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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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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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


“하, 하아……, 메디오리움의 남자들의 자지는 정말이지, 명물이라니까? 나,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았다구? 그래도, 해버렸네? 그것도 남편이 보는 앞에서 귀두가 깊숙이 자궁에 키스해버렸어요. 이래도 내가 좋아? 오빠? 원한다면 여기서 멈춰도 되는데. 멈춰줄까?”

 

아내의 도발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애초에 선택권이 있기는 한가? 내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아내가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삼각관계의 한 축이자 사실상 이 상황의 지배자이자 심판자는 간수다. 그가 우리들의 의사를 기다리지도 않고 허리 운동을 시작했다. 아내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열심히 전력으로 허리를 부딪쳐왔다.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음을 과시하듯.

 

“흐앗, 흐앗, 흐앗!”

 

나는 겁에 질렸다. 이건 거의 폭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내의 엉덩이를 구타하듯이 피스톤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자지로 엉덩이를 때리고 있다. 나는 그에게 살살하라고 소리쳤지만, 아내의 꼬옥꼬옥 조이는 보지 근육에 중독이 된 듯,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아내는 다시 철창을 잡았다. 뒤에서 부딪쳐 오는 공격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의지와 달리 몸은 자꾸 허물어졌다. 서서히, 미끄러지듯이 자꾸 허리가 낮아졌다. 거의 네 발로 선 자세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버텼다. 폭력이나 다름없는 난폭한 섹스에, 어느새 그녀는 이렇게 적응한 걸까? 메디오리움의 원주민들은 이런 식으로, 짐승처럼 섹스를 하는 걸까? 아프기만 한 건 아닌가? 그러나 아내는 며칠만에 그들의 방식에 적응한 듯,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찌걱찌걱찌걱.

 

애액 분비도 되지 않았을 텐데, 고통스러울 텐데.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몇 분 뒤에는 아내의 보지에서 뷰짓뷰짓,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 서은아? 너, 벌써 느끼는 거야? 나랑 할 때는…”

“있잖아. 오빠, 이거 내 보지즙이기도 한데, 저 남자가, 흐읏, 아아앙…”

“… 보, 보지즙…”

 

나는 경악해서 소리쳤다. 아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평소 아내는 내가 망가나 야설, 야동의 상황극을 재현이라도 할라치면 정색을 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이렇게 바뀌었다고? 그녀의 눈은 다른 사람이 빙의되기라도 한 것처럼 희번뜩하게 빛났다. 

 

“흐으으응, 아앗, 아앙♡”

“서은아, 괘, 괜찮은 거야? 눈이…”

 

아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짙고 긴 속눈썹은 우아하게 위로 치켜 올라갔다. 동공은 아슬아슬하게 넘어 갈듯 말 듯 했다. 그녀는 뒤에다 대고 외쳤다.

 

“아아앙, 간수? 더 세게, 세게, 박아줄 수 없어? 한 번으로 되겠어?”

“하, 하아앗, 그래, 좋은 도발이라고. 걸레년아.”

 

간수는 아내의 말에 자극을 받은 듯,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쥐어짜듯 세게 붙잡았다. 팡팡, 하고 허리 놀림이 격해지자 다리 사이로 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것을 멍하니 보던 나는 아내의 말이 재차 떠올랐다. 한 번으로 되겠냐고? 그 말은 한 번 이미 했다는 건가? 아니, 두 사람은 분명 이번이 처음 하는 섹스일 텐데? 대체 무슨 말일까?

 

“맞아, 오빠, 이거.”

 

내 의심을 알아차린 듯 아내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간수에게 자지 박히면서 내 눈을 또렷이 쳐다보려고 했다. 그 도발적인 시선에 나는 전율하고 말았다.

 

“축축한 거, 간수의, 흐읏, 으읏… 정액이야? 괜찮아? 이래도 흥분돼?”

 

뷰르르르릇!

