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나도 나름 장래를 촉망받는, 재능이 있다고 칭찬받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한 때는 서로 경쟁하던 누군가는 이미 날 아득히 넘어서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받던 누군가는 어느 순간 사람이 바뀌더니 특별한 능력과 아티팩트를 얻고 만인의 영웅이자 사랑받는 연인이 되고. 솔직히 부러웠던 적이 없었냐면...그렇다고는 못 하겠다. 내가 한 대 쳐맞고 사경을 하는 동안 손가락 까딱해서 괴수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걸 보고, 질투도 제법 했었다. 나랑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걔한테 고백하는 방법 물어볼 때는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고.


그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을 때는...그냥 적당히 살다가 적당히 취업해서 먹고살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나는 흔해빠진 적당한 재능을 가지고 우쭐하던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구나, 하고.


그 마음이 바뀐 건...부끄럽지만, 별 생각 없이 들렀던 장례식장에서였다. 우리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사고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활약으로 사상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누군가가 죽어나갔다. 그 날은, 아카데미에서 제법 오랜 기간을 제휴하던 외부 청소업체 아저씨의 장례식이었다. 배가 나오고, 수염이 수북한 얼굴로 가끔 딸아이 자랑을 하던. 안타깝게도, 그 분을 제외하면 어떤 사망자도 없던 그 사고에서...그 분만은 살아나오지 못하셨다. 물론 나는 가끔가다 얼굴만 마주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예의상 방문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간 것 뿐이었다. 내가 알던 친구들, 교수님들, 지인들은 다 살았으니까.


"엄마, 아빠 어디 있어? 아빠 왜 저기 누워 있어? 아빠 얼른 일어나라고 해, 얼르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아저씨의 아내 분과 그 상복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아빠를 찾으면서 울어대는 어린아이를 보기 전 까지는.


"저기...누구세요...?"


"아, 그...전...아카데미 학생입니다."


"...방문해줘서 고마워요."


아내 분은 얼마나 우셨는지 짐작도 안 가는 듯한 쉰 목소리를 내면서도, 애써 웃으며 감사를 표하셨다. 말문이 막힌 나는, 국화를 두고는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떠났다.


사실 난, 그 사고가 있던 날 나는 우리 아카데미 1등이었던 어떤 여자아이를 멋지게 구해내는 그를 보며 부러워했다. 나도 저런 특별한 능력이나 아티팩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같은, 머저리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딴 생각이나 할 시간에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면. 남겨진 사람은 없는지, 확인했다면. 내가 적을 화려하게 물리칠 수는 없을지언정 그 아저씨가 깔렸다는 건물 잔해 정도는 치울 능력이 있었는데, 나는 그 기회를 추하게 질투를 하며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미친듯이 단련했다. 내가 가진 건 준수한 수준의 염력 하나. 하지만 그것 하나만이라도 갈고닦았다. 여전히 적을 물리치기엔 부족했지만, 이후로 일어난 몇몇 사건에서 건물에 깔리거나 화재에 갇힌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전투에는 한없이 부족했고, 범죄자의 습격에 내가 기절해 버린 사이 다른 누군가가 사람들을 구해내었다.


그래서, 모자란 힘을 보충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무기의 사용법을 익혔다. 단검, 장검, 양손검, 둔기, 창, 총, 폭발물을 비롯한 무기로 시작해서 구조의 효율을 높히기 위한 로프, 방독면, 해독제, 응급처치 등에 관한 기술도 가능한 한 모두 익혔다. 그러자 어지간한 적은 압도하지는 못해도 어찌저찌 제압하거나 최소한 사람을 지키며 시간을 끌 수는 있었다. 하지만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범죄자나, 갑자기 쏟아져나오는 괴수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내가 구석에 갇힌 사람들만을 지키는 동안, 사태를 미리 예상한 다른 누군가가 상황을 조기에 진압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번엔 온갖 지식을 섭렵했다. 책이란 책은 달달 외웠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른 대학교의 교수님이나 전문가에게 이메일, 전화, 안 되면 면전에 선물을 들고 찾아가서 물었다. 퇴짜도 많이 맞았고, 무시는 더더욱 많이 당했다. 상관없었다. 예비 훈련에서는, 비웃음을 감수하고 지휘를 자처하며 내가 생각하는 계획들을 시험했다. 당연히 실패도 엄청 많이 했고 조롱도 당했다. 실패할 때마다 노트를 만들어 단점을 적고, 상황을 자세히 적어서 교수님들께 개선법을 질문했다. 그제야, 커다란 하나의 사태에서 온전히 내 힘으로 모든 사람들을 지켜내는 데 딱 한 번 성공했다.


