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평이 좀 많았던 10화를 대대적으로 손봤습니다. 댓글 부탁드립니다. 기존에 10화가 궁금하신 분은 가서 읽어보셔도 됩니다.

확실히 차이가 느껴지실 겁니다 ㅎㅎ.. 좋아하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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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채경이가 출국한 날에 동그라미 표시가 된 달력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 간 지 얼마 안 된 시기부터 계속 조교를 받았다는 얘기는 9월부터 조교받았다는 이야기인가? 가늠이 전혀 안 되네."


채경이가 프랑스에 출국한 건 2023년 8월 22일이었다. 그때는 사실상 코로나가 끝났다고 해도 다름없는 시점이긴 했다.
채경이는 코로나 때문에 국내에서 일하고 있다가 윗선의 지시로 프랑스로 발령을 받아 출국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옆에서 짐을 싸는걸 같이 도와주었기에 출국하기 전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거나 챙기지 말아야 할 물건을 챙겼다던가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출국 전 채경이를 의심할 건덕지는 아예 없었다는 의미였다.


내가 이날을 잊지 못 하는 건 단순히 채경이가 출국한 날이라서가 아니라 이 날이 음력 7월 7일이였기 때문이었다. 
채경이는 견우와 직녀의 그 스토리를 좋아해서 매년 음력 7월 7일을 기억하고 나에게 말해주고는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출국 날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뭔가 되게 운명적이다. 음력 7월 7일에 출국을 하다니, 내년 음력 7월7일에 만나면 우리 마치 견우와 직녀 같겠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러게. 오작교 대신 우리는 어디서 만나는 게 좋을까?"라고 대답했다.


채경이는 나의 물음에 "글쎄? 너와 있으면 어디든 다 좋아"라고 말하고는 잘 다녀오겠다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는 비행기를 타러 들어갔었다.
나는 그날 공항에서 언제 다시 볼 줄 모르는 채경이와 작별의 키스를 했다.
그리고 현재는 그 이후 한 번도 채경이의 얼굴을 영상통화 말고는 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1년 넘은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은 2024년 11월 8일이었다. 그리고 채경이가 보낸 외장하드를 받은 날은 2024년 11월 3일이었다.
바꿔 말하면 러브젤과 오나홀을 받은 게 불과 하루 전인 어제라는 얘기였다.
뭔가 많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고 느껴졌지만 일요일 당일을 포함해서 고작 6일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국제배송이니까 아마 보낸 건 10월에 보냈을 것이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라도 확인해 보고 운송장을 버리는 것이었는데 멍청하게 그걸 확인도 안 하고 다 찢어 버린 나는 정말 멍청한 놈이었다.


"누구 탓을 하냐.... 내가 잘못한 것을..."


내가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때는 대체 왜 그랬는지 나 자신도 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 갑자기 무슨 메일이지?"



나는 평소 고우글의 메일을 사용하는 편이었는데 휴대폰에 메일이 왔다는 표시가 떠서 메일함에 들어가 보았다.


"이건...? 채경이의 아이디잖아?"


아마 채경이에게 주인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들 중 한 명이 채경이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나에게 메일을 보낸 듯싶었다.
채경이에게 몇 번 메일을 받아본 적이 있기에 채경이의 아이디는 당연히 알고 있는 상태였다.
애초에 채경이의 아이디는 그렇게 어려운 편도 아니었다.

나는 메일을 열어 곧바로 내용을 읽어보았다. 메일의 제목은 'to.암캐년의 남편'이라고 적혀 있었다.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니가 이 암캐년과 10년을 알고 지냈고 결혼까지 했다고 해도 이제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어졌다. 그녀는 이제 내 말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내 소유물이 되었으니까.
혹시 이 여자에게 아직 미련이 남았다면 깔끔하게 포기하라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 메일을 보낸다. 영상으로 말하는 것보다 메일이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아 메일로 보낸다.
그럼 잘 지내도록.'

채경이가 한국말을 검수해주었는지 아니면 채경이가 직접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한국말이 되게 깔끔했다. 번역기를 사용했다면 이렇게 깔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뭔가 좀 이상했다. 주인이 노예로 삼은 사람의 남편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이긴 했지만 내가 주인이였으면 이렇게까진 안 해 줄 것 같았다.

최신 메일을 확인해 보면 채경이의 아이디로 나에게 온 메일은 아쉽게도 이거 하나뿐이었다.
메일 내용의 마지막에는 p.s 좋은 소식을 알려주자면 그래도 내가 명령하면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니 영상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어느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거다. 라고 적혀 있었다.
저 남자가 명령해야만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해준다니 억지로 절 받는 느낌이라 썩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다.


