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회관의 자명종이 두웅- 두웅- 하는 육중한 소리로 몸 전체를 울린다.

그러면 우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우르는 발광등[1]을 가리운 미역천[2]을 걷어내고, 오목한 은경[3]에 얼굴을 비췄다.


음, 오늘도 난 예쁘네!

어르신들 말로는 이 은경이란 것도 시절이 좋아져서 생긴 거고, 옛날에는 흑요경[4]에 얼굴을 비추었다지만...

뭐, 세월이 지나면 문명은 발전하는 법이잖아?

어쨌든 은경을 만들어낸 사람, 정말 복받을 거에요.

검은 심연의 나락속 깊은 곳에서 영원히 생피를 마시길[5].


허리 아래 열 일곱 지느러미[6]를 깔끔하게 단장한 우르는 상어미늘 옷을 단단히 껴입고, 산호 반지를 다섯 지느러미[7]에 깔끔하게 단장한 후에 집을 나섰다.


...


"자자! 아까 말씀 드렸죠? 흐름잡이[8] 분들 말씀대로, 지금부터 1분 뒤에 물길이 바뀔 겁니다. 

미리 준비하시고, 빛조리개[9] 한 번 점검해 보시고, 곧 신호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시간에 따라 물길이 바뀌는 건 당연한 거고, 물길 따라 빛살[10]이 다르게 휘어지는 것도 당연한 거지만 그걸로 콤-퓨-타-[11] 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하지만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거겠지. 

근데 빛살 대신에 발광등으로는 안되나?


"또또, 뻘생각하지. 빛살이랑 발광등은 파장이 다르다고요 이 빡대가리년아."

"아씨, 독심술 쓰지 말라고."


옆에서 마르둑이 또 잘난 척 한다. 

저 생선, 진짜 등지느러미만 안 꼿꼿했어도[12] 아가미를 확 때려주는 건데. 

짧은 시간 뒤에[13] 다른 나가들이 나와 마르둑의 대화를 전해듣고 웃었다. 

그래그래, 실컷 웃으셔. 

솔직히 나도 내 무정란을 처음으로 유정란으로 만들 놈은 마르둑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나가들이 보기엔 오죽하겠어.

여튼, 곧 있으면 힘 쓸 차례니까, 준비하라고.

그리고... 즐거운 흐름으로 가득한 물살이 순식간에 흩어지고, 물길이 바뀌었다.


...


저 높은 곳, 두려운 곳에서 비치는 빛살은 빛조리개를 거치면 하나의 작은 점으로 모인다. 

나, 마르둑, 그리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하는 일은 이 빛점을 부품이 지나는 돌흐름[14] 위 정확한 위치에 비추어 잠깐씩 부품이 빛을 쬐게 하는 것.

공장장 말로는 집중된 광선이라면 짧은 노출만으로도 부품 안의 미생물을 활성시킬수 있다는데... 


그거 외계어지?

흔히 말하는, 수면 위에 산다는 인간종족들[15]이나 주고받는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인 거지?

여튼 이런 과정이 우리 나가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콤-퓨-타- 를 만드는 데 핵심이라니, 그저 신기할 노릇이다.

우리가 하는 건 그냥 돌흐름 위에 빛점 위치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 뿐이잖아?

아, 까먹을 뻔 했네.

우리집 쪽 회선에 불가사리가 얽혀서 회선이 좀 헤졌던데. 

자러 가기 전에 미리 보수해 달라고 말 해 놔야지.


...


16시. 오늘의 일이 끝났다.

그런데 하루는 왜 가장 어두운 시간에 시작하는 걸까?

빛이 비치는 시간에 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뭐, 생각일 뿐이다.

입 밖으로 내뱉었다간 마르둑이 또 매일 빛살이 비추는 시간의 차이가 어쩌고 빛살의 주기가 어쩌고...

그런 복잡한 말들을 주워섬기겠지.

사실, 아가미가 달아오를 정도로 그런 말을 하는 모습이 나름 귀엽지만.

아아... 이미 글러먹었네.