 

그 말과 정확한 타이밍에 아내의 보지에서 부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애액과는 확연히 다른 걸쭉한 액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내의 보지를 가득 채우고 남은 것이다. 무작정 허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안에다 사정을 한 거다. 얼마나 대단한 정력가이길래, 한 번 싼 뒤에도 쉬지 않고 계속 허리를 흔들까? 저 녀석은 괴물이다. 젠장.

 

“왜, 화 나? 이제 와서? 오빠 잘못이잖아. 쓰레기 씨? 이 쓰레기 새끼야. 알아?”

 

내 표정을 본 서은이가 이죽거렸다. 그녀는 비웃듯 나를 쳐다봤지만, 이내 입술을 깨물며 평정심을 잃었다. 간드러지는 신음을 가까스로 참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그녀는 핀치에 몰려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읽으려고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정서은? 

 

그녀의 눈빛에는 간수의 공격으로 인한 쾌감, 남편의 앞에서 범해진다는 수치심, 그것을 은근히 원했던 나에 대한 통렬한 반감, 그리고 아마 이 상황을 유도한 나에 대한 배신감 등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게 분노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복수심으로 자신의 금기를 깨뜨리고 있었다. 나의 일그러진 욕망이 아내를 타락시키고 말았다. 그녀는 나에 대한 반동으로 엇나갔다.

 

팡팡팡팡!

 

간수는 그 자세로 두 번 연속으로 사정한 뒤에,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는 아내를 자신의 몸 위에 올려놨다. 자지에 박히던 흐름대로 아내가 밍기적거리며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자 엉덩이를 후려치면서 재촉했다. 아내는 경황없는 와중에 그가 주인님이라도 되는 듯 엉거주춤 위에 앉았다. 간수는 차고 딱딱한 바닥에 냅다 누운 뒤, 자신의 살주사를 아내의 보지에 놨다.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거칠게 올려 쳤다. 메디오리움의 사내들은 하나 같이 자지 놀리는 데에는 재능이 있는 걸까. 포르노 배우 못지않은 굉장히 스피디하면서 정확한 찌르기였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대응에 더 놀랐다. 그녀는 그가 삽입하기 쉽도록 적당히 다리로 버텼다. 양손은 가슴과 허벅지를 번갈아 쥔, 와이드 스쿼트 자세는, 고작 며칠 만에 재회한 아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추잡한 모양새였다. 간수는 헐떡거리면서도 연신 감탄했다.

 

“하아, 씨발년, 이런 년이랑 내가 결혼했어야 되는 건데! 이 보지야, 이 보지라고!”

 

그는 절정에 이른 듯, 힘차게, 허리를 꺾었다. 그와 동시에 아내의 보지즙이 분출했다.

 

 *

 

이곳은 법도, 질서도, 도덕도 없는 곳이다. 불과 몇 분 전에, 벌건 대낮에 남자들이 단체로 한 여자를 강간했다. 그러나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그럭저럭 외국 여행을 온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신기루가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볕 아래 나는 휘어청 계속 걸어갔다. 불안하게 남편과 나, 즉, 남성 무리와 여성 무리는 조금씩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원주민들은 남성보다는 여성 무리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대우를 해준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남성들 쪽은 조금만 저항해도 거세게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간혹 성질을 드러내며 반항하는 남성들과 달리 남편은 조용했다.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저항해도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내 남편의 지혜로움이 다행스럽다가도 그게 과연 지혜로움 때문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자신의 파트너, 연인을 구하기 위해 한 몸 희생할 생각은 없는 건가? 다시 그의 사랑이 의심스러웠다. 결혼 3년차, 새삼스럽지만, 그가 내게 요구한 섹스 판타지만 봐도 나는 힘이 쭉 빠졌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남편이 아니라 정면, 그리고 우리를 호송하는 원주민들, 그리고 풍경에 시선을 돌렸다. 지금으로서 남편은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한심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황톳빛의 비포장 길을 지나 그럭저럭 매끄러운 길이 깔린 곳에 진입했다. 콘크리트는 아니었다. 나도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진 모르겠다. 하지만 맨바닥, 흙바닥과는 다른, 미끈한 검정 길이 건물들 사이로 뻗어 있었다. 이쯤 되니 확실히 나는 이국이 아니라 이계, 즉, 다른 세계에 온 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도 이런 풍경은 없다. 이런 재질로 길을 닦을 순 없다. 끈적거리지도 않고 마치 금속을 부어놓은 것처럼 미끈거렸다. 이런 걸 할 기술력이 있다니. 원시와 미래가 공존하는 듯하다. 

