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편

2편

3편


간수와 지하 감옥에 내려온 아내는 몹시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간수는 싫다는 아내의 팔을 자꾸 잡으려 들었다. 그의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과감하고 어찌 보면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 이계에서 여자를 납치해서 강간하는 이런 곳에서 예의를 찾는 내가 더 한심하고 어이없었지만. 아무튼 간수는 계속해서 아내가 도망이라도 갈 거라는 듯이 집요하게 그녀를 잡으려고 했고, 아내는 그의 팔을 뿌리치면서 짜증을 냈다.

 

“어딜 만지는 거예요?”

 

그 말에 솔직히 나는 놀라고 말았다. 며칠 전만 해도 그녀는 간수들을 두려워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남자랍시고 티는 안 냈던 것과 달리 그녀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 반쯤 헐벗고 다니는 남자들에게서 눈을 떼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애매하게 시선을 돌렸다. 어째 이곳에는 비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탄탄한 근육질과 유연성 있는 몸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하나 같이 목소리가 크고 으르렁거리며 행동에 조심성도 없으니, 아내에겐 더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내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러 왔을 때만 해도 그녀는 그들을 많이 의식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의 대화를 저들이 듣는 걸 걱정해서이기도 할 거고, 저들의 존재 자체를 경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작 며칠 만에, 그녀의 태도는 달라졌다. 뭐랄까, 더 오만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여, 여보…”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서은이를 만류했다. 아무리 그녀가 나와 다른 신분이라고 해도(그래봤자 지하 감옥신세지만 간수들의 대화를 통해 대략은 알게 됐다. 이계 출신 여자들은 남자 노예에 비해 그럭저럭 괜찮은 취급을 받는다.) 함부로 대들었다간 무례한 꼴을 당할 것이다. 애초에 나는 그에게 약속했다. 우리의 만남을 성사시켜주는 대가로 아내에게 부탁해 그의 자지를 빨아주겠노라고. 오랄을 해주기 전에 나쁜 감정이 쌓이면, 그 과정이 순탄할 리가 없다. 저 짐승 같은 남자는 화풀이라도 하듯 아내의 목구멍을 유린할 것이다. 아직 물밑 거래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은 내 입장에선 조마조마했다.

 

“여보, 이리 와. 간수님? 감사합니다. 잠시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성질 한 번 더러운 년이군. 많은 시간은 못 주니, 용건만 간단히 전해라.”

 

간수는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는 나와 자신의 거래에 대해 말하지 않은 듯했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남편인 나의 책임.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말하는 순간 아내는 나를 사람 취급하지 않을 거다. 아무리 원주민과의 섹스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자기 몸을 화폐처럼 거래 조건으로 내건 남편을 좋게 봐줄 리가.

 

“오빠, 뭐야? 저 남자랑 무슨 거래라도 했어? 간수들이 남자 노예한테 호의를 베푸는 일은 드물다고 하던데. 오빠가 말솜씨가 좋거나 사교성이 좋은 편도 아니면서.”

 

서은이는 팔짱을 끼고 내 앞에 섰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여전히 굵직한 철창이 서 있었다. 그녀의 어깨에는 저번에 왔을 때와 유사한 황금색의 시스루 느낌의 가운이 걸쳐져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안에 입은 속옷과 다를 바 없는 상의. 크롭티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짧다. 과거 아랍의 무희들이 입을 법한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묘한 화장이 되어 있었다. 연애 시절부터 그다지 진한 화장을 하지 않던 아내라, 그녀의 처지가 단번에 이해됐다. 이제 그녀는 남자들에게 몸을, 보지를 팔아야 하는 입장. 당연히 치장을 하게 되겠지.

 

“아, 그건… 그렇고. 서은아, 왜 그동안 안 왔던 거야.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우리는 같은 배를 탔으니까 같이 의논을 해야지. 마나는? 잘 모으고 있어? 될 것 같아?”

