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1 비 내리던 날


 비 내리던 날, 제이콥은 마을의 작은 술집에 앉아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비에 의해 깨끗이 반들거리는 빛이 모든것을 더 선명히 보여줬다. 그의 머리속에서 모든것이 점점 뚜렷해지며 흘러내리는 비가 피처럼 겹쳐지며 잊혀지지 않는 살인의 기억을 되돌리려 하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엘라가 들어섰다. 제이콥은 그녀를 쳐다보고 기억을 멈추고 그녀에게 집중했다. 조심스러운 눈빛의 그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듯 보였다.

 그녀는 재빨리 바에 앉았는데 그게 하필 제이콥 옆자리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침묵이 흐르고 제이콥이 그녀를 보며 말을 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이콥이라고 하는데.. 새로 오셨나요?"


엘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아침에 도착했어요.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아! 저는 엘라라고 해요."


그녀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채 아래를 쳐다봤다. 제이콥은 잠시 그런 그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새로 시작할때 비는 정말 좋죠. 싹 씻겨 나가고 시원해지는 느낌이니까요. 새출발하러 오셨나요?"


엘라는 깊은 숨을 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네. 그렇게 봐도 되죠.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왔어요."


제이콥은 그녀의 말에서 공감을 느꼈다. 자신도 비슷한 이유로 이곳에 왔으니까. 그는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공유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과거를 떠나서 새출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제 생각에 여기는 그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곳 같구요."


그녀는 제이콥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둘 사이의 공통점이 그녀를 조금 더 안심시켰다.


"그래요. 제이콥씨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길 바래요. 여기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를..."


제이콥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비가 때로는 우울한 기분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국엔 꼭 필요한 변화죠. 마치 지금 우리처럼."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외부 세계의 소음이 사라지고 비의 노래만이 그들을 감싸 안는 듯했다. 이 마을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서로의 존재가 가져다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그들 사이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엘라가 다시 말을 꺼냈다.


"비는 정말 마법 같네요. 모든 것을 변화시킬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제이콥씨도 그렇게 느끼시나요?"


제이콥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그렇죠. 비는 우리에게 새시작과 희망을 줍니다. 엘라씨와 우리 모두에게 말이죠."


그들의 대화는 계속되었고 비가 내리는 소리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약속과 같았다. 제이콥과 엘라는 서로 다른 과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통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기로 각자 생각했다. 비의 계절은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회를 가져다주었고 둘은 이제 그 기회를 함께 탐색하게 될것이다.


 술집의 바텐더인 마틴은 조금은 뻣뻣한 태도와 반듯한 자세가 첫인상을 지배했지만, 사실 재치 있고 유머러스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은 삶의 여유와 경험을 반영하며 빛났다. 오랫동안 술집을 운영해 온 그는 이곳의 역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다.


 바 앞의 두 젊은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있을 때 마틴은 조용히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멈추자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비오는 걸 보니 여러분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군요. 비가 희망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가끔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기도 합니다."


제이콥과 엘라는 놀란 듯 바텐더를 바라보았다. 마틴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그렇죠, 비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죠.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가뭄도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겁니다. 마을이 처음 세워졌을 때부터 그랬고 우린 그때마다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가볍지만 눈빛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 엘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뭄이요? 그때 어떻게 극복했나요?"


마틴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가 대답했다.


"말하자면 그때마다 서로 단단히 의지했죠. 어려운 시기에는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려는 노력도 계속했구요. 여기 새로 오신분들 모두 그렇게 마을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제이콥은 생각에 잠겼다.

"서로 의지한다... 가뭄을 이겨내는 방법이될 수 있겠네요."


마틴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러분 두분 사이에 이미 그런 의지의 싹이 트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마을은 언제나 새로 오신분들을 환영하니까요. 여러분의 새로운 시작이 여기서 잘 이뤄졌으면 합니다."


그의 말은 다정하고 따뜻했다. 제이콥과 엘라는 서로를 바라보며 희망찬 미소를 나눴다. 마틴의 이야기는 그들에게 이 마을에서의 새로운 희망을 느끼게 해주었고 앞으로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밖에서 비가 계속 내렸지만 술집 안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친근했다. 마틴은 제이콥과 엘라에게 마을의 이야기를 더 해줬고 이야기는 두 사람에게 이곳에서의 삶이 어떤것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날 밤, 두사 마을의 일원으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마을은 언제나 새롭고 젊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서부개척시대의 마을은 그렇게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열려있었다.


