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이 소설은 니케 메인스토리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고, 앞으로도 포함 할 예정임#

##주의 : 이 소설은 오리지널 주인공이 등장하며, 오리지널 캐릭터도 등장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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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세계에 들어가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 해 본적은 있을까.

 혹은, 망상 해 본적이 있을까.

 있다고 한다면 그건 어떤 게임이었는가.

 콘솔 게임이라면 '몬○터 헌터'라던가 '파이○ 판타지'같은,

 모바일 게임이라면 '라스트오○진'이나 '○신'등등의..

 그러한, '게임 세계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망상은 게이머들의, 아니 어쩌면 남성들의 지극히 당연한 욕구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한때는 그런 욕구에 빠져 살았었고,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남들보다 더 심취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건 결국엔 한때의, 정말 한순간의 쾌락을 위한 망상에 불과하고, 그런 망상을 고집하려 한다면 그런걸 그야말로 망집(妄執)이라 불러야 하겠지.

 그러니 그런 망상에 남들보다 심하게 빠져있던 사람으로서,

 망집(妄執)에 빠져있던 사람으로서,

 그러한 생각들은 생각만큼은 단순한게 아니라는걸 말하고싶다.

 망상만큼은 간단하지 않으리란걸 충고하고싶다.

 예를들면 일견 화려하게 보이는 RPG게임의 세계도 막상 현실이 되면 상당히 절망적이다.

 몇걸음만 걸으면 고블린이나 오크가 당신을 죽이려 들고, 도적과 악덕귀족이 활보하며, 끝에 가서는 마왕이 군림하는.

 그런 지옥도 같은 세계에 당신은 던져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강해지면 되는게 아니냐고?

 그것도 완전히 틀린말은 아니지만 게임이 그대로 현실이 된다면 현실적인 방법은 아니다.

 현실이 됐는데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현실이란건 말 그대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현실인 것이고, 예외는 항상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알 수 없기에 예외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물며 몬스터가 활보하는 예외 투성이의 현실에서 RPG의 교과서 처럼 성실하게 레벨업으로 강해지는건 그거야 말로 비현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방금전에 몇걸음만 걸으면 고블린이나 오크가 당신을 죽이려 든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결국엔 희망적 관측에 불과하다.

 한걸음도 걷지 않아도 고블린이나 오크가 당신을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죽음이 저쪽에서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랜덤인카운터가 아니라 웰컴인카운터 같은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나는게 게임 속 세계라는 곳이다.

 물론 현실이라고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다는건 알고있다.

 고블린이나 오크는 없지만 연쇄살인마나 폭행범은 얼마든지 있고,

 도적같은 사기꾼이나 악덕귀족같은 정치인이 여기저기에 있다.

 그렇게 생각 해 보면, 결국 현실보다는 꿈이 있는 게임 세계 쪽이 좋은걸지도 모르겠다.

 죽을 확률을 따져보면 게임 세계 쪽이 높을지도 모르지만.

 다만 그 부분은 결국 리스크&리턴이라고 할까,

 좋은점이 있으면 나쁜점도 있다는 거겠지.

 결국 내가 하고싶은 말은 '게임 세계라고 현실보다 만만하지는 않다'라는 것이지만,

 이런 단순한 말을 빙빙 돌려서, 이곳저곳에 들른 끝에 말 할 수 밖에 없는게 나의 나쁜 습관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현실도피를 하고있는 걸지도 모른다.

 현 상황이라는게 뭐였더라...

 나라는건 대체 누구더라...

 ...그러고 보니 이런 '게임 세계' 이야기를 게이머 친구들과 이야기 할 때에 항상 뒤따르는 주제가 있었다.

 뒤따른다고 할까.

 한세트로 묶여있다고 할까.

 그 주제는 '그럼 반대로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은 게임 세계는 어디인가'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훌륭한 게이머 제군들은 바로 몇가지 게임들이 떠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크○울'이라던가...'바이○하자드'라던가...

 나 또한 그럭저럭 게이머 나부랭이 이기에 금방 떠오르는 게임은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승리의 여신:NIKKE'라는 게임이다.

