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저는 솔직히 용사님들과 함께하기엔 실력이 부족해서, 마왕 공략때도 별 도움도 안 되었고..."


"그런 걱정 하지 마세요. 짐꾼씨는 충분히 강한걸요. 어지간한 몬스터는 혼자서도 이기시잖아요."


"그치만, 제가 몬스터 한 마리 잡을 시간에 용사님들은 던전 하나를 통째로 소탕하시잖아요... 게다가 저는 보스급 몬스터는 이기지도 못하고..."


"저희가 도착할 때까진 버틸 수 있죠.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요? 짐꾼씨는 전투원이 아니잖아요."


"그, 그것도 그래요... 이제 저같은 짐꾼은 필요 없으시지 않아요? 용사님들보다 키도 작고 힘도 약한데다가, 스킬이라곤 파티원 경험치 증가밖에 없는 제가 매번 제가 양방향 귀환 스크롤 쓰는 것도 낭비잖아요. 용사님들은 스크롤 없이도 마왕성에서 수도까지 1분이면 오가시는데..."


"낭비라니요. 필요한 투자인걸요. 짐꾼씨가 없다면 물품을 사는 데에만 저희의 시간이 엄청나게 낭비될 거에요. 저희는 수도에 갈 때마다 사람들한테 둘러 쌓이잖아요."


"저, 저도 그런데... 어제만 해도..."


"네? 뭐라고요?"


"아, 아니, 그... 그러니까, 저는..."


"짐꾼씨."


"네, 네?"


"정말로 파티 나가고 싶어요?"


"아, 그... 그게..."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 해봐요. 정말로 우리 파티를 나가고 싶어요?"


"... 네..."


"... 하아..."


"요, 용사님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냥 제가 용사님들이랑 같이 있기엔..."


"짐꾼씨 어제 공주님이랑 만났죠."


"어, 어떻게..."


"온 몸에서 그 쌍년... 크흠, 공주님의 향수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그럴리가 없는데... 오자마자 목욕을..."


"났다고요."


"힉!"


"그래, 그 여자가 뭐라고 말 했어요?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파티 나가고 싶다고 말하래요?"


"어..."


"맞나보네. 그 년이 이렇게 짐꾼씨 머리를 살살 쓸어 넘기면서, 세상 착한 사람인 것마냥 가식 잔뜩 들어간 미소로 살살 꼬셨죠?"


"아, 으..."


"조금 더 맞춰볼까요? 어제 짐꾼씨가 수도에 갔을 때, 가자마자 사람들한테 둘러쌓였죠?

그래서 난처해 하고 있을 때 공주가 보낸 사람들이 그 속에서 빼내줬고요.

그러고선 아마 공주가 있던 마차 안으로 들어갔을거고, 그대로 왕성으로 가셨겠죠.

왕성에 도착한 후에는 공주가의 방에서 공주가 준비한 차와 과자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을 거예요.

처음엔 저를 포함해서 성녀와 마법사가 잘 지내는지 물어보고, 짐꾼씨는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봤겠죠.

짐꾼씨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겠지만, 분명 그 여자는 짐꾼씨가 어딘가 힘들어 보인다고 말하면서 슬쩍 떠봤겠죠.

그러고선 걱정하는 표정으로 짐꾼씨한테 다가가서 손을 잡고 자기한테는 전부 다 털어놔도 된다고 말했을 테고요.

우리 착하고 순진한 짐꾼씨는 그 말에 담긴 속뜻도 모르고 솔직하게 저희랑 지내는게 조금 불편하다고 말했을 거예요.

그 여우같은 년은 짐꾼씨한테서 자기가 원하는 말이 나오자마자 부담감이 크다면 파티에서 나오는게 서로에게 좋을 거라고 했겠죠.

짐꾼씨가 진심을 담아서 저한테 파티에서 나가고 싶다고 말하면 짐꾼씨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보내줄 거라고요.

자, 여기까지 어제 있었던 일과 다른 게 있나요?"


"... 아뇨..."


"그럴 줄 알았어요. 짐꾼씨, 제가 분명 저번에 말 했죠. 그 여자 말 믿지 말라고."


"죄, 죄송..."


"저희가 왜 모든 길드에 제가 직접 짐꾼씨를 추방하겠다고 선언하기 전에는 짐꾼씨의 탈퇴 요청을 받지 말라고 했는지 벌써 까먹은 건 아니죠?

그 망할 년은 마왕을 처치한 공을 인정한다는 핑계로 짐꾼씨랑 결혼하려는 것 뿐이에요.

이 남자 저 남자 재가면서 시간 끌다가 혼기를 놓쳐버려서, 이번이 진짜로 마지막 기회일거라 생각하고 짐꾼씨를 노리는 거라고요.

용사 파티의 일원이라 명성은 높지만, 사회 경험은 적어서 순진하고, 성격도 착해서 만만하니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남편감이라고 여기는 거죠.

짐꾼씨를 파티에서 빼내려는 것도 저희가 그 속셈을 간파하고 공주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이제 마왕을 잡았으니 더이상 용사 파티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면서 멋대로 우리를 해산시키려고 했었잖아요?"


"그, 그건 오해라고, 공주님이..."


"당연히 오해라고 하겠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왜 굳이 우리의 공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을까요?

특히나 짐꾼씨는 평민인데다가 고향도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농촌인데 말이에요.

아무리 막대한 보상을 준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짐꾼씨가 그 재산을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까요?

아뇨, 분명 짐꾼씨의 명성과 재산을 노리고 달려드는 나쁜 사람들에게 야금야금 뺏겼을 거예요.

특히나 짐꾼씨는 착하니까 더더욱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속아 넘어갔겠죠.

그렇게 짐꾼씨가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때 공주가 짠 하고 나타나서 짐꾼씨를 채 갔을 거예요."


"..."


"못 믿으시겠어요?"


"아, 아뇨, 그냥..."


"짐꾼씨는 순수하시니 제 말을 못 믿으셔도 이해해요.

그래도 제가 정말로 짐꾼씨를 위해서 짐꾼씨를 우리 파티에 계속 묶어두고 있다는 것만큼은 믿어주세요."


"... 네. 믿을게요."


"고마워요.

아, 그리고 오늘 한 얘기는 우리만의 비밀로 해요.

안 그랬다가는 또 성녀가 짐꾼씨를 교회 지하에 가둬두자고 날뛸지도 모르니까요.

아니면 마법사가 왕궁을 통째로 태워버리겠다고 뛰쳐 나갈수도 있고요."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이만 가보세요. 오늘은 다른 일정 없으니까 푹 쉬시고요."


"네, 용사님도 쉬세요."



끼이익- 탁.



"... 음침한 마법사랑 능구렁이 같은 성녀 두 사람만으로도 짜증나는데, 잘난 거라곤 젖탱이밖에 없는 공주까지 갑자기 튀어나와서 지랄이네...

확 그냥 오늘 밤에 세 사람 다 목을 따버릴까?


... 아니야, 그럼 짐꾼씨가 싫어하겠지.

아, 진짜, 짐꾼씨는 사람 마음도 모르고 나날히 꼴려지기나 하고...

두고 봐, 반드시 따먹고 말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