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

坂口希

Banxsy

기본 투영
확장 투영

완전 투영

스킨(空中色彩)
스킨(白沙派对)
클래스

기업

모델명
ARTIST 3.0
생일
9월 21일
일러스트
柱柱





문서1 - 호감도 Lv.2에 개방

신세대의 천재, 독보적인 인형 아티스트......깨어날 때부터 작업에 투입된 지 불과 수 개월만에 뱅크시는 수많은 미디어와 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전혀 기쁘지 않고 허전하기만 했다.

그녀가 하는 소위 '창작' 이라는 것들은 죄다 회사의 치밀한 기획의 일환일 뿐이었다. 그녀는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뒤에서 조종하는 대로 무대에 올라 아무것도 모르는 군중의 찬양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이 모든 것에 지쳐버렸고, 어떤 특별한 자극으로 인해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그런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결국 사내의 한 합동 대회에서 뱅크시는 진정 자신이 창작한 작품으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와 함께 그녀는 회사에 승진을 신청하여 사이버미디어 사의 인디 창작자가 되어, 다른 부서의 견제 없이 더 많은 자율권을 얻게 되었다.

문서2 - 호감도 Lv.3에 개방

뱅크시에게 이 사건은 꼭두각시 인형에서 한 명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창작자로 탈바꿈하는 계기로, 자신의 족쇄를 정면으로 덤벼들어 깨부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전에 그녀를 추켜세웠던 주류 미디어 입장에서는 이것이 마냥 달가운 변화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독립한 뱅크시는 기존의 창작 스타일에서 벗어나 거리 그래피티를 주요 표현 수단으로 삼아 반항 정신이 담긴 예술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경직된 교조주의를 비판하고 허울 좋은 쓰레기들을 폭로한다──족쇄에서 풀려난 뱅크시는 그 어떤 내용이라도 거리낌없이 그려내고, 아무리 신랄한 관점이라도 거리낌없이 표현해냈다. 작품의 영향력이 증가함에 따라 주류 미디어의 뱅크시에 대한 평판도 갈수록 하향곡선을 그렸다. 허세, 탈선, 반사회성, 아집 같은 날카롭고 부정적인 꼬리표가 뱅크시에게 하나둘씩 따라붙었다.

그러나 예술에서 작품은 평가절하될 수 있어도, 그것이 전하는 정신은 영원히 왜곡될 수 없는 법이다.

문서3 - 호감도 Lv.7에 개방

물론 뱅크시의 삶에 거리 그래피티만 있는 건 아니다. 그래피티는 그녀가 예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그녀는 많은 시간을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그녀처럼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다양한 청년들과 함께 거리를, 건물 옥상을, 도시 이곳저곳을 춤추듯 누볐다.

뱅크시는 한때, 자신이 진짜 인간이라면 분명 그들 무리 중 하나였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청년이란 가장 뜨거운 피와 에고를 가진 집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이런 집단만이 외부의 억압을 깨부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내일을 창조할 수 있는 동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뱅크시는 이런 류의 패기를 좋아했다. 이는 그녀가 인정한 몇 안되는 인간만의 독특한 특성이다.

문서4 - 호감도 Lv.10에 개방

뱅크시의 거리 그래피티는 도시의 법 집행자들에겐 엄청난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뱅크시는 이에 꿈쩍하지 않고 끝까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는 집행자들의 편에 서기도 했다. 바로 누군가가 '뱅크시의 추종자' 라는 이름을 걸고 과격한 행위를 할 때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법 집행자들을 도와 놈들을 숙청하곤 했다.

뱅크시는 그런 행동을 혐오했다. 그녀가 권위에 반항하는 것은 자기자신이 새로운 권력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술에는 꼬리표가 붙으면 안 돼. 개인이든 단체든 상관없이 말야."
──<예술을 논하는 상인> 그래피티 만화 부제

문서5 - 호감도 Lv.13에 개방

오아시스에 도착한 초기, 뱅크시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창작 빈도를 줄였다. 마그라세아의 상황상 비실용적인 활동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아시스의 환경이 비교적 순수하여 바깥세계에서처럼 날카로운 형식의 반항은 필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술 창작이 관객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피티를 비난 수단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자 뱅크시의 창작욕도 다소 약해졌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권력자' 인 교수는 그래도 꽤 맘에 드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뱅크시는 자신과 함께 마그라세아에 들어온 파트너를 찾아가 둘이서 함께 자신의 좁쌀만한 땅에서 그래피티를 하거나 노래하거나 디제잉을 하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을 즐긴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가끔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예술 종사자에게 평온하고 평범한 생활은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격정을 낳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창작자로서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