"우르."

"응."

"혹시... 지금부터 시간 있어?"

"알잖아. 예배 갔다가, 어시장[16] 들러야 하는 거."

"음..."


쿠후훗. 아가미 아래에 숨겨둔 반짝이, 너무 잘 보이잖아.

아무리 심해가 어두워도 그 정도는 대게도 알아보겠다[17].

아까부터 아줌마들이 괜히 마르둑을 응원하더라니 그런 이유였었네.

그래도, 나도 싫지는 않으니, 당연히 여지는 줘야겠지?


"예배, 같이 갈래? 너도 어차피 어시장 들러야 할테고. 뭐, 정말 시간 없으면 어쩔수-"

"아! 알았어! 같이 가자."


후후... 당연히 네가 와야지.

그런데 마르둑은 왜 그렇게 병적으로 예배를 싫어하는 걸까?


...


"푸른 피가 흐르는 혈족[18]이 흐름에 순응할 때[19] 붉은 피의 혈족[20]이 흐름을 거슬러[21], 어머니 바다에서 쫓겨나[22] 수면위로 추방되었으니..."


많이 들은 이야기지만 정말로 끔찍한 이야기다. 

뭐, 나도 어릴 적에는 모험심이라든지, 없지는 않았으니까, 빛살 따라 해수면에 올라보려 한 적도 있었어.

어른들이 왜 그러지 말라고 했는지 몸으로 깨달았지만.

빛살을 따라 수백핀[23]만 거슬러 올라도 아가미가 찢어질 듯 부풀어 오르는 걸 느끼는 데, 수면 위로 추방된 이들이 느꼈을 고통은 오죽했을까.


"어쩌면, 그들은 버림받은 이들이 아니라 개척..."

"아가리요 이놈아."


빠악-


아무리 목소리를 죽여도 흐름에 실린 소리는 다 번진다고요 이 빡대가리놈아.

다행히, 마르둑놈의 대가리를 후리는 소리가 먼저 퍼지고, 그 후에 주고받은 대화가 퍼져서 이놈은 빛살대[24]에 안 매달릴 수 있었다.


"사실은 일부러-"

"아가리요 이놈아."


빠악-


쫌! 

너 잘난 건 알지만, 우리 모두 깊은 바닥에서 흩어진 거품의 자식들[25]이잖아!

제발 저 불경스러운, 빛오름 족속[26]들이랑 같은 소리는 안 했으며 좋겠어.


...


예배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둘이서 함께하는 어시장은 즐거웠다.

생선보다 잡화가게가 더 많아 어시장이라 불리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지만, 옛적부터 어시장이라 불린 턱에 이름을 바꾸기 힘들다니 어쩔 수 없지.

그래. 즐거웠다. 

아니... 끝까지 즐거웠다면 좋았겠지만.


'위' 로부터 내리앉은 잡화들을 구경하던 중 마르둑은 지나가는 듯,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얼음물이 등골 스치는 소리[27]를 내뱉았다.


"역시, 난, 수면 위를 보고 싶어."

"야."

"전생의 기억도, 그로 비춘 현생의 삶도, 모두 나를..."

"야!"


않이 이 샛기야. 

멀쩡한 나가를 꼬셔다가 알집에서 애액이 질질 샐 정도[28]로 부풀어 오르게 만들었으면, 그 책임은 져야 할 것 아냐.


"너 나 싫냐?"

"...좋아해. 그렇지만,"

"아니 내 팅팅 불은 알집[29] 어쩔거냐고. 가더라도 씨는 뿌리고 가야지 이샛기야."

"하지만, 책임 질 수 없-"

"하이고, 산란장에 백만 넘게 뿌린 알 중에 겨우 천 개 깨어난 애기들, 그 중에 니 새끼는 알아 볼 수나 있고?"

"그, 우리만 따로 할..."

"됐고, 헛소리 그만 하고, 너 어차피 빛길따라 위로 올라갈 건 옛저녁부터 알았어. 그 전에 니가 꼬신 내 책임은 정액으로 갈음해야지? 따라와. 오늘 니 비늘 다 헤집고 꼬추 뜯어질 때까지 정액 뽑아먹는 날이다."