 '승리의 여신:NIKKE'는 말하자면 수집형 모바일 게임으로,

 여러가지 특수한 부분도 있지만 결국에는 자주 있을법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미소녀 수집형 게임이다.

 여기서 이 니케라는 게임을 실제로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은 의문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미소녀 수집형 게임'이란건 결국 미소녀들을 잔뜩 모아서 하렘 같은걸 만드는, 남자의 꿈을 실현 시켜 주는 게임이 아닌가? 그게 어째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게임이지?'라고.

 물론 '남자의 꿈'은 있다.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자의 현실' 또한 공존하는 것이 니케의 세계이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건 '미소녀 수집형'이 아니라 '디스토피아 세계관' 쪽이다.

 니케의 세계관은 그림으로 그린듯한 디스토피아로, 게임이 시작된 시점에서 인류는 약 100년전에 나타난 수수께끼의 기계 생명체 '랩쳐'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지하로 도망쳐서, 그곳에 '방주'라는 새로운 인류의 터전을 세우고, 끊임없이 반격의 기회를 노리며 인류가 사라진 지상을 점거한 랩쳐와의 싸움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 랩쳐와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승리의 여신이라 불리는 '니케'라는 이름의 휴머노이드 병기지만, 일단 뇌 만큼은 살아있는 인간의 뇌를 사용하기에 니케를 휴머노이드라고 불러도 괜찮은지 어떤지는 SF의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대답이 곤란한 부분이다.

 어찌됐건 그 '니케'야말로 유저들이 직접 수집하고 지휘하게 되는 '미소녀'들이다.

 로봇의 몸이라곤 하지만 대부분의 기능이 인간과 다를 바 없게, 집요할 정도로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어져 있기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사회에 섞여있는 니케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그런 방주의 지휘관이 되어서 니케들과 함께 생활을...하는 것 까지는 좋다.

 문제는 이 세계관에서 지휘관의 위치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니케들을 지휘해서 싸우기에 니케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입장인건 맞지만,

 니케들이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르냐고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나 있는 모양이고,

 애초에 지휘관은 작전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급료조차 받지 못한다.

 전투력 같은건 있지도 않은데 니케들과 함께 랩쳐가 활보하는 지상에 올려보내지고,

 생존률이 극단적으로 낮기에 소모품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다른 미소녀 수집형 게임들 처럼 마법적인 힘으로 미소녀들을 따르게 할 수 있는것도 아니며, 안전한 후방에서 명령만 내릴 수 있는것도 아니다.

 '안전한 후방'이어야 할 방주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수많은 중상모략이 활개치는 생지옥으로,

 100년간의 랩쳐와의 싸움으로 생겨난, 아슬아슬하게 사회라고 불러 줄 수 있는 수준의 군부독재사회다.

 이런 지옥의 밑바닥 같은 세계에서 플레이어의 분신이자, 우리의 주인공인 지휘관은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니케들과 가까워지는 것이지만...

 만약 이게 현실이 된다면 주인공이 겪은 일들은 '여러가지'나 '우여곡절'과 같은 단순한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게 된다.

 동료를 잃고,

 다리가 부러지고,

 눈사태에 휩쓸리고,

 랩쳐에게 납치되고,

 설산에 조난되고,

 배에 구멍이 뚫리고,

 또 동료를 잃고,

 또 배에 구멍이 뚫리고,

 한번 더 배에 구멍이...

 지금 생각 해 보면 뭔가 이상하게 배에 구멍이 자주 뚫리는 주인공이다.

 사실은 뭔가의 복선이 아니었을까.

 배에 풍혈이라도 뚫려있다던가.

 그런 복선이나 고찰은 둘째 치고 서라도, 이 게임의 주인공이 다른 '주인공이 고생하는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고생하는건 사실이다.

 그야말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러한 경위를 생각 해 보면 이 게임의 세계에 가는 것이 꺼려지는 이유를 어느정도 납득 해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꺼려지는 정도가 아니다.

 절대로 가고싶지 않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인생에 절대란건 없다고 해야 할까...

 인생 하고싶은 일만 하고 살수는 없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하고싶지 않은 일 일수록 저쪽에서 찾아오는 법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미묘하게 도움이 안되는 교훈을,

 난생 처음 보는 천장을 올라다 보면서 떠올린다.