 

나는 남편에게서 외면한 시선을 돌렸다가, 우리를 구경하는 원주민들을 발견했다.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남미 느낌이 진하게 나는 여자와 남자들. 몇몇은 북미의 인디언 같이 보이기도 했다. 남녀 막론하고 이목구비가 굵직했고 강인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의 표정은 딱딱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우리를 보살펴줄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옷을 거의 입지 않고 있었다. 남자는 상반신을 탈의하고 있었고 여자는 살이 비치는 얇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색이 강렬하지는 않았다. 남자들은 건장했고 여자들은 풍만했다. 나도 한국 기준으로는, 아니, 전세계 기준으로 봐도 그럭저럭 상위권 몸매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물론 저 원주민 여자들은 뼈대도 굵고 피부도 검어서 남자들에게, 나와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테지만.

 

원주민 사내들의 눈빛은 특별히 더 무뚝뚝했다. 그럭저럭 번듯하게 생겼지만, 이곳의 문화가 다른 곳에서 ‘납치한’ 여자를 아무렇지 않게 강간하는 식이라면, 저들도 멀쩡할 리가 없었다. 저 무표정한 얼굴로 가차 없는 짓거리들을 하겠지.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남편 앞에서 범해질지도 모른다. 남편은 순종적인 지금처럼, 무리해서 나를 구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그가 죽을 일도 없겠지. 나도 좋다. 혹시 여기서 탈출했을 때 과부 신세인 것은 질색이다. 재혼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 일로 좋을 사람이 남편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범해진다면 저 남자들이겠지. 그리고 남편은 그걸 반길 것이다.

 

원주민들의 눈빛은 평온했다. 짙은 눈썹은 태양빛을 막기 위해 무성했고 이마와 눈두덩이 뼈는 잘 발달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잘생긴 편이었다. 여자들의 경우 냉정히 말하면 지나치게 남상이었지만, 남자들은 정말 진하게 잘 생겼다. 딱히 내 이상형은 아니지만(애초에 그런 게 없다.), 뭔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라는 느낌. 스스로 최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되든 내 남편은 좋아할 거다. 그의 취향이 미남 쪽인지 추남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잘생긴 쪽이 낫지 않을까? 물론 이 말들은 진심은 아니다. 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괜히 드러낸 것 뿐이다.

 

최근 해월신당에 가기까지 그와의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그가 음침한 성벽을 밝힌 뒤, 우리는 파탄 직전까지 갔다가, 아이가 생긴 것을 계기로 가까스로 회복됐다. 허나 그 회복의 결말은 유산이었고, 우리는 다시 소원해졌다. 두 번의 실패는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고 의존하게 만들기보다는 멀어지게 했다. 오히려 그와 나는 전보다 서먹해졌다. 남편을 사랑하기는 한다. 남편에게 의지하고 싶고, 그를 믿고 싶다. 그게 남편에 대한 내 기대치였다. 고아라는 꼬리표를 달고 학교를 다닐 때부터 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날 지켜줄 수 있는 남자를 원한다고.

 

실제로 남편은 그렇게 했다. 나의 가정사를 문제삼지 않았다. 아이에 대한 나의 과도한 집착에도 부응해주었다. 그와 섹스하지 않으면 잠들지 않겠다는 유치한 강박도 받아주었다. 그게 나를 사랑하는 증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젠 모르겠다. 정말 그가 나를 사랑하할까? 그가 내게 요구한 것은 정상 범주가 아니었다. 때문에 아무리 남편이 내 귀에 사랑을 속삭여도 내 마음은 동하지 않았다. 다른 남자에게 안긴 내 모습을 보고 싶다고? 진심이야?

