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으로 날아가는 아인즈의 생각은 뒤죽박죽이었다. 그렇게나 조심하라고 수호자들에게 일갈했으면서 자신이 간 장소가 가장 위험했던 장소가 아니었던가. 모몬으로 있었을 때는 여러 가지 스크롤까지 써가며 정보계 마법을 잔뜩 사용했으면서 인제 와서는 기본적인 마법만 사용하다니 안정적인 생활에 어딘가 안일해져 있었다.


' 이 세계로 넘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지배자라는 격에 맞는 친우를 얻게 되리라 여겼건만... '


개인적으로 젊은 나이에 지배자의 자리에 앉은 지르크니프를 아인즈는 동경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세계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선뜻 다가가고 싶었으나 자신의 자리가 자리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조금씩 한 발자국씩 나아 가 그와 대등한 위치에 스스로가 서게 되었다고 여겼을 때 비소로 그에게 먼저 말을 걸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 어쩌면 나자릭 전체를 동원해야 할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 용서할 수 없다. 그 의도가 어떠했든 내 심기를 거스른 것은 마찬가지. 찾아내면... '


그렇게 분노에 차던 감정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필요한 순간의 분노조차도 허용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 특성이 가끔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시원한 하늘의 바람을 맞으며 냉정을 되찾은 아인즈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 데스 나이트를 사역할 수 있는 자라면 최소 60에서 7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다. 그리고 그 숫자가 다수. 즉각적인 명령 체계는 없었지만 적어도 제국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 좀비의 숫자, 데스 나이트가 쓰러뜨린 자들은 종자 좀비가 되어 움직이지만 그 좀비들의 모습은 평범한 좀비였어. 즉 그 좀비들까지도 소환된 몬스터라는 소린데... 그리고 그 숫자가 다섯... 90레벨에서 100레벨인가... 양동 작전을 위한 병력이라고 친다면 100레벨로 확정하는게 좋겠지... '


그리고 문득, 한 명을 떠올렸다. 수 많은 좀비와 데스 나이트를 사역할 수 있는 존재. 그러한 존재를 분명히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


' ... 난가? '


감정 억제로 냉정을 되찾은 지금에서야 생각한 것이지만 이 계획의 전모가 데미우르고스와 알베도였다면 그러한 병력이 움직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쳐들어온 언데드의 군세를 언데드인 자신이 멋지게 구해낸다. 자신도 떠올린 것이지만 이러한 계획을 미리 세울 수 있는 자라면 그 둘 뿐이었다.


' 이상하다... 분명 알베도가 알려준 계획에는 없었던 거 같은데... '


트레이시를 제국에 보낸 이후 알베도에게 슬쩍 귀띔으로 들은 이야기를 상기해보았지만 언데드 군세를 보낸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전언을 보내려고 들었던 손을 내려놓고 비행의 속도를 약간 늦췄다. 적당한 선에서 멈춰 상위전이로 이동할 생각이었으나 범인이 자신임을 확신해 갈 때마다 비행의 속도를 서서히 줄였다.


' 지르크니프에게 한 말은... 어떻게 하지... 제가 했습니다 하고 넘어갈 수는 없고... 음, 어쩔 수 없지 어떻게든 잘 넘겨보자. '



***



나자릭으로 돌아온 아인즈를 맞이한 것은 마레였다. 평소라면 알베도가 대기하고 있었을 터인데 어째서 그녀는 없는가. 또 이전처럼 신부 놀이를 하는 것일까 하고 아인즈가 한숨을 내쉬었다.


" 다, 다녀오셨습니까, 아인즈 님. "


" 음, 맞이해줘서 고맙구나, 마레. 알베도는 어디에 있느냐? "


" 아, 그게... "


로열 스위트, 알베도의 방.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아래에서 위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움직임의 끝에는 뾰족한 바늘이 다른 한 곳에서는 기다란 털실로 짜지고 있는 목도리가 그 모습을 빠르게 완성해가고 있었다.