밤이 깊어가며 술집문은 끝도없이 열리고 닫혔다.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대화가 공간을 채웠고 따뜻한 불빛은 밖의 차가운 공기와 대비되고 있었다. 마틴은 반듯한 자세와 좀 뻣뻣한 태도를 유지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의 재치 있는 농담은 때때로 술집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의 원인이 되곤 했다.


제이콥과 엘라의 대화가 점차 깊어만 갔고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강해지는것 같았다. 그때 술집 한쪽 구석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의 말썽꾸러기로 알려진 주정뱅이 토마스가 또 다시 술에 취해 자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마을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메시지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야! 다 들어봐! 들어봐! 쫌! 이번 놈은 달라. 이번엔 정말 심할 거야... 우리 모두 다 죽을 거라고! 이전의 가뭄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번엔 더 심한 놈이 온다고!!"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말리려 했지만 토마스는 도대체 멈출 생각없이 떠들어댔다. 그의 두려움과 절망이 술집의 따뜻한 분위기를 망쳐버렸다. 그리고 마틴이 조용히 나서서 상황을 진정시켰다.


"알았어! 알았어. 토마스. 다들 듣고있어. 그래. 그래도 여긴 새출발을 꿈꾸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쉼터잖나. 자네도 우리도 가뭄 같은건 옛날에도 이겨냈고 이번에도 이겨낼거야. 걱정마."


 마틴의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었고 주정뱅이 토마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마틴을 바라보았다. 노련한 바텐더는 다시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밖에 좀 봐바. 비가 오잖나. 그리고 우린 필요한게 다- 있어. 우린 잘버텼고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어."


술집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마틴의 말은 마치 마법처럼 공간을 가득 채웠고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제이콥과 엘라는 이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의 말에는 진실과 경험이 담겨 있었기에 그의 진정성이 사람들 마음에 깊이 울려퍼졌다.


 그렇게 토마스는 결국 조용해졌고 마틴은 그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술집의 분위기는 다시 따스해졌고 사람들은 다시금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제이콥과 엘라는 이때 이 술집이 특별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마틴과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이곳은 불안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곳에서의 삶이 쉽지 않겠지만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밤이 깊어가며 마을은 고요함에 휩싸였다. 술집의 불빛은 하나둘 꺼지고 제이콥과 엘라는 따뜻한 작별 인사를 나눈 후 각자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틴은 가게 안팎을 천천히 정리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술잔들을 닦고 의자들을 테이블 위로 올리는 동안 그는 이 날의 대화와 웃음을 되새겼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가게 문을 잠그려는 순간 토마스가 그의 옆에 조용히 다가왔다.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분명한 절망을 담고 있었다. 토마스는 마틴의 팔을 잡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마틴! 마틴! 나... 이전에 있었던 가뭄을 기억해... 나는 그때... 나는 죽었었어. 하지만 내가 어떻게 여기 있지?? 이건 말도 안 돼. 어째서 내가...나는..."


마틴은 잠시 머뭇거리며 토마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토마스가 언급한 과거의 사건을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어째서인지 머리속이 텅 비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예전 기억을 찾아내려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는게 없었다. 잠시뒤 그는 토마스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미안하네. 나도 기억나는게 없어. 근데 자네가 여기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괜찮아. 자넨 살아있잖나. 응? 가서 좀 쉬게."


토마스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과 혼란이 가득했다. 그는 마틴의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손에 들린 술병을 바라보며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모습은 점점 어둠에 흡수되어 사라졌고 마틴은 그 자리에 홀로 남겨졌다.


마틴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토마스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는 토마스가 겪고 있는 고통과 혼란을 이해하려 애썼봤지만 결국에는 그저 한숨을 쉬고 가게문을 잠궜다. 그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토마스의 말을 곱씹었다. 여기, 이곳에서 토마스가 겪고 있는 혼란과 고뇌는 결국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마틴 자신도 새로온 제이콥이나 엘라를 보며 마을의 역사네 뭐네 말했지만... 도무지 전에 겪었던 가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가뭄을 알고 있는거지?


토마스의 괴로움과 고독한 싸움은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마틴은 그날 밤, 토마스뿐만 아니라 이 마을의 모든 이들이 겪게될 내면의 싸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들이 겪게될 각자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 마을의 어두운 진실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틴의 마음을 짓눌렀다.


술집의 따스한 불빛이 점점 멀어지면서, 제이콥의 발걸음은 그와 반대로 어둠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밤은 깊었고 제이콥의 머리속은 고향에서 벌어진 일들로 꽉 차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제이콥을 완벽하게 닮은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도플갱어, 혹은 복제체라 불리는 존재는 제이콥에게 마법같은 일이면서 동시에 무서운 이야기에서 튀어나온 악몽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를 더 편리하게 해줄거라 기대했었다. 대신 학교를 가고, 숙제를 대신 해주고, 하기 싫어일은 모두 떠맡겨 버렸다.