 

남편이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겠다. 남편은 내가 다른 남자와 자면서, 마음만은 자신의 것이길 바란다고 했다. 다른 남자의 자지를 받아들이면서, 기뻐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자신을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화가 날 정도로 모순되는 말이다. 멍청이가 아닌가 싶었다. 머리랑 마음이, 육체가 그렇게 따로따로 갈 리가 없잖아, 정말. 그렇다면 나는 반항할 것이다. 진심으로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그의 물건에 오르가즘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할 것이다. 당신 자지로 진짜 느낀 적은 없어.

 

“…….”

 

한심한 생각들만 떠올랐다. 어차피 하지도 못할 것이다. 내 주제에 무슨. 정서은, 정신 차려. 유치한 복수는 그만해. 남편이 미쳤다고 너까지 미쳐야겠어? 늘 망상만 한다는 점에서 남편과 나는 비슷하다. 남편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생각은 하지만, 정말 다른 남자와 잘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불가사의한 일을 겪고, 외지, 아니, 이계에 오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건 신이 내게 주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고, 마음껏 다른 남자에게도 시선을 돌려보라는 신호. 나는 남편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기도 싫었고. 내 속마음을 들키기도 싫었다.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무슨 각오로 걸어가고 있는지 당신은 알까? 정말 그 모습을 봤을 때도 좋아할까?

 

저 야만적인 남자들이라면 어때? 방금 다른 여자를 강간한 더러운 자지를 내가 물고 빤다면? 그 입술에도 당신은 키스해줄 수 있어? 나의 상상은 더욱 난폭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상상에 불과했다. 속이 메스꺼웠다. 억지로 다른 남자의 몸에 욕정 해보려는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아무래도 타고나길 음란하지 못한 나는 야한 생각을 하려고 해도 잘 나지 않았다. 복수심만으로 발정하는 건 무리인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람들이 섹스에 환장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자위를 해본 적도 있지만 그다지 기분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죄책감만 들었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남편 이전에 남자친구를 한 명 사귀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최악이었다. 처녀막을 잃은 다음, 나는 그와 겨우 너덧 번 섹스를 했다. 그 다음이 바로 남편이다. 남자 경험에 대한 데이터 자체가 내게는 드물었지만, 경험이 많아진다고 해도 내가 그 짓을 좋아할 것 같진 않았다.내게 섹스는 그저 임신 수단일 뿐이다. 만약 섹스 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당연히 그걸 선택할 것이다. 섹스는 몸에 땀만 나고 턱이나 성기가 아플 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순진했고, 성적으로는 거의 백치였다. 남자들이 야동이라고 부르는 것도 대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봤고. 가슴이 크다, 골반이 큰 게 순산형이라는 둥 더 어릴 때부터 성희롱 가까운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다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너무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기도 했고. 은근히 색기 있게 생겼다는 말에는 제대로 대꾸도 못했다. 그러나 정작 그 뜻을 알았을 때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색기있다고? 그랬다면 항상 남편이 나한테 먼저 하자고 달려들었겠지. 하지만 그는 늘 관계를 회피하려고만 했다. 아무리 봐도 나는 색기 있는 타입은 아닐 거다. 그러니까 저 야성적이고 야만적인 원주민은 의외로 나를 원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남편과의 섹스는 늘 반복적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말린 뒤, 키스를 한다. 나는 키스는 좋아했기 때문에 특별히 10분 정도 시간을 들이는데, 남편의 스킬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는 지나치게 강하게 빨거나 넓은 범위를 핥아서 내 신경을 거스리게 했다. 결국 답답해서 내가 그의 위에 올라탄다. 그 시간이 아니면 무조건 젤을 써야 한다. 어찌 보면 나는 키스하는 것만으로 젖어서, 삽입이 가능한 체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남편이 아무리 사타구니를 핥아 줘도, 겨드랑이와 옆구리, 목을 애무해도 그다지 흥분할 수가 없었다. 추잡하고 지저분하다고만 느낀다. ᄄᆞ라서 섹스에서 내가 즐기는 순간은 키스할 때, 딱 그때뿐이다. 나머지는 정상위나 여성상위로 서로의 성기를 부비는 것이 전부다. 나는 효율적으로 남편의 성기를 쥐어 짜서 정액을 자궁에 담아버리는, 그런 버릇을 익혔다.

