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워드리스 스쿼드의 지휘관이 되었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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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바닥을 본 다음날.


나는 미하라와 유니를 찾아갔다.



"안녕."


"....."


"........"



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대했기에 대답도 없을까.


한탄이 절로 나왔다.


지난 과거는 잊어달라느니, 사실 나는 옛날의 지휘관이 아니라느니 하는 것은 지랄이 짜다.


지랄을 할 거면 짜지 않게 개지랄을 떨어줘야 하는 거고, 지금은 지랄할 때가 아니니 고개를 숙였다.



"...터뜨려서 미안하다."


"신기하네, 지휘관이 사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다니. 이번이 거의 처음 아닌가?"


"이번이 아예 처음이야. 유니, 방주에서 지휘관님 목소리 처음 들어봤어."



그래, 차라리 이쪽이 낫지.


나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강간이라도 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 하긴. 무능한 탓에 작전 나갔다 올 때마다 메인터넌스를 맡겨야 했다는데 정비 중에 정액이라도 나오면 그게 무슨 쪽이겠어.


아무튼, 도구처럼 작전 상황에서 명령만 내리던 무능한 지휘관 정도라면 감지덕지였다.


그녀들에겐 뭐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 그 전에.


뭘 목표로 삼아야 할까.


지금이 어떤 시간대인지는 확인했다.


블랙 스미스의 토벌기록이 없었지.


원작의 주인공이 등장하기 전, 어쩌면 지금쯤 마리안이 지상에서 B104 다운을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는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일단 슈엔에게서 벗어나 복수하는 것까지만 생각하자.


그 이상의 일 따위, 계획 자체가 무의미할 테니까. 



"지휘관님?"


"어?"



유니의 부름에 답하자 미소짓고 있는 유니가 보였다.



"유니 지휘관님 용서했어."


"..."


"지휘관이 유니를 몇 번이나 버리고 도망갔지만, 그래도 유니는 지휘관님 이제 안 미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도대체 뭐하는 새끼였던걸까.



"지휘관님, 미하라를 유니에게 데려다줬어. 그러니까 지휘관님 용서해. 하지만..."



예쁜 미소를 짓던 유니가 갑자기 돌변했다.


이를 드러내고 경련하듯 입술을 떨며, 꽃잎같은 분홍색 눈동자를 불태우듯 짓뜨고 양 손을 뻗어 내 멱살을 부여잡았다.


그 모습이 치와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미하라 터뜨리면...!"



휙-!


말 그대로 글자 하나 들어갈 짧은 순간.


나는 유니에게 깔린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컥... 커헉..!"



무겁다.


어려보이는 얼굴이나 작은 신장과 대비되는 넓은 골반이 상체 전체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유니의 몸은 온기를 뿜고 있었으나,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살기는 손발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목을 타고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멱살을 잡힌 목과 배 부분이 집중적으로 짓눌려 개미가 부러지듯 머리-가슴-배로 나눠질 것 같았다.



"콱, 끌어안아줄거야. 유니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들었어 지휘관님?"


"....그래."



간신히 답하자 유니가 내려오.... 어?


유니가 내려오지 않는다.



"미하라. 지휘관님, 따듯해. 유니, 따듯한거 좋아..."



숨이 막혀온다.


도움을 구하려 미하라 쪽을 보았지만, 미하라는 난처하다는 듯한 웃음과 함께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저었다.


슈엔 이 미친년이.


통각 해제 선행을 안 넣어놨었다고?


그렇다면 난 둘에게 이대로 숨막혀 죽어도 싼 짓을 저지른 놈이었다.


그래도 설마 진짜 죽이진 않겠지.


...?


...........



내가 유니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던 때는.


'니케는 인간에게 해를 가할 수 없다'는 대명제를 30번쯤 되내이고 나서였다.



***



결국 크레딧이 바닥을 쳤다.


작전 성공률이 지랄맞은 탓이다.


빚도 못낸다.


미실리스가 잡아둔 빚이 3500k 크레딧이다.


환산해서 대애충 3억 5천 정도.


은근히 현실감이 차오르는, 은행의 불신도 함께 차오르는 수준의 금액이다.


저 빚을 갚으면서 생활을 영위하려면 작전에 나가야 되는데, 작전 성공률이 심하게 낮아서 작전이 하달되지 않는다.


그럼 내게 남은 답은 하나다.


부업.


방주의 군부는 지휘관들의 부업을 막지 않는다. 부업까지 막는다면 정말 굶어죽는 지휘관이 나올지도 모르니, 어찌보면 당연한 방침이다.


그래서 지휘관 제복은 곱게 각을 잡아 정리해놓고, 평상복으로 외출 준비를 했다.



"나 나갔다 올게."


"지휘관님. 어디 가?"


"알바라도 해야겠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대로는 너희 유지비는 둘째치고 내가 굶어죽게 생겼다."


"그럼, 유니는 미하라랑 놀고 있을게!"


"....애 잘 보고."


"어머~ 지휘관도 참. 너무 노린 듯한 대사 아니야?"



마지막 작전이 끝난지 얼마나 지났다고 제법 티키타카가 된다.


