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크라운 왕국의 성을 보면서 나름 역사학적, 군사학적 흥미가 생겨서 이모저모 뜯어서 분석해보려고 써본 글임

내가 아주 전문가는 아니라서 좀 부족할 수도 있고 곳곳에 틀린 점이 있을 수 있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함

그리고 곧 있을 주년 이벤트나 차후 메인 스토리에서 추가적인 설정에 따라 변할 수도 있음을 미리 알림




우선 우리가 지금 현 시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크라운 성의 모습은 대강 이럼. 굉장히 전형적인 중세식 성의 모습인데 대표적으로 높은 성곽과 성문 위에 설치된 발리스타형 방공포(진짜 중세 발리스타 따위를 갖다놓진 않았을테니), 내성(보통 keep이라고 많이 하는 거), 흉벽(성벽 위에 화살 같은 거 막으려고 만든 사람 키만한 엄폐용 벽) 등의 요소가 그 특징들임. 이러한 중세식 성은 당대에 많이 사용된 무기들인 화살부터 시작해서 캐터펄트, 발리스타와 같은 공성병기, 사다리나 밧줄, 공성탑 같은 적병 침투 장비들에 최적화된 대응을 위해 성벽을 높게 짓는 쪽으로 특화되어 있음. 성벽의 높이를 극대화시키고 흉벽 등으로 적군의 화살에 대한 방어책을 잘 구비한다면 냉병기들로는 결코 점령하기 힘든 요새가 완성되는 거임. 아래 사진의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3중 성벽이 중세 성벽의 꽃이라고 봐도 좋음




그런데 15~16세기쯤 근세가 다가오면서 화포가 본격적으로 군사 분야에 사용되기 시작하고 오스만 제국의 우르반 거포와 같은 공성포들이 위의 3중성벽을 아예 구멍을 내버리는 식으로 대응하자 더 이상 기존의 축성술로는 화포를 막을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음. 그래서 나오게 되는 개념이 성형 요새임.




이러한 형태의 성형 요새(별모양 요새)는 과거의 높게 솟은 중세식 성벽과 달리 높이는 낮게 짓는 대신 둔덕과 해자를 이용해 기반을 두텁게 하고 적 보병의 입장에선 과거 성벽의 높이와 비슷한 체감 높이를 만들게 하고자 노력했음. 이렇게 지으면 적이 공성포를 끌고 와서 두들겨 패도 무식하게 두터운 둔덕이 다 버텨줄 뿐더러 안쪽의 성벽은 탄도학적으로 직접 공략이 굉장히 난해하도록 만들어서 공성포가 성벽을 최대한 때리지 못하게 되어버림. 그래서 보병대로 직접 강습을 시도하면 성벽 사이사이에 해자가 있어서 막상 보병이 성벽을 타고 넘기는 힘들게 되어 있고 성벽이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성벽을 먼저 제압하지 않으면 3면에서 화망에 뚜드려맞고 사상자만 늘어나게 되는 구조임. 이런 형태가 현대전에서 계승된 게 월남전에서 국군이 사용했던 중대전술기지랑 미군이 게릴라전에 자주 활용하는 파이어베이스임.




그럼 다시 크라운 성으로 돌아가서 이게 전근대 축성학적으로 좋은 성이냐면 절대 아님. 중세식 성이든 성형 요새든 핵심은 적 보병이 내성(keep)으로 직접 들어와서 성 전체를 점거하는 일을 최대한 막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 성에는 보통 해자를 짓고 성의 출입구는 최대한 엇갈리게 해서 적군의 동선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드는 것임. 그리고 성문은 성벽에서 최대한 깊숙한 부분에 두어야 함. 그래야 아까 성형 요새 부분에서 말했듯이 적이 직접 강습할 때 인근 성벽의 화력지원을 극대화시켜서 적을 더 많이 소모시킬 수 있음. 위에 올린 사진은 중세 십자군 요새인 크라크 데 슈발리에라는 요새인데 아주 복잡한 내부 구조와 깎아지를듯한 언덕 한복판 고지대에 위치해서 성문 외에는 적 침투가 불가능하며 높은 성벽으로 튼튼한 방호력까지 갖춘 형태임.

반면 크라운 성은 취약점인 성문이 가장 적 방향으로 돌출되어 있는 건 둘째치고 해자도 없는 데다 내성까지 일직선 대로로 뚫려 있어서 적이 침투했을 때 동선 낭비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최악의 구조임. 물론 portculis라고 해서 성문 앞에 전초 성문탑을 추가로 두는 중세 성도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해자를 갖춘 성의 보조적 방어수단이지 저렇게 정문을 떡하니 적진 방향으로 내놔도 된다는 얘기가 아님.