" 쿠후후후...! 샤르티아는 이런 거엔 서투니까 내가 이기는 건 정해진 수순이지. "


완성된 목도리를 쭉 펼쳐 길이가 적당한지 살펴본다. 고개를 끄덕여 적당함을 확인하고는 바로 옆에 쌓여있는 수많은 털실로 된 의상들 위에 곱게 접어 올려놓는다. 이미 그 숫자가 10개는 넘어 5개씩 쌓여있는 옷들을 천천히 옆으로 옮긴다.


" 알베도, 안에 있느냐. "


노크와 함께 들려오는 아인즈의 목소리에 알베도가 황급히 문 쪽으로 달려간다.


" 아인즈 니이임! 돌아오셨나이까! "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알베도가 문을 열어 아인즈를 맞이한다. 내쉬는 숨소리에 당황한 아인즈가 달려드는 알베도를 손으로 저지했다.


" 어어... 옥좌의 홀에도 대기하지 않아서 무슨 일인가 걱정했다. "


"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모자라서 주군을 걱정시키고 말다니! "


" 아니, 괜찮으니까 무슨 일인지 이야기부터 하거라. "


" 아! 그렇지! "


알베도가 쌓아둔 옷 한 무더기를 들어 올려 아인즈에게 내밀었다. 하나 같이 해골 무늬가 좋게 말하면 인상적이며 나쁘게 말하면 과한 스웨터나 장갑등이었다. 그 중의 목도리는 너무나도 길어 옷을 여러 겹 정도 쌓은 듯 보였다.


" 실은 트레이시 아가씨께서 돌아오시면 드리려고 했던 겁니다만. "


" 응? 트레이시 에게? "


" 네! 나자릭에서 입을 생활복과 겨울용 활동복 같은 옷 들입니다! "


" 옷을? 어째서 직접 짜고 있었던 것이냐. 옷이라면 나자릭 안에도 충분히... "


" 그렇지만, 아인즈 님! 본디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신의 자식을 위해 직접 옷을 짜는 존재 아닌 것이 옵니까? "


' 어머니!? 왜 어머니가 나와? '


" 어머니 라는 것은 무슨 의미냐 알베도? "


" 그야, 트레이시 아가씨는 아인즈 님의 따님... 즉, 아인즈 님의 신부가 된다는 것은... 아가씨의 어머니가 된다는 의미이지 않습니까. 아아! 부끄러워라! "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까, 아인즈는 할 말을 잃어 알베도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을 수 밖에 없었다.


" 그리고, 지고의 존재분들께서 과거 이런 이야기를 나누신 적이 있습니다. "


겨울용 출석 이벤트가 한창이던 위그드라실, 터치 미는 그 날도 활기찬 웃음과 함께 게임에 접속해 원탁에서 나타났다.


" 정 의 강 림! "


" 아, 터치 씨 오셨네요. "


" 모몬가 씨! 실은 말이죠, 오늘 제 딸이 말이죠! 저한테 말이죠! "


" 아아, 네!? "


또 시작된 딸 자랑의 이야기다. 딱히 기분 나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늘상있는 연례행상 이기에 모몬가는 언제나처럼 자리에 앉았다. 멀리 의자의 뒤에는 NPC인 알베도가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녀가 원래 있던 옥좌의 홀 내부 장식 공사를 하고 있었기에 잠깐 그녀를 원탁으로 옮긴 시점이었다.


" 사진 사진... 아 여깄다! 이걸 보세요! "


" 오, 선물 받으신건가요? "


" 그렇습니다! 무려 손수! 저를 위해서 이렇게! "


" 오오, 그거 굉장히 기운 나시겠네요. 따님이 자랑스러우시겠어요. "


"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면 우르베르트 씨가 나타나서 악행을 저질러도 용서할 수 있을 정도의! "


" 제가 무슨 악행입니까. "


" 오, 우르베르트 씨. "


터치 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그인해서 나타난 우르베르트가 말했다. 터치 미와 모몬가가 동시에 그를 향해 손을 들어 반겼다.


