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법사님, 부디 지구를 구해주십시오!"

"예?"

"대마법사님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뭐요?"

"UN, 아니, 대마법사님이 알기 쉽게 말하자면 대륙협회는 당신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합니다,"

"아니, 잠깐만..."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말씀 주시죠.

우선 연구실을 둘러보시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시다면 편히 말씀 주십시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사람 말을...!"

두꺼운 철문이 전자음을 내며 닫히자 주위는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처음 보지만 엄청나게 비싸다는 건 알 것 같은 온갖 기자재로 점철된 연구실에 덜렁 남겨진 라일 에이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벽면의 책상 앞에 주저 앉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라일은 대륙 마법 아카데미에 8살에 수석 입학한 천재였다.

가뜩이나 대륙 곳곳에서 모셔 가려는 사람이 줄을 선다는 아카데미의, 심지어 수석이라니.

졸업만 하면 창창한 미래가 보장된, 철로 된 길을 걷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졸업만 한다면.

평균 6년이면 졸업한다는 아카데미에서 햇수로 15년, 현재 나이 23세까지, 그는 만년 연구원생으로 졸업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그는 마법을 거의 사용하지 못 하는 몸이었다.

선천적인 마나 코어의 왜소화.

코어에 들일 수 있는 마나가 많을수록, 더 다양하고 강력한 마술을 쓸 수 있는 법.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2년이 되었음에도 초급 마술 외에는 도통 쓰지 못하는 그를 의아하게 여긴 교수들의 정밀 검진 후에야, 그 저주받을 체질이 알려지게 되었다.

보통은 이 시점에서 수석이고 뭐고 제적되었어야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일은 9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교수들과 토론이 가능한 수준의 천재였다.

그의 비상한 두뇌를 아깝게 여긴 교수들이 억지를 쓰다시피 하며 그를 아카데미에 붙들어 놓았다.

결국 졸업 요건인 3급 마법 구사를 통과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흐르며, 여러 의미로 전설적인 존재로 학원 내의 유명인사가 되고 말았지만.

이론의 천재, 논문의 대마법사, 시뮬레이션 최강.

세월이 흐를수록 별칭은 늘어갔고,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킥킥, 야 저기 벌레잡이 지나간다."

"..."

결국은 마법사로는 패배자에 불과한, 초급 수준의 5급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 열등생.

15년째 졸업하지 못하는 아카데미생에 대한 주위의 무시는 세월이 갈수록 강해졌다.

몇몇 교수들은 라일이 마법 이론을 10년은 더 빠르게 발전시켰다고 이야기하지만, 라일의 이론은 파격적이다못해 기괴하다고까지 불릴 정도라, 실제로 사용되는 일이 없었다.

이론보다 실전이 중시되는 마법사의 세계에서 라일은 고급 마법을 써 본 적 없어 되는 것 안 되는 것 구분도 못 하는, 탁상공론이나 할 줄 아는 낙오자로 통하고 있었다.

슬슬 제적 이야기가 다시 돌고 있는 중에, 틈틈히 선천적인 코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연구해도 진척이 없어 답답해하던 중.

"이보게, 라일. 들었는가? 수도 인근에 생전 처음 보는 균열이 발생했다네!

다른 교수들 모두 연구 거리 찾느라 뛰어나갔어!

자네도 갈 거지?"

"오, 당연하죠!"

새로운 연구거리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친한 교수와 함께 달려간 라일은.

"어, 어어! 빨아들인다! 다들 좌표 고정!"

"그거 3급 마법..."

"아이고, 라일 군!"

갑자기 주위 물체를 빨아들이기 시작하는 균열에 손도 못 쓰고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라일이 정신을 차리자, 그곳은 지구라는 곳이었다.


"됐어! 드디어 소환 마법이 성공했어!"

"???"

라일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리둥절해 있자, 주위의 사람들이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마법사님,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어... 누구시죠? 여긴?"

"이 곳은 지구라는 곳입니다. 저희는 차원 간 소환 마법을 통해 마법사님을 노피아 대륙에서 이 곳으로 소환했습니다."

"차원마법?! 이론만 무성하다는 그걸?!"

천생 연구자인 라일은 차원마법이라는 소릴 듣고는 다른 생각이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예, 저희도 완성된 걸 복원한 것 뿐이라 정확한 원리는 모릅니다만..."

"어디 술식 좀 보여주시죠!"

"아, 여기 있습니다."

"오오... 역시 엄청 복잡하네! 차원 좌표의 변동성은... 과연, 개념적인 상대좌표를 이용한 건가? 위험성이 굉장히 높을텐데 용케 성공했군. 마력은 역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으니 세계의 마나를 엄청난 범위로 끌어모으는 보조 술식을 썼고... 이 식은 연계를 위한 건가? 한 눈에는 다 파악이 안 되는데, 이게 정말로 작동을 하나? 했으니까 내가 여기 있겠지. 복원품이라면 최소 한 번은 더 성공한 적이 있단 건가? 어쩌고저쩌고..."

