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의 물결이 요동친다.


잘그락거리는 소음을 내뿜으며 피어나는 흙구름 속 번뜩이는 적색 빛을 드러낸 기이한 물결은 자연적이지 않은 형상을 취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시사했다.


"…."


나는 말없이 물결을 응시했다.


안면에 전개된 바이저의 센서가 정보의 분석을 끝마치기를 기다렸고,


누구도 내 존재를 눈치챌 수 없도록 몸을 낮게, 숨을 얕게 쉬었다.


삑.


이윽고 요란히 움직이던 바이저의 색적이 끝나자 숫자가 올라왔다. 


3,321. 저 앞에서 흘러가는 검은 물결의 총합이 경고 문구와 함께 새겨졌다.


나는 숫자를 머리에 새긴 직후 바이저가 띄운 세부적인 사항을 읽어나갔다.


적의 종류. 무장. 지형. 시계. 풍력의 세기와 방향.


바이저가 처리해낸 정보를 바탕으로 앞서 벌어질 전투의 모든 요소와 상황의 얼개를 짜맞춰갔다.


물결의 종착지는 12Km 거리에 있는 발전소 단지.


주인의 자격을 박탈당한 인류의 잔재가 이어져 있는 곳이자 검은 물결들의 고갈된 동력을 채우기 위한 장소.


물결은 폭이 좁아지는 협곡을 통과해 발전소의 전력을 삼킬 작정인 듯 보인다.


그 길을 틀어막은 뒤 무장을 전개한다면 물결을 없앨 수 있다. 


혹은, 없애지 못한다 하더라도 확실한 손실을 안겨줄 수 있으리라.


키이이이이이잉------…


판단을 위한 찰나의 순간 물결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모든 


지체할 시간은 없다. 경로를 틀어막은 뒤 일소하기 위해선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귀를 덮은 바이저의 버튼을 누르자 안면에 전개된 바이저가 접혀 이마 위에 고정되었다.


"후."


짧은 숨을 내뱉으며 숙인 몸을 일으킨 뒤, 나는 앞을 향해 달려나갔다.


목에 걸린 인식표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맞부딪치자 메마른 금속음이 울리고, 탄약과 무장이 흔들리며 삐걱였다.


그 잡음을 남겨두듯 속력을 올린다. 


빠르게, 더 빠르게. 요동치는 물결을 앞지를 만큼의 가속도를 위해 코어의 에너지를 태웠다.



***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카가가가가각---!!!


목표 포인트에 도착한 나는 제동을 걸어 질주를 멈췄다.


작은 흙구름이 일고 부스러기가 튀어 떨어지는 것을 뒤로 몸을 돌려 전방을 확인했다.


목표 포인트는 협곡의 중간지점.


후퇴하기엔 되돌아갈 길이 한곳 뿐인 이곳이야 말로 내게 있어 최적의 장소다.


삐빗.


귓가의 버튼을 눌러 바이저를 전개하자 다시금 세밀한 정보가 주륵 흘러내렸다.


앞지르기는 성공했고 남은 시간은 3분. 도착까지의 카운트다운이 초단위로 떨어지며 물결의 전방이 확대되었다.


"눈치채지 못했군."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운이 좋았다. 저쪽이 내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고, 무장을 전개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이 행운을 살려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짤막한 생각과 함께 허리춤에 손을 뻗자 철컥거리는 소리를 퍼트리며 컨테이너 속 무장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운용 가능한 세븐스 드워프 넷이 몸에서 떨어져나와 펼쳐진다.


거치형 포탑 타입의 모델 V와 VI 가 자동적으로 방열된 후 바이저의 인터페이스와 페어링을 시작했고,


이내 준비가 완료된 듯 조준용 레이저 사이트에 붉은 선이 뿜어져나왔다.


이제 랩쳐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45초. 나는 나머지 두 무장을 차분히 준비했다.


돌격소총 타입 모델 III의 꽉 채운 탄창을 끼우고, 대함 라이플 모델 I의 충전을 시작했다.


키이이이이이잉-----!!!!


땅울림과 함께 물결의 선두가 시야에 잡힌다.


한데 모인 랩쳐들의 검은 물결. 놈들의 코어에서 흉흉한 적색광이 어둑한 협곡을 드리우며 울부짖는다.


"…."


나는 물결을 응시하며 양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사고전환이 와 곤죽이 된 머릿속에 두 단어가 스친다. 석관. 언니.


두 단어 속에 담긴 조각난 기억의 파편이 명멸하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자아냈으나,


페어링 된 모델 I에서 전달된 충전 완료의 알림이 일말의 감정을 사그라트렸다.


차갑게. 고요하게. 마치 순백처럼.


"세븐스 드워프. 풀 액티브."


우우우우웅---!!!


"레디."


철컥!!


나는 랩쳐의 물결을 바라보며 명령어를 내뱉었다.


페어링이 끝난 세븐스 드워프의 모든 총구는 랩쳐를 향했고, 발사를 기다렸다.


"인카운터."



***



짐작하기를 대략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모든 무장을 전개한 뒤 나는 굽이치는 물결을 향해 전투 개시의 방아쇠를 당겼고,


산처럼 쌓인 랩쳐들 사이에 선 마지막 남은 랩쳐를 향해 전투 종료를 위한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우우우우웅---…


쿠웅!


모델 I의 총구에서 주황빛 궤적이 뿜어진다.


