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븐 겨드랑이 찌찌






1, 2챕 다 봤는데

스토리 작가가 개인의 가치관과 희생에 중점을 두는 거 같네




1챕터 줄거리 세줄요약하면 

1. 로숨 섹터의 관리자 튜링이 자신이 독자적으로 만든 지능체들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는데.

2. 중급 정화자 페이쓰는 튜링이 만든 지능체들이 인간의 명령 없이 '한계를 뚫은' 지능체들이라서 처분해야 함.

3. 이 둘의 싸움 끝에, 결국 튜링이 자신을 희생해 페이쓰를 제압하고 한나라는 지능체를 살림.


줄거리는 이게 끝인데

전개에 군더더기가 별로 없고 기승전결도 분량 치우친 거 없이 깔끔하게 끝났음

그래서 스토리 자체는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히게 봤는데


다 읽고 생각할 꺼리가 굉장히 많았음

특히 감정에 대한 부분이.



스토리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지능체'들의 묘사랑 말투를 보면

전형적인 감정 없는 기계로 보임.


반면에 마인드맵의 한계를 뚫었다는 지능체 T1641이랑 한나를 보면

아주 다채롭지는 않아도 감정이 있어 보임


이걸 보면 작중에서 표현한 '지능의 한계'가 감정을 가지게 되는 걸 말하는 거 같은데

이게 단순히 그냥 상황 전개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1, 2챕터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 요소더라고



우선 1챕터에서.

튜링은 자신이 자식처럼 끔찍이 여기는 한나를 살리기 위해 온갖 똥꼬쇼를 다 함.

모든 걸 바쳐서라도 한나만큼은 살리려고 교수랑도 거래하고, 중급 정화자 페이쓰한테 대들기도 하면서 어그로를 끄는데


반면, 한나도 튜링만큼은 살고, 이제부터는 정화자의 간섭 없이 편안하게 지능체들을 만들어가며 살기를 원함.

양쪽 모두 '일반적인 지능체'라면 가질 수 없는 감정을 가져서 나타나는 가치관의 대립인데.


다만, 이 한나는 상당히 저돌적인 편이라

안나의 만류를 무시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중급 정화자를 물리치려고 함.

그러나 계획은 좋은데 신체 능력이 형편없어서 도리어 페이쓰한테 죽을 위기에 처함.


못 하면 개죽음 당하는 거고 잘해봤자 동반 자살인데

이는 튜링이 원하는 바랑 완전히 반대가 됨.



그래서 튜링은 한나를 감싸 페이쓰의 공격에 죽고.

페이쓰는 섹터의 관리자를 죽인 혐의로 중급 정화자의 자격을 잃고, 리셋되기 위해서 소멸함.


양쪽 모두 서로를 아끼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한 건데.

오히려 한나가 감정이 없고 기계처럼 냉정하고 합리적이었다면

이 사고는 생기지 않았을 거임.


한나는 교수의 도움으로 빠져나갔거나 페이쓰의 손에 죽었을 테고.

튜링은 끽해봐야 징계 좀 먹고 끝났겠지.

실질적으로 한나를 데리고 도망친 건 교수 일행이니까.

튜링의 죄라면 '로숨 섹터'의 가치와 방향성 대로 지능체를 생성한 죄가 전부라 죄가 없거나, 있어도 가벼운 수준이었으니.


1챕터의 관통 소재는 희생인데.

이 희생은 지능체가 한계를 넘어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면 없어도 될 일이었음.


감정이 생긴 것 때문에 가치관에서 차이가 생기고.

그 가치관의 차이가 비극을 낳은 결과가 된 거.


이건 2챕터에서도 마찬가지였음



2챕터의 줄거리는


1. 키클롭스 섹터의 지능체들이 '거대한 방어막'에 안에서 '전투 연습을 위한 살육전'을 벌임

2. 그걸 본 교수 일행이 방어막을 해제하고 지능체들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도리어 미친 전투광들을 섹터에 풀어놓은 셈이 됨.

3. 이에 시모가 자신을 희생해 지능체들의 통제권을 올리비아가 가질 수 있게 해주고, 올리비아의 명령으로 사태가 진정됨.


키클롭스의 관리자 올리비아랑

교수의 일행이었던 시모.

그리고 '거대한 방어막'을 세웠던 상급 정화자 레이븐이 주역으로 나오는 스토리인데.


주역 세 명이 각자의 감정과 개성 때문에 엇박자가 나면서 일이 꼬이고.

또 반대로 감정 때문에 일이 해결되기도 함.




우선 시모의 감정은 피폐였음


얘는 보니까 전쟁 트라우마로 피폐해졌다는데.

키클롭스 섹터에서 생긴 혼란을 보고

이 혼란을 자신의 힘으로 잠재운다면, 트라우마를 극복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올리비아를 돕기로 함.