저런 형태의 성에 유사한 건 한양도성 같은 수도 성곽인데 그런 성들은 보통 도시를 상징하는 의미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고지대나 산지 대신 수도 입지에 적합한 분지나 평지에 지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방위에 적합하진 않은 경우가 많음.





그래서 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다가 문득 철근 콘크리트 얘기를 듣고 2차대전 시기에 있었던 대공포탑이라는 개념이 떠올랐음. 어차피 랩쳐가 야포는 기본이고 빔 병기까지 갈기는데다 제공권도 있는 마당에 중세 성이나 근세 성형 요새나 똑같이 고정표적인 건 같음. 그러면 차라리 현대전 교리로 접근해보면 저런 대공포탑의 교리를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음.

대공포탑은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에서 주요 도시 방호를 위해 설치했는데 히틀러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곳곳에 내부 주거 기능까지 구현되어 있는 콘크리트 성이 만들어질 수 있었음. 대공포탑은 G타워와 L타워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여기서 성처럼 생긴 탑은 실질적인 교전을 담당하던 G타워임. 이런 대공포탑들은 당시의 화포나 무기들로는 전함의 대구경 함포라도 끌고 오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이었음.

그래서 위의 사진처럼 전쟁 말기에도 주변부가 다 쑥밭이 될때까지도 대공포탑은 말라죽어 가면서도 멀쩡하게 농성하고 있었고 소련군의 항복 요구 끝에 물러나기 전까진 소련군도 절대 저기를 정면돌파할 수가 없었음.

맨 위의 크라운 성도 저런 형태의 대공포가 내성과 성곽 곳곳에 설치돼 있음이 확인됨. 성벽까지 고려한다면 애매할지 몰라도 내성만 놓고 보면 잘 밀폐되어 있는 구조에 높이도 높아서 G타워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어보임. 성벽 쪽 성탑들도 3세대 G타워(위에서 2번째 그림 오른쪽)를 응용한 대공포탑이고 성벽이 이 포탑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느낌이라면 말이 안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함. 미래 시대 랩쳐의 화포로도 안 긁히는 초고도의 철근 콘크리트형 소재를 이용해서 축성했다고 가정하면 "적이 무슨 수를 써서도 파괴할 수 없는 요새 구조물을 알박아서 인근 지역을 화망과 대공망으로 엄호한다"라는 교리가 유효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도 생각됨. 실제로 해당 교리가 잘 적용된 베를린이 2차대전 중에도 상대적으로 공습을 덜 맞은 편이기도 하니 일리 있는 가정임. 크라운의 목적이 자신의 왕국과 백성을 지키는 것이니 그런 사상하고도 케미가 좋음.

즉 중근세의 축성학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보편적으로 봐도 축성학이 완벽히 적용되진 않은 그런 성이지만 현대전 교리에 입각했을 때 대공포탑처럼 운용할 수 있고 성벽의 소재만 신뢰할 수 있다면 의외로 나쁘지 않은 구조물이라고 생각함.


덤으로 성에는 스텔스 기능인 차폐막이 있다고 언급되는데 육안 대신 레이더 등이 탑재되어 있을 개연성이 높은 랩쳐 상대로는 매우 유효한 방침이라고 봄. 쉽게 말해서 평소에는 아예 랩쳐의 시선에서 벗어난 채로 교전을 피하고 어쩌다 랩쳐와의 교전을 허용한다면 대공포탑처럼 중요한 거점을 선점하고 거기서 화력을 퍼붓는 교리에 매우 충실하다고 할 수 있음.


가독성이 나쁘고 내가 이런 글에 익숙치 않아서 부족하지만 이 글 끝까지 읽어줘서 정말 고마움


3줄요약

1. 크라운 성은 중세식 성이지만 "성"의 관점에서만 보면 축성학적으로 문제가 많다.

2. 보통 랩쳐 같은 화기 상대론 낮고 두터운 성형 요새가 훨씬 방어력이 좋지만 안 부서질 자신만 있다면 단일 요새형 구조물인 2차대전 시기의 대공포탑도 방어력이 무지막지하다.

3. 크라운 성을 전근대의 성보다는 2차대전 시기의 대공포탑이라고 생각한다면 의외로 교리에 충실하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