" 이걸 보세요! 제 딸이 손수 만들어준 것을! "


" 오, 그건 꽤나... 어... "


" 어때요! 굉장하지 않습니까! 손수 저를 위해서 짜준 거라구요! "


" ...근데, 그거 뭐에요? "


" 에!? 우르베르트 씨! "


" 장갑? 목도리? 아니... 동전... 지갑? "


" 모자. "


" 모자요!? "


" 모자!? "


모몬가도 사실 얼핏 보기에 사진에서 보인 것은 동전 지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딸이 건넨 물건이기에 물어보기가 무서웠을 뿐. 저렇게 태연하게 묻다니 과연 우르베르트 씨구나 하고 모몬가는 생각했다.


" 그, 그야 어쩔 수 없겠죠! 터치 미 씨! 아직 처음 배운거니까요. "


" 뭐, 그렇죠. 애 엄마한테 직접 배운지 하루밖에 안 됐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첫 작품을 저한테 줬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 아내분께서 잘 가르치시는 모양이에요. "


" 뭐, 저희 아내가 올해 첫 겨울옷은 반드시 직접 짜주겠다! 라며 이야기하니까 말이죠, 하하하하. "


" 아내가 자식에게 옷을 직접 짜준다니 역시 로맨틱하네요. "


그러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을 아인즈도 어렴풋이 떠올렸다. 자신도 가물가물한 기억을 알베도가 기억하는 것을 보고, 역시 NPC들도 그 시점부터 살아 있었더라면 하고 내심 아쉬워했다.


" 흠, 그런데... 그렇다면 아내가 자식에게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점의 내용은 딸이 부모에게 직접 짜 준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


" 아아아아아앗!!! "


" 뭐, 뭐, 뭐냐!? 알베도! "


무심코 내뱉은 목소리에 알베도가 크게 비명을 질렀다.


" 아, 아무 이야기도 아니다! 신경쓰지 말거라! "






" 그랬습니다. 아인즈 님!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 그러니 저나 샤르티아가 옷을 짜 주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 누군가에게 결정받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즉, 중요한 건 아가씨께 물건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가씨께 물건을 받는 것! 아아아! 나는 어쩜 이리도 바보 같을까! "


' 무슨 소리냐! 대체! '


"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가씨께서 돌아왔을 때 선물을 드릴 것이 아니라, 아가씨께 인정받아 선물을 받는게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아아! 이럴 때가 아니었다니! "


" 어어... 어흠! 알베도! "


" 앗! 죄송합니다. "


아인즈의 헛기침 소리에 알베도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인다.


" 허나 아인즈 님, 단순히 제가 걱정되어서 오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무언가 용무가...? "


' 음, 조금 이르지만 괜찮으려나. '


" 어흠, 음, 이번 제국에서의 일 말이다. "


' 최대한 두루뭉실하게... '


" 제국에서의 일... 네. 오늘 다녀오신 일 말씀이십니까. "


" 그렇다. "


" 무언가 문제라도...? "


" 음... 이번 계획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만... 다만... "


' 제발, 알베도 한 번만 더 도와주라! 뭔가 얘기를 꺼내봐! '


뜸을 들이는 아인즈를 바라보며 알베도가 골똘히 생각한다. 지고의 존재인 아인즈가 이러한 반응이라면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 마치 데미우르고스가 겪었던 것처럼, 무엇이 잘못된 것일지 금세 떠오르지 않는다.


" 음,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알베도. 그렇지만... "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미 자신의 이야기는 끝이다. 아인즈는 회사원의 감으로 지금 이 행동은 너 무조건 잘못한 거 있어, 라고 부하를 갈구는 격일 뿐이었다.