다만, 자신의 그런 선택 때문에 자신을 받아들여주고, 또 좋게 대해줬던 교수 일행이 위험에 빠지게 되자,

트라우마 극복을 뒤로 하고 교수 일행을 살리겠다는 목표를 우선시하게 되고.


올리비아가 연민 때문에 죽여야 할 옛 동료를 죽이지 못하게 됐을 때.

시모 자신도 동료를 죽였던 과거가 있어서(다크존 스토리에서 언급됨)

분명 내면에서는 올리비아의 선택에 공감하고 갈등했을 텐데도


교수 일행을 살리겠다는 목표 때문에 올리비아의 옛 동료를 죽이기로 결정.

그렇게 또 하나의 관리자였던 타샤랑 함께 자폭해서 타샤의 부하들의 권한을 올리비아에게 건네주게 됨.


그런데 이 부분에서



기습으로 우위를 점했던 시모가

도리어 타샤한테 발리고 칼에 찔리게 됨.

그걸 보고

'아니 시발 걍 쏴 죽이면 해결되는 걸 왜 질질 끌다가 같이 죽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 이유가 나오더라고



시모는 '억제 프로그램'의 실험기로,

고통이 한계에 다다라면 자폭하게 프로그램 되어 있다고 함.

그런데 그 고통이라는 건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라

시모 본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고통의 수치로 판단이 되나봄.


즉, 시모는 자신이 살아 있던 평생 동안 고통을 참으면서 지내왔고.

결국 계속해서 원하지도 않는 과거가 떠오르고, 말을 더듬게 될 정도로 정신이 엉망이 되어 가고 있음.

피폐해진 거지 몸도 마음도.


그래서 일부러 타샤의 반격을 허용한 다음.

계속 축적되는 고통을 역이용해서 억제 프로그램의 자폭 스위치를 켠 거.

그럼으로써 자신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고, 교수 일행을 지킨다는 목적도 이루었음.


분명 비참하게나마 살아남아서 교수 일행과 함께하고,

그로 인해 쌓인 마음의 상처를 회복해간다는 선택지도 분명 있었을 거임.

하지만 시모는 자기 스스로 자폭을 선택함.


우울한 이야기지만 상당히 인간적인 사고방식임.




올리비아의 감정은 연민...? 이라고 보였음


키클롭스 섹터의 관리자 올리비아는 타샤랑 세트로 제작된 관리자로,

올리비아가 전투 타입인 타샤를 엇나가지 않게끔 감시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음.


전투 타입은 계속 모의 전투를 하며 전투 데이터를 쌓아 더 강해지는 걸 목표로 하는데,

이때 전투 타입이 폭주하면 리셋시켜서 폭주를 막는 식으로 업무를 해왔나봄.


그러나 어느 순간, 올리비아는 더는 폭주를 막지 않음.

정확한 이유는 언급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연민을 느꼈던 거 같음.


자기를 억압한 범죄자한테 감정적으로 동요해서 범죄자한테 연민을 느끼는 건 실제로도 일어나는 일임.

스톡홀름 증후군인데, 그걸 말하려는 건 아니고.


전투 타입을 계속 감시하고, 죽여서 리셋시키는 걸 반복하던 찰나,

올리비아 마음에 더는 죽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됐나봄.

영원히 싸우다가 죽으면 다시 태어나 싸우는 모습이 안쓰러웠겠지.


그러나 그 연민 때문에 폭주를 막지 못하게 되고.

그건 결국 타샤가 이끄는 전투 타입들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결과가 됨.

그래서 결국 키클롭스 섹터 전체가 전쟁터로 돌변하고.

상급 정화자 레이븐이 와서 중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됨.


이 섹터에서 일어난 모든 문제가

올리비아가 갑자기 생긴 감정 때문에 자기 업무를 이어가지 못한 게 나비효과가 된 거.



심지어 올리비아는 타샤를 죽여서 관리 권한을 뺏고, 모든 걸 멈출 수 있었음에도

끝까지 망설이다가 결국 타샤를 직접 죽이지 못했음.

그래서 결국 시모가 자폭하면서 타샤를 죽인 다음에야

모든 걸 내려놓고 교수와 함께 상급 정화자와 싸음


찌질하게 갈팡질팡하는데, 이것도 상당히 인간적인 면모임




반면에 상급 정화자는 정반대라고 느꼈음



역바빌론의 상급 정화자 레이븐.


얘는 '전투광'이라는 컨셉을 가진 년이던데

자기 개성에 걸맞게

교수의 특이한 능력을 보고 상관한테 즉각 보고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교수 일행과 싸우는 쪽을 선택함.


그러나 역시나 질서를 최우선시하기는 함.

키클롭스 섹터의 지능체가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펼치기 시작해서 섹터 내에서 전쟁이 빈발했을 때.


자기 딴에는 그냥 그대로 풀어두는 게 더 즐거운데,

어쨌든 혼란을 막아야 하는 규율을 따라 전투 타입의 지능체들을 한 곳에 가둬두면서 급한 불은 끔.