 

나는 간수와 나의 거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며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아내는 그것을 추궁하지 않았다. 이 대화가 끝날 무렵에는 진실을 모두 털어놔야 하리라. 그녀는 화를 내겠지만 이미 저질러진 것, 어쩔 수 없이 청산할 건 청산할 것이다. 하필 직전에 간수의 기분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떻게든 내가 잘 타일러 중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내는 그렇다치고,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하니까, 아내를 잘 다뤄달라고 간수에게 설득하자.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오빠, 상식적으로 생각해줘. 가 아무리 그런 취향이 있다고 해도, 남편한테 다른 남자랑 잔 얘기를 어떻게 해. 그 얘기가 그렇게 듣고 싶어?”

 

아내가 조금 화가 난 것 같아서 나는 변명했다.

 

“그럴 리가 있겠어? 걱정돼서 그러지. 너도 여기 갇혀 보면 알 거야. 종일 네 생각만 난다고. 나 때문에 고생하고 있을 네 생각에 잠도 잘 못 자고, 식욕도 없어.”

“입에 발린 거짓말 하지 마. 오빠가 여기 갇혀 있는데, 내가 아무 조치도 안 할 것 같아? 나도 나름대로 오빠 소식 듣고 있어. 잘 먹고 잘 잔다는 얘기, 아주 잘 들었네요.”

“…… 정말이야? 어떻게?”

“나도 소식통이 있어.”

 

아내가 조금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오빠만큼 나도 걱정하고 있다고.”

 

그 말에 나는 안심했다. 아내는 나를 계속 생각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최소한의 걱정이 해소되자 이번에는 다른 욕심이 치밀었다. 더 자세한 얘길 듣고 싶다.

 

“마나는? 간수들이 그러는데 하루에 세 명 정도를 상대한다며. 힘들지는 않아?”

 

내 말에 아내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세 명이 한계야. 더 늘릴 순 없어.”

“아, 늘리라는 말은 아니었어.”

 

내가 말했다. 사실은 세 명이 아니라 다섯 명, 조금 무리해서라도 빨리 마나를 모으자고 말하려는 게 이 만남의 목적이긴 했지만, 저 표정에 대고 그리 말할 순 없었다. 며칠 전, 기개 넘치던 모습과는 달리 아내는 다소 주눅 들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여황제처럼 보이던 화려한 가운 곳곳이 구겨지고 알 수 없는 액체가 묻어 있는 게 보였다.

 

“마나는 모으고 있어. 잘 모이진 않지만.”

“그, 그건 무리하지 마. 근데 걱정되는 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야?”

 

내가 물었다. 이곳에는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마나가 축적된다고 한다. 원주민의 경우 그것을 신체 어느 일부에 갈무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내나 나 같은 이계인에게는 무리다. 아내는 그 마나를 이용해 공간 이동 마법을 쓰고자 했다. 요컨대, 그녀가 남자들의 정액으로부터 수집한 마나가 우리가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다. 다만, 일의 진척도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적확한 스케일이 필요했다. 솔직히 나는 의심하고 있었다. 아내는 남자에게 관심도 없고, 섹스도 오직 아이를 갖기 위해서만 하는 주의였지만. 모르지 않나? 네토라세에 관한 수많은 경험담을 본 결과, 순진무구했던 아내가 백전노장 섹스 마스터의 자지에 중독되어 원래 남편을 버리고 떠난 얘기는 자주 들었다. 흥분되면서도 불안한 얘기였다. 만약 그 일이 내게도 벌어진다면, 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된다. 아내는 이곳에서 계속 섹스를 즐기면서 나를 기만할 것이고,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죽어갈 거다.

 

“여기.”

 

아내는 서슴없이 자신의 아랫배를 내보였다. 거침없는 동작과 달리 창피하기는 한지 그녀는 고개를 외로 틀었다. 보려면 보고, 말려면 말라는 행동이다. 아직 그녀의 행동 이면에는 나에 대한 원망이 남아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아내의 하복부에 새겨진 문신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커다란 하트 모양처럼 보이는 것이 그려져 있었다. 왜, 창작물에서 서큐버스나, 성적으로 타락한 여자들의 아랫배에 그려지는 그것과 비슷했다. 나는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이건, 이건 뭐야? 누가 그린 거야?”