" 아! 죄송합니다! 역시 비용면에서 문제였습니까! 이전에, 워커들을 들였을 때도 충고받은 사항이었습니다만 이를 참고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역시 데스 나이트를 사용한 것은 무리였을까요! "


' 맞다! '


" 어흠, 다섯 마리를 사용할 필요는 있었느냐. "


' 자, 알베도 확실하겠지? 정말로 너네가 보낸 거겠지? '


" 비록 미천한 소저의 의견이오나... 제국에서 왔던 황제와 같이 있던 자들... 그들의 의견은 한 마리 정도는 그들 정도라면 묶어둘 수 있었던 모양이며, 아인즈 님께서 직접 등용하신 플루더라는 인간의 이야기대로라면 한 마리를 실제로 포획한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


' 포획? 무슨소리야!? 플루더는 나한테 그런 얘기 한 마디도 안했는데? 아니 그보다 어째서 포획을? 지르크니프가 이야기 했던 걸리는 건은 그거였나! '


" 음, 그래서 두 마리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냐. "


" 그렇습니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 두 배의 숫자인 네 마리, 거기에 안전을 기해 다섯 마리가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제국의 인원은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며, 아인즈 님께서는 충분히 활약하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


" 그렇군. "


아인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즉 지르크니프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떠올렸던, 자신을 띄워주는 계획은 이미 알베도의 선에서 처리되고 있었다는 소리다.


' 그래서 내가 혼자 나간다고 했을 때 딱히 말리지도 않았군... '


" 다음부터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


" 아니, 훌륭했다. 알베도.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네 행동이나 계획이 잘못된 점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저 네가 그렇게 결정한 이유를 듣고 싶었을 뿐이다. 네가 그리 판단했다면 그게 훌륭한 계획인 거다. "


" 아아! 감사드리옵니다! "


" 그렇지만... 지르크니프에게는 몹쓸 짓을 했구나. "


" 네? 제국의 황제에게 말입니까? 그것은 무슨... "


" 내가 실수로 이번 언데드의 공습을 나 정도의 강자가 보낸 양동이나 그러한 느낌의 뉘앙스인 적의 습격이라고 이야기했단 말이지. "


" 아인즈 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단 말입니까? "


" 음! 어흠, 어디까지나 실수다! 나도 언제나 완벽하게 일을 해내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실수로 말이다. "


" ...아! 실수로 말이군요. 확실히 알아들었습니다. 제국의 황제 성격상 아주 적당한 조치라고 판단됩니다. "


" 후후후, 그런가. 이야기는 그걸로 족하다. 본래는 옥좌의 홀에서 할 이야기였으나 개인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것도 나쁘지는 않구나. "


" 아앗! 그러면 소저의 방에 잠시 들르셔서 더욱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시는 것도...! "


" 기각이다. "



***



" 그런가, 실수로 말씀이시지? "


" 그렇지, 데미우르고스. "


알베도가 서류의 정리를 끝마치며 일을 보고 하러 온 데미우르고스와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링 오브 아인즈 울 고운을 손가락에 끼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 후후후, 참으로 훌륭하신 발언이시군. 아마 이제 황제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할 수도 없겠지. 이미 서서히 제국의 황제는 자신의 의지를 잃고 나자릭에 의지하게 되겠어. "


" 두 명이 거짓을 말하면 거짓이지만 세 명이 거짓을 고하면 진실이라고 했던가, 이전에 타블라 스마라그디나님께서 이야기한 기억이 있어. "


" 세 명이라... 후후후, 황제는 자기 주변의 모든 인원이 이미 적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겠지. 그나저나 알베도, 어디를 가는 겁니까. "


" 오늘의 일은 끝내서 말야. "


" 또 방에 가는 겁니까. "


" 아니, 지금은 보물전이야. "


" 보물전? "


" 판도라즈 액터와 잠깐 할 이야기가 생겼거든. 왜냐하면... 곧 내 의붓아들이 될 테니까. "


알베도의 어이없고 허황한 말에 데미우르고스는 잠깐 생각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