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군사학적으로 크라운 성을 분석한 전편에서 이어지니까 혹시 안 봤다면 전편을 먼저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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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몇몇 니붕이들이 군사적 용도 외의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남겨줬었는데 그 부분도 흥미롭다 싶어서 추가적으로 분석을 한 번 해 봤어. 성이라는 게 군사적인 목적만으로 존재하는 건축물이 아니니만큼 이에 대한 이야기도 꼭 짚고 가는 게 좋은 것 같아서 쓰는 글이니 이번 글도 잘 부탁할게. 이번 글의 내용도 추후 공개되는 스토리 설정에 따라 정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미리 양해 바랄게.


앞서 말했던 대공포탑으로 기능할 여지가 있다는 건 크라운 성을 군사학적으로 분석했을 때 가장 적합한 교리를 수행할 수 있는 쪽이 그런 방향성이라는 이야기였어. 하지만 단순히 대공포탑의 기능만을 한다기에는 크라운 성이 딱히 담백하게 군사적인 기능만을 담고 있는 그런 성은 절대 아니야. 군사 목적의 축성술에 어긋나는 부분도 많고 여러 하자들도 존재한다는 단점도 여전해. 그러면 크라운 성은 어째서 그런 형태로 존재해야 했을까? 또한 성들은 어떤 목적으로 주로 지어질까? 이거에 대해서 알아보자.





우선 성이 제일 많이 하는 기능은 바로 전편에서 진물나게도 말했던 요새 기능이야. 1번째는 가장 대표적인 중세 요새 크라크 데 슈발리에, 2번째는 화기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근세 성형 요새의 대표 주자인 Bourtange 성, 3번째는 삼국지에서도 나온 적 있는 검각관이야. 이렇게 산지의 고지대나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전략적인 길목 등지에 축성해서 적군의 주력을 상대로 엄청난 피해를 강요하고 어떻게든 큰 출혈 끝에 점령해서 지나가도록 강요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돼. 보기만 해도 별로 뚫고 들어가고 싶지 않아 보이는 저런 성들은 전편에서 많이 다뤘으니 여기까지만 다룰게.






그리고 성들은 단순히 방어에 극단적으로 치중한 요새 대신 적당히 자체적인 방어 기능만을 갖추는 대신 도시의 대략적인 경계를 정하고 대외적으로 과시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행정적인 도시성(city wall, bourg) 기능을 수행하기도 해. 1번째는 전편에서도 짤막하게 얘기했던 적이 있는 콘스탄티노플의 3중성벽(테오도시우스 성벽)인데 사실 이 성벽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전체적으로 둘러싸면서 도시를 보호하는 도시성의 내륙 방면을 담당하는 가장 탄탄한 성벽이야. 콘스탄티노플은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둘러쌓여 있는 반도 지형의 도시라서 3면은 바다로 잘 보호받고 있지만 이 3중성벽이 맡고 있는 내륙 부분만큼은 육지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쓸 필요가 있는 곳이었어. 그래서 이쪽 방면에 해자벽, 내성벽, 외성벽의 3중 구조로 이뤄진 정신나간 규모의 성벽을 지어서 제국의 심장부를 보호했고 이 성벽을 직접 무너뜨릴 수 있게 된 건 오스만 제국이 우르반 거포라는 공성포를 들고 오게 되면서부터였으니 냉병기만으로는 뚫을 수 없는 곳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2번째 성은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성의 모형이야. 전편에서 말했던 성벽 깊은 곳에 위치한 성문, 최대한 엇갈리게 배치해서 동선을 꼬는 출입구 배치 등과는 거리가 멀지만 중국 통일 왕조의 도성답게 무식한 성벽 높이를 자랑하고 해자도 갖춰져 있고 하는 모습을 보이지. 장안성은 단순 요충지 방어 기능만 수행하는 요새가 아니고 전 중국의 물자가 모두 모이는 상업의 메카와도 같은 곳이다보니 주작대로라고 해서 사진에도 보이듯이 남북으로 10차선 고속도로 같은 넓은 대로가 깔려있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이 주작대로를 중심으로 장안성은 현대의 계획도시들처럼 바둑판 구조의 촘촘하고 깔끔한 도로망이 잘 구성되어 있고 이런 구조는 발해 상경성, 일본의 헤이안 성 등에도 잘 반영되어 있기도 해. 사이즈만 봐도 짐작가겠지만 저런 평지의 거대한 성을 지키려면은 그만큼 엄청난 수비 병력을 요구하는데다 방자의 입장에선 공자와 달리 성벽의 모든 부분을 신경써야 하는만큼 막상 생각보다 좋은 방호력을 보여주지는 못해. 대표적으로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장안을 지키는 요새 동관이 뚫리자마자 당 현종이 장안을 내다버리고 촉 땅으로 도망간 것이 있는데 이처럼 저런 형태의 성은 대부분 직접 그 자리에서 지키기는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아.

