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바짝 차리자.

"171번 서하늘씨~! 검사실 3번으로 이동해주세요."

"네~"

위이잉

검사실 입장 전의 간단한 에어 샤워.

1분 가량 진행되는 샤워에서 숨을 참는다.

여기서 흔적이 남지 않는 자백 가스가 나온다고 했지?

인터넷 괴담이지만.

철컥

좋았어, 1차 난관은 무사히 통과다.

이제 능력을 숨겨서 탈락만 하면 돼.

후, 그래도 살짝 양심이 찔리네.

만만찮은 각성 비용을 전부 무료로 처리해 주는 데 말이야.

하지만 그 쥐꼬리만 한 연봉을 보고 누가 협회에서 일하고 싶겠어?

역량에 걸맞은 대우를 원하는 건 자유시민의 당연한 권리잖아?

고급 인력을 노예처럼 부려 먹으려 하는 21세기의 악당들!

이건 애초에 협회가 자초한 일이야!

"오셨네요. 자, 어떤 능력을 갖고 계신 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어, 일단 패시브 같은데요..원래 상태창에서 이름이랑 레벨만 보이는데 근데 저는 지금 스탯도 보이고.."

"상태창에 정보가 추가 됐다는 말씀이시죠? 어떤 정보가 추가 됐는지만 말씀해주시겠어요?"

"아, 네네.."


【이름 : 성마리】
【Lv 1】
【종류 : 인간 여성】
【나이 : 26】
【힘 1】+
【민첩 1】+
【체력 1】+
【마력 1】+
【잔여 능력치 1】
【고유 능력 : 유도 신문 - 상대방이 진실을 말할 확률을 높여준다...+】
【설명 : 한국 각성자 센터의 각성 능력 감별부 직원이다...+】


"일단...성별이랑 나이가 보이고요..힘, 민첩, 체력..마력...능력치도 있어요."

"그것만 보여요? 숨기는 거 없어요?"

"아, 그게...그게 있긴 한데..."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진 모르겠지만 숨기는 게 오히려 손해 아닐까요? 여기서 높은 등급을 받으시면 대우 받는 건 말할 것도 없다는 건 아시죠? 잘하면 협회에서 한자리도 하실 수도 있고요."

"...고유 능력이...보여요. 어떤 능력인지도...나와요."

성마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건 보고한 직원에게 성과금을 준다고 한 능력인데?

"일, 일단 제가 바로 자격증을 드리긴 힘들 것 같고요. 나가셔서 대기실에 잠시만 계셔주시겠어요?"

"아, 네네.."

철컥

...?
이게 유도 신문의 능력인가.

분명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대답한 것 같은데...

최대한 능력을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거의 다 말해버렸다.

확률적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사실상 정신 조종 능력의 아류라고 봐야 하는 거 아냐?

게다가 확률형 고유 능력은 조건에 따라 변동폭도 크니 성장 가능성도 무섭잖아.

물론 조건을 알아내기 위해선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겠지만.

그래서 다행이었다.

그런 조건도 단번에 알아낼 수 있는 더 보기 능력을 감추는 것엔 성공했으니.

만약 내가 협회 고위직이라면 나 같은 능력을 가진 각성자를 알게 됐을 때 어떻게 할까?

분명 누가 훔쳐가기 전에 먼저 납치해서 감금하겠지.

불안한 미래가 떠올라 '오소소' 하며 소름이 돋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위험했잖아?

아무래도 돈 벌면 정신 방어 계열 아이템부터 맞춰야겠다.

비슷한 정신계 고유 능력은 분명히 존재할 테고 언젠가 그런 능력에 잘못 걸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망상을 하던 와중,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한 40대 중년의 남성이었다.

"선생께서 서하늘씨 본인 되십니까?"

"저 맞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부터 서하늘씨가 협회에서 운영하는 교육 시설의 교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하러 왔습니다."