그러나 그 편리함은 곧 치러야 할 대가와 함께 찾아왔다. 복제체는 학교에서 제이콥을 괴롭히던 불량생 중 한 명의 팔을 부러뜨렸고 그렇게 병원으로 실려가는걸 보게 되었다. 그리고 제이콥은 자신이 불러온 이 존재의 위험성을 깨닫게 되었다. 복제체를 다시는 불러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제이콥은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괴롭힘을 일삼는 상사는 그의 인내심을 한계까지 몰아붙였고 그렇게 사고가 터졌다. 그날 저녁, 제이콥이 깊은 분노와 절망 속에서 괴로워 했을때 그도 모르게 복제체가 다시 나타났다. 그날 제이콥의 상사는 목이 꺽여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스스로 에게 아무리 변명해봐도 그 살인은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던 깊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복제체를 통해 표출된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복제체는 단지 제이콥의 살인충동을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었다.


이제 숙소에 도착한 제이콥은 침대에 앉아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의 머릿속은 혼란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인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복제체가 그의 분노를 대신 표출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그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이콥은 침대에 누워 이마에 손을 올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때 그 사건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그리고 이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했다.


제이콥은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내면은 여전히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이제 자신과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그 어떤 비밀이나 고통도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는 깊은 자기 성찰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 여정의 끝에서 그가 발견할 진실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이제 그 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엘라는 숙소의 작은 침대에 몸을 파묻은체 찬 밤공기에 몸을 떨었다. 불안과 공포가 그녀의 마음을 온통 채웠다. 아버지가 자신을 마피아에게 팔아넘겼다는 기억은 그녀의 정신을 사로잡은 악몽처럼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아버지는 두려움에 떨며 집으로 끌려왔다. 마피아들은 차가운 눈빛으로 아버지를 내려다봤고 그들중 하나는 무심하게 아버지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어이! 빚을 갚을 시간이야!"


엘라의 아버지 귀에 대고 마피아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 마피아의 목소리가 집안을 메웠다. 마치 그녀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잖아. 응? 니딸만 우리한테 줘. 그러면 빚도 끝난다고. 흐흐."


엘라의 심장은 그 말에 멎는 듯 했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문틈 사이로 이 장면을 목격했다. 아버지의 눈에서는 절망과 슬픔이 비쳤지만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푸줏간 백정앞 돼지처럼 덜덜 떨고 있었을뿐.

엘라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

결국 마피아들은 그녀를 거칠게 붙잡아 마차에 태웠다. 목적지는 마피아들이 운영하는 사창가였다. 마차는 어둠 속을 질주했고 엘라는 절망 속에서 기적을 기도했다.


그것은 곧 도적 떼의 형태로 나타났다. 마차가 한적한 숲길을 지나가던 중 매복 공격에 마주쳤다. 마피아들과 도적들 사이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고 혼란 속에서 엘라는 도망칠 기회를 찾았다. 그녀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숲속으로 달렸다. 뒤를 쫓는 이는 없었다. 그녀는 숲속을 헤매다가 마침내 한 산길에서 노부부에게 발견되었다.


노부부 마리안느와 조르주는 그녀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마치 모든걸 알고 있다는듯 그녀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었다.


"여기 안전할 거야, 우리와 함께 있으렴."


마리안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엘라는 그들의 집에서 몇 주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그녀는 마음의 평화를 조금씩 되찾았다.


"니가 원한다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어. 엘라."


어느날 조르주가 엘라에게 말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마을에서 새출발 할 수 있단다. 아무도 너의 과거를 모를 거야. 너만의 길을 찾으렴."


엘라는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준 노부부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다. 그들의 도움으로 그녀는 결국 이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여기 숙소의 침대에 누워 그녀는 그날의 기억을 회상했다. 아버지의 배신, 마피아의 위협, 도적과의 만남, 그리고 마침내 찾은 평화. 모든 것이 그녀를 여기 이 순간으로 이끌었다.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지만 그녀는 이제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엘라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다짐했다. 과거는 그녀를 옳아매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새벽의 안개가 걷히고 태양이 마을 위로 부드럽게 떠오르면서 평화로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서서히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때, 마을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는 이국적인 멜로디가 모두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 음악은 마을에 평소 들을 수 없는, 멀리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들렸다. 리듬은 흥겨웠고, 멜로디는 마음을 들뜨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궁금증을 안고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래 제목은 러시안 폴카.