3번째 사진은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지키던 한양도성이야. 장안성처럼 네모반듯하진 않지만 숭례문(남대문)부터 경복궁 앞의 육조거리까지 주작대로처럼 나름 반듯하게 잘 닦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나름 북한산을 등지고 한강을 앞에 끼고 있어서 고지대와 큰 강의 보호를 나름 받는 배산임수 지형에 놓여있는 성이야. 사실 이 성도 장안성의 절반 정도 둘레는 할 정도로 넓고 숭례문, 흥인지문 방면이 완전 개방된 평지라서 방어에 불리했고 그래서 종종 변란이 일어나면 왕들이 지키기보단 포기를 많이 선택했던 곳이고 그만큼 군사적인 기능은 잘 수행하지 못 했어. 하지만 이 성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도시성, 특히 국가의 수도인 도성에는 종종 해당 국가의 통치 이념이나 메시지가 반영되는 모습이 많이 보이기 때문이야. 한양도성은 이 도시를 설계했던 삼봉 정도전이 내세웠던 성리학과 유교 사상이 곳곳에 매우 잘 드러나 있어. 한양의 사대문과 보신각은 유교 덕목인 인의예지신이 들어가 있고 우측(동쪽)에 종묘, 좌측(서쪽)에 사직을 두고 있어. 이렇게 한양을 에워싸는 성벽의 존재는 인의로 도시를 다스리겠다는 왕권을 상징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실용적인 의미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는 성이야.

4번째 사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돼 있는 수원 화성이야. 화포가 발달한 시대에 지어졌던 성이고 성의 설계자인 다산 정약용이 청나라 등지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서 만들어 축성했기 때문에 과거 조선의 성들보다 많이 발전해서 군사적으로 좀 더 실용성을 갖춘 성이 지어지게 되었어. 모든 성문에 옹성(반달 모양으로 성문을 감싸는 작은 성벽)이 갖춰져 있고 공심돈과 성 내에 갖춰진 포루 등 다양한 군사적인 실험이 많이 가미된 모습이야. 비록 화성도 근본적으로는 도시성이라서 요새 역할의 성에는 비할 바가 되지는 못했지만 반대로 그런만큼 화성에도 정조 나름의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어. 정조는 화성을 지어서 경기 남부에서 한양을 지키는 주요 거점 도시로 수원을 키우는 한편 정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신도시의 모습을 최대한 수원에 반영하고 싶어했어. 여기에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릉원을 이곳에 지어서 강력한 정치적인 수를 두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모습도 보여. 이처럼 도시성은 단순 도시를 둘러싸서 도시와 촌락을 구분하는 역할을 넘어 종종 타인에게 강력한 메시지나 심리적인 효과를 제공하기 위해 지어지는 측면도 존재해.


