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로그제 전투 모듈과의 호환성을 위해, Butler-36 모델은 고용자 수행에 필수불가결한 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수많은 세부 사항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디자인 측면으로 따진다면, Butler-36은 여타 동종 제품에 일반화된 인격 모듈이 결여되어 있어, 첫 가동부터 시간을 들여 학습해야만 합니다.

물론, UAS는 이 단점을 홍보 멘트로 포장해 독특한 세일즈 포인트로 만들었습니다.
"Bulter-36. 지적이고, 육체적이며, 당신의 가르침을 기다리는."

센타우레이시의 구매자는 다소 특별했습니다. 부부가 모두 군인인 가정으로, 군사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자 했습니다.

우직한 군인이었던 부부는 시장에 흔한 "부담스럽게 열정적이고 과하게 능동적인" 인형을 꺼렸고, 오히려 센타우레이시와 같은 성향의 인형이 취향에 맞았습니다.

군인 가정의 영향을 받아, 센타우레이시는 세련되고 간결한 몸가짐에 허례허식을 거부하는 군인처럼 변했습니다. 고용주의 딸 윈과도 가까워져, 둘은 서로에게 숨기는 일 없는 자매가 되었습니다.

윈은 센타우레이시에게 세상 물정을 가르쳤고, 자신의 친구들까지 소개했습니다. 군사학교 출신이 대부분 시원시원한 성격인 만큼, 그들은 센타우레이시와 금세 친해졌습니다. 아무도 그녀가 인형임을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자료를 입력만 하면 최고 수준의 전투 기술을 구사할 수 있음을 부러워했습니다.

윈은 한가할 때면 자주 친구들을 데리고 와 함께 센타우레이시와 스파링을 했습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윈과 친구들은 실전 테스트에서 만점을 받는 쾌거를 이뤘고, 축하 파티 대신 센타우레이시에게 감사하는 파티를 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그녀는, 첫 가동 이래 처음 미소를 보였습니다.

센타우레이시의 인격 모듈이 성숙해지면서 주위 환경에서 적응하게 되었을 때, 삶의 첫 변고가 닥쳐왔습니다. 전쟁의 정세가 급속도로 긴박해지자, 고용주 부부에게도 긴급 동원령이 하달된 것입니다. 부부는 떠나기 전 센타우레이시를 따로 불러, 그녀가 왔던 그날부터 그녀를 친가족처럼 여겼고,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 윈을 잘 부탁한다 당부했습니다.

센타우레이시가 인간만의 "작별"과 "중압감"이란 감정을 처음으로 느낀 때였습니다.

부부가 떠난 뒤, 센타우레이시는 하루 일과 중 가정 서비스에 더욱 무게를 싣는 한편, 요리법을 연구하고, 인간의 오락 활동을 배워보기도 했습니다. 전부 다, 홀로 남겨진 윈을 위해서였습니다.

슬슬 생활이 정상화되었다 생각이 들 무렵, 두 번째 변고가 닥쳤습니다. 윈은 서류 한 장과 편지 한 통만을 남기고는 학교의 차량에 타 뒤도 안 돌아보고 집과 도시를 떠난 것이었습니다.

"이건 UAS와 계약한 합의서야. 엄마 아빠가 내게 미리 남긴 돈으로, 네 초장기 정비 서비스를 계약했어. 네가 UAS로 돌아가더라도 너에 대한 소유권은 내게 귀속되지만, 앞으론 누군가를 위해 일할 필요 없을거야.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몸조심해, 언니."
"언니를 영원히 사랑하는 동생 윈이"

──UAS 인형 위탁 보관 부서의 인수인계 기록에서 발췌. 해당 기록 소유자: 센타우레이시

센타우레이시가 클라우드 마인드맵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UAS로 돌아온 그녀는 바라지 않았던 자유를 얻었고, 서비스업 인형에게 있어 고용주를 잃는 것은 살아갈 목적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의 기반 알고리즘은 지금까지 해 왔던 일과 주인 일가를 찾는 것 외에는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할 수 없었지만, 전자는 계속할 의미를 잃었고, 후자는 명령 때문에 불가했기에, 센타우레이시는 오랜 시간 동안 불안한 마음으로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UAS가 42Lab에게서 Butler-36 시리즈 인형의 제공을 요청받았고, 센타우레이시는 다른 인형의 조언으로 막막한 자신의 처지를 바꾸고자 프로젝트에 지원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적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