그곳에는 한 이국적인 외모의 아이스크림 장사꾼이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마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국적인 노래를 틀어놓은 작은 수레를 끌고 온 그는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입고 있었고 수레에서는 다양한 색깔의 아이스크림이 눈부시게 빛났다.


"아이스크림!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여기 있어요!"


그의 목소리는 마치 멀리서 온 손님을 환영하는 듯 했다. 그의 미소는 친절했고 눈빛은 따뜻했다.


이 장면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제이콥과 엘라도 사람들 사이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엘라는 제이콥에게 속삭였다. 


"아이스크림? 정말 이상한데 완전 맛있어보여요. 저는 아이스크림 장사꾼은 처음 봐요."


제이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두요. 근데 저는 기분전환이 필요한데,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어볼까요?"


제이콥의 말에 엘라는 제이콥의 등을 힘차게 밀어 아이스크림 장사꾼쪽으로 향하게 했다.

두 사람은 수레 앞으로 다가갔고 아이스크림 장사꾼은 환영의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어섭쇼! 여기 와서 이 먼 나라에서 온 아이스크림의 맛을 보세요. 어떤 맛을 원하시나요?"


엘라의 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맛이 여러가지에요?!"


엘라는 세상 심각하게 신중한 얼굴로 하나를 선택했고, 제이콥도 따라서 하나를 골랐다.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그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아이스크림을 맛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다니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어른들도 그 이국적인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다. 아이스크림 장사꾼의 등장은 그날 마을에 작은 축제 분위기를 가져다주었다.

 아이스크림 장사꾼은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떠주는게 아니라 기다란 장대같은 아이스크림 국자로 이리저리 묘기를 부리며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어 많은 이들이 주변에서 그 솜씨를 구경했다.


"어머 이거 너무 맛있어! 세상에 여기서 이런 맛을 경험할 수 있을 줄은..."


엘라가 제이콥의 등을 때리며 말했다. 두들겨 맞고 있던 제이콥이 대답했다.


"나..나도... 쿨럭!"


제이콥은 대답하며 생각했다.


'엘라한테 이런면이 있었구나. 귀여운데?'


아이스크림 장사꾼은 이국적인 멜로디를 틀어놓은 채 마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의 존재는 잠시나마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사람들은 그날 정말 즐겁게 보냈다. 제이콥과 엘라도 그날의 특별한 만남과 경험을 마음 속 깊이 간직했다.


 아이스크림 장사꾼 리우는 만족스럽게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손님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장면은 갑작스럽게 변했다. 토마스가 그 음악을 듣자마자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눈빛은 불안함으로 가득 찼다. 그의 숨결이 거칠어지며 과거의 기억이 그의 정신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음악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결코 다시 듣고 싶지 않았던 멜로디였다.


"안돼... 안돼 멈춰! 당장 멈춰!! 이 노래는... 이 노래는 틀면 안돼!"


토마스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리우는 단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주변의 사람들은 당황하여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토마스는 자제력을 잃고 리우에게 달려들었다.


"너! 너 모든 걸 알고 있지! 이 노래! 이 모든 게 뭔지 알고 있잖아!"


그는 리우의 옷깃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그 순간 마을의 보안관이 나타나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다.


"토마스, 진정해! 무슨 일이야?"


보안관 자크는 토마스를 부드럽게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토마스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게... 이 모든 게 가짜야! 제발! 제발 내 말을 좀 들어! 노래를 끄라고!!"


보안관은 결국 토마스를 구치소로 끌고 갔다. 마을 사람들은 이 상황을 어리둥절해하며 지켜보았고 서서히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때 제이콥은 이 모든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리우의 태도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는 전혀 겁먹지 않았고 오히려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제이콥은 생각했다.


'설마.. 진짜 뭔가를 숨기고 있나? 그리고 토마스는 뭘 알고있는 건가?'


제이콥의 마음속에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장사 리우 그리고 이 이국적인 음악 뒤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이후 마을은 평소와 같이 별일없었지만 제이콥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의문과 호기심이 자리 잡았다.


 구치소로 끌려간 토마스의 사건 이후 마을은 잠시동안의 소란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술집에서는 평소처럼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틴은 평소처럼 바쁘게 움직이며 손님들에게 음료를 제공했고 웃음소리와 대화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분위기는 갑자기 도착한 전보로 인해 급격히 바뀌었다. 마틴이 전보를 받아 읽기 시작했을 때,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얼굴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불안함을 느꼈다.