"이, 이런 건 순애가 아니야...!!!"

"갈!!"


...


바르둑이 수면 밖을 보겠다고 오름물길[30]을 탄지도 몇 달이 흘렸다.

아직도, 바르둑이 말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뭐, 나보다 똑똑한 애였으니 나름의 생각이 있었겠지.


올해 산란장에서 태어난 아이 중, 내 지느러미를 쏙 빼닮고[31], 바르둑의 비늘을 쏙 빼닮은[32] 아이가 있었다.

아이 또한 나를 알아보는 듯 쏜살같이 물살을 헤쳐 내게 안겼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마을 회관의 자명종이 두웅- 두웅- 하는 육중한 소리로 몸 전체를 울리면,

우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치장도 하지 않은 채 보육원으로 달려가 한 어린 나가와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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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발광등 - 심해 발광 미생물을 모은 친환경 등불. 일주일에 한 번, 먹이를 넣어주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2]미역천 - 수심 1000~2000m 부근에서 자생하는 미역의 가장 질긴 섬유를 씨줄과 날줄삼아 직조한 천. 

[3]은경 - 나가 장인들은 '뜨거운 물'을 극복하기 위한 수천년동안의 노력 끝에 해저 화산 주변에 사는 어류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온도를 이용하는 제련법을 개발했고, 다시 수백년동안의 노력 끝에 '뜨거운 돌'이 있는 공간을 가두어 금속을 제련하는 데 성공했다. 수면 위의 문명에서 만든 금속 제품과 비교하면 아직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다. 

[4]흑요경 - 해저 화산 지대 근처에서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흑요석을 연마해서 만든 거울.

[5]검은 심연의 나락속 깊은 곳에서 영원히 생피를 마시길 - 나가들의 종교관. 나가들의 탄생 설화는 아가미가 편안한 깊은 곳, 빛이 없는 곳에서 나가들이 탄생했다고 전한다. '검은 심연의 나락'은 구전으로만 전해지나 아직 대해의 모든 계곡속 깊은 곳을 밝히지 못했기에 그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생피'는 당연히 '물'보다 귀한 것이며 생명과 영혼의 근본이다.

[6]허리 아래 열 일곱 지느러미 - 나가의 허리 아래 지느러미는 열 일곱개 보다 적다. 가장 아름답게 꾸몄다는 나가들의 관용어구.

[7]산호 반지를 다섯 지느러미에 - 등허리, 왼허리, 오른허리, 아랫꼬리, 뒷꼬리 지느러미. 지느러미에 피어싱 할 수 있는 산호 반지는 나가 사회에서 가장 흔한 장신구이다.

[8]흐름잡이 - 해류의 흐름을 예측하고, 조율하는데 특화된 전문직. 매일 시간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서, 혹은 수면 위 큰 바람(태풍)이 불 때나 해저지진, 화산 활동 등에 따라 해류의 흐름은 천차만별으로 바뀌기 때문에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9]빛조리개 - 몇 백 미터나 되는 바닷물을 지난 태양광은 심하게 산란되는데, 이를 한 점으로 모아서 활용하기 위한 커다란 렌즈. 사실 렌즈만을 갖고 산란된 태양광을 활용하긴 어렵고, 렌즈 위에서 물길잡이들이 물길 흐름을 제어해서 빛을 렌즈 쪽으로 갈무리해 준다.

[10]빛살 - 나가들이 눈에 보이는 태양광을 일컫는 말. 물길을 거스르는 화살처럼 내리쬔다는 어원이 있다.

[11]콤-퓨-타 - 수중 문명에서 개발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한 형태의 전자기기다. 나가들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물건이 아니라는 음모론이 있다.

[12]등지느러미만 안 꼿꼿했어도 - 나가들이 거친 물살을 헤쳐나갈 때 가장 중요한 두 부분은 꼿꼿한 등지느러미와 탄력있는 꼬리다. 등지느러미는 나가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수컷의 성적 매력을 나타내는 신체 부위로 꼽힌다.

