는. 드셔. 야. 하는. 양도. 많을. 텐데. 분명. 그. 양도. 충족. 하지. 못. 하시고. 굶고. 계실. 것이다! 내가. 직접. 달려. 가. 당장. 이라도. 아가씨를. 데려. 오고. 싶은. 마음이. 가득. 하단. 말이다! "


" 그... 고충이 많았구나 코퀴토스... "


" 며칠전부터 쭉 저런 상태였사와요. "


" 알고 있었어? "


" 그야 당연하시와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저를 찾아와서는 <떠 다니는 눈> 이나 <원격투시> 마법으로 어떻게든 아가씨를 보여달라고 떼를 얼마나 쓰던지. 매번 그때마다 옆에서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아시와요? "


" 당연. 하지. 않나! 아가씨. 께서. 드시. 는. 음식. 하나. 하나는. 중요. 하단. 말이다! 언젠. 가. 이. 나자릭의. 후계자로. 당당히. 서게. 되. 실. 날이. 올텐. 데! 탈이. 나면. 큰일. 이단. 말이다! "


" 그렇다고 30분마다 찾아와서 묻는 건 짜증난단 말이야!!! "


" 걱정. 되니. 까. 당연. 한. 일이. 다! "


" 둘 다 그만 좀 해! 아아, 이럴 때 알베도는 어딜 간거야! "


" 알베도는. 아인즈. 님께서. 나가. 신. 후에. 급한. 용무가. 있다고. 자리를. 먼저. 떠났. 다. "


" 급한일? "


" ...아!!!!! "


" 깜짝이야!? "


알베도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샤르티아가 큰 소리로 놀랜다.


" 알베도!!! 이 치사한녀석!!!!! <전이문>! "


이유도 말하지 않고, 전이문을 열어 그곳으로 사라지는 샤르티아를 바라보며 아우라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 하아... 역시 이녀석들은 하나같이 다들 어딘가 엇나간 거 같아. 데미우르고스... 빨리 돌아와주라... '




***




대규모의 언데드가 몰려오기까지 몇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르크니프는 초조함도 숨기지 않고 성벽 위에 서 있었다. 그의 손은 가만히 있지 못해 손톱으로 돌로 된 성벽을 벅벅 긁어 조금만 더 하면 손에서 피가 흐를 지경이었다.


' 언데드가 오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 아무리 강한 매직 캐스터라고 해도 혼자서 수만의 대군을 무찌르는 건 무리다. 정말로 쓰러뜨릴 거라면 카체평야에서 부터 공격을 시작했어야 하지 않나!? 대규모 마법 이후 병사들을 진군시키는 것이 정상적인 전법 아닌거냐고! '


자신이 배운 인간의 병법이나 전술 따위를 들먹이며 아인즈에게 말을 걸 정도로 지르크니프의 강단은 높지 않았다. 아니, 그 누구라도 지르크니프의 위치에서, 남에게 부탁하는 입장인 지금 그러한 짓을 할 바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대규모 마법을 구사한다면 제국과 이렇게나 가까운 장소에서는 분명히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것이다. 지르크니프의 눈에는 그저 『아아 실수로 마법으로 제국에까지 피해를 줘버렸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구해줬으니까 됐지?』 등의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언데드 군세라길래 혹시나 플레이어일까 기대했는데... '


성벽의 아래에서 멀리 떨어진 아인즈가 천천히 자신의 인벤토리를 뒤적거렸다. 원격투시의 마법으로 여러 방면으로 살펴보았지만 평범한 언데드 무리였다. 대부분은 좀비로 딱히 속력을 내거나 줄이지 않으며 진군했다. 그렇기에 그것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철저하게 계산된 듯한 움직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상대가 이형종 언데드 플레이어의 군세라면 주려고 했던 선물을 대부분 치워 필요한 물건 몇 가지만을 남겼다.


