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내, 서은이와 용하다는 무당집에 다녀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당시 두 번이나 연속해서 유산한 직후라 서은이는 몹시 황폐해져 있었다. 나는 딩크족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며 그녀를 설득했지만, 그녀는 울며불며 내 말에 반박했다. 그녀는 아이에 집착했다. 충분히 이해는 했다. 그녀는 고아 출신이었다. 4인 정도의, 정상 가정을 갖는 것이 그녀의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 발 물러섰다. 입양은 어떨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고아 출신이면서 정작 나와 그녀의 아이가 아니면 싫다니. 그 사고방식이 냉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후로 그녀에게 아이를 갖포기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싸우기도 싫었고, 어쨌든 나와 자신의 아이를 가지겠다는 일념이 가상했기 때문이다. ‘나’와 자신의 아이인지, ‘자신’과 나의 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내는 나름대로 정력에 좋다는 약도 챙겨주고, 자신도 임신에 좋다는 음식들을 먹으며 노력했다. 매주 주말에 꾸준히 운동을 한 것도 물론이다. 

 

우리는 이틀에 한 번은 섹스를 했다. 아내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서른이 넘으면서 체력이 슬슬 부치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에게 흥분하는 강도는 점점 떨어졌다. 남자의 이상형은 처음 본 여자가 아닌가? 여자를 보지로 치환한다면, 이틀에 한 번 꼴로 마주하는 보지가 꼴리겠는가? 아무리 모양이 예뻐도, 보지가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신기한 동물도 아니고. 한 번 맡으면 킁킁거리게 되는 꽃도 아니지 않는가. 보지는 보지일 뿐이라서, 세헤라자드마냥 끝없는 즐거움과 호기심을 자아낼 순 없다. 다시, 보지는 보지일 뿐. 그게 내 신조였다. 

 

다만 아내가 허벌이냐고 말하면 절대로 아니다. 물론 나도 나이에 비해 여자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아내 같은 명기는 본 적이 없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여자로서 내 아내의 육체는 상등품이다. 문제는 오직 임신만을 위한 기계적인 섹스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단조로워진다는 것이었지. 결혼 생활 3년 동안, 거의 이틀에서 사흘에 한 번 꼴로, 그다지 잘날 것도 없는 내 자지를 발기시키고 사정시켰으니 대단하긴 대단하다. 우리의 섹스는 주로 정상위로만 이뤄졌다. 가끔 입으로 빨아주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기분이 좋진 않았다.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아내는 자지를 오줌 구멍 취급했다. 게다가 임신만을 생각하는 그녀에게 자지를 빠는 행위는 완전히 무용했다. 정액을 목구멍에 쏟아봐야 아기가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 어느 정도 빳빳해졌다 싶으면 그녀는 발라당 누워 다리를 벌렸다.

 

반복되는 체위와 지나치게 많은 섹스 횟수로, 내 흥분도가 점점 옅어지는 것과 별도로 꾸준히 질내 사정은 했으니, 난자나 정자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진작 임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전 유산이 계기라도 된 것처럼, 적금 붓듯이 아무리 질내 사정을 해도 아내는 더 임신하지 않았다. 초반 불완전했던 두 번의 임신이 우리의 마지막 기회였던 것처럼. 내 정자는 아내의 난자와 결합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내도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아내는 점점 초조해졌다. 아직은 세이프라고 아무리 안심시켜도, 그녀는 노산과 기형아 출산에 관해 거의 강박적으로 찾아봤다. 여자로서 자존심 때문에 어떻게든 과학적 사실을 무시하려는 요즘 여자들과는 너무 달랐다. 그녀는 이런 쪽으로는 보수적이었다. 나도 그런 면에서 반한 것이긴 했지만, 가끔은 그녀의 과도한 염려가 걱정됐다. 오히려 그 강박과 망상 때문에 임신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설령 수정에 성공한다 해도 앞선 두 번의 유산 때문에 노심초사 하다 보면 그녀는 또 아이를 잃을 것이다. 이건 내게도 만만찮은 스트레스였다.

 

무당을 찾아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비과학적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강원도의 모 도시에 있다는 무당은 아내에게 부적을 지어줬다. 그것을 갖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트럭이 우리를 덮쳤다. 정신이 들었을 때, 우리는 낯선, 말 그대로 이계(異界)에 와 있었다. 

 

반쯤 벌거벗는 것을 전혀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남녀들이 건강하다 못해 야생적인 활기를 뿜어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창과 같은 구식 무기로 무장한 남자들이 내게서 아내를 데려갔다. 나는 저항했으나 그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은 꼭 고대 남미의 식인종들 같았다. 구릿빛의 피부는 강인해 보였으나 동시에 잔인하게 보이기도 했다. 햇빛에 반사된 피부는 반질거렸다. 언뜻 핏자국처럼 보이는 것이 말라있었다. 평범한 회사원인 나와는 정반대의 종(種). 솔직히 나는 겁에 질렸다. 처음엔 저항했으나 창날에 찔릴까 봐, 아내의 손을 놓아버렸다.

