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감옥에 누워 있던 나는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를 알아차리고 깨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그 소리가 들리기 직전에 나는 이미 일어나 앉아 있었다. 딱딱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으면서도 내 입안에서는 침이 고이고 있었다. 비참한 굴종이었다.

 

아내의 고된 노동의 대가. 그것이 나의 식사로 전환되는 시스템. 나는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셈이었다. 게다가 아내가 하는 일은 식당 서빙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보내고 있을 시간을 상기하면 마냥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나의 하반신은 또 불룩해지고 있었다.

 

잠시 뒤, 간수가 나타났다. 그는 철창 아래 배식구로 식판을 밀어 넣었다.

 

“저, 간수님…?”

 

음식만 전달한 뒤 떠나려는 간수를, 나도 모르게 불렀다.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ĿœłĦºÞþ.”

 

나는 귓등을 문질렀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자동 통역 문신을 발동하는 걸. 이것으로 그의 말은 제대로 번역이 된다. 다음은 내 차례. 나는 목젖을 문지른 뒤, 남자를 불렀다.

 

“간수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간략히 말하라.”

 

이번엔 간수가 한국말을 했다. 물론 그가 한국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의 귀에 변환되어 들리는 것이다. 내 말 역시 방금 후두를 건드린 행위에 영향을 받아 전달됐다. 저쪽도 자동 번역 문신을 사용하면 되지만 처지가 다르다. 나는 여기 감금된 신세. 의사를 전달하려는 쪽이 원주민인 그가 알아듣기 쉽도록 한 발이라도 더 노력해야 했다.

 

“오늘은 아내가 몇 명이랑 했습니까?”

 

간수가 말했다.

 

“세 명이다.”

“그렇군요….”

 

간수가 떠나고, 나는 조금도 푹신하지 않은, 그래서 차라리 길쭉한 테이블에 가까운 침대에 식판을 올려놨다. 정말 침대였다면 중심 잡기 어려웠겠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다. 스테이크라고 부르면 딱 좋을 상등품의 고기. 식기가 없다는 건 아쉬웠지만 그럭저럭 뜯어먹는 것도 괜찮았다. 옆의 소스도 맛있다. 아내가 그런 꼴을 당하는데 나는 벌써 적응한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잠시 식사를 중단했다. 나는 정말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안겨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가? 인간은 종종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닥쳤을 때 오히려 마비 증상을 겪는다. 사실 나는 칼로 내장을 쑤시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육즙이 흐르는 고기를 식판에 내려놓고 손으로 가슴을 훑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실감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그것을 눈으로 보지 않아서일까? 아내의 입과 보지에 다른 남자들의, 그것도 이곳 원주민들의 폭력적인 남성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부짖게 될지도 모른다. 판타지와 현실은 다르다. 나는 고작 이따위 고기 때문에 아내를 팔아넘긴 게 아니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가 세 명이 아니라 네 명, 다섯 명을 상대하게 된다면 나는 좋은 음식뿐만 아니라 개선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 아내가 아직 아무 남자와도 자지 않았을 때, 위안 업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었다. 그나마도 씁쓸한 맛이 나는 풀이 첨가됐고, 없는 게 나은 야릇한 향신료 냄새가 나는 죽을 먹었었다. 그때에 비하면 나는 훨씬 여유가 생겼다. 딱딱하긴 해도 침대라는 것이 생겨서 땅바닥에서 자 허리가 배겨 잠에서 깨는 일도 줄었다. 여유가 생긴 만큼 나는 전보다 아내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서은이는 괜찮은 걸까?

 

당연히 괜찮지 않을 거다. 며칠 전에 봤을 때도 안색이 어두웠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녀도, 나도, 이 망할 이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이 고통을 인내하고 있다. 하지만 위안 업무에 대한 아내의 집착은 내가 아는 그녀의 성격, 인내력을 한참 뛰어넘고 있었다. 정말 그녀는 날 위해 희생하는 걸까?

 

아내가 보지를 팔아서 번 고기를 뜯으면서, 한심하게도 나는 그런 의심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