"가뭄 시작... 대피 필요..."


마틴의 목소리가 떨리며 술집 안에 울려퍼졌다.

순간, 술집 안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무거워졌다. 사람들의 대화는 멈추었고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뜻이지?"


한 마을 사람이 물었다.


"또 다시 가뭄이 오는 건가요? 그럼 우리 모두 마을을 떠나야 하나요?"


다른 이가 걱정스레 물었다.

마틴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아하니 심각한 상황 같네. 우리 모두 준비를 해야겠어."


다음날, 마을은 분주한 움직임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짐을 챙기고 가족들과 함께 마을을 떠날 준비를 했다. 많은 이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둘러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남기로 결정했다. 마틴, 보안관, 그리고 토마스, 제이콥, 엘라도 그중 하나였다.

제이콥과 엘라는 마을 광장에서 만났다. 제이콥은 엘라에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데 우리도 떠나야되나?"


엘라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대답했다.


"나는 여기 남을래. 다른곳은 가고싶지 않아."


제이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엘라가 남는다면 나도 여기 남을거야. 마틴도 말했잖아. 우리가 함께한다면 가뭄을 이겨낼 수 있을거라고."


보안관과 마틴도 그들과 합류했다. 마틴은 모두에게 말했다.


"알지? 우리 모두 함께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네. 가뭄이 오더라도 서로서로 지켜가면서 버티는거야."


보안관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는말이네 마틴, 우리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지 암. 우리모두가 힘을 합치면 분명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그들 사이에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굳건한 결속이 형성되었다. 남은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고 가뭄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이 작은 공동체는 어려움에 맞서며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가뭄이 다가오고 많은 이들이 떠났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희망과 불안감이 동시에 존재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을과 서로를 지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은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것이다.


챕터2 비는 멈추고


 비는 멈추고 마을에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뒤섞인 어둠이 내려앉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난 후, 텅 빈 거리는 가뭄이 가져올 긴장으로 가득 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결의가 느껴졌다. 가뭄에 대한 전보가 도착한 지 한 달이 되었다. 그동안 마을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으며 이 사실이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다.

 다행히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시청 2층은 저수조로 개조되었고 전체가 단단한 돌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방수 처리 후 물을 저장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금속제 뚜껑은 물이 증발하는 것을 최소화했다. 마을 사람들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내 이 저수조에 저장해왔고 꽤 많은 양이 저장되었다. 그리고 이 물은 식수로만 사용되었다. 그렇게  저수조의 관리는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보안관 자크는 이 중대한 시기에 마을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제이콥을 찾아가 말했다.


"제이콥! 자네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려고 하네." 


제이콥은 놀란 눈으로 자크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요, 보안관님?"


"나는 자네를 보안관 대리로 임명하려고 하네. 함께 저수조를 지키고, 가뭄으로 부터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지. 어떤가? 이 임무를 같이 맡아주겠나?"


제이콥은 순간 망설였지만 곧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보안관님.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자크는 제이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역시 자네라면 함게 할거라 믿었네.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가뭄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그날 이후 제이콥과 자크는 저수조를 철저히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물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으며 물이 낭비되지 않도록 감시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몇일 후 엘라가 저수조를 찾아와서 제이콥에게 말했다.


"제이콥. 힘들지는 않아? 먹을걸 좀 챙겨왔어."


제이콥은 미소지었다. 그리고 엘라에게 샌드위치를 받고 한입베어 물고는 말했다.


"하하. 아니야. 자크 보안관님과 마을 사람들 모두같이 하고 있는걸."


엘라는 그런 제이콥이 자랑웠다. 그리고 마음속에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이 싹텄다.


"맞아. 서로를 돕는다면 분명히 가뭄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제이콥과 자크는 저수조를 지키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가뭄에 맞서 싸웠다. 그들의 결단과 협력은 곧 마을 전체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가뭄은 계속되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결속력은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것처럼 강했다. 보안관 자크와 보안관 대리 제이콥의 리더십 아래 마을은 가뭄의 어려움을 함께헤쳐 나갈것 같았다.

 그런데 몇일 지나지 않아 끔찍한 사실이 밝혀졌다. 분명 철통같이 지켜지고 있던 저수조의 물이 사라지고 있는걸 제이콥과 자크가 알아내게 된것이다. 제이콥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일이지? 수십 리터의 물이 기록과 다르네. 모두 힘들여서 최대한 아껴썼는데 이게 어떻게 된일이지?..."


자크는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남은 사람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때 혼자 물배를 채우는 배신자가 있는거군..."


