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대장을 받고 쿠로를 집어왔던 버뱅크 섹터에 다시 들렸을 때 일이다.

사건에 휘말리고 해결한 후 오아시스로 돌아가기 전에 지능체들을 살피며 사태가 제대로 수습되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아직 축제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아 이질전사 대사를 외치며 노는 지능체들이 오가는 길가에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은듯 딜도를 깎아 파는 퍼즐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매일 작업장에 틀어박혀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만들어주던 크로크가 딜도를 요청하자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떠올라 딜도를 하나 아니 앞뒤로 꽉 채울 두 개를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나요?" 했더니,


"딜도 몇 개 가지고 에누리하려고? 천재 조각가의 작품이라고, 비싸거든 다른 데 가서 사!"


목소리는 앙칼졌지만 그 태도는 굉장히 무뚝뚝한 인형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퍼즐은 눈을 반짝이며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인증키가 가득 찰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세요."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냐고!."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뭘 계속 깎아요? 천재 조각가라며 외고집이시네. 조금 있으면 인증키가 가득 찬다구요."


퍼즐은 퉁명스럽게,


"그럼 귀찮게 하지 말고 다른데 가서 사, 난 안 팔아."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세요."


"글쎄, 재촉을 한다고 뚝딱 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겠어?"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반짝이는 눈으로 내 몸을 샅샅히 훑어 보는 게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양 손에 딜도를 들고 이리저리 돌리며 구부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딜도다.


이미 손해 본 인증키만 해도 알고리즘 채굴을 세 번이나 돌릴 정도였기에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조각가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퍼즐은 태연히 전에 본 보라색 고양이로 변해 식빵을 구우며 버뱅크 하늘을 수놓은 홀로그램들을 보고 있었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술가다워 보였다. 

복슬복슬한 털과 둥글게 말려있는 꼬리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자칭 예술가들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오아시스로 돌아와 딜도 한 쌍을 페르시카에게 건네주고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마시며 기다리자. 문을 열고 나온 페르시카가 맛있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크로크가 만든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페르시카의 설명을 들어 보니, 경도가 너무 높으면 민감한 부위에는 아프게 느껴지고 너무 무르면 넣어도 부피감이 잘 느껴지지 않고 밀어넣기 힘이 들며, 

두께가 일정하게 쭉 뻗은 모양이면 넣기는 쉬우나 왕복 할 때 채워지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퍼즐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마그라세아에 접속하기 전에는 편제 확대를 위해선 인형을 더 만들고 대체 코어를 사용해야만 했다. 5명이 되기 전까진 계속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마그라세아에 접속한 후로는 그저 마인드맵 파편을 모아 인형을 강화시킨다. 예전에는 재료를 찾지 못한다면 나오길 바라며 계속에서 제조를 돌린다. 이렇게 몇십번의 시도 끝에 비로소 편제확대를 끝마쳤다. 그러나 마그라세아에서는 그저 매일 얻고 몇몇은 상점에서 살 수 있는 파편으로 인형을 강화한다. 그러니 기다리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방법으론 더 빨리 얻을 순 없다. 그렇지만 업그레이드를 위해 마인드맵 재료를 노리며 검색을 돌리는 이전의 방법을 따를 교수가 있을 거 같지 않다.


인형제조만 해도 그랬다. 옛날에는 인형을 만드려면 인력과 부품은 얼마, 탄약과 식량은 얼마, 거기에 제조시간으로 구별했고, 중형제조를 돌릴 경우 세 배 이상 비싸다. 우중비모를 외치며 수십번 돌리고 얻어낸 것이다. 눈으로 보아서는 다섯 번을 돌렸는지 열 번을 돌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언젠간 나올 거라는 희망으로 돌리는 것이다. 믿음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옛날 사람들은 확률은 확률이요 운은 운이지만, 제조를 돌리는 그 순간만은 오직 내가 원하는 그 인형이 나온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우중비모를 외쳤다. 그렇게 순수하게 제조식에 심혈을 기울여 자신만의 행운의 숫자를 더해가고 인내하며 원하는 인형을 얻어 냈다. 이 딜도들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퍼즐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예술가가 나 같은 이들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퍼즐을 찾아가서 막 뽑아낸 에오스 밀크티를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축제현장 탐색 때 퍼즐을 찾았다. 그러나 고집있던 예술가가 앉았던 자리에 퍼즐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퍼즐이 앉아 딜도를 깎고 있었던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버뱅크 섹터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뜨지 않지만 수많은 홀로그램이 빛나며 버뱅크 섹터의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아, 그 때 퍼즐이 저 하늘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딜도를 깎다가 유연히 버뱅크 하늘의 홀로그램들을 바라보던 퍼즐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안에 들어갔더니 이제는 가족이 된 에오스가 최근 양식에 성공한 데미우르고스 촉수에 올라타 비벼대고 있었다. 

전에 에오스를 끌고와 딜도로 팡팡 두들겨 조교시키던 생각이 난다. 수제 딜도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다들 로숨 섹터에서 섹스돌을 데려오다보니 오래 사용해 휘어진 러브체어의 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아헤가오를 자아내던 오고곡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딜도 깎던 퍼즐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