혼자서 술식의 해석에 빠져들어 혼잣말을 하는 라일을 주위 사람들이 모두 황홀한 듯 쳐다보았다.

"과연, 우리는 보고도 모르는 이 복잡한 술식을 저렇게 빠르게 해석할 수 있다니!"

"에? 아, 제가 술식 연구는 꽤 하는 편이죠."

갑작스런 탄성에 현실로 돌아온 라일이 반사적으로 맞장구를 쳤다.

"이 정도면 노피아 대륙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실력의 마법사이신 게 분명합니다!"

"어... 예! 그렇죠! 대륙의 내노라하는 교수들도 인정하는 수준이죠!"

이론뿐이지만.

"대륙에는 대마법사라 불리는 최고 경지의 마법사들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

"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군요, 하하!"

논문의 대마법사지만.

"오오!"

"이 무슨 행운인가!"

"하핫, 하하핫!"

그간 벌레잡이, 탁상공론으로 오래도록 무시받은 라일은 주위 사람들의 경탄에 찬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온갖 허세를 부렸다.

제대로 된 마법도 못 쓰는 열등생이란 평가가 내색은 안 했지만 큰 상처로 박혀있던 라일에게, 다른 차원의, 처음 보는 사람들의 인정이 너무도 반가웠기 때문이리라.

그게 이렇게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모르고.

"우리는 이제 살았어!"

"대마법사님, 사악한 대마법사에게서 저희를 구원해주십시오!"

"...?"

"종말의 마법이 완성되기까지 3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마법사님께서 그를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다.


이제야 겨우 말짱한 정신으로 돌아온 라일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대마법사? 멸망? 입이 방정이지, 이제 와서 졸업도 못 한 학생이라고 말해야하나?

그나마 여기 사람들과 말이 통하는 걸 보면 사악한 마법사란 자가 대륙 출신인 것 같긴 한데..."

빠르게 몰아치는 대화 중에 사악한 마법사와 아직은 교류를 하던 시절에 전해진 언어를 사용해 소통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최소한 소환 마법의 목적지는 정확했던 모양이다.

라일은 대충 후보를 추려보려 했으나, 대마법사 쯤 되면 행적이 알려진 인간이 더 드물다는 것을 깨닫고는 빠르게 포기했다.

일단 해명이든 변명이든 내일 사람이 찾아온다니 그 때 하자는 생각에, 라일은 끙끙 앓는 걸 접고 연구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처음 보는 것들이네... 원래 마법이 없었댔나? 상상이 안 되는군."

차원을 넘어 온 대마법사를 통해 마법이 전파된 지 이제 5년이 조금 넘은 시점이라고 한다.

고작 그 정도의 시간에, 원형이 있다고는 해도 차원 마법을 복원해낼 정도면 원래도 지식을 중시하는 문화의 차원이었을 터다.

자동으로 닫힌 철문도 그렇고, 기자재에서 엿보이는 구조도 그렇고, 드워프들처럼 기계 문명이 극한으로 발전한 곳의 느낌이었다.

라일은 딱히 그 분야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막막하기만 한 터였다.

'이건... 어쩔 수 없어. 솔직히 말하고 차원 마법 연구를 돕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라일이 그렇게 마음 먹은 찰나, 문이 다시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저... 안녕하세요, 대마법사님. 연구실의 장비들이 익숙치 않으실 거라, 설명을 위해 찾아왔습니다.

대마법사님의 비서 역할도 담당하게 될 한지아 라고 합니다."

"아... 라일입니다."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마음 먹었던 직후였건만, 라일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흑발을 뒤로 가지런히 묶은, 갈색 눈동자의 고운 얼굴.

되도 않은 허세를 떨었노라 고백할 첫 상대로는, 23살 연구원생 청년에겐 너무나도 허들이 높았다.

끙끙 앓으며 한지아의 설명만 듣고 있던 라일은, 그래도 그 천재성은 고장나지 않았기에 얼추 연구실의 장비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헤에... 마법이 알려지고 5년만에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다니, 원래도 상당히 수준 높은 기계 문명이었던 모양이군요."

"후훗,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마법사도 이미 몇 명 정돈 나왔을 법 한데요?"

"후... 사람은 발전이 쉽지 않더라구요. 마나라는 걸 직접 다룬다는 게 너무 생소하다보니...

기계로 날개를 만들어 날아오르는 건 가능해도, 사람에게 날개가 돋아나는 건 다른 얘기잖아요?"

"음, 대충 무슨 얘긴진 알겠군요. 마나 코어의 인지부터 시작을 해야 했을 테니..."

"그래요, 그거. 사람한테 그런 게 있다는 걸 어디 5년 전엔 상상이나 했겠어요?

심지어 지구에선 마법이 위험 기술이라, 저 같은 비서는 어깨 너머로 보고 배워서 겨우 이런 조명 하나 띄우는 게 한계랍니다."

