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오리새끼 신세였던 이종족 그녀.

 

엘프, 수인, 마족 등등.

인간과 흡사하지만 확연히 다르긴 한 이종족 그녀.

 

그녀는 어떠한 이유로 인해 부모를 잃고 갓난아기 시절부터 인간들 사이에서 자라게 된다.

 

고아원의 어린아이들은 당연히 그녀를 따돌리고 놀린다.

그녀가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그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지만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용기를 내어 같이 놀자고 먼저 다가가봐도 모두 외면한다.

 

그때, 유일하게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주인공.

 

“난 네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정말…?”

 

주인공은 편견 없이 그녀의 친구가 되어준다.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놀림 받고 훌쩍이던 그녀도 주인공 덕에 다시 웃음을 되찾는다.

 

 

 

주인공은 좁은 헛간에서 그녀와 나란히 앉아 그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아직 그녀는 글을 모르기에 더욱 주인공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인다.

 

동화의 제목은 미운오리새끼.

이상하게 생겼다고 천대받던 오리가 사실은 아름다운 백조였다는 이야기.

 

동화 속 미운오리새끼의 상황이 지금 그녀의 신세와 비슷하기 때문일까.

그녀는 정말 책 속에 빨려들어갈 듯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듣는다. 

 

그날 이후로도 그녀는 몇 번이고 그 동화책을 읽어달라 했고,

그녀가 글을 익힌 이후 처음으로 읽은 책도 바로 그 동화책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동화책을 품에 꼭 안고 주인공에게 묻는다. 

 

“나… 나도… 백조처럼 될 수 있을까…?”

 

아주 조심스럽게.

정말 염치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은 떨리는 목소리로.

 

주인공은 그런 그녀의 불안함을 떨쳐주기 위해, 일부러 더욱 밝은 목소리로 확신에 차 답한다.

 

“당연하지!”

 

 

 ***

 

 

그로부터 십여 년 뒤.

 

저 멀리서부터 주인공을 부르며 달려오는 그녀.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달려와 주인공의 품에 폴짝 뛰어 안긴다.

 

자기, 여보, 허니, 서방, 남편, 임자 등등 온갖 닭살 돋는 애칭을 다 불러가며 보고 싶었다고 애정을 과시한다.

주인공의 품에 안겨 입술을 내밀며 빨리 뽀뽀해달라고 졸라댄다.

 

고작 며칠 떨어져 있던 게 전부인데 이렇게나 매달리다니.

사실 늘 있는 일이지만 주인공은 여전히 조금 난처함을 지울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온다.

 

“엄청 예쁘네….”

“@@종족인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소문보다 훨씬 이쁘네….”

“참나, 길거리에서 뭐 하는 짓들이야…? 에이씨, 젠장….”

 

질투와 부러움이 뒤섞인 말들.

 

그리고 그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그녀.

 

확실히 어릴 적의 그녀는 좋게 말해도 귀엽다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정확히 말하자면 다소 꼬질꼬질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소망했던 대로 정말 백조가 되었다.

 

어른이 된 그녀는 남자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돌아볼 정도로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미인이 된 것이다. 

 

이제는 주인공에게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큰 자랑거리가 된 그녀.

 

주인공은 그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하며 더욱 주인공을 끌어안는다.

 

주인공은 그녀의 손을 잡고 먼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가자. 집으로.”

 

둘만의 보금자리.

마침내 마련한 둘만의 신혼집으로.

 

 

 ***

 

 

어릴 적 고아원에서부터 함께 쭉 성장하여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된 주인공과 여주.

 

백조처럼 아름답게 성장한 그녀.

그리고 늘 그녀를 응원하고 지지해온 주인공.

 

어릴 적 그녀는 가끔씩 남들과 다른 자신의 종족을 탓하며 괴로워하곤 했다. 

 

왜 나는 다른 애들이랑 달라?

왜 나는 이렇게 생겼어?

왜 나만 이래?

왜 나만?

왜?

 

주인공은 그런 그녀에게 늘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그녀가 자신의 종족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그녀의 종족에 대한 이야기, 전설, 역사 등이 담긴 책을 구해 그녀에게 보여주며 자긍심을 불어넣어주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 그녀와 비슷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그녀가 이 세상에 혼자 외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녀 곁에는 언제나 자신이 있어줄 것이란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어릴 적의 상처를 이겨내고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이고, @@종족으로서의 능력과 자부심을 겸비한.

 

 

 

다만, 아직도 그녀는 자신과 같은 종족을 본 적이 없다. 

 

워낙 희귀한 종족이기에 일부러 그들을 찾아나서지 않는 한 우연히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가끔은 같은 종족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막연한 소망 정도일 뿐이다. 

 

어차피 그녀는 인간들 틈에서 한평생을 살아왔고, 너무나 사랑하는 주인공이 곁에 있기에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사랑도 애정도 전부 주인공만 있으면 충분하니까.

 

 

 

“하아, 자기, 사랑해… 더 안아줘….”

 

민달팽이처럼 끈적하게 주인공 위에 올라타 완전히 몸을 밀착하고 허리를 움직이는 그녀.

 

주인공이 며칠간 집을 비우며 하지 못했던 분량을 벌충이라도 하겠다는 듯,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인공을 덮치고 몸을 섞기 시작한 그녀.

 

신혼집을 마련한 이후로는 늘 이런 식이다.