유니는 용서했다는 말이 진심이었는지 나를 완전히 새로 보았고, 미하라는 유니에게 맞춰주는건지 꽤 호의적인 태도로 대해주기 시작했다.



'아직 지휘관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날만 세우고 있어봐야 아무것도 안 되겠지? 그래도 니케로서... 지휘관에게 잘 보이고 싶으니, 앞으로는 잘 부탁할게~?'


'....어떻게, 손가락만 나눠 몰래 터뜨릴 수는 없겠지? 그 때만 생각하면... 흐읏.. 풋! 농담이야 지휘관~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두렵다는 듯이 유니를 바라보지 마.'



작전이 끝난 날 밤.


잠든 유니의 고운 머리카락을 세공품 다루듯 쓰다듬으며 나를 올려다보던 그녀를 잊을 수가 없다. 말로는 잘 보이고 싶다, 앞으로는 잘 부탁한다고 했지만... 숨길 수 없는 원망이 느껴졌었다.


미하라의 앞에서 유니를 '몇 번이나' 버렸다고... 미치겠네.


그래도 유니의 고운 심성과 미하라의 인내심에 감사해야겠지.


생활관을 나서서 방주 시내를 걷고 있자니 금방 알바 모집 공고를 찾을 수 있었다.


크로캣 가게였다.


....혹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챠임벨 소리가 울렸다. 일러스트에서 보던 익숙한 가게. 그렇다는건.



"후와아-!"



눈을 반짝이며 크로캣을 오물거리는 앤이 있었다.


반짝이는 앤의 푸른 눈이 행복에 겨워 촉촉해지고, 보드라워 보이는 볼이 입꼬리에 딸려 올라가 방실하게 차오른다.


말아놓은 머리를 감싸는 고양이 귀 모양 모자가 파르르 떨리는, 기쁨을 형상화한 듯한 모습.


문득, 앤 너머의 거울에 눈이 갔다.


낮선 남자가 작은 아이의 앞에서 멈춰서있다. 흥분한 남자의 자세는 앞으로 기울어져 있고, 어깨는 조금 들린 상태라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다.



"...."



나는 서둘러 다리를 움직여, 카운터 앞으로 나아갔다.



"안녕하십니까. 알바 구한다고 해서 왔는데요."


"아~ 알바 공고 보고 오셨군요. 그럼 저기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셔서 직원 휴게실에서 잠깐 기다려주실 수 있나요?"


"알겠습니다."



상당히 깔끔한 직원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매니저나 점장으로 보이는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새하얀 블라우스에 다른 무늬 없는 검은 치마. 직원 휴게실이 깨끗한 이유는 이 사람의 성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알바 지원하러 오신 분 맞죠?"


"네, 안녕하십니까."


"몇 가지 질문 할 건데, 그전에 혹시 궁금하신 거 있나요?"



이런 상황에서 질문은 플러스 요소일까, 아니면 마이너스 요소일까.



"공고에는 주방 허드렛일을 할 수 있는 알바를 구한다고 써있던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건가요?"


"아, 깜빡하고 제대로 안 써놨네요."



그녀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요즘 손님이 많이 늘어서요. 주방 허드렛일을 주로 하던 아주머니께서 너무 많은 일을 떠맡게 되셨더라구요. 그래서 아주머니께서 전담으로 맡으실 설거지 빼고.. 청소, 분리수거 정도? 재료 공수 같은 건 다같이 해야할 거니까 혼자 맡으실 일은 그정도가 전부일 거에요."


"그럼...."


"그건......."



상당히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존중이 말투나 손짓에서 뭍어나는 사람.



"성함이?"


"김니붕입니다."


"시민권 보여주시겠어요? 본인인지 대조를 해야되서."


"여기 있습니다."


"나이는... 22세시고... 좋습니다! 내일부터 출근하셔서 업무 배정이랑 간단한 업무 교육 받으신 뒤에 바로 일하시면 되요."



면접은 순식간에 끝났다. 왜그런가 물어보니 본인은 본인의 사람 보는 눈을 믿는다고. 너무 편의적인 생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넘겼다. 애초에 시민권 있으면 기본적인 결격 사항에는 제외다보니 그렇다고 본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뵈요!"



직원 휴게실에서 나가는 잠깐의 시간동안 나는 내가 일할 장소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복도, 제 2휴게실, 창고.... 저긴 주방인가?


기름이 끓는 소리와 크로캣이 튀겨지는 고소한 냄새. 그리고 접시를 씻는 물소리까지. 내부는 어떨까 궁금해 살짝 안쪽으로 들어가자 예상 외의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후... 후...."



포니테일로 묶은 푸석푸석한 흰 머리와 피로에 절은 안면, 광대뼈까지 내려가는 다크서클에 가쁜 숨소리. 그리고, 여기저기 닳고 해져 남루해보이는 옷차림.


이 사람이 여기서 일하고 있었다니.


그러고보니 방주의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올까. 그 때가 되면 유니와 미하라에게 무슨 선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크로캣 가게를 나섰다.


앤은 책갈피를 사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똑 닮은 은백색 머리카락 둘이 흔들리는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머리가 복잡했다.


빨리 앤이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렇게 바랐지만, 내가 첫 월급을 받을 때까지도 앤의 선생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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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은건 6화쯤 남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