 난생 처음 와 보는 내 방에서.

 난생 처음 누워 본 내 침대에 누워.

 난생 처음 보는 내 방 천장을 올려다 보며.

 "낯선 천장이다..."

 그런 옛날 애니메이션에서 들어본것 같은 대사를 중얼거리며, 나는 필사적으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려고 했다.

 필사적으로 정리할 정도의 일도 없었지만.

 오히려 한마디로 정리 할 수 있을 정도지만.

 그래. 한마디로 정리하려고 한다면 '정신을 차려보니'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오늘의 사건들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강당 같은 곳에 서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사관학교의 졸업증을 받고 있었으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지휘관이 되어 있었다는...

 그런 양산형 이세계 소설의 도입부 치고도 지나치게 간결한 프롤로그를

 나는 필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참고로 여기서 이 '정신을 차려보니'의 정확한 시점은 굳이 따지자면 현재가 아니다.

 내가 정신을 차린건 졸업증을 들고 강당을 나와 근처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볼때쯤이었다.

 아마도 디스플레이로 되어있을 하늘은 묘하게 현실감이 없어서 오히려 나를 현실로 되돌렸다.

 다만, 현실로 되돌렸다고 해도,

 정신을 차렸다고 해도,

 그 시점에서 정말로 내가 이곳을 현실이라고 믿은건 아니다.

 오히려 꿈이라고 생각했다.

 꿈이라고 생각하고, 납득했다.

 그리고는 이건 꿈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날뛰었다.

 약 두시간 정도.

 팬티만 입고.

 지금 생각 해 보면 '정신을 차렸다'고는 했지만 그 정신은 제정신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공원에서 왠 미친 남자가 팬티만 입고 공중제비를 돌며 활보하고 있다.'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폴리)에 의해 나는 무사히 체포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로 따지면,

 아마 특대급 불행이었겠지만...

 그리고 나는 그대로 경찰서까지 끌려가서 사정청취(事情聽取)를 받았다.

 사정청취라고 말하면 뭔가 딱딱한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이런 대화가 있었다.

 

 "우오오오오!!! 폴리!! 지, 진짜 폴리다!! 우오오오!!!"

 "진짜 폴리는 뭔가용...그보다 어째서 그런짓을 했는지를..."

 "핫!? 그럼 가짜 폴리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미란다, 사정청취는 제가 할태니 원래 업무로 돌아가 주세용..."

 "폴리! 큰일입니다! 폴리를 사칭하는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업무는 이제 됐으니까 조용히라도 하고 있어 주세용..."

 "우오오오오!!! 미란다!! 역시 미란다!!"

 "! 감사합니다!"

 "칭찬한거 아니에용... 에흉..."

 

 지금 생각 해 보면 그건 사정청취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그런 의미없는 사정청취였지만, 그 나름대로의 수확도 있었다.

 첫째로, 진짜 폴리와 미란다를 볼 수 있었던것.

 아니 물론 나도 니케를 플레이하는 유저로서, 니케라는 게임을 오픈때부터 즐겨온 사람으로서,

 게임속 캐릭터를 실제로 본다는건 그야말로 꿈이 이루어진것 같은 굉장한 일이기는 했지만,

 진짜 폴리의 복실복실한 머리를 본다는건 엄청난 사건이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이곳이 정말로 '승리의 여신:NIKKE'의 세계라는걸 확정짓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폴리나 미란다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비슷한 다른 세계가 아닐까' 하는 미련과도 비슷한 의문을 지울수가 없었던게 사실이다.

 그 둘의 성격까지도 게임과 다르지 않으니 그건 정말 덧없는 의문이었던것 같지만...

 그리고 또 하나의 수확은,

 내가 현재 있는 이곳.

 나의 현주소.

 즉, 마이홈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방금전에도 설명했듯이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이 세계에 있었다.

 한마디로 이 게임 세계에 흘러 들어왔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흘러 들어온건 나의 정신 뿐이다.