"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명함도 안 드리고 참...조금 갑작스러우셨지요?"

"대한민국 각성자 협회?...협회장님이세요?"

"하하, 부담 갖지 마세요. 대한민국 최초의 비 전력 1급이 되실 분 아니십니까?"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애초에 4급 받고 바로 쫓겨나기 작전은 실패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게 1급 능력으로 평가 받을 정도인가?

"통화로는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직접 듣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유 능력이 보인다고 하셨지요? 능력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는 겁니까?"

"상세한 건 아니고요. 그, 마리씨를 예로 들면 '상대방이 진실을 말할 확률을 높여준다'정도의 굉장히 간략한 설명만 나오는 별거 아닌 능력이거든요?"

"...훌륭하네요."

아니, 왜?

"죄송하지만 지금 바로 출근해 주셔야겠습니다. 사실 서하늘씨가 저희 교육기관의 첫 번째 교사시거든요."

협회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린 것처럼 나타난 거한들이 나를 납치했다.

"아니, 갑자기 무슨. 사람 살려! 협회가 사람 납치한ㄷ으읍-!"

투두두두

헬기는 또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서하늘씨-! 보안팀 배치만 끝나면-! 상근 가능하니까-! 걱정 마세요-! 가족한테는 내가 잘 말해 둘게-!"

"으으읍-! 으으으읍-!"

"그래요-! 잘 하실 거라 믿습니다-!"

투두두두

협회장과 멀어지는 헬기를 지켜보던 남자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일을 너무 키우신 것 같습니다. 뛰어난 능력이기는 하나, 2급 정도면 충분했을 텐데요."

"자네는 생각이 너무 많아. 그리 애매하게 구니 인재들이 제 발로 나가지."

"협회장님, 진심으로 저 능력이 아이템 제조 능력과 동급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글쎄? 만약 개인의 능력에 맞는 커리큘럼으로 고등급 헌터들을 양성할 수 있다면...자네는 그 능력을 겨우 아이템 제조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아, 저 능력은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협회장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남자의 한탄 섞인 대답이 옛일을 떠오르게 했나 보다.

그는 잠시 사색에 잠기곤 이내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이 바닥에 구른 지가 근 10년이야. 강산도 변하는 시간이라 하지만 나에겐 너무나 짧게 느껴져. 그때만 하더라도 나라가 이렇게 찢어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찢어진 적 없습니다. 길드가 구역마다 왕 노릇을 한다고 해서 그 지역이 대한민국의 땅이 아니게 되겠습니까?"

"그래, 세금도 없고 경찰도 못 들어가는 땅이지만 국토는 국토여야지..."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잠시 걷지 않겠나?"

텅- 텅-

녹슨 철판이 발걸음에 맞춰 울음을 낸다.

초라하지만 하수도를 건너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다리였다.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건 반쯤 폐허가 된 도시와 사람들.

철 지난 밈처럼 '정상 영업 합니다' 라고 걸린 현수막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야. 그때는 그냥 다 죽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기태가 큰일했지."

"...과거의 영웅들은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길드장이 됐지.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다들 변해버렸어. 아니,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하는 게 맞을까."

"..."

"미안하네, 푸념이 좀 길었지?"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느낌이 와. 저 능력이 그들의 수련법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직감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그 사람에게 학생들을 맡길 필요까지 있습니까?"

"각성자에게 능력은 신체의 일부와도 같지 않은가? 고유 능력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건 결국 본인이야."

"제 옆에 고유 능력을 본인들보다 더 잘 이해하시는 분이 계신데요."

협회장이 개구쟁이처럼 미소 지었다.

"내가 원래 좀 먼치킨이지 않은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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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마르다고 우물을 팠는데 우물은 그냥 퍼 마시기만 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됨...


아포칼립스풍 헌터물에서 유일하게 스탯 포인트를 찍을 수 있는 상태창이 보이는 주인공이 선생님이 된 소설...오네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