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윙ㅡ위이잉'


아, 시끄러워. 도대체 무슨 소리길래 윙윙 거리는거야.

어디 모기라도 내 피를 노리는건가?

아스팔트에 누워자는거라 아파 죽겠는데 별 갖잖은 것들이 날 귀찮게 만들고 있어 진짜.

나는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거리면서 윙윙 소리를 내는 모기를 잡기 위해 눈을 떴다.



[윙, 위이잉 윙윙]


"...."


모기소리를 내는 진원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단단한 철로 이뤄진 외계에서 온 침입자인 랩처가 있었다.

엄마야,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좆됐ㄷ


[안녕, 친구! 반가워!]


랩처에게서 인간의 말이 들리자 가출하였던 정신줄이 내 머릿속으로 복귀했다. 놀라서 멈춰버린 것 같은 심장이 있는 가슴을 부여잡고 심호흡하며 진정하기 시작했다. 윙, 위잉 거리는 기계음을 내고 그럴듯한 외견 때문에 속아넘어갔지만 자세히 보면은 이음매라던가 엉성한 부분이 많이 보였다. 총구를 대체하고 있는 파이프라던가, 빗자루라던가.


[나는 지상에서 일하는 동물 애호가! 랩칠리언이라고 해!]


자신을 랩칠리언이라고 소개한 녀석이었다. 내게 반갑게 인사했을 때 부터 정체를 반쯤 알아차린 상태였다. 설마 가장 먼저 얘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어찌됐건 당장 내 목숨이 거둬지진 않을 것 같았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신에게 감사하였다.


"...그래, 랩칠리언. 그러니까 그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거 맞지?"


[오, 물론이지 친구! 이건 내가 만든 랩처 수트야! 랩처들의 외형을 본 따 만든 것이지! 잘은 세어보지 못했지만 아마 1,2년은 여기서 지냈을걸?]


1,2년 동안 저 안에 지내고 있었다고? 그럼 씻는거라던가 식사는 어떻게 해결해온거지? 일주일동안 지옥같은 생존을 거듭해오다보니까 식사나 용변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궁금증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 궁금증은 접어두자. 이 녀석이 랩칠리언이 맞다면 방주에 연락이 닿을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우선 랩칠리언에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고 있을 때 녀석이 먼저 말을 걸었다.


[정말 놀라워! 인간으로서 지상에 최장시간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을 만나는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런 의미에서 하나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


"...말해봐."


[혹시 너는 랩처를 좋아하니?]


랩처를 좋아하냐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랩처를 좋아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나? 리버렐리오나 니힐리스타처럼 예쁜 애들도 넓게 보면은 랩처에 소속된 친구들이니까 말이야. 나는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담아서 랩칠리언에게 답변하기로 결정했다.


"좋아하는 랩처가 있고, 싫어하는 랩처가 있어."


[흐음, 그래? 그렇게 생각하다니 다행이야! 이곳에서 너란 친구를 만나다니. 좋아, 이 만남을 기념해서 네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줄게!]


"특별한 경험?"


내 물음에 랩칠리언은 기뻐하는 것인지 윙윙 소리를 냈다.

굳이 랩처처럼 행동할 필요 없을텐데.


[맞아, 방주에서는 경험할 수 없을 아주 특별한 경험이지!]


아, 듣다보니 뭘 권하려는 건지 알 것 같다. 랩처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거겠지.

음... 그러니까, 게임 시점으로 1지역? 2지역 쯤 되려나?

어쩌면 아직 지휘관과 접촉하지 않은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랩칠리언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랩칠리언이랑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다보니까 간만에 여유로움을 느꼈다. 이렇게 평범하게 길거리를 걷는건 며칠만이지? 이 세계관에선 지상을 걸어다닐 때도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됐는데.

이음새가 어색한 랩처, 랩칠리언은 꽤 놀라워하며 빨간색 코어를 깜빡였다.


[세상에! 지상에 표류한지 일주일이라고?! 그동안 용캐 죽지 않았구나!]


"후, 정말 힘들었어. 용변을 보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애벌레를 먹는 경험을 살면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뭐야."


[하하하, 그 마음은 이해해. 마치 몇 년 전의 나를 보는 기분이야. 걱정하지마! 내가 도와줄게!]


"정말? 어떻게 도와줄건데?"