 

 *

 

그 후, 나는 이곳 지하 감옥에 갇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아내가 보고 싶었고 두려웠다. 저들은 우리에게 뭘 원하는 거지? 이곳이 지구는 맞나? 분명 고속도로 한복판에 있던 우리가 순식간에 공간 이동이라도 한 건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됐다. 저들의 말은 내게 ‘우가우가’로만 들렸다. 지구의 어떤 언어와도 다르다. 내가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인구 100만 명 이상이 쓰는 언어는 아닌 게 분명했다. 나는 굶주렸고 지쳤다. 바닥은 차가웠기 때문에 깊이 잠들 수도 없었다. 점점 기진맥진하던 찰나, 아내가 돌아왔다.

 

그녀는 나와 같은 방을 쓰진 않았다. 그녀는 고대 여황제나 입을 법한 금장, 보석, 레이스 등으로 꾸며진 옷을 입고 있었다. 특이한 것이라면 배꼽과 옆구리, 치골, 둥근 골반이 보이도록 노출되어 있다는 것. 이곳의 전통 의상이라고 한다면 완전히 이상한 건 아니다. 이곳까지 잡혀 오는 동안 무수한 원주민(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들을 봤다. 그들 대부분은 젖가슴을 내놓는 것 정도는 우습게 아는 듯했다. 차이라면 그 화려함의 정도다. 원주민들 사이에서 아내의 피부는 유독 우윳빛으로 빛났고 살결은 보드라웠다. 그들은 아내가 바비 인형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들이 가진 최고로 훌륭한 옷을 골라 치장시킨 것이 분명했다.

 

“여보, 미안해.”

 

나를 본 아내는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결혼한 뒤, 나를 유혹하기 위해 작정하지 않는 이상 수수한 옷을 선호했던 아내. 그녀의 복장과 무표정한 얼굴은 대비됐다. 그러나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금방 허물어졌다. 무릎을 꿇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나 저 사람들한테 강간당했어.”

 

나는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야만적인 인간들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강간이라니. 이곳은 치외법권인가. 경찰 따위 없어? 대사관에 연락해야 하나? 애초에 뭐냐고. 몸값을 받으려는 소말리아 해적 같은 거냐? 아니, 산적? 어느 국가의 영토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 지구에 이렇게 문명화되지 않은 곳이 있다고? 그때 나는 새삼 느꼈다. 어쩌면 이곳이 내가 아는 지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저들은 지구인의 상식을 갖고 있지 않다고.

 

“네가 왜 미안해. 내가 못 지켜줘서… 미안하지.”

 

나는 힘겹게 입술을 뗐다. 남편에게는 아내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법이다. 나는 목숨이 아까워서, 아픈 게 싫어서 원주민들에게 저항하기를 포기했다. 어쩌면 나는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저들에게 끌려간 아내가 무슨 꼴을 당할지. 본능적으로. 알고도 나는-

 

“그래서, 우리는 어쩌지?”

 

나는 무책임하게 질문했다. 정말 답을 원한 건 아니었다. 남자로서, 방금까지 강간을 당해 혼란스러울 아내를 다독여주지는 못할망정, 되려 책임을 떠넘기며 질문했다. 내게도 입장은 있었다. 나는 지하 감옥에 내내 갇혀 있었다. 강간을 당했다고는 해도 나름 원주민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뭔가를 보고 들었을 아내의 판단을 신뢰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당신만 허락한다면, 계속 이렇게 지내고 싶어.”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계속 이렇게 지낸다니. 강간을 당하겠다고? 내 표정을 읽은 아내는 빠르게 덧붙였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에 눈물 자국은 지워져 있었다. 애초에 울었던 것이 아닌가? 그녀는 손등으로 눈가를 스윽 닦는 시늉을 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이 사람들, 마법을 쓰고 있어.”

 

솔직히 말하면 그 다음부터 얘기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납득은 한다. 보다시피 목젖과 귓등에 새긴 마법 문신의 효과를 경험했으니까. 이런 것은 현대의 어떤 기술로도 불가능한바, 당연히 결론은 마법 같은 초현실적인 것만 남는다. 애시당초 우리 부부가 이곳에 끌려온 것부터가 현실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의 납치였으니까. 물론 아직도 완전히 떨떠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때는 더 황당했다는 말이다.

 

“마법?”

 

내 반문에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응. 주술사가 있어. 바닥에 이상한 문양을 그리더니 공중에 문을 만들었어. 빛이 막 나고, 게임 같은 데 나오는 포털? 그런 거였어. 거기로 어떤 부부가 끌려왔어. 당신과 나도 그렇게 잡혀왔을 거야. 저 사람들이 우릴 부른 거야. 주술이든 마법이든, 뭐라고 이름 붙이든.”