그때 엘라가 서둘러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제이콥, 자크! 저... 저 그 범인을 알아냈어요."


제이콥과 자크는 그녀를 처다보고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건... 마을에 남겠다던 제니퍼와 그녀의 아들 폴이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정이 있어."


제이콥은 놀란 눈으로 엘라를 바라봤고 자크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말도 안되는...제니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물이 빨리 없어지면 모두 죽는걸 모르는겐가?"


엘라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녀의 아들이... 소아당뇨를 앓고 있어.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아이가 물을 많이 마셔야만 하는 병이라고 해. 물을 못마시면 아이가 너무 괴로워하고 그래서 그녀는..."


제이콥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모든 마을 사람들은 하루에 겨우 500미리리터의 물을 받는다. 최대한 아끼고 아껴야 다음 비가 올때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이런때에 두사람이 물을 빼돌려 수십리터를 소비한것이다. 이대로라면 한달도 못가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물없이 살아야 하게 되지도 모른다. 그는 복잡한 심경속에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마을 사람들의 몫까지..."


그때, 제니퍼와 그녀의 아들 폴이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성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폴은 겨우 숨을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엘라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희가 도와드릴께요. 보안관님과 제이콥도 함께 도와줄거에요. 그렇지? 제이콥."


제이콥은 여성과 아이를 바라보며, 자크와 눈빛을 교환했다. 이 상황이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맞아. 우리 모두 같이 살아야지. 아이의 건강도 중요하고, 같이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자크는 안심한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보세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야."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있었지만 동시에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일이었다. 제이콥, 엘라, 자크는 제니퍼와 폴을 돕기 위해 그리고 마을 전체의 생존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각자의 고통을 이해하며 끝까지 낙오자 없이 살아남을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가뭄이 시작된 지 7주차가 되었을 때, 그때 결국 마을의 우물이 말라버렸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제니퍼와 폴이 물을 과도하게 소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제이콥과 엘라, 그리고 자크는 더 이상 그들을 변호해 줄 수 없게 되었다.


 제이콥은 자크를 찾아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게되었음을 알렸다.


"보안관님...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물이 말라버렸어요... 마을 사람들은 제니퍼랑 폴을 쫓아내자고 결정했구요."


자크의 눈빛은 복잡했다. 자크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간신히 버티며 말했다.


"알겠네... 제니퍼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힘들게 버티고 있는데..."


엘라가 제이콥을 찾아왔을 때,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결정에 분노했다. 그리고 그걸 막지 못했던 제이콥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제이콥! 폴이 아픈 걸 알잖아! 왜 안막았어!"


제이콥은 답답했다. 빠르던 늦던 제니퍼나 폴은 결국 추방외에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기적적으로 이 가뭄속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모두를 다 먹일 물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 우물은 말라버렸고 마을 사람들이 제니퍼와 폴을 당장 내보내지 않고 보안관과 제이콥의 결정을 기다려주는 것도 엄청난 인내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엘라에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어. 우물이 말랐잖아! 물이 하나도 없어!"


그들의 대화는 격렬해졌고 마침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큰 싸움으로 번졌다. 자크가 말리고 나서야 둘은 진정하고 돌아갔다. 그는 이 모든 상황에 깊이 고민하며, 마틴에게 조언을 구했다.


"마틴, 어떻게 해야겠나? 지금은 마을 전체를 생각해야지. 나도 알아. 그러나 제니퍼는... 난 그녀를 사랑하네."


마틴은 자크의 고통을 이해했다. 그는 진심으로 마음깊이 자크를 위로했다.


"가끔은 사랑보다 더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보안관님의 마음이 아프겠지만 마을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결국, 자크와 마틴은 오랜 상담 끝에 제니퍼와 그녀의 아들 폴을 마을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자크의 마음속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노련한 보안관은 마을의 생존을 위한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그는 제니퍼와 폴을 불러 그들에게 힘겹게 사실을 전했다.


"나는.. 우리는 당신이 여기 있기를 정말 원했어. 하지만 우리 모두가 생존하려면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야. 미안해."


제니퍼는 눈물을 흘리며 자크를 바라보았다.


"알아요, 자크. 우리 때문에 모두가 고통받는 걸 원치 않아요."


자크는 그녀와 아들을 위해 약간의 식량과 물을 준비했고 그들이 새로운 곳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멀어지는 모자를 보며 그의 마음은 산산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다 때려치우고 그들과 함께 떠나고 싶었지만 그들만큼이나 마을 사람들도 소중했기에 노년의 보안관은 마음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는 자신이 내린 결정이 마을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는 마을의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가뭄과 싸우며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마을에서 그들이 떠나는 날, 제이콥과 엘라는 멀리서 지켜보았다. 이 모든 일로 인해 두 사람 사이는 예전과 다르게 멀어져버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을의 생존을 위해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야 했다.

