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가득 올라온 표정으로 아우터 림 일대를 조사하던 바이퍼는, 시신이 발견된 곳 인근에 사는 모자의 진술을 듣고 있었다. 어린 소년의 얼굴은 순진무구했지만, 모친인 여자는 아우터 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티를 내며, 바이퍼의 얼굴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그 연구원이 죽기 4시간 전에 집 앞을 지나가는 걸 봤다는 거네?"


"네, 맞아요... 뭔가 겁에 질려서 쫓기는 얼굴이었어요..."



어젯밤을 설치며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시달리던 바이퍼는, 귀여운 소년의 얼굴에서 지휘관을 떠올리며 마음속을 조금은 치유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여기서 알아낼 건 다 알아냈다는 생각하는 찰나에, 소년이 주먹을 쥐고 바이퍼 앞에 살며시 내밀었다.



"아핫, 우리 애기? 이게 뭐야?"


"누나 이쁘니까, 이거 줄게요!"



소년은 고사리 같은 주먹을 펴보았다. 소년의 손바닥 위에는 왕사탕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 사탕이네? 이런 건 나보단 자칼을 주면 더 좋아할 텐데?"


"자칼은 싫어요! 저번에요, 라플라스가 싸인해준 권총 씹어 버렸어요!"


"어머? 정말? 알았어~ 누나가, 나중에 자칼 혼내줄게?"



바이퍼는 소년에게 맞장구를 쳐주며, 왕사탕을 가볍게 입에 털어 넣고 그녀의 취향대로 조금씩 녹여 먹기 시작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세이메이카이나 다른 세력에서 오더라도, 나에게 말한 것처럼 솔직하게 다 말해야 해? 아, 미실리스에겐 별로 말하지 않아도...어?"



약간의 조언을 마치고 이 집을 나서려던 바이퍼의 말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야가 흐려지며,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코어 출력에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했지만,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문간에 있던 낡은 신발장을 무너뜨리며 그대로 쓰러졌다. 전투용 바디였기 때문에, 낡은 합성재질의 신발장과 문턱이 바이퍼의 무게로 인해 순식간에 부서져 내렸다.



'자칼... 자칼에게 연락해야...'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붙들고, 어느 때보다도 무거워진 팔을 들어 폰을 집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눈에서 두려움이 사라진 여성에 의해 수포로 돌아갔다. 폰을 빼앗은 여성의 눈빛에는 이제 두려움이 아닌 분노와 목적을 이루었다는 충족감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넌 이제 끝났어. 이 빌어먹을 창녀야..."



자신에게 분노가 서린 폭언을 하는 와중에도 어린 소년의 두 귀를 막는 모습을 보며, 바이퍼는 의식을 잃었다.



.

.

.



"깨워주세요." "예."


"!!!"



벼락과도 같은 충격에 정신을 차린 바이퍼는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손발이 거친 쇠사슬에 묶여 있었으며,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방독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


이 허름한 방을 그녀는 바로 알아보았다. 과거 지휘관과 함께 적발한 니케포비아의 클럽 vip룸... 자신이 오너를 지휘관에게 팔아넘긴 뒤, 이곳은 그대로 방치되어 부랑자들의 아지트로 이용되고 있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룸은 지저분하다는 것을 포함해 몇 가지가 달라져 있었지만, 중앙에는 거대한 침대가 놓여져 있고, 가장자리에는 기분 나쁘게 검붉은 디퓨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디퓨저는 자세히 보면 보지 못 하는 향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계속 주위를 둘러보는 바이퍼의 배에서 무엇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테이저 칩?'



아마도 자신을 깨운 충격은 이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음산한 감정을 담은 노파의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기 시작했다.



"깨어났군요."


"...당신은 누구야?"



바이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에게 말을 건넨 노파의 모습을 천천히 뜯어보았다. 로열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러운 겉옷과, 검붉은 빛깔의 스카프를 단정하게 두른 귀부인과 같은 모습의 노파였다. 바이퍼와 그녀의 한 가지 공통점은, 둘 다 방독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제가 누군지는 알 것 없습니다. 아니, 제가 무엇을 할지 알고 나면, 그것도 알게 되겠죠."


"요즘 시대에 테이저 칩이라니 너무 구식 아니야?"


"아무래도 그렇겠네요. 인류가 지상에 살던 시절에나 쓰던, 이런 물건... 하지만 장점도 있답니다. 아무도 이런걸 중앙정부에 등록하고 사용하지는 않으니까, 추적을 피하기가 쉽거든요. 덕분에..."



노파의 말을 끊듯이 바이퍼의 양 옆에서 복면을 쓴 사내 둘이 등장했다. 왼편의 사내가 알 수 없는 물건을 그녀의 고간에 그대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아아아아악!!!!"



기절할 것만 같은 격류가 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느낌에, 바이퍼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이젠 흐릿해져가는 인간시절의 기억에도, 이 정도의 '플레이'를 한 기억은 없었는데... 그런데 깨어나자마자 조용히 감각 센서를 차단했는데, 왜 이렇게 고통스럽지?



...이렇게 들켜지 않고, 추악한 계집에게 사매질을 하기에도 편리하답니다."


"...하아, 하아... 내가 심어놓은 연구원, 그도 당신이 처리했지? 처음부터 내가 목적이었어?"


"음, 그건 조금 나중에 설명하고 싶네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을텐데?"