답장을 보내야 할까 고민이 좀 되었지만 굳이 답장은 보내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 답장으로 당신이 뭔데 그런 말을 하냐고 따져 봤자 어차피 바뀔 것도 없었다. 그리고 아마 메일도 채경이가 주인에게 읽어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고 주인이 거절하면 못 읽게 되는 그런 그림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그려지긴 했다.


"나보다 형인지 동생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애가 성격이 나쁘진 않네. 노예가 주인이 아닌 다른 남자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허락해 주다니."


내 머리가 이상해졌는지 메일을 읽고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니 남의 아내를 뺏어가서 자기 소유물로 만들고 이상하게 개조시킨 점은 너무나 분하고 열 받고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그걸 빼고 말투나 다른 행동을 봤을 때 사람 자체는 그렇게 나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시 메일 내용에 숨겨진 암호 같은 게 있을까 싶어 세로로 한 글자씩 읽어보기도하고 대각선으로 보고 여러 번 메일의 적힌 내용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찾아보려고 굉장히 노력했는데 안 보이는 건 없는 게 분명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암호 찾는 것에 힘을 쓰는 것만큼 미련한 행동도 없었기에 메일은 그대로 닫아버렸다.


"어으으...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좀 하고 해야겠다."


집에 혼자 산다고 해서 옷을 아무렇게 둔다거나 그릇들을 잔뜩 쌓아 놓는다던가 그런 타입은 전혀 아니었지만 요 며칠은 정신 없었기에 집이 좀 지저분했다.
수건도 빨고 속옷도 빨아야 했다. 나는 집에 있는다고 해서 안 씻고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대충 환기를 시키고 청소기도 돌리고 마치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일상에 하던걸 다시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이 보면 여기가 진짜 남자 혼자 사는 집이 맞냐고 할 정도로 우리 집은 생각보다 꽤 깔끔하게 잘 정돈된 편이었다.


"음.... 저기를 들어가도 될까? 솔직히 한국에 안 들어오는 게 맞다면 굳이 저길 가만히 내버려둘 필요가 전혀 없는데.."


나는 청소하다가 아내의 옷방을 들어가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방 세 개와 화장실 두 개로 이루어진 지극히 평범한 아파트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데 방은 안방과 나의 게임방 그리고 아내의 옷방으로 구분 지어서 사용하는중이였다. 채경이는 나에게 각자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서로 각자의 공간은 건들지 말자고 말했고 우리는 서로 그 약속을 잘 지키면서 살아왔었다. 하지만 이제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 상황이었다. 여긴 이제 우리의 아파트가 아닌 나의 아파트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 예의상 물어라도 보자. 물어보고 내일까지 답장 안 오면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봐야겠어."


이건 아까 그 메일에 답장을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내용으로 메일을 보내는 것이었다. 주인이라는 남자가 나한테 메일을 보낸지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보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집 마스터키가 있었기에 잠겨 있는 문을 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굳이 잠궈놓지 않더라도 들어갈 생각도 없었는데 잠궈놓은 게 더 의문이었다. 그나저나 메일을 보냈다는 건 ip가 있다는 건데 ip를 추적하면 채경이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갑자기 스치고 지나갔다.


"아.... 근데 그거 개인이 하기는 힘든 거잖아."


나는 순간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개인이 ip주소로 상대방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건 어렵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내 사정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것 같았기에 수사기관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그래... 됐다... 인연이라면 언젠가는 분명히 만날날이 있겠지."


나는 ip추적으로 위치파악한다는 생각은 접고는 일단 채경이에게 메일을 적기 시작했다. 메일 내용은 진짜 단순하게 딱 한 문장 적어서 보냈다.
아마 분명히 반응이 올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그 한 문장이 채경이한테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갈 테니 말이다.


내가 적은 한 문장은 '나 니 옷방에 들어간다.' 딱 이 한 문장이였다.
메일을 보내자마자 답장은 순식간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답장을 보낸 건 역시나 채경이가 아닌 남자 그러니까 채경이의 주인님이었다.


남자가 보낸 답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 암캐년은 옆에서 싫다고 하는데 그거야 이 년 사정이고 나는 상관없으니 집 주인인 네가 알아서 하도록."


나는 답장을 보자마자 바로 문을 열고 채경이의 옷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굳이 남자에게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애초에 보낼 필요가 없었다. 채경이 싫다고 했어도 주인이 허락했으니 이건 사실상 당사자에게 허락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옷방을 들어오자마자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어..... 이...... 이런 게 왜 옷방에....!? 여기가 옷방이 맞긴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