 조용해진 마을에 스산한 바람이 불며 사람들의 마음만큼이나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누구도 그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엘라는 마을 광장에 서서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이 결정을 내렸던 모두에게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우리가 정말 이런 사람들이었나?"


엘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제이콥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랑하는 여인의 심적 고통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말을 걸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그래도 힘내서 다가가 말했다.


"나도 모르겠어. 다른 방법은 없었던건지..."


엘라는 뒤돌아 제이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우리 모두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나도 모르겠어."


한편, 자크는 심각한 괴로움 속에 빠져 있었다. 그는 마틴에게 술을 받아 자신의 방에서 홀로 마셨다. 책상 위에 올려진 권총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명을 끊을지 고민했다. 술때문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그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이게 최선이야? 이게 다냐고! 아니 이건 아냐...제니퍼..."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예전 술집에서의 즐거웠던 기억이 스며들었다.


"보안관님, 항상 감사해요. 보안관님이 우리 모두를 지켜줄거죠?"


제니퍼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울려퍼졌다. 자크는 눈물을 흘리며 총을 내려놓았다.


"아니, 후우... 뭐하는거야. 정신차리자... 해야할일이... 해야할일이 있다."


제이콥 역시 자신의 방에서 홀로 울고 있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살인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그를 짓눌렀다. 그리고 그 느낌은 그의 복제체를 불러냈다. 살아있는 느낌없이 마네킹과도 같은 표정을 가진 그것은 곧바로 제이콥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컥! 커헉! 어쩌면.. 죽는 게 나을지도..." 


제이콥이 절망에 빠진채 생각했다.

그때, 엘라의 외침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제이콥! 일어나!"


 그녀의 외침이 머리속에 울려퍼지자 복제체가 사라졌다. 제이콥은 깊은 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뭐하는거야.... 엘라를 다시봐야지. 여기서 죽을수는 없어."


 마을의 고통과 절망이 깊어갈 때 어느 날 아침, 리우가 다시 그의 아이스크림 카트를 끌고 나타났다. 이 모든 괴로움 속에서 마을입구에서 토마스가 싫어하던 노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음악은 마치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조롱처럼 들렸다. 그러나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의 등장은 마치 봄날의 해처럼 절망 속에 작은 빛을 가져왔다. 엘라는 리우를 보자마자,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긴장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눈물을 흘렸다.

 제이콥은 엘라에게 다가가서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이겨낼 수 있을거야."


엘라는 제이콥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꼈다.


"너... 너무 두려웠어. 제이콥도, 자크도, 마틴도 모두 미웠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걸 알아."


제이콥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도 미안해. 엘라. 이제 기운차리고 함께하자. 우린 이겨낼 수 있어."


그 순간, 자크와 마틴도 그들에게 다가왔다. 자크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미안했다.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준 것 같구나. 하지만 믿어주렴. 우리는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할거다.."


마틴도 덧붙였다.


"우리 모두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면 분명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엘라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도 미안해요. 모두 물이 필요하고 물 없이는 이 가뭄을 버티지 못한다는걸..."


그때, 리우가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제니퍼와 폴에게 들었습니다. 지금 가뭄때문에 어렵다고 하셔서 급히 달려왔어요. 아이스크림 받으세요. 힘이 날겁니다."


엘라는 그말을 듣고 참지 못하고 울어버리고 말았다. 옆에 서있던 자크도 고개를 돌려 흐느꼈다. 제니퍼와 폴이 죽지 않고 살아있구나. 그의 말은 마을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 가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기로 약속했다. 엘라와 제이콥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들 사이에는 이전보다 더 깊은 사랑과 이해가 흘렀다.

그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더욱 단합하여 가뭄과 싸우기로 약속했다. 리우의 아이스크림과 추방했던 제니퍼와 폴이 살아있다는 소식은 작은 행복을 가져다주었고, 그들의 결속을 다져주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 속에 깃들었다.


리우가 분명 마을에 활력을 주고 좋은 소식을 가져다 준것은 맞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이 가뭄이 심해져 가는 마을에 남겠다고 했다. 그의 아이스크림도 모두 팔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남는다고 했던 것이다.

마틴은 술집에서 고민에 잠긴 채 토마스의 말을 되새겼다.


"리우... 그가 정말로 우리를 도와주려는 걸까? 아니야...설마..."