 

“꺄앗, 흡-”

 

내가 밧줄에 묶여 원주민들에게 포위된 채, 다른 사람들과 줄줄이 이동하고 있을 때, 전후좌우에서 소란이 들렸다. 어떤 여자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다 입을 틀어막았다. 어떤 여자는 아예 졸도하기도 했다. 생각에 잠겨 땅만 보고 걷다 보니 몰랐는데 어느새 마을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미끈한 길 좌우로 가옥들이 나타났는데, 나무가 무척 많았다. 전체적으로 마른 흙의 색조와 대비되는 청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곳이었다. 

 

거기까지만 하면 그저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텐데 굵직한 허리를 가진 나무, 그 가지 위에 누군가 묶여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시체였다.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해 있고, 젖가슴이 쇄골까지 늘어나 있는 젊은 여성. 얼굴은 퉁퉁 불어서 잘 분간되지 않았는데, 원주민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 와중에 그것을 이렇게 자세히 보고 있는 나의 담력에 놀랐다. 물론 토악질이 나왔다. 그 아래에서 한 원주민 무리가 살을 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 덩어리를 도려내고, 옆구리로 흘러내리는 피를 수액 마시듯이 마셨다.

 

“… 씨발!”

 

남자들 역시 동요했다. 특히 남편은 사색이 돼서 입을 벌리고만 있었다. 그들은 여자들처럼 졸도하진 않았지만 속 상태는 비슷한 것 같았다. 이곳은 식인종의 마을이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개의치 않다는 듯이 우리를 채찍질했다. 우리는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원주민 아니었어.”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랑 비슷한 인종이었다고. 매달려 있던 여자! 동양인이야. 일본인? 중국인이거나?”

“…….”

 

잠시 뒤, 우리는 갈래 길에 돌입했다. 남자와 여자는 좌우로 갈라졌다. 특히 여자들이 울부짖으면서 자신의 파트너를 향해 소리쳤다. 그 울음에 격앙된 사내들이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방금 본 장면이 영향을 준 것 같다. 여기서 헤어지면, 자신들의 파트너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이 그들을 용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만들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원주민들의 창이 김태근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항하는 남자들의 목이나 옆구리를 관통했따. 죽은 자들의 파트너인 여자들은 목이 쉬도록 비명을 질렀고, 몇은 혼절했다. 귀가 무척 아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난장판. 아수랒아. 남편은 얌전히 기다렸다. 그는 절대로 죽을 일을 자처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의외로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라면 지금 상황을 반길지도 모른다. 아마 여자인 내 운명은 저들의 섹스 장난감, 성노예가 되는 거겠지만, 그는 그 모습을 즐길 수 있는 특이 취향의 소유자니까. 자신의 판타지도 실현될 수 있는 상황에 굳이 목숨을 내걸 필요는 없을 거다. 아니면 날 사랑하지 않거나.

 

눈길을 돌리니, 임신한 여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귀걸이와 목걸이, 발찌 등으로 치장하고 있었는데, 원주민 여성들과는 달랐다. 나는 본능적으로 저들이 일종의 화류계 종사자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으로 치자면 말이다. 저렇게 꾸미고 남자들에게 성노동을 하면서 돈을 벌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여자들에게 육체노동을 시킬 리도 없고(그랬다면 남자들 대우가 더 좋았겠지?). 화려한 복장의 여성들은 우리와 같은 처지처럼 보였다. 묘하게 원주민과 이질적인 느낌. 그러나 원주민 남성의 씨앗을 받아 임신한 신세. 아마 저것이 우리의, 나의 미래가 아닐까? 