 

시도때도 없이 주인공에게 매달려 애정과 자지를 갈구하는 그녀.

어릴 적 아이들에게 따돌림당했던 기억이 조금 트라우마처럼 남은 것일까, 늘 주인공과 붙어지내고 싶어 한다.

 

연결되면 더 좋고.

손이든 입이든, 아래든.

 

전부 다면 더 좋고.

 

손깍지를 끼고, 키스를 하며, 꾸욱꾸욱 놓치지 않겠다는 듯 보지로 자지를 조여대는 그녀.

신음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쉼없이 사랑해와 기분 좋아, 더 해줘를 속삭인다.

 

그녀의 종족에 대해 써 있던 책에 성욕이 넘친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러면 아무래도 그냥….

 

“몰라.”

 

그녀에게 그 얘기를 하자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 주인공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녀가 작게 무언가 웅얼거린다.

못 알아들은 주인공이 되묻는다.

 

“응?”

 

그녀가 조금 더 목소리를 돋워 속삭인다.

 

“난 그냥… 자기가 좋으니까….”

 

주인공은 사랑스러운 그녀를 다시 끌어안으며 위로 올라탄다.

저런 말을 듣고도 참을 수 있는 남자는 아마 없으리라.

 

주인공도 그녀의 귓가에 속삭인다.

 

“나도 좋아해.”

 

종족 때문이든, 아니면 그냥 그녀가 성욕이 많은 것이든 상관없이 널 좋아해.

그렇게 속삭이고 다시 그녀와 몸을 섞는다.

 

‘너무 좋아’와 ‘좋아해’를 반복해서 헐떡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집밖까지 크게 울려퍼진다.

 

주인공은 생각한다.

신혼집을 이웃 없는 외딴 곳에 잡기를 잘했다고.

 

 

 ***

 

 

아무튼 그런 이종족 순애가 지나가고,

이후 이종족 금태양 등장.

 

그녀로서는 처음 만나는 같은 종족.

당연히 매우 반가워하고 신기해하며 크게 환영한다.

 

하지만 조금 당황스러운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책에서 본 것과는 조금 다른 이종족의 문화.

처음 듣는 문화.

 

조금 당황스럽지만 원래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니 그녀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주인공도 이를 존중해준다.

그녀도 언젠가는 그녀의 동족을 만나봐야 할 텐데, 이런 기회에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배워두면 좋지 않을까 하는 심산이다. 

 

 

 

하지만 주인공도 그녀도 몰랐던 이종족의 습성이 동족을 만난 것을 계기로 점점 깨어나기 시작하고, 

 

동족 수컷의 페로몬을 감지한 그녀의 육체가 전에 없이 뜨겁게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그녀는 당연히 주인공의 품에 안겨 해소해보려고 하고,

 

하지만 마치 맞지 않는 열쇠로 자물쇠를 열려는 것처럼 애타기만 할 뿐 이상하게 예전과 달리 해소가 되질 않고,

 

그러다 결국 찾아온 발정기를 참지 못하고 이종족 금태양와 섹스를.

 

 

 

인간 주인공과 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유전자 레벨에서 정해준 궁합.

 

동족과의 섹스는 전에 느껴본 적 없는 황홀한 쾌락을 선사하고,

그렇게 점점 물들어 가는 그녀.

 

 

 

한편, 주인공은 그녀의 종족 습성이 적힌 책을 새로 구해 읽어보다가

무언가 불길함을 느낀다.

 

동족끼리 있어야 비로소 페로몬 유발, 배란, 발정기 등의 상태가 나타난다는 설명.

 

왠지 요즘 이상하게 안절부절 못 하는 것처럼 보이던 그녀.

 

주인공은 묘한 불길함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본다.

 

그러나 그때 이미 그녀는….

 

 

 

미운오리새끼 이야기의 결말은 자신이 백조라는 것을 깨달은 미운오리가 오리 무리를 벗어나 백조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러한 결말처럼 이종족 그녀도 결국은 동족의 품으로 떠나게 된다.

 

미운오리새끼 신세에서 아름다운 백조처럼 피어났던 그녀.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은 인간 주인공의 곁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어울릴 수밖에 없는 동족의 품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떠나고 난 뒤.

주인공 혼자 남은 신혼집.

 

분명 혼자인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주인공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그녀의 신음소리.

원초적인 흥분과 쾌락이 넘쳐흐르도록 담겨 있던.

 

거부할 수도, 거부할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강렬한 섹스였던 것인지

주인공과의 침대 위에서 이성을 잃고 안에 싸줄 것을 애원하며 그놈에게 매달리던 그 목소리.

 

그녀가 남기고 간 것은 책 하나뿐이다.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읽었던 그 동화책.

낡디 낡은 그 책 하나만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그녀는 떠나갔다.

 

 

 

주인공은 집을 불태운다.

있을 이유도, 있고 싶지도 않은 집이니 아무런 미련도 없다.

 

활활 타오르는 집을 바라보며 주인공은 생각한다.

외딴 곳에 집을 짓길 잘했구나.

 

불이 이만 꺼지기 전에 주인공은 불길 속으로 동화책을 던져넣는다.

 

미운오리새끼.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책이 화르르 불길 속에서 잿더미로 변해간다. 

 

표지에 그려져 있는 아름다운 백조가 허연 재로 변해 저 먼 하늘로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