"그렇지... 날 노리는 이유가 뭐야? 내가 노려질 이유가 많다는 건 알지만... 그리고 저 디퓨저들... 당신도 식스오와 관계된 사람들 중 하나인가?"



목단과 모란회의 사건을 이미 알고 있는 바이퍼의 날카로운 질문에 노파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안타깝다는 실소를 소리내어 흘렸다.



"뭐가 우습지?"


"실례, 단어 선택이 재미있어서 그래요. '관계된 사람들'이라... 조금만 수정을 더해준다면, 저는 그런 이들을 '이용하는' 편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부류를 이용해 당신을 붙잡은 이유는..."



노파는 품속에서 약간의 출력물을 꺼내 침대 위로 던졌다. 바이퍼는 그 종이들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아우터 림의 니케필리아 클럽, 일부 로열 3세대들이 연루....이건!!!"


"맞아요. 당신이 두 달 전부터 나름 뒤를 봐주던 모자는, 제 며느리와 손주입니다. 그리고... 저 사건에 휘말려 조리돌림을 당하고 죽은 로열 3세대가... 내 아들이었어요..."



자기 정체를 드러냄과 동시에, 노파는 방독 마스크 안에서도 살기로 빛나는 눈을 번득였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나를 여기서 실컷 희롱하고 죽일 생각이야? 아핫! 아들이라고 있는 게, 아내와 자신을 버리고 그런 짓이나 하고 다녔는데, 그게 내 탓이라는 거야? ...남 탓도 정도가 있어, 할머니... 그런 이유로 며느리와 손자까지 이용한 거야?"



노파는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이퍼의 왼편에 있던 사내에게 눈짓을 보낼 뿐이었다. 그리고...



"아아아아악!!!!"



아까부터 이상했다. 감각 차단이 먹히지 않는다고? 그리고... 자신의 그곳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이제서야 느끼는 건가요? 아까 전에 했던 질문의 답이 그것입니다. 미끼로 던진 그 연구원의 비밀스러운 성과가, 바로 당신이 지금 착용한 바디니까요."


"뭐?? 그러면...!"


"지금의 당신은 제가 젊었던 시절에 방주를 돌아다니던, 초임 지휘관들을 노리던 저급한 화냥년들보다도 못한 몸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기계의 발전이란 것은 무섭군요. 이제부터, 창녀는 창녀답게, 이 더러운 곳에서 썩어가도록 하세요... 그럼 이만, 다시는 볼일이 없을 겁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디퓨저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던 향들이 무섭게 연기가 되어 치솟기 시작했고, 바이퍼의 양옆에 있던 남자들이 그녀의 속박을 풀고 방독마스크를 벗긴 다음 침대에 던져넣었다.


바이퍼는 속박이 풀리자마자 몸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노파와 남자들이 빠르게 사라진 뒤, 바이퍼의 뒤에서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큰 셔터가 열렸고, 그 문에서 벌거벗은 아우터 림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미스트에 취한 듯이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있었다.



.

.

.



오늘은 며칠이고, 지금은 몇 시일까? 시간 감각이 흐려진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이짓을 하다 사고전환이 왔다는 니케의 기록이 있었던가? 없다면 아마도 내가 최초의 사례가 되지 않을까...


자신을 탐하려 이성을 잃은 채로 끝없이 몰려드는 나체들을 보며, 바이퍼는 그들마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체를 탐하고 쾌락을 얻어서 무엇할까? 지금을 기억도 하지 못할 텐데...


미스트에 취해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된 남자들이 많아지면, 자신에게 테이져를 먹였던 남자들이 들어와 시체를 치우고 새로운 남자들을 보급했다. 


미스트에 취한 남자들은 안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바이퍼는 안식조차 얻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지휘관을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는 생각만이 그녀의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한 번만 더 만나서,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자기 마음도 고백하고 싶었다.


머리가 날아가던 그때는 사과하는 방법을 몰랐지만, 지금이라면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사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지휘관이 바라는 모습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벽면에 설치된 전신거울이, 그녀의 더럽혀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출 때마다 그녀의 의지를 흔들었다. 지금, 이런 나라도 지휘관이 받아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이제는 익숙해져 가는 격통보다도 쓰라렸다.


그때, 바깥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리고,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거나 무엇인가에 물린 듯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스트와 남자를 보급하던 이들이 드나드는 문의 손잡이가 거칠게 뜯어졌다. 그리고...



"바이퍼!! 여기 있었구나!! 안 죽었어! 바이퍼 안 죽었어!!"



마스크를 쓴 자칼이 뜯겨진 문짝을 떼어내 바이퍼에게 달라붙어 있던 남자들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그리고 미스트를 뿜던 디퓨저를 반대편 셔터를 부수고 밖으로 몽땅 던져 버렸다. 자칼의 모든 일 처리가 끝나자, 마스크를 쓴 지휘관이 서둘러 뛰어 들어왔다.



"자...기...왔어...?"



그를 다시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이렇게 더러운 나라도, 지휘관이 받아줄 수 있을까 하는 무서운 의문과, 마지막으로 지휘관을 만났을 때 청했던 리퀘스트뿐이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어깨를 안고 상태를 살피는 지휘관에게, 바이퍼는 애써 눈물젖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만났으니까... 지금... 나에게... 키스해 줘... 부탁이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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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로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