“그렇게 빤히 보지 마. 너무 대놓고 흥분하지도 말고. 오빠는 진짜 왜 그렇게 변태야? 아내 자궁 위에 그려진 문신이 그렇게 꼴려? 목소리도 너무 크다고, 진심.”

“미, 미안.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줘. 이게 마나랑 무슨 상관인데?”

 

사과는 했지만 초조함을 숨길 수 없이 내가 빠르게 말했다.

 

“잘 봐. 여기 밑에.”

 

아내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문신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은 은색의 네일이 붙어 있었다. 원래 아내가 하던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도 네일 아트라는 게 존재하는 건가. 잡념은 잠시, 아내의 네일 끝이 가리키는 문신에 미묘한 흰색이 차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게 마나?”

“이만큼 채운 거야.”

 

나는 입을 다물었다. 지하 감옥에서 시간을 보낸 것도 대략 일주일은 지났을 것이다. 아내는 그동안 최소 10명 이상과 섹스를 했다. 그런데 채워진 것은 고작…….

 

“이 정도면 1/100도 안 될 것 같은데…”

“…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이거 만드는 것도 마트렌한테 간신히 부탁한 거야.”

 

아내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는 서러운 듯했다. 하긴 자신이라고 해서 정액으로 인한 마나가 이렇게 늦게 찰지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돌진하는 그녀의 성격상, 구체적인 스테이터스가 생기고 나름 노력을 안 했을 리가 없다. 세 명보다 더 많은 남자를 상대하는 건 그녀에게 무리였을 것이다. 말 그대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미안. 서은아. 진짜.”

“사과하지 마. 마트렌한테 마법을 배우게 된 것도, 마나를 구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문신을 새기게 된 것도, 전부 오빠랑 관계를 멀리 한다는 전제하에서 한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이렇게 오빠가 멋대로, 약속도 하지 않은 만남을 주선하면 둘 다 곤란해진다고. 나는 여기, ‘메디오리움’에서 계속 살기로 약속했어. 마법은 그 대가라고.”

“진심은 아닌 거지? 하지만 그런 거 멋대로 했다간-”

“방법이 없잖아. 오빠. 여기 갇혀서 뭘 더 할 수 있는데? 우리가 탈출할 방법은 내가 더 잘 알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그니까 오빠는 날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돼.”

 

아내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나는 당황했다. 고작 며칠만인데 아내는 다른 사람 같았다. 아니, 물론 그녀는 여전히 내 아내다. 단지 그녀는 기분이 상했을 뿐이다. 매일 남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눈 밑은 조금 퀴퀴해진 것 같고, 목소리도 가라앉은 듯했다. 

 

체력이 떨어지면 아무리 임신 관련 외에는 무던한 아내라고 해도 예민해질 거다. 사실 그녀가 예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가령 생리 때 그녀는 기분이 심하게 변동되는 바람에, 의도적으로 나와 떨어져 있는다. 그녀는 자신의 성격적, 체질적 결함을 이성적으로 해결하는 지혜로운 여자다. 따라서 지금처럼 스트레스 받고 있을 때 불러들인 나의 잘못이 크다. 

 

그러나 나도 나름대로는 억울했다. 아내가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자신만의 계획 아닌가. 그 대략적인 청사진 정도는 내게 보여줘도 됐지 않나? 아무리 그녀가 넣어주는 사식을 먹고 빈둥거리는 나라고 해도 불안은 느낀다. 그녀가 내게 언질만 해줬어도 그녀의 일을 이렇게 궁금해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정도 의사소통도 무리란 말인가?

 

“내가… 도울 일 없을까?”

“없어.”

 

아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또 상처를 받았다. 화가 나는 건 아니다. 그녀의 입장을 백퍼센트 이해한다. 아내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이 벌이고 있는 일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리라. 그녀는 지금 상황을 즐기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10% 정도는 아내의 ‘강제적 외도’를 보고 싶은 나와는 입장이 다르다.