크라운 성으로 돌아가보면 크라운의 성은 마치 동화에 나올 법한 굉장히 아름다운 중세 성의 모습이야. 비록 현대를 넘어 미래의 화기를 사용하는 랩쳐를 상대로 아주 실용적인 디자인은 아니겠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자. 랩쳐가 점령한 지상 한복판에 이렇게 심미적으로 아름답고 거대하며 보기에 든든해 보이는 성이 우뚝 솟아있는 걸 보면 지상을 떠돌던 니케들이나 왕국의 백성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과 희망의 감정을 불어넣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크라운은 자신의 이상향인 왕국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크라운의 올바른 마음씨와 포부가 성의 아름다운 외향에 잘 반영된 게 아닐까 싶어.




위 2개의 사진은 모두 독일 바이에른의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야. 이 성은 군사적인 기능도, 행정적인 도시 기능도 수행하지 않는 순수 낭만과 예술을 위해 만들어진 성이지만 당시에는 바이에른의 왕에게 예술적인 만족감을, 오늘날에는 독일의 주요한 관광지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산골 오지에 야포가 발달해서 성형 요새조차 도태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중세풍의 시대착오적인 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기능적인 목적을 배제하고 예술로서 바라본다면 그 가치가 충분한 걸작품이 아닐까? 비록 크라운의 성이 노이슈반슈타인 성처럼 예술만을 고려한 성일 리는 없겠지만 이처럼 동화같고 아름다운 성은 그 외양만으로도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않을까?



이 사진은 근세 프랑스 루아르 강변에 위치한 샹보르 성인데 별장의 기능에 가까운 주거용 성이라고 볼 수 있어. 이런 형태의 주거 목적을 강하게 띠는 성이 나중에 발전하게 되는 게 베르사유 궁전, 쇤브룬 궁전, 버킹엄 궁과 같은 궁전들이야. 크라운의 성은 사실 아까 말했던 노이슈반슈타인 성보다는 위의 샹보르 성같이 위정자 크라운이 기거하고 통치하는 주거용 궁전의 역할도 수행한다고 볼 수 있어. 이러한 궁전은 왕의 위엄을 그 무엇보다도 직관적으로 드러내면서 더욱이 그 나라의 격을 드높이는 역할도 수행했어. 일례로 다른 나라의 왕실도 그 유명한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어떻게든 규모를 줄여서라도 모방해 각자 궁전을 만들었다는 일화만 봐도 궁전과 국격은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보이기도 했어. 크라운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 같은 성은 지상의 백성들과 다른 니케들에게 위엄과 희망, 편안함, 안정감, 강력한 힘 등을 과시하는 데 있어서도 좋은 역할을 하는 성이라고 생각해.


아직 설정이 자세히 풀리지는 않은만큼 어떤 목적이 주가 되고 어떤 목적들이 겸사겸사 고려됐는지는 자세히 알 길은 없어. 그래도 개인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는 점은 군사적으로는 현대전의 대공포탑 교리에 가깝게 운용될 수 있는 정도의 실용성은 갖추고 있고, 그 외에도 크라운이 왕으로서 다양한 심리적인 메시지를 백성들과 다른 지상의 니케들에게 어필하는 비전투적인 용도 또한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 이런 점에서 나는 이번 니케의 크라운 성이 정말 매력적이고 멋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니붕이들도 성의 매력을 같이 즐기면서 내일 나올 라스트 킹덤을 같이 재밌게 즐겨보자고.


3줄 요약

1. 성은 크게 군사 기능, 행정 기능, 주거 및 심미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크라운 성은 3가지 모두 어느 정도 드러난다.

2. 수도의 도시성에는 통치자의 이상과 이념 등이 종종 반영되곤 하는데 크라운 성도 크라운의 이상이 나름 반영된 듯 하다.

3. 크라운 성의 아름다운 외양과 궁전으로써의 기능은 왕의 위엄과 각종 긍정적인 심리효과들을 제공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