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 본편과는 많이 다른 세계관 입니다. 재미로만 봐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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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에게 받은 치료는 생각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겨우 3일 만에 죽을뻔 했던 치명상이 대부분 나았으니까.


정말 오랜만의 집. 이래저래 부서진 부분이 많지만, 총격전은 일어나지 않은 덕에 당장 수리가 필요한 건 창문 정도려나.


그동안은 전투 중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먹지 못했던 한을 풀겠다는 듯 나와 레드후드는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마음껏 만두와 고기를 먹었다. 


하지만 나도 레드후드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말 수가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더이상 지휘관이 아니게 된 나와, 레드후드가 같이 내 집에 붙어있을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거기에 레드후드에겐 방주, 동료들과 같은 확실한 목표가 있다. 설령 내가 이곳에 계속 머문다 하여도. 레드후드는 계속 외부에서 활동을 이어나가겠지.


아마 레드후드와 함께 밥을 먹고, 즐겁게 웃고 떠들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내일이 가까워질수록 이별이 가까워진다.


당연한 이치였다. 만남이 있다면 곧 이별이 있는 것이고, 이별이 있다면 다시 또 새로운 만남이 있을 것이다.


단지.


좀... 그 이별을 맞이할 준비가, 나에겐 덜 된 모양이지만.


결국 끝엔 서먹서먹해진 채로 해가 뉘엿뉘엿 지는 것을 대짜로 누운채 바라보았다.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붉은 햇빛을 맞던 도중.


레드후드가 붉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황금색 눈동자, 하얀 피부, 오똑한 코와 긴 속눈썹이 이어진 아름다운 얼굴을 볼 때마다 가끔 멍하니 넋을 놓을 때가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얼핏 보았는지. 레드후드는 내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그러고보니, 지휘관이랑 만난지도 벌써 몇년이나 됐네."

"어쩌다보니."


"얼마나 많이 지휘관에게 목숨을 구해졌는지 모르겠어. 첫 만남때도 그 뭐야.... 날, 부둥켜 안고 랩쳐들에게 도망치지 않았다면 결국 죽도 밥도 안됐을테고. 아으, 이거 생각보다 내 입으로 말하니까 좀 쑥쓰럽네. 어쨌든... 날 몇번이나 구해준 건 바뀌지 않아."


"지휘관이니까."


"...내가 생각하기엔, 내 목숨은 전혀 가볍지 않아. 내 안에 있어서 소중한 것이지. 하물며 그게 몇번이고 지켜졌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날 살려준 건. 지휘관. 네 덕분이야."


"...음. 갑자기 왜 그래?"



거기까지 말한 레드후드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하늘 쪽을 가만히 응시하였다.



"원하는 거, 있어? 예를 들면... 계속 기억할 수 있을 만한 거 말이야."


짧은 말 안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이것으로 우리의 짧고도 긴 인연을 정리하자는 것.


깔끔하게.


아마 레드후드는 더 이상 노래를 듣지 말라거나, 다른 것을 내팽겨쳐달라는 내용만 아니라면 어떤 소원을 빌더라도 진심으로 들어주려 할 것이다.



만약 내가 몸을 요구한다고 해도 실실 웃으며 기꺼이 응하겠지. 오히려 그걸 바랄지도 모른다. 이미 볼꼴 못볼꼴 전부 본 사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일이 되면 떠나갈 것이다.


노랫 소리로 시끄러웠던 침실은 고요한 적막만이 남게될 것이고. 총성소리가 들려오던 사격장엔 그 흔적만이 남게될 것이다.


그렇다면... 실현 불가능한 어려운 소원을 요구해야 하나?


내게 그들처럼 총 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고 일부러 이해 못 한 척 안 배우고 질질 시간을 끌면?


아마 레드후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내 옆에 붙어있긴 할 것이다.


...그저, 붙어있기만 할 것이다. 



천천히 시들어가는 레드후드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쩌면 그 황금색 눈동자에 어느샌가부터 나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원망이 깃들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있을 때가, 내 죽는 날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난 그녀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걸까.


어느샌가부터 간질간질 거리던 가슴께의 심장 부근이 이젠 확실하게 두근거린다.


점점 생각이 깊어지고, 해가 저물어간다. 

레드후드는 아무런 재촉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문득, 레드후드의 얼굴 부근에 생긴 흉터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희미하긴 하지만. 여기저기 흔적이 남아있는 전투의 흔적.


나는, 그때 그녀와 정말로 작별인사를 하게 될 뻔 하였을 때에.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


내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은 걸까. 레드후드는 헤드셋을 내려놓고.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레드후드의 미소가 기분탓인지, 조금 더 짙어졌다.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미소였다.



"...정했어?"


"어. 이제 좀 알 것 같네."



"...그럼 내게 바라는 건 뭐야?"


쿵쾅거리는 심장.

간헐적으로 싸늘해졌다가, 뜨거워지길 반복하는 가슴팎.

등골을 찌릿하게 만드는 전율.



"레드후드."



"응?"



"언제, 어느 때나. 내가 레드후드라는 사람의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됐으면 좋겠어."


보통, 여자들은 말을 전할 때에 손을 꼬옥, 잡고 결연한 태도로 말한다면 여자에게 있어 큰 안심감과 확신을 전해줄 수 있다고 들었다.