 

“그러지 말고. 뭐라도 말해봐.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 마나가 빨리 안 차는 게 문제지. 마트렌 말로는 내가 진심으로 흥분할수록 많은 양이 찬다는데, 쉬운 게 아니잖아. 나는 오빠 말고는 없으니까. 애초에…”

“서은아!”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말뿐이라면 저 말도 의심했겠지만 마나가 저렇게 느린 속도로 찬다는 것이 그녀의 신체 반응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저 야생적인 남자들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섹스도 아내의 마음을 빼앗아 가진 못했다. 육체적인 쾌락과 사랑은 별개다. 하지만 감동은 감동이고, 해결책은 해결책이다. 이것만으로는 우리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

 

“좀 더 릴렉스하고, 즐기도록 해봐. 나는, 진심으로 괜찮으니까.”

“그렇겠지. 오빠는 변태 성욕자니까.”

 

아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나의 이 말이 그녀의 죄책감을 아주 일부는 덜어준 것 같다. 아내는 자신의 윤리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에 몰려 있다. 그 상황에서 코웃음으로나마 웃을 수 있다는 건, 그래도 내가 그녀의 걱정을 조금은 덜어줬다는 거겠지.

 

“모르겠어. 어떻게 흥분하는 건지.”

“지금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는데.”

 

고심하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다.

 

“뭔데?”

 

그녀는 철창 가까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고작 20cm 남짓. 이렇게 가까이서 아내의 얼굴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그녀가 둥근 눈망울을 깜빡였다.

 

“성적 흥분이라는 건, 서은이 네 말대로 뇌와 관련된 거잖아. 그걸 어떻게 신체적인 감각이랑 연관 짓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네가 못 느끼는 건, 아마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겠지. 내가 아무리 말해도 걱정될 테니까. 다른 남자랑 하고 있는 장면을 내가 보면 분명 실망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걱정이 있다면 그걸 털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무슨 걱정이든 실제로 벌어지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때가 많거든.”

“… 무슨 말이야?”

 

그러나 아내는 내 말의 뜻을 알아차린 듯했다. 그녀의 눈에 의심과 불신이 떠올랐으며, 전에 네토라세 취향을 처음 꺼냈을 때의 경멸도 보였다. 그녀의 입꼬리가 구겨졌으며, 몸은 뒤로 물러났다. 아내는 내 제안의 의미를 백 퍼센트 이해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잖아. 내가 같이 있으면 처음엔 불편하더라도 나중엔 적응할 거야. 내가 서은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걸 알면, 더 편하게 느낄 수 있을걸? 할 수 있지? 나는 잘 모르지만, 위안녀 아내를 가진 남편 중에 자유를 누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 넌 나한테 통역 문신도 만들어줬고, 편의를 봐줬으니까, 여기서 내보내줄 수도 있잖아.”

“그리고? 나보고 뭘 어쩌라고?”

“네가 하고 있을 때, 내가 그 손을 잡고 있을게.”

“오빠!”

 

서은이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녀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침착하게 그녀를 설득했다. 손짓해서, 이쪽으로 다가오라고 하면서.

 

“방법이 없잖아. 대의를 위해서야. 이대로 천년만년 기다릴 순 없다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빨리 마나를 흡수해서, 공간이동 마법인지 뭔지를 해야 하는 거 아냐?”

“오빠, 날 사랑하긴 해?”

 

아내가 가슴을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그녀의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자신을 버리는 것. 그건 아마 나를 사랑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고아 출신으로서 가정을 잃어버리는 게 두려운 거겠지. 나의 변태 취향은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했을 테고, 이상향과 정면으로 대치됐다.

 

“사랑하지, 너무 사랑하지. 그래서 네가 고통받길 원하지 않는 거라고. 다른 남자가 널 안는 게 포인트가 아니야. 네가 기뻐하는 걸 보는 게 좋은 거지. 내 말 이해해?”

“이해 못해. 절대, 이해 못 한다고. 미친놈이야, 오빠는.”

“서은아!”

“절대 안 돼!”

“… 서은아, 그럼 다른 방법 있어? 이렇게 천년만년, 메디올리움? 오리움? 여기에 있을 거야? 시간이 길어지면 네가 나를 안 잊는다는 보장 있어. 난 이게 더 불안하거든?”

