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좋아하는 교수로서 한번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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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심장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싶은 마음만 커져갔다. 초소탑 안에는 통신을 시도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누르고, 또 다시 눌렀다.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매 순간이 끝없이 길어지는 기분이 최고조를 찌르는 순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토니나!”

“…네.”


안토니나는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안토니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솔이…에오스포로스를 막으려고…”


안토니나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무언가, 내 안에서 부서지는 느낌이 들렸다.

나머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더더욱 아픈 것이었을까, 아니면 희망조차 없었기에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단말기를 떨어트렸다.

 

 

그녀의 웃는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저 멀리 바다 앞에 서,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던 그녀도

 

못 추던 춤을 칠석 마지막이라고 끝까지 노력하던 그녀도

 

로숨 섹터에서 폐허가 된 건물 아래에서 보이던 노란 희망도

 

언제나 문제없을 거라며 제일 앞에 서서 무리를 이끌던 인솔자도

 

서약을 하며 언젠가 등산을 하러 가자는 소녀도

 

품에 안겨 교수가 있다면 언제나 행복하다고 한 애인도


 

나를 현실로 불러낸 건 안토니나가 내 이름을 외쳐대고 있는 단말기였다. 페이스는 단말기를 주워, 나에게 건내 주었다. 

 

“교수님,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습니다.”

 

나는 주저하며 안토니나와 오아시스의 상황을 확인하고, 페이스와는 역바빌론 탑에서의 건투를 빌며 헤어졌다.

 

 

섹터와 섹터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사실 그렇게 멀진 않다. 조금 힘들어질 만큼만 걸으면 된다.


 

“앞으로도 나를 잘 지켜보라고! 한눈팔다 모두가 길 잃으면 나 완전 고생이란 말야!”

 

“하하하, 예전엔 내가 모두를 인솔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교수한테 여러가지 새로운 걸 배우네. …고마워, 교수.”


 

지능체들을 이끌고 오아시스로 간다. 제일 앞에 서서, 누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오아시스로 간다.

 

 

“으음…칠석은 뭘 기념하는 날이야? 나야 교수가 곁에 있어 준다면 그걸로 족하지만.”

 

“오랜만이야, 교수. 태양의 아이 솔, 지금 여기에 등장! 탐험과 전투는 나에게 맡기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게 낫다.

 

 

“설마 교수가 이런 걸…어휴, 깜짝 놀랐잖아…그으, 뭐냐, 다른 여자애들처럼 얼굴 새빨개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좋아! 이렇게 됐으니 받아 줄 수밖에 없지, 응! 그래서 말인데…이따가 같이 등산이라도 하러 갈래?”

 

 

저 멀리 오아시스가 보인다, 방벽 한 쪽에 구멍이 났다.

 

 

“자,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야! 오늘도 기운 내서 일하자!”

 

기운 내서 일했겠지. 언젠가는.

 

“벌써 오후인가. 교수, 정말 열심이네.”

 

항상 열심이 일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숯불구이 먹으러 가자!”

 

물론, 언제나.

 

“어? 이제 밤인데 아직도 일해?”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어서. 안 기다려도 돼.

 

 

어느새 그 조그만 돔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어디선가 많이 본 전쟁터가 눈앞에 펼쳐졌다. 아키와 매그힐다가 상처입은 몸으로 엔트로피의 잔재를 조사하고 있었다. 나는 가장 최근에 폭발이 일어나 연기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분명히 그곳에 무언가 있을 것을 확신했기에.

 

페르시카와 안토니나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땅에 ‘알스비드’ 가 꽂혀 있었고, 그 옆에 형체를 거의 모를 정도로 거멓게 타 버린 시신이 하나 있었다. 오른팔은 뜯겨 없었고, 왼팔도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목에는 항상 중요히 하고 다니던 목걸이가 있었다. 같이 하던 탐험자들이 선물로 준 것이라며 애지중지하던 목걸이가.

 

울고 있는 페르시카와 그녀를 달래는 안토니나를 지나쳐 솔을 다시 한 번, 내 품에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항상 그러곤 했다, 일을 끝마치고 새벽이 될 때쯤 연산력으로 구현한 별자리들을 조금 보다가 솔을 방까지 대려다 주는 것 말이다. 

 

그녀의 몸에서 탄 자국들이 조금씩 연산력으로 기화해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아니,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 맞겠다. 산전수전 다 겪은 후에, 눈물이라는 게 무엇인지 까먹었을 테니. 분명히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않을 것 같았는데,

 

항상 있던 게 없다는 것

 

웃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시간을 더 같이 못 보내 아쉬운 것

 

이 모든 게 너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탓일까.

 

그녀의 코어만이 내 팔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녀의 침대에 그녀를 눕히는 것까지 걸렸다. 그녀의 방은 포격에 당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바랜 침대 하나만 있을 뿐.

 

언제 따라왔는지 지능체들과 인형들이 내 뒤에 서 있었다. 몇몇은 반쯤 죽은 몸을 가지고, 몇몇은 나와 똑 같은 표정을 하고, 몇몇은 나의 목소리를 기다리며. 나는 솔이 항상 가지고 다녔던 목걸이를 내 목에 걸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