 그러니까 나의 '육체', 이 세계에 있어서의 나의 아이덴티티는 '이 세계의 나'의 것이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나는 나의 주소도, 인간관계도, 취미도 전혀 모른다.

 인간관계나 취미 같은건 뭐, 몰라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물론 인간관계나 취미가 어느날 갑자기 바뀐다는건 그건 그거대로 슬픈 일 일지도 모르지만.

 통곡 해야 할 일 일지도 모르지만.

 속물(俗物)적으로 말하자면, 즉물(卽物)적인 피해는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주소는 다르다.

 좀더 직접적인 피해가 있다.

 당장 오늘 잘곳이 없다는 직접적인 피해가.

 사정청취가 끝났을 무렵에는 밖은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고, 나는 어떻게 해서든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했지만...

 다행히도 경찰서에서 인식칩의 정보를 바탕으로 현재 주소지를 특정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마침내 나의 스윗홈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전혀 문제가 없었던건 아니다.

 팬티만 입고, 한손에 사관학교 졸업증을 든 건장한 성인 남자가 '우리집이 어디에요?'라고 묻는걸 들었을 때의 폴리의 표정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그런 우여곡절 끝에 나는 경찰서에서 빌린 누더기를 몸에 두르고 (아마도)그리운 나의 집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낡아서 무너지기 직전의 연립주택에.

 ...지휘관이 가난하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 막 졸업한 사관학교생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현관의 시큐리티는 인식칩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이런 세세한 부분에서 이곳이 SF의 세계라는걸 실감하지만, SF에서 조차 낡은 연립주택이 존재한다는건, 뭔가 블랙 코미디 같다고 해야하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현관으로 들어선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옷이 없기에 당연히 주머니도 없어서, 한손에 계속 들고있었던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나는 별다른 확인도 없이 그대로 받아버렸다.

 그리고 그 내용은 내일 06시 부터 작전이 있으니 지상에 올라가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마치 '네'라는 대답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기세의 일방적인 전달 방식에 나는 화가나기 보다는 당황스러웠지만,

 그야말로 '네'라고 대답하는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 외 자세한 작전 상세는 메일로 보낼태니 작전 시각 30분 전에 지정 위치에 도착 해 있으라는,

 이것도 또 일방적인 통보를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사람 굴리는 방식이 최악이다...

 블랙 코미디라기 보다는 블랙 기업이다.

 다만 이때 나는 그런 말장난 보다도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사관학교를 졸업 한 직후, 다음날에 작전 투입'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나는 처음 와본 집에 대한 감상도 잊고 다급하게 PC에 전원을 넣어 메일함을 확인했다.

 메일함에는 이미 작전 상세에 관한 메일이 도착 해 있었지만 나는 그 내용을 거의 읽을 수 없었다.

 언어가 다르다던가 하는 이유는 아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언어의 문제는 맞지만.

 어려운 군사용어가 대량으로 사용된 그 작전 상세는, 사관학교를 다닌 기억도 없이 사관학교를 졸업한 나에게는,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괴문서나 다름 없었지만,

 적어도 필요한 부분은 읽을 수 있었다.

 작전 시각이 내일 오전 06시라는 것과

 '작전 참여 니케 : 1기 (엘리시온 실버건 분대 소속 - 마리안)'라는 부분이다.

 나는 그대로 휘청거리며 침대로 쓰러져,

 현재에 이른다.

 

 "마리안..."

 

 이미 몇번이고 설명한 내용이지만 니케의 세계관은 그야말로 지옥같은 디스토피아이고,

 이는 단순히 세계관만이 지옥 같은 것이 아니다.

 세계관은 지옥 같지만 내용은 밝고 명랑한, 그런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니케라는 게임은 그렇게 상냥하지 않다.

 그렇기에 니케의 실제 내용.

 즉, '메인 스토리'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도 상당히 어둡다.

 충격적인 사건도 많이 일어나고, 그럴 때 마다 유저의 멘탈을 꾸득꾸득 갉아 먹는다.

 그런 '메인 스토리', 그런 '충격적인 사건'중의 하나가,

 게임의 튜토리얼 단계에서 일어난다.