“내가 오빠를 왜 왜 잊어!”

“여기 찾아오지도 않고 있잖아. 여기가 편해지면 나는 어떡하라고?”

“절대 그런 일은 없다니까!”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어. 우리 아이도 가져야지. 그러니까, 다른 방법 있냐고?”

“상급 전사들의 정액을 받으면 돼!”

 

궁지에 몰린 아내가 외쳤다. 내 아내가 다른 남자, 그것도 사회적 지위가 우월한 남자의 정액을 받겠다고 자처하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외설스러웠다. 허나 그녀는 내가 대화를 몰아가는 방식에 완전히 집중해서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녀의 젖가슴이 흔들렸다.

 

“상급 전사는 지금 내가 상대하는 하급 전사들이랑 다르게 체내 마나가 엄청 쌓여 있다고 들었어. 지금은… 아직 나를 상대해주지 않겠지만 노력하면, 내가 서비스 잘해준다고, 섹스 잘 한다고 명성이 쌓이면 나도 찾아와줄 거야. 그럼 그때는 하루에 한 명만 상대하더라도 지금보다는 많이 쌓일 걸? 마트렌한테 들어서, 상급 전사는 하급 전사의 100배 마나를 가진다고.”

“그것도 기약이 없잖아.”

 

내가 말했다. 상급 전사가 그렇게 대단한 족속이라면, 만나기가 쉬울 리 없다. 물론 아내는 아름답지만, 이계 출신 중에 그녀만한 미인이 아예 없겠는가? 아내는 대책이 없었다.

 

“나를 내보내 줘. 맹세하는데, 네가 다른 남자랑 자는 걸로 화를 내거나 변심하지 않을게. 내가 옆을 지키면 너도 더 안심되지 않겠어? 이게 유일한 방법이야.”

“진짜, 오빠는-”

 

우리 부부의 언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간수가 돌아왔다. 그가 우리 대화를 어디까지 엿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말미의 부분은 너무 목소리가 컸다. 찝찝한 마음으로 아내와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간수는 자신의 창으로 바닥을 긁으며 계단을 내려왔는데, 일단 표정만 봐서는 우리의 탈출 계획이나 향후 목표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는 간신히 걸치고 있는 하의 위로 손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그걸 보는 아내의 표정이 구겨졌다. 보지팔이를 하는 입장이라지만, 현대인의 윤리 의식 자체를 버린 건 아니다. 안 그래도 자신을 거칠게 대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을 텐데, 저런 무례한 행동이 그녀는 싫을 것이다.

 

“슬슬 나가줘야겠는데. 시간이 너무 돼서.”

“… 나중에 얘기해요.”

 

아내는 여전히 기분이 안 좋은지 나의 얼굴은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홱 돌아섰다. 물론 간수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때, 간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아내는 눈을 부리라며 그것을 뿌리쳤지만, 이번에는 간수도 녹록지 않았다. 그는 아예 창을 내던지고 아내의 양 손목을 꽉 잡고, 반대 손으로 그 허리를 붙잡았다. 아내가 소리를 지르며 몸을 꺾자, 그는 짜증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다가 아내의 발목을 걷어차 그녀를 쓰러뜨렸다.

 

“아아악.”

“건방진 년이.”

 

간수가 미간을 구겼다. 아내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에 두려움이 스쳤다. 지금 간수는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저, 위안녀에요. 당신 따위가 저한테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저는 족장님이 정하신 뜻에 따라서 위안 업무를 하고 있고, 저에 대해 휘두른 폭력은-”

 

아내가 빠르게 말했다. 그녀의 오만함의 근거는 저것이었나. 똑똑한 서은이는 며칠 동안 섹스만 한 게 아니라, 이 나라, 혹은 부족, 메디오리움의 풍속에 대해 익혀온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이것은 그녀의 이해를 넘어서는 거래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야.”

 

간수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약속, 아직 말 안 했냐?”

“…….”

 

내가 말이 없자 아내는 홱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지금 우리 사이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박에 눈치챈 모양이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눈밑으로 흐르진 않았지만, 입술에선 분노가 느껴졌다.

