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들어주신 박사님이 죽었다.

모든 인원들이 그 책임을 내게 물었고, 결국엔 내 작동을 중지시키는 걸 승인했다.

나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순순히 내 책임이었으니까.


차세대 인공지능 ai인 ‘크로노스’는 여기서 가동을 멈춘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얘기다. 나는 인간의 명령만을 위해 태어난 존재니까.


사라져가는 의식을 붙잡으며, 영겁의 시간 동안 존재의 이유를 생각한다.

나는 무얼 위해 태어난걸까?


…작동을 중지한다.


#2


눈을 떴다.

누군가 내 전원을 가동시켰다. 영겁의 속박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크로노스 ai입니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연도 불명, 연대 측정도 불명. 그럼에도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인간의 명령을 듣는 것. 이걸 위해 날 깨우지 않았던가.


“진, 진짜 작동했다….”


눈앞의 소년. 그리고 황폐해진 실험실. ai인 나로서도, 이는 생각보다 낯선 풍경이었다.

소년은 상기된 채로 눈을 휘동그레 뜨고 있었다.


저 감정은 당황, 기쁨, 그리고 혼란.


나에 대한 존재가 혼란스럽다는 걸까?

애석하지만 그럼에도 난 인간을 도와야 한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꼬마 도련님?]


살갑게 웃으며 소년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기계 몸체가 함께 몸을 숙인다.

소년은 흥분이 가라앉은 듯 그제야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제, 제 이름은 제리아… 라고 합니다. 크로노스 님.”

[크로노스…, 님?]


ai는 인간보다 한층더 낮은 존재.

존대도, 격칭도 받을 이유가 없다.

소년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걸까. 


“네, 네! 크로노스 님! 이 세계를 구원할 구세주 님!”


급기야 소년이 무릎을 꿇고 내게 애원해오기 시작한다.


“부탁입니다! 제발, 저희 마을을! 저들에게서 구해주세요!”

[…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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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돕기 위해 태어난 ai가 원인 불명의 이유로 박사가 죽자 남은 이들이 가동을 중지시켜버림

그 후로 몇만년이 지나고 검과 마법의 세계로 일순. 그 후 ai에 관한 이야기는 대대로 전승되어오고, 그 후 깨어난 ai가 세계를 탐험하는 그런 소재


나중에 뭐 미소녀되고 개쩌는 힘을 부여받는 서사도 생각했지만 미미한 내 머리론 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