 

그들은 우리가 지금 향하고 있는 높은 계단 끝의 건물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의외로 담담한 표정들로 자신의 배를 잡고 있는 모습. 아니, 체념일까.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은은하고 나른해 보이는 눈동자가 우리를 쳐다봤다. 마치 우리들의 ‘선배’라도 된다는 듯 자애로우면서도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반면 내 뒤에 선 여자들은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다. 낯선 곳에, 원시적으로 보이는 종족에게 납치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미래가 저기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담담했다. 저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불임. 절대 임신할 수 없기에, 최악만은 피할 수 있다. 화냥년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 나라 남자들은 본인들이 약해서 놓친 파트너를,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버린다. 내 뒤의 여성들도 같은 생각을 할 거다. 자신들은 피해자고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원주민들의 성기에 쑤셔지면, 그들이 자신을 더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공포. 이렇게 생각하니, 나보다 좋은 사람은 없었다. 쓴웃음이 났다. 남편의 사랑이 의심스럽고, 그의 아이를 가진다는 목표조차 흔들리는 이 와중에도 나는 긍정거리를 찾는구나.

 

남편은 내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길 바라고, 나는 임신할 일이 없고. 이 낯선 세계에서 내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위험은 기껏해야 원하지 않는 섹스를 하는 것뿐이다. 못생긴 남자만 아니길 바랄 뿐이다. 나는 키스만 해도 젖는 타입이니까, 쓸데없는 애무는 하지 말고 키스 정도는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 키스만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키스가 기분 좋은 건 내 남편의 입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만이다. 키스라고 무조건 좋아지는 건 아닐 테니까. 

 

물론 당연하게도, 이 모든 생각에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나는 지쳤다. 상황은 혼란스럽다. 가족을 갖고 싶었을 뿐인데, 남편의 사랑은 의심스럽고,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나더러 집착이 심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시댁에서까지 만류할 정도였다. 나는 나 혼자만의 지옥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여기가 그다지 답답하지 않았다. 이대로, 임신할 때까지, 주구장창 섹스만 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자포자기까지 들었으니.

 

 *

 

방으로 안내된 나는 옷이 벗겨졌다. 바로 남자들이 열댓 명 달려드는 상황도 상상했는데 의외로 아니었다. 실내는 쾌적했고, 쿨한 냄새도 났다. 원주민 여성들과 심지어 동양인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들어와서 나의 옷을 찬찬히 벗겼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눈도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다른 옷을 입혔는데, 길에서 봤던, 임신한 여자들과 유사한 옷이었다. 앞으로 우리, 나를 포함한 납치된 여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가히 짐작됐다. 이때까지도 나는 차분했다. 배꼽이 드러나고 가슴은 절반 가까이가 불룩하게 솟아오를 정도로 팽팽한 상의. 팬티랍시고 준 것은 가운데가 뻥 뚫려 있다. 몸 파는 여자도 이렇게는 안 입을 것이다. 약간 민망해졌다. 음모가 다리 사이로 노출된 게 몹시 부끄러웠다. 섹스까지 각오한 마당에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차라리 알몸이 낫겠어. 금색과 은색으로 된 얇은 가운까지 입고 나는 어느 방으로 안내됐다. 침실이었다. 붉고 노란색 배흘림기둥이 있고, 바닥에는 양탄자가 깔린, 그리고 침대에는 캐노피까지 설치된, 의외로 굉장히 고급스럽고 품격 있는 곳이었다. 고아라는 자의식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세상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고 냉소적이었던 나조차 소녀처럼 조금은 두근거렸을 정도다. 이곳에서 내가 상대하게 될 남자는 대체 누굴까?

 

그리고, 잠시 뒤, 원숭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