' 지르크니프가 갑자기 왔을 때는 놀랐는데 말야, 언데드의 군세라니. 분명 카체평야는 언데드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고 했었지. 데스 나이트까지도 스폰 되는건가. 이 세계의 지식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겠어. '


그가 카체평야로 멀리 나가 언데드 무리를 쓰러뜨리지 않은 이유는 자신은 언데드지만 평범한 언데드가 아니고, 적대적인 언데드와도 싸워주며,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 손수 나서는 왕이다. 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였으나 그의 주변에는 그것을 지켜볼 만한 인재가 적었다. 물론 기사들 대부분은 마법의 범위에 들지 않기 위해 성문의 앞쪽에 서 있으라고 한 것은 아인즈였다.


' 어쩔 수 없나...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닐테니. '


" 제국에서의 삶은 어떠했느냐, 트레이시. "


유일하게 지르크니프에게는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존재, 트레이시만이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 옆에 서 있었다.


" 지루했지만... 꽤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강해진 게 느껴졌거든요! "


" 그랬느냐? 다행이로구나. 상시로 지켜보고 보고를 들었지만, 역시 직접 듣는 게 좋구나. "


' 음, 역시 보고는 본인에게서 직접 들어야 한다니까. '


" 아버지... "


" 음? "


금방이라도 껴안을 것같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기 직전인 그녀의 모습을 보며 순간적으로 당황한 아인즈가 휙하고 고개를 돌렸다.


" 왜, 왜 우느냐! 지금은 보는 눈이 많으니 참거라! 아직 이곳은 제국의 영토니 말이다. "


" 네! "


저 멀리, 뒤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을 의식하며, 아인즈가 보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린다.


" 아, 그러고보니... 블러디 소드를 교체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


" 죄송합니다... "


" 죄송? 어째서 죄송하지? "


" 아버지께서 저에게 맞는 무기라고 주셨을 텐데... 제가 감당하지 못했으니까요... "


" 뭔가 착각하고 있구나. 너에게 맞는 무기라고 준 것은 맞다만, 네가 감당하지 못했다는 건 조금 다르구나. 그 무기는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무기기에 준 것이지 언제까지나 너의 무기라고 준 것은 아니다. 그러니, 네가 그 무기를 바꿔 달라고 했을 때는 오히려 기뻐했지.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고를 줄 알고, 서서히 자신의 무기 스타일을 찾아가는 거니까. "


" 그런가요! "


" 물론이다. 아, 그러고보니 새로운 무기들은 어떻더냐. "


" 채찍 이외에는 아직 사용해보지 못했어요. "


" 그럼... 음. "


말을 이어가려는 사이, 저 멀리서부터 지평선이 서서히 검은색으로 가득 찬다. 일출하는 태양처럼 천천히, 그러나 그 색과는 대비되는 어두운색의 형체가 카체평야 방면을 메운다.


" 슬슬 시작해야 하니, 물러가 있거라. "


" 네. "


트레이시가 재빠르게 뛰어가 성안으로 들어간다. 트레이시가 복귀하는 것을 신호로 성문이 굳게 닫힌다.


' 뭐냐, 저 엄청난 숫자는! '


항상 입이나 글로 오가던 숫자로만 보아온 지르크니프 또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숫자는 약 5만. 데스 나이트는 다섯으로 한 마리당 1만의 군세를 이끌고있는 장군과도 같아 보였다.


" 다녀왔어요. "


지르크니프의 옆으로, 트레이시가 뛰어 올라온다. 내부 계단이 꽤 되는 성벽임에도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 놈의 생각은 들었나. 놈은 어쩔 생각이지? 저 많은 군세를 어떻게 물리칠 생각이냐. 한 번에 수백... 아니, 수 천 정도 무찔러 준다면야 감사하겠다만. "


" 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요? "


" 놈은 동맹국의 입장으로 도와주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 어째서 제국까지 피해가 갈지도 모르는 저곳에서 싸움을 한다고 한 것이냔 말이다! "


" 그렇게 걱정되시면 무시하고 직접 싸우면 됐던 거 아닌가요? "


"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


" 뭐,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을걸요. "


격분하는 지르크니프를 말끔히 무시한 채 트레이시가 성벽에 기댄다. 그리고는 저 멀리 서 있는 아인즈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 한 번에 수백, 수천이라고 얘기했었던가? 한 번에 끝날걸요. "


마찬가지로 몰려오는 언데드를 바라보며, 아인즈는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 외부에서는 나의 첫 등장이니까, 너희들은 나를 화려하게 장식해 줘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