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원예와 달리, 사쿠야 같은 전문적인 원예사는 화초를 다듬는 일 말고도 업무 영역이 넓다. 양질의 작물을 재배해서 경제적인 이익을 내게 하는 과학적 기술 역시 그녀가 숙지해야 할 범주에 속한다. 사쿠야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 역시, 유니버셜 애니띵 서비스의 파트너 회사인 농업무역기업에 파견되어 생산 기지를 경영하는 것을 돕는 것이었다.

사쿠야는 토요시마 가문이 사들이기 전 유니버셜 애니띵 서비스 사의 위임으로 2052년 세계 원예 엑스포 개최를 주도했고, 이 중 개인적으로 만든 작품인 '하늘을 찌르는 꽃탑' 이 <주간 녹예> 에 올해의 작품으로 선정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작품을 모델로 한 무단복제품들이 속출하자, 유니버셜 애니띵 서비스의 법무팀은 엑스포가 끝난 뒤 사쿠야의 아이디어 판권을 지켜내기 위해 전담 팀을 꾸려야 했다.

토요시마 가문은 인형을 신뢰해서 사쿠야를 매입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타 전통적인 상류사회 재벌 가문들과 마찬가지로, 토요시마 가문 역시 예술에 종사하는 인형들을 역사와 깊이가 없어서 전통의 영광을 대변할 수 없는 존재라며 무시했다.

하지만 토요시마 가문은 자금 운용에 문제가 생겨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고, 임금 삭감에 반발한 원예사들이 줄줄이 나가버리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때마침 상류 사회로 판매 채널을 넓히고 싶었던 유니버셜 애니띵 서비스 사는 토요시마 가문을 찾아가 사쿠야를 절반 가격으로 팔았다.

이런 지경까지 몰락했음에도 토요시마 가문은 체면을 굽히지 않았다. 합작은 성사됐지만, 인수인계 기간 내내 사쿠야의 능력에 대한 토요시마 가문의 추궁은 끊이지 않았다. 까탈스러운 태도로 자기들의 얼마 남지 않은 '존엄' 을 과시하려는 행위였다.

그러나 사쿠야는 전혀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그런 쓸데없는 일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쿠야는 시끄러운 인간보다 말 없는 식물을 훨씬 귀여워했고, 계속 일할 수만 있다면 일터가 어디든 상관없었다.

측량부터 디자인까지, 사쿠야는 토요시마 가문의 2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개인 정원을 한 달만에 전부 바꿔놓았다.

토요시마 가문이 다시 자택의 정원을 개방하자, 그를 비웃기 위해 찾아온 인파가 물밀듯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사쿠야의 작품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그 달에, 유니버셜 애니띵 서비스의 LG-II 시리즈 영업부서 실적은 600% 가까이 늘었다. 사쿠야를 위시한 원예 인형들은 완벽하게 상류 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정원으로 인한 가문의 이미지 쇄신 말고도, 토요시마 가문은 사쿠야로부터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고 있었다.

명성이 자자한 그녀의 정원 덕에, 사쿠야의 독보적인 원예 기교는 수많은 고위직 인사들을 매료시켰고,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토요시마 가문에 연락하여 사쿠야를 빌려달라거나 그녀의 디자인을 사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토요시마 가문은 재빨리 기회를 잡아 가문의 몰락한 형세를 반전시켰고, 점차 상류 사회의 한 자리를 되찾았다.

이로 인해 사쿠야는 토요시마 가문에서 지위가 점점 상승하여 가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본인에겐 그런 자각이 없었지만.

토요시마 가문은 어마어마한 사례를 약속했지만, 사쿠야는 그다지 욕심을 내지 않고 여건이 된다면 꽃집을 하나 차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토요시마 당주는 거리 하나를 통째로 몰래 사쿠야에게 내주기로 하고, 내년 신년회 때 깜짝 선물로 줄 계획으로 사람을 파견하여 준비를 시작했다.

뉴럴 클라우드 프로젝트에 합류한 후 사쿠야는 곧 임호텝과 좋은 친구가 되었다. 임호텝은 그녀에게 자신이 일하면서 녹화한, 각종 자연 풍광과 생태 풍경이 기록된 영상을 선물로 주었다. 그 답례로, 사쿠야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네모네를 가지고 야옹이 모습의 식물 분재를 만들었다.

"어머나, 저건 사쿠야가 특별하게 만든 거네. 오아시스에 온 뒤론 그녀가 누군가를 위해 뭔가 선물한 적이 없었는데...... 어? 교수 것도 있다고?"

──의료 부서 정기 모임 녹음자료 백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