사망자는 없다는 확답을 세 명의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아낸 뒤에야 안도감에 주저앉아 있던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째서냐! 네놈이 먹어야 할 기연은 분명 내가 전부 뺏었는데! 어째서 아직도 그렇게 강한 거냐!"


"...어?"


조금 우스웠다. 내가 너를 얼마나, 몇 번이나 질투했었는데. 그런 네가 그런 얼굴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괜스레 마음이 조금 들떴다.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래도, 아무도 안 죽었으니 잘 된 거 아냐?"


너는, 짐짓 화가 난 듯 친구들에게로 돌아가 버렸다. 그 와중에 친구들이 전부 이쁘장한 여자아이들이어서, 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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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 군, 모두 기다리고 있어."


딴 생각을 하던 와중,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내 끝없는 질문 공세에 화도 안 내고 받아주신 교수님이었다.


"아, 네. 죄송합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간 곳에는...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애꾸눈의 퇴역한 군인, 깡마른 대학 교수님, 감방에서 한 달 전에 출소한 전직 사기꾼 하나, 소규모 헌터 길드 여럿, 그리고 각종 공무원 분들. 참으로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그 상황이 못내 웃겨서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아, 죄송해요. 뭔가 좀 뒤죽박죽인 조합이라, 보기만 해도 웃기네요."


내가 키득거리자, 못마땅하다는 시선이 오갔지만...딱히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럼 갈까요. S급 괴수인지 뭔지, 때려잡으러."


"이거, 가능하긴 한 거냐?"


전직 사기꾼이었던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물었다.


"모르죠? 그러니까 있는대로 대비한 거잖아요. 자료조사 하는데만 두 달, 준비에만 석 달 걸렸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정말로 뭔가 잘못되면..."


"제가, 어떻게든 할게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주변 사람들은 못 말린다는 듯 눈을 굴렸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웃음을 띄우는 사람들과 함께, 나는 걸어나갔다. 기연을 빼앗았다느니 뭐니 하는 말이 잠깐 떠올랐지만...잊어버렸다. 그런 건, 지금의 나에겐 의미가 없으니까. 힘도, 지식도, 계획도, 장비도...전부, 도구일 뿐이다.


난 그냥, 그 때의 장례식 같은 풍경을 보기 싫은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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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과 특별한 인연, 고등급 장비 등등을 모두 빼앗겼음에도, 그저 사람을 구한다는 목표 하나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다보니 어느 순간 능력, 인연, 장비가 없음에도 오히려 원작보다 더 뛰어나게, 기연을 독식한 빙의자를 추월해버렸다는 설정이 재밌을 것 같아서 휘갈겨 봄. 모래주머니를 달고 운동하는 사람과 옷만 걸치고 운동하는 사람의 결과가 같을 수 없듯이, 힘을 얻고는 자기 자존심이나 주변인만 지키려는 사람보다 모든 것을 구해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결국에는 더 뛰어나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함. 이렇게 위대함이라는 건 단순히 뛰어난 것 뿐만이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커다란 이상과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는 걸 보여주는 인간찬가...뽕 채우기 좋을 것 같음.


아, 중간에 대사 하나는 챈질하다 댓글에서 베껴 옴.


그러니까 누가 좀 "써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