[13]짧은 시간 뒤에 - 수중에서 대화를 전달하는 매질은 공기가 아니라 물이다. 공기보다 느리게 전달되지만, 작은 소리도 주의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다.

[14]돌흐름 - 컨베이어 벨트. 저명한 나가 발명가인 고르래빠가 용암의 흐름을 보고 발명했다. 발명 당시에는 고르래빠의 실수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수십년 후 그 평가는 180도 뒤집혔지만...

[15]수면 위에 산다는 인간종족들 - 인간들이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며, 나가 종족들에게 수면 위에 인간이라는 종족이 있다는 사실은 정론이 되었다. 해저 아래로 침강하는 배와 그 속 인간의 시신, 놀라운 기물들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놓고도 인간의 존재를 부정할 나가는 없었다.

[16]어시장 - 나가어의 어시장은 사실 '어시장' 보다 '어장'에 가까운 말이지만, 정작 '어장'은 생선 파는 장터가 아니라 '사육장'이란 의미로 쓰이기에 부득이하게 '어시장'으로 번역하였다. 

[17]아무리 심해가 어두워도 그 정도는 대게도 알아보겠다 - 게의 눈이 나쁘다는 데서 비롯한 나가들의 관용어구. 사실 게는 밝고 어두운 차이를 잘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18]푸른 피가 흐르는 혈족 - 나가들의 혈액에는 헤모글로빈이 포함되지 않아 푸른 색을 띤다.

[19]흐름에 순응할 때 - 여러 심해 자연재해에 순응하고 적응한 모습을 포장한 종교적 미사여구.

[20]붉은 피의 혈족 - 육지 생물의 피가 붉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21]흐름을 거슬러 - 육지 생물은 바닷속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다. 종교적 미사여구.

[22]어머니 바다에서 쫓겨나 - [21]처럼, 종교적인 어구다. 나가들은 붉은 피와 털을 가진 동물들을 바다를 극복한 생물이 아닌, 바다에서 쫓겨난 생물들로 간주한다.

[23]핀 - 지느러미. 거리, 길이를 재는 나가들의 단위다.

[24]빛살대 - 해저 기후 예측을 위해서 일조량을 재는 나가들의 건축시설. 기술이 허락하는 한 수면에 최대한 가깝게 뻗어있기에 심해 생물인 나가들은 충분한 훈련을 받아야만 빛살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압력 적응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숙달된 흐름잡이라도 잠수병으로 죽을 수 있다.

[25]깊은 바닥에서 흩어진 거품의 자식들 - 나가의 종족 발생 신화에 기원한 말.

[26]빛오름 족속 - 대항해 시대 이후 잘 알려진, 해수면 위의 인간족을 멸시해서 부르는 말. 나가들은 빛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어둠을 바름, 빛을 그름으로 본다.

[27]얼음물이 등골 스치는 소리 - 얼음물은 극지방에서 흘러온 해류의, 섭씨 4도 이하의 차가운 내림물을 뜻한다. 물과 얼음의 비중 차이 때문에 심해에서 얼음을 볼 일은 없지만, 어떻게 얼음이라는 말이 관용어구로까지 사용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는지는 미지수.

[28]알집에서 애액이 질질 샐 정도 - 여성 나가가 성적으로 매우 흥분했음을 일컫는 말. 교양있는 나가가 사용할 만한 말은 아니다.

[29]팅팅 불은 알집 - 산란기 나가의 알주머니를 뜻하는 성적인 의미가 담긴 천박한 말.

[30]오름물길 - 해수면을 향하는 물길. 바다는 넓고, 물길은 순환하기에 내림물길이 있다면 오름물길도 있게 마련이다. 

[31]지느러미를 쏙 빼닮고 - 자신의 아이라는 관용어구.

[32]비늘을 쏙 빼닮은 - 자신의 아이라는 관용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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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 쓰는 것보다 주석 다는데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