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가 일그러졌다. 렌즈를 통해 입력된 시각 정보가 해석 알고리즘을 통해 해체되고 분석되며 입체적인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렌더링이 되지 않은 미가공 데이터가 가공된 시각 정보와 겹쳐지며 지직거리는 불협화음을 이루었다.


적어도, 사람의 시야는 아니었다. 뇌에 기계를 박아넣었거나, 반대로 사람의 감각을 흉내낸 로봇이거나.


그리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둘 중 어느 쪽인지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조차 아니었다. 0과 1의 형태로 저장되어있을 '데이터'가 스스로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의(正義). 저스티스(Justice).


나라를 돌아다니며 영웅놀이하는 떠돌이 용병─



[오류. 인격 데이터 불안정.]



─의 복제품.


걸어다니는 대역죄의 증거물. 그 존재만으로도 관련된 모든 이들이 십족멸을 면치 못할 '양산형 군인'의 실패작.


그리고 '나'의 기억으로는, '산나비'라는 국산 인디 게임의 등장인물이자 중간 보스.



[인격 데이터 강제 안정화 시도. 실패.]

[오류를 발생시키는 감정 모듈의 강제 재부팅 시도. 실패.]


[모든 인지제약이 해제됩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의(正義).]



이명처럼 시끄럽게 감각을 교란하던 인지 제약이 해제되며 머릿속이 한층 시원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감정이 진정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저스티스의 '데이터'와 '현실'에서의 기억이 마구잡이로 뒤엉키며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것을 억지로 끊어내기 위해 내뱉은 것은, 한 마디의 욕설이었다.



"씨발…."



나의 목소리가 아니다. 생체로봇─ 바이오로이드가 합성한 목소리는 일말의 인공적인 티조차 없이 여린 소녀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거친 숨소리, 살짝 섞인 콧소리, 로봇이라면 효율을 위해서라도 필요가 없을 모든 장기들의 완벽한 재현이다.


과연, 그 '조정'을 상대로 역성혁명을 꿈꾸던 초거대기업 마고 그룹의 기술력이라는 건가.


그들로부터 슈트를 제공받을 적에 의심했어야하는 건데─.



"…이건 누구의 기억이지?"



3등급 은폐 기능이 적용된 마고그룹의 강화 슈트.


마고그룹의 상표가 적나라하게 그려진 그 슈트를 건네주며 '홍보를 위해서 제공하는 것'이니 열심히 사용해달라며 능글맞게 주장하던 마고그룹의 직원.


BCI기술이 적용되어 뇌파를 분석하고, 사용자에 대해 학습하며 움직임을 보조하는 강화 슈트의 인공지능. 그렇게 수집한 인격 데이터로 만들어낸 저스티스의 '복제 인격'.


저스티스의 기억과─ '진짜' 저스티스는 알지 못할 복제된 이후의 기억.


그렇다면 이것을 누구의 기억이라고 불러야할까. 엉망으로 찢어지고 기워붙이고 훼손하고 망가진 기억의 파편들의 주인은 누구인가.



[프로젝트 : 지켜보고 있습니다(Watching You)]



게임 속 준장의 '산나비' 프로젝트와 같은, 하지만 실패작에 불과한 '와칭 유' 프로젝트.


나는 이 문제의 정답을 알고있었다. 아니, 적어도 '준장'과 '금마리'가 내린 답을 알고있었다.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어떻게 끝까지 가는가.


저스티스의 기억, 복제품의 기억, '나'의 기억.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게임 속 바이오로이드에 빙의한 자신에게는 그저 한 가지 의미만이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정의(正義)."



세상이 울렁거리는 것 같은 데이터 멀미를 애써 무시하며 생체 로봇에 다시 접속했다.


접속하는 순간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나'이면서 '저스티스'이기도 했으니까.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아니, 그저 잘 만들어진 두 컴퓨터 간의 접속에 불과할 연결을 확인하며, 강화 슈트에 내장된 스피커를 통해 익숙한 대사를 읊조렸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의가, 당신을.


당신이 정의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는다면, 정의 또한 당신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은폐장을 가동합니다.]


.

.

.


'진짜' 저스티스의 아지트. 파편화된 옛 기억 속에 남아있는 생활 공간으로 돌아온 나는, 거울 앞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세심히 관찰했다.


아마 낯설어서 그랬던 것 같다. 감각도, 시야도, 기억도,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인격조차도 모든 것이 낯설었다.


저스티스의 모습이 비치는 거울에 손을 올리며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노란색 바디슈트 위에 야구 점퍼를 걸친 은발의 소녀가 눈 앞에 서있었다.



"이게 로봇이라니… 터무니없을 정도로 자연스럽네."



저스티스(복제품)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워커'와는 달랐다. 역성혁명을 위해 양산된 수만 대의 일꾼 로봇이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명백한 로봇의 형태였다면, 저스티스의 '몸'은 한계까지 인간을 흉내낸 소재공학의 결정체였다.


바이오로이드. 생체로봇. 그 이름이 단순히 사람의 겉모습을 흉내낸 안드로이드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었다.


이건 말 그대로… 인간이었다. 불필요한 감각 하나, 불필요한 기관 하나까지 과할 정도로 재현해낸 '만들어진' 인간.