“…진심이야?”

“백 퍼센트 진심이야. 그리고 사실이야. 내가 책임을 다하면 마법 쓰는 걸 알려준다고 했어. 공간 이동 마법이면 될 거야. 그것만 익히면, 당신을 데리고, 원래 우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어.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잖아. 무조건 해야 돼.”

 

그녀의 눈에 언뜻 광기가 스쳤다. 이런 표정은 오랜만에 본다. 어느 새벽이었던가.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아내가 쓰러졌다. 하혈을 시작하자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내는 필사적으로, 손으로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틀어막으려고 했다. 차에 올라타서도. 그때 그녀의 눈에는 광기가 보였다. 자신의 의사에 반하려는 육체를, 의지로 굴복시키려고 하는.

 

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해? 마법이라고?”

“적당히 연기를 하면 될 거야.”

 

아내가 대답했다.

 

“이곳이 마음에 들고,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고. 지금 생활에 만족하는 척. 섹스도 기분 좋았던 척. 마나를 모으는 건 시간이 걸리겠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해야지.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돌아가서, 다시 아이 가지기도 도전해야 하고. 그렇잖아? 김 박사님이 시도할만한 수술이 있다고 하셨잖아. 그거면 돼. 그 희망으로 나 버틸 수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다행히, 나, 쉽게 임신하지 않는 몸이니까.”

 

아내의 목소리가 젖어 들었다. 나 역시 침울해졌다. 임신하지 않는 몸이라서 다행이라니. 서은이는 저 남자들에게 질내 사정이라도 당할 셈인가? 아니, 강간범들이 피임 따위 해주리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질내 사정은 디폴트다. 하지만 임신하지 않는 몸이라서 그렇게 오랫동안 슬퍼했던 아내의 입에서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그게 참 비극적이었다.

 

서은이가 말하는 김 박사는 내 아버지의 지인이다. 꽤 저명한 의학박사신데, 내 아내가 불임이라는 소식을 듣고 여러 선생님을 소개해주는 등 도움을 주셨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그가 제안했다는 수술의 성공 확률은 극도로 낮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아내가 끝도 없는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내가 지어낸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에게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희망을 갖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내 거짓말을 잘 구분한다. 소위, 이것이 착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알면서도, 그녀는 속아주는 척한다. 그리고 자신도 속인다. 당장 의욕을 잃고 벼랑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는 목을 쥐어짰다. 다행히 아내를 이곳에 데려다준 원주민 병사들은 잠시 바깥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의 말대로라면 우리의 대화 역시 그들의 번역 문신으로 인해 해석이 다 될 터. 탈출에 대한 모의를 가만히 듣고만 있을 리가 없다.

 

“그 마나라는 거 어떻게 모으는 건데? 설마 섹스로 모으는 거야?”

 

맥락상 그것밖에 없었다. 무슨 야설에나 나올법한 설정인지. 기가 막혔다. 보지에 남자들의 정액을 받아들이면 체내에 자동적으로 마나가 흡수된다고? 아내는 내 말을 긍정했다.

 

“말도 안 돼.”

 

내가 말했다.

 

“방법이 없잖아.”

 

아내는 더 낮게 속삭였다.

 

“절대 안 돼. 아내가 몸 굴린 대가로 탈출하라고?”

“…….”

“무슨 수가 있을 거야. 그건 안 돼.”

“오빠.”

 

아내가 나를 불렀다.

 

“안 된다니까!”

“오빠, 제발, 위선 집어쳐!”

 

그러자 아내가 비명처럼 외쳤다.

 

“…서은아?”

“지금 그딴 소리 할 때가 아니잖아. 오빠 내가 다른 남자한테 따먹히는 거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지금 딱 그 기회가 왔잖아. 이제 와서 뭘 안 된대. 판타지 실현시킬 수 있으니까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필요할 때 위선을 떨어?”

“서은아, 잠시만, 그건-”

 

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내는 눈물 젖은, 그러나 사나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왜, 또 술 핑계 대게? 나 아직도 기억해. 술 취했다고는 하지만 내 손 꼭 잡으면서, 오빠 주변 남자들 이름 거론했었지? 그리고 초대남? 엄청 진지했어, 오빠, 그때. 그래, 프로포즈할 때만큼 진지했다. 뭐? 섹스가 지루해? 내, 내… 아래가, 밑이, 탄력이 줄었어? 너 자지가 흐물해졌다는 생각은 안 해? 어떻게 자기 아내한테 그런 추잡스러운 말을 하지? 오빠 그때, 그런 개소리를 잔뜩 하면서 다른 남자랑 자보면 어떻겠냐고 했었잖아. 며칠 뒤에 나 유산한 거 알지? 그거 왜 그랬을까? 그게 당신 아이 임신한 아내한테 했을 법한 소리야?”

 

아내의 말에, 나는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