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토미의, 안에서

 

 

아직 11월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피부에 닿는 공기는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할 정도로 차갑다. 왼손에 연결된 히토미의 오른손만이 유일하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히토미는 항상 내 왼쪽에 서 있고, 그리고 살며시 오른손을 내밀어 온다.

그녀의 손은 작고, 그리고 따뜻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을 좋아한다. 부끄러워서 나부터 잡은 적은 없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계기를 만들어서 잡을까, 그런 불순한 생각만 하고 있다.

만약 내가 지금 갑자기 괴한에게 칼에 찔렸다고 해보자.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자신의 선혈을 바라보며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분명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히토미의 미소와 잡은 손의 감촉을 떠올리며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손은 따뜻함과 다정함이 넘친다.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 앙증맞고 모양이 좋은 손톱은 건강한 복숭아색이고, 매니큐어 같은 불필요한 장식은 일절 하지 않았다.

나와 사귀기 전에는 옅은 투명한 색 정도만 바르고 있었다는데, 내가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무심코 털어놓았더니 어느새 그만둔 것 같다.

무심코 해버렸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왠지 내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는데, 히토미는는 "애초에 귀찮아서 그만두기 딱 좋은 기회였어."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손이 차가운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고 하지."

히토미는 싱긋 웃으며 "그거 빈정거리는 거야?" 라며 되물었다.

"별로, 그 반대도 그렇지만은 않으니까."

"그럼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입을 내밀며 항의하는 히토미의 입술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진다.

 

몇 번이고 맞닿은 저 붉은 입술과도 한동안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외롭다는 간결한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기분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난 타츠야에게 그렇게 생각되고 있었어? 흐응."

히토미는 연극조로 토라진 듯이 외면해 버렸지만, 잡은 손은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이 내 손을 꽉 쥐어 왔다.

내가 유치한 수법으로 히토미를 놀리고, 히토미가 이에 대해 토라진 척을 한다.

그리고 내가 사과하고, 히토미가 용서하는 대신 무릎베개나 키스를 해달라고 떼를 쓴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은 할 수 없다. 역이라는 공공장소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염치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서로가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재인식하고 왠지 모를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 분위기를 되돌리기 전에 우리의 발은 어느새 역의 홈에 도착했다.

기차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우리는 말없이 서서 손가락을 얽은 서로의 손바닥의 감촉을 아쉬운 듯이 확인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1년 정도의 기간 한정 장거리 연애.

올해 사회초년생이 된 나는 가을 초부터 1년 정도에 걸쳐 먼 곳의 지사에서 연수를 받아야 했다.

히토미와의 교제는 대학에 들어갔을 때부터이니 벌써 4년이 넘었다.

학창시절에는 서로의 아파트를 오가는 반 동거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제 와서 일 년 동안 멀리 떨어져 있는 정도로 우리의 마음이 멀어지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다. 나와 히토미의 왼손에는 그것을 증명하듯 완전히 같은 디자인의 반지가 지금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이 연수가 끝나고 내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 사람 몫을 하게 되어 돌아오면 우리는 결혼할 것이다.

이틀 전, 짐 정리를 마치고 방에서 둘이서만 TV를 보면서 무심코 흘린 내 속마음.

"슬슬 결혼할까?"

자고 일어나서 하는 하품처럼 자연스럽게 나와버린 그 말.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을 갓 졸업한 풋내기에겐 슬슬 이라니 이게 뭔 소린가 하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다.

하지만 4년이라는 교제기간은 앞으로의 미래도 함께 하고 싶다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히토미는 당황하지도,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뒹굴며 얼굴만 이쪽으로 돌리고 "나, 타츠야랑 닮은 아들을 낳을게." 라며 미소지었다.

"그것도 좋지만 난 형제뿐이었으니까. 딸이라는 것도 동경하는데."

"안~돼. 타츠야를 닮은 아기를 낳아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뺨을 부비부비 할거야."

 

그날 밤. 언제나처럼 우리는 어울렸고, 서로의 냄새에 휩싸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식 내용과 여행지. 그리고 결혼 생활에 대한 룰의 결정. 그리고 자녀 양육 방침까지.

마치 처음 이성교제를 하는 중항색 같다고 낯뜨거워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진심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함께 혼인 신고를 하러 갔고, 서명을 했다. 1년 후. 함께 제출하러 가자고 약속하기 위해.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형태로 남기고 싶었다.