대함 라이플의 대구경 탄두가 공기를 찢으며 날아갔고, 뻥하니 바람구멍이 난 랩쳐는 검은 피를 쏟으며 금속질의 몸체를 땅에 떨구었다.


"하아, 하아."


상황 종료. 발전소를 향하던 랩쳐 전기 및 추가 증원된 랩쳐 무리의 모든 침묵을 확인.


전투 종료. 지금부터 바디 손실률 및 무장의 상태를 확인----


"윽."


흘러간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머릿속에 그 전달되지 않을 보고서를 작성하던 찰나. 나는 신음을 토해내며 엎어졌다.


랩쳐가 쏜 빔 포에 꿰뚫린 구멍에서 붉은 액체가 떨어져내렸고, 시야가 점점 흐릿해져갔다.


"으으윽…!"


나는 이를 악물며 정신을 부여잡고 바디의 손실률을 계산했다.


좌측 상완 절단으로 인한 파손.

우측 무릎 빔 포 피격으로 인한 파손.

스테빌라이저 파손.

우안구 시각센서 파손.

좌안구 시각센서 경미.


"많이도…부서졌군."


나는 입을 비틀어 웃음을 만들어냈다.


바디의 손실률을 생각한다면 전혀 웃을 상황은 아니었건만,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바디의 손실을 메꾸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되어 그런 걸까.


아니면, 그 생각이 미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랩쳐의 부품을 쥐고 있기 때문일까.


"이, 래서야."


절그럭…


"부품을, 위해 랩쳐를 사냥하는, 건지."


절그럭…


"아니면, 인류를…위해서인, 건지."


철컥…


"모를, 지경이군."


나는 랩쳐의 부품을 몸에 끼며 이죽였다.


이번으로 세번째. 파손된 부위를 보수하기 위해 시험삼아 랩쳐의 부품을 사용해봤던 이래 세번째.


기이하게도 잘 맞는 랩쳐의 부품을 끼고 있자니, 문득 폐허 속에서 주웠던 기록물이 떠올랐다.


테세우스의 배.


배를 구성하는 부품을 다른 부품으로 교체하고 교체한 끝에 존재하게 되는 배는 과연 무엇인가.


나 또한 같은 물음을 건넬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나는 아직 니케다. 죽인 적의 잔해를 긁어모아 연명을 위해 몸에 끼우고 있으나,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기에.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바디의 구성요소가 랩처의 부품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그렇게 됐을 때 나는 무엇이 되는 걸까. 


랩쳐일까, 아니면 니케일까. 만약 니케가 아니라면. 너무 많이 갈아끼운 탓에 랩쳐가 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랩쳐를 토벌하는가. 왜 인간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 않는 것인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참이었다.


차륵…


격렬한 전투 탓에 끊어진 인식표가 떨어져 흐릿한 눈에 비쳤다.


언제부터 목에 걸고 있었는지도 잊을 만큼 오래된 닳고 닳은 인식표.


나에 대한 정보가 적힌 그것의 위로 내 몸에서 떨어진 붉은 액체가 떨어졌다.


피를 닮은 붉은 액체는 흙으로 더러워진 인식표의 표면을 닦았고, 희미하게 보이는 글귀를 강조했다.


갓데스, 라는 글귀를.


"…."


나는 인식표에 적힌 글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고전환으로 부서진 머릿속이 다시금 명멸한다.


'오래된 것일 수록 좋은 거야.'


짧은 환청과 함께 기억이 스친다. 


가까웠으나 떠나갔던 전우의 붉은 궤적.


언제 찍었는지 모를 사진 속 인물들의 흐릿한 표정들.


승리, 희망, 행복, 불안, 공포, 절망. 그리고 분노.


겪어왔던 과거의 기억을 함축한 단어가 구멍난 몸뚱이를 지극한다.


모든 기억은 전말이 아닌, 가장 충격적이고 강렬했던 것들 만이 파편처럼 박혀 내 마음을 두들겼다.


'대답해라, 도로시. 우리는 승리의 여신인가?'


그 노도와 같은 파편들에 눈을 질끈 감았을 때. 불현듯 내가 내뱉었던 말이 생각났다.


모든 게 끝났다며, 사투 끝에 결국은 버려진 것에 분노하던 전우의 일그러진 얼굴이 생각났다.


'대답해라. 우리는 승리의 여신인가?'


'….'


'우리는 인류의 희망인가?'


'…예.'


'우리는, 갓데스인가?'


나는 손을 뻗어 인식표를 들어올렸다.


너무 닳아 읽기도 벅찬 쇳조각을 흙째로 퍼올려 꾹 쥐었고, 어느 순간 제멋대로 이어지던 환청이 끊어져 주변은 고요해졌다.


나는 손 안에 섞인 흙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되새겼다. 내 이름은 스노우 화이트.


승리의 여신, 인류의 희망.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끝까지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설령 바디의 전부가 랩쳐의 것으로 들어차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니 일어서야 한다. 일어서서 싸워야 한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기에.


그렇게 다짐하며 낡은 인식표를 목에 걸었다.


"기다리겠다 했으니…쓰러져선 안되겠지."


나는 읊조리듯 혼잣말을 내뱉으며 랩쳐의 부품을 집어들었다.


언젠가 보았던 꽃밭 위, 막연한 눈으로 방주를 바라보던 전우를 생각하며.


집어든 랩쳐의 부서진 시각센서를 넣기 위해 안구의 렌즈를 꺼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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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존 후일담 이후 몇년 뒤를 상상하며 끄적여봄


잘 썼는지 모르겠지만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