혹시 랩처수트를 하나 더 만들어서 쓰게 해준다는거면 내 쪽에서 사양이다. 난 침대에 눕고 싶다. 푹신한 양털 이불을 덮고 잠자고 싶다. 고달픈 지상의 삶은 원래 세계의 문명을 너무 그립게 만들었다. 방주로 가면은 그 유사 문명을 누릴 수 있겠지. 내 장담컨데 방주에 들어가면은 크게 웃으리라. 지상 좆밥이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음, 마음만 같아선 내가 쓰고 있는 랩처수트를 주고 싶지만...]


"아냐 괜찮아. 넌 랩처 애호가잖아. 랩처에게 접근하려면 그 수트는 필수지."


[넌 정말 배려심이 넘치는 친구구나...!!]


-위잉! 위잉!-


저걸 쓰는게 싫어서 거절했는 것 뿐인데 기뻐하는 모습이란...


"그래서 어떤 방법을 생각한거야?"


[간단해! 며칠 전에 내가 방주에서 나온 니케들과 지휘관들을 본 적이 있어! 그들을 찾으면 방주에 닿을 수 있을거야!]


랩칠리언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반색하였다. 그동안의 불운들이 쌓이고 쌓인 보상을 이렇게 받는 것일까?

그 니케들과 지휘관이 게임에 나오는 주인공들인게 아닐까? 나는 흥분감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일단 최소 방주로 들어갈 수 있는건 확정이다.


"다행이다... 이대로 지상에 떠돌다가 죽어버리는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하하하, 마음 고생이 아주 심했겠구나~]


그럼, 아주 심했고 말고.

하지만 이제 이 고생도 다 끝이니까.


지상의 거리를 걸어가는 내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방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쁜 마음을 좀처럼 참을 수 없었다. 지난 일주일동안의 고생도 오늘로서 다 끝이었다. 랩칠리언이 보여주는 광경만 후딱 보고 난 뒤에 그의 안내를 받아 주인공의 스쿼드일지, 아니면 다른 스쿼드일지 모를 그들을 만나서 방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ㅡㅡㅡ



랩칠리언은 내게 보여주고 싶은 광경이 뭔지 이해하였다. 녀석은 곧 어떤 랩처를 접촉하더니 '위윙, 위이잉~ 잉윙' 같은 알 수 없는 기계음을 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칭 동물애호가라고 하더니 기계음으로 대화를 나누는건 애호가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나? 혹시 저게 모스부호 같은게 아닐까?


랩칠리언은 랜드크랩형 랩처과 대화를 끝맞치고 난 뒤에 내 앞으로 그것을 데려왔다.


...아니 시발 잠깐만.

죽는다!! 죽고 말거야! 지금 당장 도망쳐야ㅡ!!


[괜찮아 친구! 이 녀석은 널 해치지 않을거야! 진정해!]


랩칠리언의 소리에 도망치려고 하던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실제로 랜드크랩 랩처는 위험스러운 특유의 소리를 내지 않고 얌전하였다. 

...뭐랄까, 이 광경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게임에서 수천번은 파괴했을 잡몹 랩처가 내 눈앞에서 경계심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니.

그래도 죽을 위기를 몇번 겪었던 나로서는 심장이 엄청 뛰며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 알겠어 친구. 네 말대로 일단 안전하다고 생각할게."


[휴, 다행이야. 혹시 네가 소리를 지를까봐 노심초사했어.]


글쎄, 소리를 안치는게 아니라 못치는게 아닐까? 게임 원작에선 카운터스 니케들이 있었으니까 랩처들에게 대적할 수 있었겠지. 이 녀석이 지금 흥분해버리면 날 지켜줄 니케들이 없어.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한다.


"...친구를 믿으니까 말야."


[...! 넌 정말...!]


일단 살아남으려면 뭐든 안믿겠니. 다행이도 랩처는 랩칠리언과 원만한 합의(?)를 잘 맺은 것인지 날 공격하지 않았다. 나는 랩칠리언의 조언을 따라서 천천히 랜드크랩형 랩처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랩칠리언의 위장과 비교하면 굉장히 깔끔한 이음세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차가운 온도가 느껴진다. 딱딱한 외장을 따라 몇번 쓰다듬는 용기를 쥐어짜낸 뒤에 다시 뒷걸음을 하여 떨어졌다.


...이제 됐지?

살려줘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