 사관학교를 졸업한지 하루밖에 안된 초짜 지휘관인 우리의 주인공이 '마리안'이라는 이름의 니케와 만나

 배우고, 싸우며, 친해지고... 헤어지는.

 이, '미소녀 수집형 게임'의 튜토리얼로서는 있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프롤로그는,

 단순히 미소녀를 보러 온 수많은 유저들의 뇌리에 새겨져,

 누군가에게는 게임을 그만두는 계기가,

 누군가에게는 게임을 계속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러한 사건.

 사건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사건이,

 인터넷 등지에서는 '마리안 쇼크'로 까지 불리우는 사건이,

 아마도 내일, 일어난다.

 방금전까지 정신을 차렸다느니, 현실감각을 찾았다느니 말했지만,

 내가 정말로 현실을 인식한건 이때일지도 모른다.

 현실을 인식한, 인지한 그 때 부터,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생각이 전혀 정리되지 않는다.

 벌써 몇시간째 침대에 누워있는데도 내일에 대한 불안으로 전혀 잠이 오지 않는다.

 현실...

 이게 현실이란건 반대로 생각 해 보면 나는 능동적으로 뭔가를 바꿀 수도 있는거 아닐까?

 긍정적으로 보면 나에게는 적어도 게임의 지식이 있다.

 보스의 공략같은 그야말로 게임적인 내용부터, 이 후에 일어날 미래의 사건에 대한 지식까지.

 이정도의 지식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는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조금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게임 내에서 복권 번호같은걸 알려준건 아니니까 빠르게 부자가 된다던가 하는건 불가능 할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 게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의 '공략법'을 알고있다.

 수집형 게임 치고는 연애 요소가 그다지 풍부한 게임은 아니었지만,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건 이미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렇다는건 게임에서는 분량의 문제나, 연령제한이나, 도덕적인 문제로 들어갈 수 없었던 이것저것이, 이것도 저것도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보는것 뿐만이 아니다. 체험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 해 보면 니케의 세계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게 아닐까?

 아니, 오히려 최고인게 아닌가?

 마음만 먹으면 하렘이라도 만들 수 있다.

 나는 극단적인 순애파지만 하렘은 긍정하는 파다.

 그러고 보니 오늘 본 폴리와 미란다는 여러가지 의미로 충격적이었다.

 미란다는 게임으로 볼때에도 순경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아슬아슬한 복장이었기에, 실제로 눈앞에 있을 때의 충격은 보통이 아니었지만,

 그보다 충격이었던건 폴리였다.

 게임으로 볼때는 그저 '귀여운 캐릭터'의 영역에 묶여있던 폴리는 실제로 보면 단순히 '귀엽다'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이차원(二次元)이 아니라 이차원(異次元)의 미소녀였다.

 그 폴리 마저도 그정도다.

 게임에서도 외모로 인기가 많은 '블랑'이나, 게임 내에서 직접 아름답다고 까지 표현되는 '헬름'같은 니케를 실제로 만나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니케들을 단순히 보는것 뿐만이 아니라 잘 하면 가까워져서 연인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건 어쩌면 기회가 아닐까?

 지금까지 제대로된 연애 같은건 해본적도 없는 나에게 찾아온 보너스 스테이지가 아닐까?

 생각하면 할수록 흥분해서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내일 일찍부터 작전에 나가야 한다는데, 도저히 잠들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래, 이건 기회다.

 신이 내게 준 마지막 찬스..!

 ...알고 있다.

 나는 지금 현실도피를 하고 있다.

 이런 바보같은 망상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정신적으로 몰려있다.

 하지만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 해 보면,

 긍정적으로 고찰 해 보면,

 내가 이 게임의 세계에 온걸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바꿀 수 있는 운명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하렘을 만드는건 아니지만, 바꿀 수 있는 운명이.

 나는 생각했다.

 아까보다 사뭇 진지하게.

 이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바꿀 수 있는 운명.

 나는 이 세계에 대체 어떤걸 원하는걸까.

 나는 이 무너져가는 세계에서 어떤 결말을,

 어떤 해피엔딩을 바라는걸까.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마리안을 구하자."

 

 결국 그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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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어졌는데

대충 이런 내용으로 계속 쓰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