 

 

"최소한 격주로 만나러 갈 테니까."

히토미의 억양을 누른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안그래도 타츠야와 달리 박봉이네요."

"그 정도는 내가 낼게."

"그치만 말이야……."

평소에는 엄마로 착각할 정도로 잔소리가 많은 히토미가 드믈게 말 끝을 흐리며 어째서인지 말을 더듬는다.

"왜그래?"

"별로."

"뭐, 괜찮아. 하지만 확실히 돈도 모아야겠지. 앞으로 여러 가지가 필요할 테고."

나의 그 말을 듣고, 이제까지 토라진 듯이 앞을 보고있던 히토미는 입꼬리가 빙긋이 풀리며 "나도 같은 생각하고 있었어." 라고 말하며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보고 싶을 때도 있겠지?"

"그럴지도."

"그럴지도가 뭐야. 무조건 있어."

 

내 어깨에 히토미가 머리를 기댄다. 검고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 뺨을 어루만졌다. 동시에 달콤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항상 내 곁에 감돌던 냄새. 여자라는 존재는 대체로 좋은 냄새를 풍긴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역시 나에게 있어서 히토미는 분명히 다른 여자와는 일선을 긋고 있다. 이성이라든가, 이치라든가, 상식이라든가, 그런 것들을 모두 버려도 이 여자를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힘껏 끌어안고, 그리고 목이 타들어갈 때까지 사랑을 말로 전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때마침 멀리서 기차의 경적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시간은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살며시 히토미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히토미도 그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내가 힘을 빼는 것에 호응하듯 그녀도 힘을 풀었다.

그러나 우리의 손끝이 떨어지려는 순간, 히토미의 손은 내 검지만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히토미가 고개를 숙이고,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히토미의 왼손이 자신의 눈가를 부드럽게 닦는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기차가 미끄러지듯 흘러 들어온다.

문이 열리고 말았다. 차라리 고장 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기차에 발을 들여놓는다.

뒤돌아보니 마치 버려진 새끼 고양이처럼 비통한 히토미의 표정. 이런 얼굴은 본 적도 없었고, 보고 싶지도 않았다.

문이 닫힌다.

우리는 마치 사전에 몇 번이나 협의를 한 것처럼 유리 너머로 손을 겹치고, 그리고 입술을 포개었다. 그저 차가울 뿐인데, 그녀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기차가 가속을 시작한다.

나와 히토미의 위치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히토미라는 이름처럼 보석처럼 예쁘고 큰 눈동자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동시에 난처하다는 듯이 웃음을 띄웠다.

 

"플랫홈 같은 데서 키스하는 커플은 뭐야? 그런 거 부끄럽지 않나?"

히토미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었다. 나도 마음속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우리들의 행동을 모르는 체 하고 싶은 기분이다.

 

 

 

 

그로부터 반년 정도가 지났다.

일은 순조로웠고,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도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히토미와도 아무 문제가 없다. 전화나 문자는 거의 매일 하고 있고고,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직접 만나고 있다.

종종 자러 오면 그때마다 더럽다고 혼내며 청소를 해준다. 요리 레퍼토리도 확실히 늘었다. 농담조로 "신부수업이야?" 라고 물으면 멋쩍은 듯 뺨을 긁적거리며 얼버무린다.

 

밤에도 순조롭다. 그토록 싫어하던 입으로 하는 봉사도 오히려 히토미가 더 적극적으로 해 주게 되었다. 학창시절 내내 함께하던 때보다 우리는 더욱 격렬하게 서로를 요구하고, 그리고 농후한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게 되었다.

멀어진 만큼 서로의 존재를 더 강하게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나로서는 몇 년을 사귀어 질리도록 정도로 품었을 히토미를 밤마다 공상하며 범하여 자위를 할 정도다.

이미 우리는 나름대로 성숙했다. 중학생이 여름방학 끝나고 만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두고 만나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약혼자의 용모는 사귀기 전의 가슴 뛰는 설렘을 떠올리게 한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차임종이 울렸다. 나는 기지개를 한 번 펴고 책상에서 일어나서 구내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료들과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끔 히토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나도 모르게 밤을 새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비상계단 층계참에 앉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스스로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히토미의 단축 다이얼을 눌렀다.




1편짜리 단편이고 여기까지가 1/4 조금 넘는 분량

분위기가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