하지만 전투광에 걸맞게 사태를 어느 정도는 수습하되, 그 이후는 방치함.

레이븐에 만든 방어막은 뉴럴판 콜로세움이 되고.

전투 타입의 지능체들은 영원히 죽고 다시 살아나고를 반복하며 그 안에서 살아감.


즉, 전쟁의 혼란을 잠재운 게 아님.

그 혼란이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지 않게

구역을 축소시켰을 뿐


즉, 이 미친 찌찌년은 규율을 지키는 선이라면 규율보다 '자기 개성'이 우선시했음


만약 1챕터에서 나온 중급 정화자 페이쓰였다면

레이븐과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 거 같음.




중급 정화자 페이쓰는

개성이 별로 없었음.

진짜 원리 원칙을 따라 움직이는 기계였고,


그나마 감정이 조금은 있는지 튜링의 처지에 안쓰러움을 느껴서 부드럽게 대해주지만.

자신의 감정보다는 대의를 위한 원리 원칙을 더 중요하게 여김.


그런데 레이븐은 정반대로

규율은 대강만 지켜진다면

자신의 개성과 주관을 더 우위에 두고 일을 판단함.


1챕터의 한나랑 상황이 비슷함

감정이랑 개성이 없었다면

레이븐도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고치려고 했을 거임


하지만 개성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규율은 반만 지키고 자기가 만족하는 상황에서 방치해뒀음.



정리하면 

한나랑 시모, 올리비아, 레이븐 전부 다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각자가 원하는 가치관에 따라 행동했음.


다만, 지능체랑 정화자의 차이점이 있음.



레이븐이 중급 정화자에 비해서 '개성'이 훨씬 더 살아 있는 건 분명한데

자폭해서 자유로워진 시모나.

감정 때문에 아예 관리자로의 일에서 손을 떼버린 올리비아에 비하면

덜 자유롭고 여전히 '규율'에 얽메어 있음.


레이븐은 전투를 좋아하면서도 결국 섹터의 혼란을 줄이려고 전투 타입을 격리했는데

완전히 자유로웠다면 여기서 더 엇나갈수도 있었을 거임.


즉, 얘는 시모나 올리비아랑은 달리 없던 감정이 생겨서 한계를 깬 게 아님

원래부터 개성이 있었고, 지금도 그 프로세서대로 행동했을 뿐.


레이븐이 자유분방해보이지만,

그건 그저 개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지

지능의 한계를 뚫거나, 프로세서를 극복해내면서 없던 감정을 깨달은 게 아님

얜 그냥 설계됐을 때부터 전투광인 채로 설계된 거.




안나가 말하길, "로숨과 키클롭스 섹터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라고 함.


3년 전 외부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부터 내부가 어긋나기 시작한 건데.


그때부터 올리비아는 냉정해야 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연민을 느끼면서 전투 타입을 방치하기 시작.

즉, 감정을 가지기 시작했음.


시모도 마찬가지.

자살 할 수 있었으면 진즉에 자살했을 정도로 피폐한 삶을 살면서도

꾸역꾸역 살아만 오다가 교수라는 존재를 만나 마음이 변화하면서 자폭을 선택함.

스토리에는 묘사되지 않지만,

자폭을 선택하게 될 정도로 사고가 자유로워진 것도 3년 전의 영향이 아닐까 싶음


1챕터에서 나온 튜링이랑 한나도 마찬가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됨.




정화자들이 있는 곳이 역바빌론 탑이라는데.


이 세계의 피라미드 구조의 최하계층에 있는 지능체들은

3년 전 외부와 단절되면서 허락 없이는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을 가지게 됐음.

즉, 본래 주어진 기계적인 한계를 뚫게 된 거.


반면,

이 세계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을 정화자들은

원래부터 개성을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고 있음.


바빌론이 천국에 닿을 정도로 높이 쌓은 탑인데,

그게 역으로 됐다면


천상.

즉, 인간에게 도달하는 건

태어날 때부터 가장 많은 권한과 힘을, 그리고 가장 많은 자유도를 부여 받은 정화자가 아닌.

가장 억압된 채 하층에서 살아가던 지능체가 되지 않을까 싶네


또는 무율배반의 에오스처럼 정화자가 지능체가 되는 걸 암시하거나


이러면 프롤로그에서 바깥의 페르시카가

"내 친구와 서버 안에 갇힌 인형들을 데리고 돌아와"

라고 말했는데, 이것도 어느 정도 일치가 되는듯


현실로 간다는 건 가상의 데이터가 실제 육신을 얻는 거니까

결국 교수가 거느린 지능체들이 탑 꼭대기에 서게 되는 아닐까 몰루





물론 내 뇌피셜 99%이고

이제 겨우 2챕터 보면서 느낀 거라 할배들이 볼 때는 ㅈㄴ 가소로울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읽는 거 좋아해서

세계관이랑 스토리 ㅈㄴ 취향저격당함 ㄹㅇ 개재밌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