처음으로 손을 맞잡고 이름을 부른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눈을 마주보며 이런 내용을 말해서 그런 걸까.


기분탓일지는 모르겠으나, 귓볼부터 목덜미까지 붉게 달아오른 레드후드가 곤란하다는 듯 자신의 볼을 긁적이며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지휘관도 알다시피. 나는 앞으로도 계속 외부에서 이곳을 지켜야만 해. 그러니 그런 부탁은...."


"알고 있어. 그래도 상관 없다는 거야."


"...뭐?"


"내가. 너희를 계속 지탱하면 되지."



본래, 논리적으로라면 전혀 맞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니케, 나는 힘 없는 인간.


허나 그 힘없는 인간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경험 속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더 이상, 레드후드가 내 곁에 없다면. 그녀가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눈 앞이 깜깜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순간 확신하였다. 그건 레드후드를 향한 애정이라고.


"그, 그게 지금 무슨 소리 인 지는 알고 하는 거야? 우린 이제 어디 안주하는 법 없이 계속 험하게 떠돌예정이야."


"알고있지."


"이때처럼 계속 고된 생활은 물론이고, 위험한 일을 더 겪을지도 몰라."


"이미 수도없이 겪었어."


"...겨우 되찾은 평온이잖아."


"난 네가 없으면 평온할 수 없어. 레드후드. 네가 곁에 있어야지, 네 노래를 들어야지. 난 비로소 마음이 좀 놓이더라고."


후유증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고.

그저, 레드후드와 곁에 더 있고 싶다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라면 족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아연해진 레드후드는 순간 내 어깨를 잡으며 목소리를 높혔다.


"설령... 어떻게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문제야! 앞으로도 더, 훨씬. 힘든 환경에서 이젠 지휘관이란 신분도 버리고 싸워야 한다는 거라고!"


"그래도, 거기엔 네가 있잖아."


"...그건!"


"난, 대외적인 지휘관 보다도. 레드후드. 너에게 있어서 좋은 지휘관이 되고 싶어. 앞으로 쭉, 동반자와 같은 위치에 있을만한."



레드후드는 내 대답이 잠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대더니 이내 무언가 깨달았는지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이제야 눈치챘나. 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이런 부분에선 이상하게 둔감하다니까.


점점 해가 져가는 와중, 그 붉은 노을 사이에서도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볼을 붉힌 레드후드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언제부터 였어...? 난, 설마 그런... 낌새는 못 느꼈는데."


"처음부터, 너와 처음부터 만났던 순간부터 쭉."


"...앗."


내 즉답에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길 반복하는 레드후드,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고개를 푹 숙이며 내 가슴팎에 몸을 기댈 뿐이었다.


이런 신호를 모를 리 없겠지.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 레드후드의 허리춤에 팔을 둘러 살짝 끌어안았다.



확, 풍겨오는 특유의 달짝지근한 체향. 부드럽게 감겨오는 감촉. 그리고 따뜻한 체온.


언제나 큼지막한 가슴을 쭉, 펴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던 걸 보고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레드후드는 나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올려다 보았다.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거야."


"하, 나이를 먹다보니... 나도 이런 감정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늦바람이 무섭다고 하잖아."


"큭큭, 그거 네가 할 말 맞아?"


그렇게 말하는 레드후드가 덥썩, 내 턱을 잡았다.


그리고선 간질거리는 간격을 순식간에 좁히고. 입술 사이로 니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까치발을 들어, 나 품을 잡아당기는 모습은. 이런 행위가 어설프다는 레드후드의 면모를 전부 드러내고 있었고.


질끈, 눈을 감은 채 애써 달아오른 홍조를 감추는 것도. 그녀가 지금 굉장히 노력중이라는 증거였다.


"프흐... 하하핫, 이런 건... 처음, 해보는데. 지휘관. 복 받은 줄 알아."


이젠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레드후드가 자신의 라텍스 재질의 옷에 달린 벨트들을 느슨하게 만들며 그리 말했다.


그 모습이 매력적이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끓어오르는 추동에 몸을 맡기고 조금 더 강하게 레드후드를 끌어안아 침실로 끌고갔다.



"아하하- 지휘관. 이런 힘도 있었던거야?!"


손 위에서 짓눌리는 큼직한 젖가슴을 느끼며 레드후드의 뒤통수를 잡아당겨 입술을 다시 겹쳤다. 이번엔 더 찐한 딥시크. 


이번에는 혀까지 집어넣으며 푹신한 침대 시트 위에서 해서 그런 걸까. 다급하게 서로의 옷을 벗겨주면서도 엉성한 것이. 서로가 남녀 관계에 대해선 아예 생초짜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감촉 자체가 남달랐기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고, 어째선지 자꾸만 좋은 향기가 나는 살냄새.


"프하..."


레드후드가 입술 사이로 떨어지는 침을 닦아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 처음인데. 괜찮겠어?"


"난 그럼 많이 해본 것 같아?"


"하하하, 그건 그렇네. 만약 다른 애들이랑 했다고 했으면 지금 여기서 머리에 바람구멍 몇개 정도 만들어 줬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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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떡씬은 좀 고려해보고 작성해 볼게요. 니붕이들을 위한 자그마한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