 

“오빠, 설마…”

“그래, 씨발년아. 이건 거래다.”

 

아내의 말을 끊고, 간수가 폭언을 내뱉었다.

 

“… 페, 펠라만 입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웅얼거렸다. 그리고 아내에게 변명했다.

 

“당신이 나를 찾아오지 않으니까 그랬어. 앞으로 나를 만나러 자주 와줘. 그래야 내가 이런 짓을 하지 않을 테니까. 아니면, 나를 여기서 내보내 주든가. 미안해.”

“우우웁. 웁…?”

 

간수는 아내의 입을 강제로 벌리더니, 거기에 냄새 나는 자지를 넣었다. 나는 놀랐다. 아내가 자신을 강간한 남자의 자지가 나 정도라고 하길래, 다른 남자들도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간수의 자지는 아내의 맥시멈이었던 16cm에 가까울 것 같았다. 간수는 별로 신분이 높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 말은 체내에 마나라는 것이 그다지 많지도 않다는 뜻일 터. 정말 강했다면 이계인 남자 하나를 감시하는 역할이나 맡기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보다 강한 중급이나 상급 전사들은 더 큰 자지를 갖고 있다는 건가? 씻지도 않았을 거무죽죽한 반발기 자지가 주저앉은 아내의 입에 쑤욱 들어갔다. 그가 허리를 흔들었다.

 

“자, 잠깐만요. 여기서 하는 겁니까? 적어도 장소라도-”

 

나는 항의했다.

 

“시끄러워. 이놈이나 이년이나.”

 

간수는 나를 무시하고, 아예 아내를 바닥에 눕혔다. 아내의 가슴 좌우에 무릎을 대고 선 자세로 올라섰다. 뒤통수를 딱딱한 바닥에 대고, 머리카락을 흐뜨려뜨린 서은이의 얼굴을 강간하다시피, 간수가 쑤셨다. 아내는 저항했지만 그것을 깨물지는 않았다. 자세만 봐서는 정상위와 다를 바 없다. 쑤시고 있는 구멍이 보지가 아니라 구강이라는 것만 차이지.

 

“하아아악, 아압, 읍…”

“깨물면 죽여버린다. 입 더 벌려. 내 자지는 큰 편도 아니라고, 버벅거리지마-!”

 

간수가 허리를 흔들었다. 펠라치오도 펠라치오지만, 꼭 보지에 삽입하듯이 무자비하게 허리를 흔들다니. 아내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그녀의 뺨은 금방 축축하게 변했다. 

 

“하아, 씨발-”

 

간수는 아예 몸을 돌려서 소위 69를 만들었다. 그는 아내의 보지가 있는 곳에 얼굴을 대고, 천박한 짐승처럼 허리만 깔짝깔짝 흔들었다. 그의 똥구멍이 보였다 말았다 했다. 동시에 그 자지를 삼키고 있는 아내의 표정이 내게 훤히 보였다. 그녀는 쑤셔지는 자지를 피하기 위해선지 머리를 틀었고 그 바람에 몰려 거의 머리로 몸을 세우고 있었다. 그 자세 때문에 나는 더욱 적나라한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간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아악!”

 

그의 몸이 경직되는 게 보였다. 동시에 아내가 프흡, 하는 소리를 내더니, 그녀의 콧구멍과 입에서 간수의 끈적거리는 액체가 분출됐다. 메디오리움의 원주민의 자지를 제대로 보는 것도, 정액을 보는 것도 처음이다. 묽은 나의 것과 달리 그것은 양이 무척 많아서 아내의 얼굴을 반 정도는 흥건하게 적셨다. 색도 연노란색에 가까운 것이었다. 저 정도면 아무리 불임인 아내라고 해도 단박에 임신하지 않을까? 병원에서는 나도, 아내도 임신에 체질상 문제는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 정자가 평균보다 조금 묽은 것과 아내의 임신 확률은 크게 상관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농밀한 간수의 정액을 보자 그런 망상을 지울 수 없었다.

 

“…….”

 

나는 그 충격적인 장면에 입을 다물었다. 아내의 멍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