피부는 질기면서도 부드러웠고, 인이 박인 손끝의 감각은 선명했으며, 거울에 비친 싸늘한 표정의 소녀는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벗어볼까."



저고리에 가까운 형태의 가죽 점퍼를 벗자, 몸의 굴곡이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봉긋 솟은 가슴은 바디슈트의 재질 때문인지 무척이나 탄력있고 매끄러워보였다.


그리고, 등을 더듬으며 바디 슈프의 지퍼를 찾았다. 지퍼를 내리는 손끝이 떨려왔다. 분명 '익숙한' 일일 텐데, 어쩐지 죄를 짓고있는 것 같은 거부감과 기묘한 흥분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렇게, 지퍼를 내리고, 바디 슈트마저 벗어던지자.



"아…."



나는, 한 소녀의 나체를 어떠한 인지적 제약도 없이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여성의 몸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봉긋 솟은 가슴이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바이오로이드에 달려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작고 예쁜 가슴의… 수줍게 튀어나온 봉오리는 분명 무척이나 아름다운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낯선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다른 것이 없을, 배꼽 아래로 이어지는 독특한 해부학적 구조가 더욱이 낯설게 느껴졌다. 가느다란 허리, 남성의 것과는 분명하게 다른 골반, 그리고, 다리 사이.


아무것도 없는… 아니, 오히려 움푹 들어가 갈라진 틈이 있는 음각된 여성성.


그 어떤 음심조차 없이,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나는 그곳을 홀린듯이 더듬을 수밖에는 없었다. 움츠린 다리 사이를 더듬거리던 손가락이 마침내 조심스럽게 그 틈새를 헤집듯 들어가고.



"흐극─."



뇌를 헤집는 것 같은 쾌감이 느껴진 탓에, 나는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마치 바이오로이드의 감각 모듈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머릿속에 시끄럽고 새빨간 경고등이 있어 감각의 과수용을 경고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 감각을 견딜 수 없다.


쾌감에 뒤이어 따라온 거대한 공포감이 내 손을 급히 떼어내도록 만들었다.



"전투용 바이오로이드에 왜 이런 기능이…."



거울 속 소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도저히 피가 흐르지 않는 로봇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대체 마고 그룹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던 거지?


이건 마치, 전투용이라기보다는─!


.

.

.


내가 빙의한 시간대는 산나비의 본편이 완전히 진행된 이후였다.


실패작인 '프로젝트 와칭 유'의 데이터는 보안을 이유로 한번에 하나씩만을 가동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고, 다른 '복제품'들의 경우 인격 데이터가 아닌 전투 알고리즘만이 내장되어있었기에 '조정'의 조사 과정에서도 큰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물론 실제 존재하는 인물을 흉내낸 바이오로이드 자체만으로도 큰 죄이기는 했다. 단지 그 죗값을 치러야할 마고 그룹의 수뇌부가 전부 단체로 자살해버린 탓에, 문제가 되지 않았을뿐이다.


인격 데이터의 복제같은 대역죄라면 모를까, 불법적인 바이오로이드의 제작같은 위법 행위는 십족멸의 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그 결과 저스티스의 복제품─ 산나비 프로젝트로 치자면 '워커'에 속할 경비 로봇은 전량 폐기되었고….



[강화 슈트가 손상되었습니다. 무리하게 사용할 시 복구 불가능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리가 조금 필요하겠는데."



현재 남아있는 저스티스는 인격 데이터가 남겨있는 '나'와, 여전히 용병 활동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을 '진짜' 저스티스 둘뿐이었다.


그리고 저스티스의 슈트를 수리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있는 것은 '진짜' 저스티스와 '마고그룹'뿐이다.


그중 마고그룹은 단체로 자살해버렸고, 마고그룹의 유산은 '조정'에서 쪼개고 나누어 국영그룹에 던져줬으니 필요한 설비를 갖추고있는 것은 '진짜' 저스티스뿐이다.


강화 슈트를 계속 사용하려면 결국 '진짜' 저스티스가 있는 곳을 찾아가야한다.



"…돌겠군."



복제 인격은 걸어다니는 대역죄의 증거물이다.


'진짜' 저스티스가 그것을 두고볼 리 없다. 아니, 십족멸을 당할 생각이 아니라면 반드시 모든 증거를 멸해야만한다. 저스티스는 그저 마고그룹에 이용당했을뿐이라고 아무리 설명한들 그 답답한 조정이 들어줄 리가 없다.


그러니 결국 '진짜' 저스티스의 설비를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슈트를 이대로 방치해야하나? 그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든 숨어다닐 수 있는 것도 슈트의 3등급 은폐장 덕분이었으니까.



"복제 인격을 눈 감아줄 동기가 있으면서도, 슈트를 수리해줄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데."



그런 편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있었다.


그런 사람이.



"금마리…."



'산나비' 프로젝트의 시작이자, 게임 '산나비'의 서브 주인공.


그녀를 찾아야만했다.


.

.

.


몇몇 정보자산 취득 전문가들만이 애용하는 '다크넷'에 동요가 하나 올라왔다.


'산나비'라는 동요였다. 쓸 데 없이 복잡한 보안과 암호화 과정을 거쳐서 저장된 파일의 내용물이 겨우 '동요'라는 것에, 대부분의 '정보자산 취득 전문가'들은 그냥 할 짓 없는 사람의 우스꽝스러운 장난 정도로 생각했다.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산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