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달빛이 없는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밤길을 걷던 중에 검은 한복을 입은 어린 여자이이를 조심하라. 해가 가는 것은 아니나 여러모로 그대를 곤란케 할 것이니. 그 아이는 인간이 아니라 마물소녀 '어둑시니'다.



깊고 어두운 밤 하늘이었다. 달이 안 나오는 초하룻밤이었던 탓에 해가 지자마자 바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밖에서 놀고있던 아이들은 해가 지자마자 바로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었다.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살고 있는 한 꼬마만 빼고. 귀한 양반집 자제로 태어났는지 고운 옷을 차려입은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늦게 놀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먼저 가는 거였는데."


서씨 집안의 둘째자식인 서판도는 서당의 수업이 일찍 끝나자 친구들과 같이 마을 근처의 언덕에 가면서 놀았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덕에는 무시무시한 산짐승도 없고 마을도 가까워서 빨리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네가 내일 농사일로 빨리 불을 끈 것을 생각치도 못했었다. 그래서 판도가 걸어가는 길목은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이 매우 어두웠다. 길목에 뭔가가 자기를 덮칠 것 같아 판도는 재빨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래도 혼자서 집으로 가기에는 역시 너무 겁이 났는지 판도는 속으로 누가 집에까지 같이 가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랄랄라... 라라라. "

 

"어? 나말고 집에 돌아가는 애가 있었네."

 

그런데 타이밍 좋게도 판도의 눈 앞에 나비와 구름 무늬를 금박으로 새겨진 검은 저고리와 치마를 입은 흑발의 여자아이가 판도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걷고 있었다. 판도는 갑자기 자기 앞에서 나타난 그 여자애를 보고는 안심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도 느끼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의 눈은 서양의 마족처럼 검은 공막과 뱀처럼 노란 자위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섬뜩한 외모와는 다르게 소녀는 판도한테 아무런 해를 끼칠 생각도 없었는지 천진난만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저기... 너 말이야? 여기에서 새로 이사왔니? 늦은 밤에 돌아다니면 부모님한테 혼나."


"..."


"왜 아무 말도 안해?"


"너? 내가 보이니?"


소녀는 판도를 보고는 영문을 모를 소리를 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판도는 그 여자애의 말에 뭔가 이상하듯이 생각했다. 보이면 보이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걸까. 판도는 눈이 이상한 그 여자애한테서 나오는 그 분위기에 뭔가 공포를 느꼈는지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 애한테서 시선을 돌리고 다른 곳으로 보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과는 반대로 판도의 시선은 그 여자애한테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자기한테 다가오더니 점점 더 몸이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뭐야? 내 눈이 잘못된 걸까?"


"아니. 잘 보고 있어. 네가 날 보면 볼수록 난 점점 더 몸이 커지게 되어있어..."


판도는 자기와 같은 또래였던 소녀가 조금씩 몸이 커져가면서 곧 15살정도로 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판도가 그 애를 향해 시선을 집중할수록 소녀는 15살에서 저고리를 터질듯이 큰 가슴을 가진 완전한 성인으로 변하면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게 완벽하게 흑발을 휘날리면서 매력적인 미인이 된 소녀는 곧 판도를 향해 두 팔을 내밀고 안기려던 순간이었다.


"자아... 천천히... 내품에... 꺄아악! 아야야야! 아프잖아!"


- 콰당-


"어... 이제 누나라고 불러야하나? 괜찮아?"


소녀가 된 미인은 판도를 덮치려던 순간 돌부리에 넘어지면서 바닥에 넘어져버렸다. 그리고는 그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엄살을 부리자 판도는 방금전까지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윽고 미인한테 손을 내밀고는 안부의 인사를 물었다. 그 미인은 조금전까지 자신이 겁먹게 한 꼬마한테 도리어 위로를 받자 울상을 지었다.


"이잉~. 안아프니까 필요없어... 아파라~!"


"겉보기와는 다르게 누나는 아직 어린애였네..."


"누구 놀려?!"


"자아. 가자. 우리집까지 데려다주고 치료할께."


"필요없거든!"



미인은 방금전까지 소녀에서 급성장을 했지만 아직 정신만큼은 성장하지 못했는지 판도의 말에 삐치면서 거절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판도의 안내를 받으면서 같이 따라가고 있었다. 판도는 이상하게도 방금전 까지만해도 소녀였던 존재한테 공포심은 커녕 오히려 친밀감이 느껴져서 밤길이 무섭지도 않았다. 미인은 그런 판도의 손을 잡고는 집까지 따라와버렸다. 그리고 판도의 기와집에 거의 도착하자 미인은 뭔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표정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저기 말이야... 꼬마야... 왜 날 도와주는거야?"


"응? 왜냐니? 아버님이 말씀하셨거든. 위기에 처한 아녀자를 구해야 진정한 선비다라고."


"참 쓸데없는 말씀이시네..."


"그래도 겉모습은 무서웠지만 누나같이 친근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면 시집와도 괜찮을거 같아."


"그... 그럴리가 없잖아...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지... 자아."


미인은 판도의 그 대답에 표정을 붉히면서 부정을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에 감춰둔 주머니를 꺼내면서 풀고는 옥가락지를 판도한테 넘겨주었다. 판도는 그 누나가 준 옥가락지를 받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왠 가락지야?"


"네가 나한테 시집와도 괜찮다는 거 후회하게 해줄려고... 이거 받으면 나하고 결혼해야할걸?"


"헤에? 그럼 영광이네~! 내가 어른이 될때 그 때 와줄래?"


"... 놀리는 재미도 없는 꼬마녀석..."


"참? 누나라고 해야하나? 너라고 해야하나? 이름이 뭐?"


판도는 그 흑발 저고리의 누나의 말에 웃으면서 맞받아치자 미인은 놀려먹는 재미가 없다고 대답을 했다. 그렇게 자기 집에 도착하면서 잠시 판도가 고개를 돌리는 사이에 그 미인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물론 판도는 집에 늦게 들어왔다는 죄목(?)으로 어머니한테 크게 야단맞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판도는 그 전에 밤길에 만난 미인이 된 소녀에 대해 말하자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저런... 판도야. 너 어둑시니한테 홀린게로구나. 그 요괴는 자기한테 관심을 가져다주면 모습이 크게 변하는 힘을 갖고 있단다. 하지만 다행이랄까 불행이랄까. 난 한번도 어둑시니를 보지 못했구나. 미인이더냐?"


"네. 저와 같은 나이에서 계속 보니까 엄청 큰 누나가 되었어요."


"에잉~! 아깝다! 내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그 어둑시니가 나한테 결혼해달라는 증표로 가락지를 받아서 너 대신에 엄청 음흉하면서 빵빵하게 살았을텐데!"


"영감! 걱정하는거요?! 질투하는 거요?!"


"하... 할멈!? 좀 봐줘! 난 순수하게 손자가 걱정되서!"


할아버지는 판도가 어둑시니한테 홀렸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면서 손자를 걱정해주었다. 하지만 그 걱정이 뭔가 음험했는지 할멈은 그대로 할아범한테 자이언트 스매쉬를 날리면서 태클을 걸었다. 그 사이 판도는 그 어둑시니를 잊지못하면서 남몰래 받았던 가락지를 혼자 숨겼다. 그리고는 왠지 모르게 그 어둑시니를 만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라도 있었는지 왠만한 여자들을 보지도 않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른 일에도 집중한다는 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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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둑시니를 소재로 한 순애물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