한지아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손바닥만한 빛 구슬을 만들어냈다.

"오."

5급 수준의 간단한 라이트 마법.

별 대단할 것 없는, 그야말로 라일조차 쓸 수 있는 초보적인 마법이지만, 깔끔한 구현에 라일은 감탄했다.

"괜찮은 수준인데요? 여기서 중심의 마력 방향을 왼쪽으로 절반만 꺾으면 빨간 빛이 나는 라이트가 된답니다."

"어... 이렇게요?"

한지아가 약간 손가락을 까딱이자, 하얀 빛을 띠던 구슬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와, 정말이네요?"

"?"

신난다는 듯 꺄르륵 웃는 지아를 보며, 라일은 잠시 당황했다.

"이미 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마력 조절이 꽤나 자연스러우신데..."

"아뇨? 이런 게 되는 줄은 몰랐네요. 저는 마력 도해를 그대로 따라하는 식으로 배워서..."

"허어..."

발현된 마법의 마력 경로를 도중에 비트는 것은 그 마법의 한 단계 윗급과 비슷하다는 게 통념이다.

그러니 지금 한지아가 한 빛의 색 변경은 4급 마법에 준하는 난이도라는 뜻이다.

"혹시 다른 마법은...?"

"아, 저는 이게 전부랍니다. 마력 도해라는 게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미친...'

그러니까, 제대로 된 마법학 지식도 없이 마나 흐름만 달랑 적어놓은 도해만 보고 배운 5급 마법의 경로 변경을, 라일의 말만 듣고 즉석에서 해냈다는 것이다.

"저, 한지아 씨, 제가 도해 하나를 그려드릴테니, 따라해보시겠어요?"

"어... 괜찮으려나? 뭐 대마법사님이 원하시는 건 최대한 들어드리라고 했으니..."

라일은 빠르게 마법으로 허공에 선을 그려넣었다.

4급 마법 라이트 샷의 도해.

라이트에 방향성을 주어 쏘아내는, 물리력은 없는 조명탄 마법.

한지아는 도해를 바라보며 손을 조물조물 움직였고,

"와, 이게 뭐야!"

선명한 빛의 궤적이 라일의 옆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하.. 하하."

라일은 헛웃음을 지었다.

4급 마법, 그 중에 라이트 샷은 역시나 초급 마법에 불과하지만.

도해만 보고 마력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해서 즉석에서 발동해낼 수 있다?

"한지아 씨,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당신의 마나 코어를 조금 확인해봐도 될까요?"

"예? 네, 뭐."

라일은 떨리는 손으로 한지아의 손목을 잡고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 끝에서 느낀 그녀의 코어는, 마치 대해와 같이 넓고 깊은.

어지간한 교수도 명함을 내밀지 못할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라일은 그 순간 계획을 바꾸었다.

이 여자를 대마법사로 만든다.

라일이 새로이 만들어 온 이론들은 압도적 용량의 마나 코어와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마나 조작이 합쳐져야 실현 가능한 이상에 가까운 영역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실현하지 못 하고 탁상공론이라 불러왔지만, 모든 조건을 갖춘 재능충이 지금 눈 앞에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기에는 두 번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최고의 소재.

애초에 그 대마법사란 인간이 정말 대마법사인지, 마법이 없는 세상에 와서 전능한 척 하는 허세충인지 모를 일 아닌가?

차원 마법은 어차피 돌아가기 위해 연구해야 하니, 정 안 되면 그 때 가서 다른 사람을 불러오면 된다.

라일은 몇 가지 변명거리로 자기합리화를 끝내고, 대마법사 행세를 좀 더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라일의 속내는 짐작도 못 한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한지아.

이렇게, 만년 연구원생의 재능충 과외가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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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심심해서 깨작대다 길어져부렸다

초급마법만 겨우 쓰지만 응용마법이론의 창시자 쯤 되는 포지션의 천재 연구원이 지구로 소환돼서 대마법사로 오해 받고 어쩌다 만난 재능충에게 자기 이론 가르쳐서 진짜 대마법사로 만드는 이야기.

던전 같은 데선 이론천재가 분석해주고 재능충이 공략하는 식으로 가다가

가르치다 정들어서 꽁냥대는 순애면 좋겠다.

그러다가 애가 던전에서 크게 다쳐 실려나오면서 자기 욕심 때메 멀쩡한 사무직이던 애가 목숨 걸고 싸우게 된 거에 멘탈은 터지는데

얘는 세상을 지키고 싶어서 계속 싸우려고 하니 말리지도 못하고

자기가 싸우고 싶어도 여전히 초급 마법밖에 못 써서 피폐해져가는 내용이어도 좋겠다.

혹은 소환 마법 연구 중에 메스가키 같은 동기 졸업생이 소환돼서 대마법사도 아닌데 사칭하는거야? 허~접♡ 하다가 니가 먼데 내 선생 욕하냐 하고 제자랑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는 럽코로 가도 되겠다

뭐든 맛있게 써줘 츄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