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여신 니케라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어디서 온 것인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메카닉 군단 랩처가 인류를 멸망시키려 들었고 인류는 랩처로부터 인류를 수호하기 위해서 맞서 싸우지만 결국 패배를 하여 지하로 피신하며 지상탈환을 노리는 암울한 세계관이다.

그런 세계관에서 활동하는 이쁜 캐릭터들은 엉뚱맞은 면과 진지함에서 나오는 매력포인트 덕분에 나는 게임에 금방 빠져들게 되었다.


근데 시발 내가 이 세계관에 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잘못된게 확실하였다.


ㅡㅡㅡ


느닷없지만 승리의 여신 니케의 세계에 떨어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까지 랩처나 방주소속의 니케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랩처들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것은 행운이고, 니케들의 눈에 띄이지 못했다는 것은 불행이었다. 지상은 인간의 편이 아니었고, 위험천만한게 넘쳐났으니까.

멸망해버린 세계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너무나 고난했다.


첫번째, 불을 피울 수 없었다.

밤에 불을 피웠다간 랩처들에게 들켜버릴 것이다. 게임에서는 야영을 할 때 데코이라는 것을 뿌려서 랩처의 접근을 막느나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지만 나에게 그런게 없었다. 밤에 춥다고 불을 피우면은 랩처들에게 금방 들켜버리고 내 몸은 랩처들의 총알에 인간도넛이 되어버릴 것이다.

얼어뒤지거나 총 맞고 뒤지거나 매한가지지만.


두번째, 식량이 문제였다.

불을 피울 수 없다는 것 다음의 문제였다. 인간은 무언가를 익혀먹음으로 진화해가서 그런건지ㅡ날 것을 먹는건 부담이 너무 컸다. 첫번째 수칙을 생각해서 음식을 익힐수도, 끓일수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 좆같다란 생각만 자꾸 들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지금 내가 떨어진 시간대가 인류가 지하로 피난간 시간대라 그런것인지 지상의 음식들은 모두 썩어 있었다. 심지어 통조림 조차도 먹을 수 있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난 살아남기 위해서 비위를 버려야만 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애벌레 유충을 발견하는 날에는 포식했다고 생각할 만큼 배를 곪고 식량난을 겪으면서 꾸역꾸역 배를 채웠다.


세번쨰, 약이 없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먹고, 상처가 나면은 밴드를 붙이는 처방은 당연히 할 수 없었다. 랩처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조심히 움직이기도 하고 쉬지 않고 걸어다니면서 거리를 벌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특히 밤에 불을 피우고 못자다보니까 몸에 오한이 좀 많이 났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 것 같은데. 눈 앞이 핑핑 돌아다니는 것만 같고 이마도 점점 불덩이처럼 열이 난다.

이럴 땐 감기약을 먹고 이불을 덮은 뒤에 푹 자면은 말끔히 낫건만... 진보된 문명에 적응해버린 나로선, 멸망한 문명에 살아남기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게 열악하였다.


이쯤되면 이딴 곳에서 일주일이나 생존하고 있는 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생명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낸 셈이다.

그런데 이제 얼마 못가서 죽을 것 같지만 말이다.


"후우... 후우..."


내가 있는 곳은 폐건물이었다. 깨진 유리들과 덩쿨 식물이 벽면을 타고 자라난 폐허 오브 폐허지만 몸을 숨기는데 안성맞춤이었다. 죽을 것 같은 몸기운을 억지로 다잡으며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 랩처가 있다면은 얼른 이곳에서 자리를 피하고, 없다면은 오늘 하루 이곳에서 불을 피우지 않고 야영을 보낼 셈이었다. 이러다가 매일 밤마다 저체온증으로 뒈져버리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겹겹이 덮을 만한 의류들은 싸그리 모아 나름대로의 방한대책을 세워놨다.


한번 오른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게 문제였지만. 이미 몇 번이고 실감했던 것이지만 이런 멸망한 세계에 떨어져버린 것에 울분과 억울함이 솟구칠것만 같았다.


"진짜 누가 날 여기로 떨어뜨려 놓은거야..."


대충 치운 자리에 주저누웠다. 어떤 녀석이 날 이곳으로 보내버렸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 날 놀리는 것인지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었기에 더더욱 외로움이 느껴졌다. 고독함에 죽어버리는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건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라도, 계획을 짜야했다.

주변에 랩처가 없다는 운 좋은 상황이 아니면 계획을 짤 수 있는 여유는 없을테니까.


Q.내 우선순위는 무엇이지?

A.두 말 할것도 없다.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서 진상을 파헤치는 것이다.

Q.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지?

A.랩처들을 피한다. 그리고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한다.

Q.그럼 랩처로부터 안전한 곳이 있는가?

A.분명히 있다. 인류가 만든 방주와 인헤르트인지 인카운터인지 모를 필그림들이 세운 에덴과 크라운과 차임이 있는 성, 위치는 모르겠지만 북쪽지대에서 구출활동을 하고 있는 언리티미드 스쿼드의 기지 등등.

Q.그럼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가?

A.모르겠다.


불행하게도, 나는 여기서 대답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방주와 이어진 엘레베이터를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

에덴은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애초에 에덴은 투명화 기술이 있는 건물이라 초대받는게 아니면 찾아갈수도 없잖아.

그럼 필그림-바이스리터 소속인 크라운과 차임이 있는 성? 거기를 찾아가는 것도 모른다. 위치를 모르니까.

그럼 런리티미드 스쿼드가 있는 북쪽기지?

거기가면은 진짜 얼어죽는다. 내 옷 꼬라지를 봐라. 갈 수 없다.

하나부터 열가지가 답답해서 속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한 곳에 박혀서 숨어있는게 아니라, 랩처들에게 들키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돌아다니는 이유는 임무를 나온 방주의 니케들과 만날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고 생각해서다.

불운하게도 일주일 째 니케는 고사하고 발자국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안되겠다. 이만 생각하고 자야겠어.'


뜨거운 열을 내는 머리가 핑핑 거리면서 더 이상 생각을 하지 못하게 피로감을 늘였다.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지쳐 누웠다. 매트리스가 없어서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눕자 목과 등이 불편했다. 겹겹이 입었음에도 한기가 느껴져서 자연스럽게 새우등 자세가 되어 몸을 움츠렸다. 조심히 나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였다.


...


...


...


'위이이잉.'


'위이이잉...'


'....'


[...사람? 사람인건가? 세상에나! 설마 지상에 돌아다니는 친구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 지상은 얼마나 위험한데! 안되겠어. 이 친구를 위해서 도와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