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의 기억은 나에게 있어서 '트라우마'와 같았다.

 


 사방에서 튀는 총탄


 땅을 뒤흔드는 충격파.


 그리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명으로 인한 다수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상황.


 귀에선 오로지 삐------- 거리는 이질적이면서 기분나쁜 소리만 들려왔다.


 눈 앞에서 '인간을 지키는 기계인간(니케)'들이 뭐라고 말했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러한 그녀들의 거친 손길에도 격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왜냐면-----



그것들(랩쳐)들은 나와 그녀들을 죽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튀는----혈액은 아니지만 그녀들의 인식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액체 촉매'는 내 얼굴과 상반신을 적셨고.


 기이한 기동음을 내며 나에게 총구를 겨누는 그것(랩쳐)를 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윽고-------불길한 불빛을 내며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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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전신에서 느껴지는 뻐근함과 저릿함에 기분나쁜 감각을 빨리 떨쳐내려고 했다. 


 흙내음이 가득한, 투박하면서도 튼튼하게 지어진 통나무집은 마치 견고한 기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안정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그러한 감상도 잠시----전신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는 최악의 기분을 내달리고 있었다.


 "8년만이네.....조금은 적응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모든게 그저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는 것에 한편으로는 안심과 다행이라는 마음과 함께----'그 날' 있었던 끔찍한 사건은 지금까지의 나를 괴롭히고 나약하게 만들었다.


 덜 깨버린 잠에 취해서 그런걸까? 멍을 때리고 있는 와중에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어라? 벌써 일어나 있었는가?"


 "------또 술마신건가요?"


 "후후후후....미안하네. 오랜만에 보는 달빛에 그만 분위기에 취해서-----"


 "그 말을 벌써 백번넘게 들었습니다만? 에휴....."


 "너무 그렇게 팍팍하게 굴지 말게나. 자네도 살다보면 '술'을 마시면서 '상념'에 젖는 일이 많아질걸세"

 

 


 달빛에 어울리는 백색과 보랏빛의 조화.

 

 큰 삿갓을 머리에 쓴 상태로 한손에는 술잔을 기울이는 여성이 있었다.


 마치 건들면 툭 하고 부서질 것 같은 그 분위기는 누구라도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아름답게 보이겠지.



 하지만------'그녀'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 자루의 날카로운----삼라만상을 베어 버리는 검.



 "어떤가? 자네도 한잔 기울이겠는가?"


 "----주시면 감사하죠. 저도 잠이 막 깬 상태인지라"


 "흐응~? 그래? 어인일로 자네가 술을 거절하지 않다니, 조금은 놀랬네"


 "------옛날 꿈을 꿔서 말이죠. 기분이 몹시 좋지가 않네요"


 섬섬옥수 라고 어울리는 그녀의 손이 나에게 술잔을 넘겼다.


 그리고 하얗고 매끄러운 술병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자네가 말한 '오미자 술'이 꽤 내 입에 맞아서 말일세. 자네 허락없이 개봉한 것에 너무 화내지 말게나"


 "어차피 담궈놓은 것도 많아서 몇병 정도는 터도 돼요."



 새빨갛게----시큼하면서도 달달한 향기가 퍼지는 '동백꽃'과 같은 붉은 색 술이였다.



 입에서 퍼지는 오묘한 감칠맛과 신맛 그리고 끝을 장식하는 단맛과 함께 목으로 넘어가는 화끈함은 남아있던 잠 기운을 날려보내기에 충분한 자극이 되었다.


 그 모습에 살며시 웃는 '그녀'는 말 없이 나에게 병을 건내주었고, 이윽고 병을 받들어 그녀의 잔에도 똑같이 따라주었다.


 서로가 잔을 부딪치며 말 없이 술을 들이키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자네는 잘못이 없네. 그건 내가 장담함세."


 "......"


 "어린 것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에 놀랐지만. 무엇보다 그 순간에도 '낭자들'에게 슬픔을 보였다는 것에----그녀들도 편히 눈을 감았을 걸세"


 "......"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게나. 그리고-----너무 '그들'을 미워하지 말고------"


 그녀의 말을 끊은 것은 내가 잔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잠시 입을 멈춘 그녀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고, 나 역시 그녀의 '노랗게 바래버린 다홍색 눈동자'를 바라봤다.



 

 "저 같은 꼬맹이 하나 살린다고 처참하게 죽어나갔어요."


 "눈 앞에서 새빨간 피와 같은 촉매 범벅이 됐을 때. 그녀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들이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방주라는 이름의 새장 속에서 나오고 싶어하던 철 없는 꼬맹이가. 분수를 모르고 감사를 모르던 아비를 따라 나왔을 땐. 이미 예정된 결말을 맞이해야 했었어요"


 "아비가 죽고, 그녀들이 죽었습니다. 혼자 살아남았을 때------'그 유적'에서 흘러나온 '저주' 때문에-----전 그들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몸이 되버렸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뒤로 한채,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 말했다.




















 "인류를 위해 희생한 당신들에게-----그녀들에게-----저는 방주를 반드시 부숴버릴 겁니다. 그것만큼 변하지 않아요."




 오두막에 보관되어 있는 '검'을 들어올리며 허리에 찼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 말했다.




 "위대한 승리의 여신----'갓데스 스쿼드'에게 명예와 영광을------"



 



불길한 다홍빛의 검이 불꽃처럼 일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