토마스의 외침이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던 마틴은 리우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고 결국 호기심과 의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마틴은 리우가 머무는 외딴 오두막까지 몰래 미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숨어서 리우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리우는 오두막 안에서 뭔가를 열심히 기록하는 듯했다. 그의 모습은 마치 무언가 중대한 일에 몰두하는 학자 같았다. 마틴은 조심스럽게 오두막 근처로 다가가, 창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무슨?"


마틴은 속삭였다. 리우의 책상 위에는 복잡한 계산과 메모들이 널려 있었다. 그것들은 마을의 가뭄과 관련된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리우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창문 쪽을 바라봤다. 마틴은 숨을 죽이고 몸을 숨겼다. 리우는 마치 누군가를 의식한 듯 주변을 살폈지만, 곧 다시 자신의 작업에 몰두했다.

마틴은 오두막에서 멀어지면서 생각했다.


"그가 정말로 뭔가를 숨기고 있는게 분명해. 그런데 도대체 뭘 숨기는거지?"


다음날, 마틴은 자크에게 그의 관찰 결과를 말했다.


"자크. 자네에게 말할게 있네. 내가 리우의 오두막에서 뭔가 수상한 걸 발견했어."


자크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래.. 그에 대해선 항상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었지. 하지만 뚜렷한 증거도 없이 그를 의심만 할 수는 없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네."


제이콥과 엘라도 이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제이콥은 말했다.


"우리 모두 함께 가보면 어떨까요? 만약 그가 정말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면 그때 물어봐도 될겁니다."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확실히 그가 좋은 소식을 가져다준건 맞지만 이렇게 힘든때에 여기에 남았다는게 믿기지가 않아.."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리우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결정했다. 가뭄이 계속되는 어려운 시기에, 그들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진실을 찾아가기로 했다.

일행이 리우의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 마음속에는 의심과 궁금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고, 그곳에서 목격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두막 내부는 어느 최첨단 실험실을 연상케 했다. 공중에 띄워진 홀로그램 모니터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고, 벽면에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과 그 옆에 스트레스 수치와 건강 수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중에는 마틴, 자크, 제이콥, 그리고 엘라의 얼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제이콥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엘라는 홀로그램 모니터를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우리 모두 여기에 기록되어 있어요. 리우가 우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거에요."


마틴은 더 깊은 곳으로 다가가 실험 장비들을 살폈다.


"리우... 이 가뭄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면... 우리를 실험하고 있었다는 건가?"


자크는 벽면에 기록된 수치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 내 스트레스 수치가 이렇게 높았군. 하지만 왜? 리우는 왜 이 모든 걸 하고 있는 거야?"


그 순간, 오두막의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리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여러분을 맞이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 실험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일행은 놀라서 리우를 바라보려 했지만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만이 공중에서 울려 퍼졌다.


"실험? 우리를 가지고 실험한 거야?"


엘라가 분노와 혼란 속에 외쳤다. 리우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과 이 마을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위기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관찰하는 것, 그것이 제 목적이었습니다."


일행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았고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상태로 오두막을 뛰쳐나와 마을로 도망치듯이 돌아왔다.

마을에 돌아온 그들은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 우리 모두는 실험대상이었다는 건가..."


제이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자크는 깊은 생각에 잠겼고 혼잣말을 했다.


"그가 말한 것 중 진실이 있긴 한건가? 그 모든게 이 마을을 구하기 위한 것라고?"


엘라는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우리의 고통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리우는 믿을 수 없는 끔찍한 놈이에요."


마틴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리우와 마주하고 사실을 알아내야만 합니다."


그날 이후, 일행은 더욱 단합하여 가뭄과 싸우기로 결심했다. 리우의 실험실에서 목격한 것은 그들에게 큰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서로를 더욱 의지하고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보안관 자크와 일행은 리우의 오두막에서 그들을 향해 울려퍼진 그의 목소리와 말들을 잊을 수 없었다. 마을에 심각한 가뭄을 몰고 온 것이 리우의 짓임을 알게 되자, 자크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는 사랑했던 여인과 병으로 괴로워하던 소년을 내쫓아낸 기억에 괴로워했다.

 결국 자크는 마을 광장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리우를 중대한 범죄자로 선언했다.


"리우는 우리 마을에 심각한 가뭄을 몰고 온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처벌해야 합니다."


그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격하게 동의했다. 마을사람들 모두는 리우의 오두막에서 있던 일을 전달받았고 그렇게 마을의 분위기는 무겁고 결연해졌다. 그리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리우를 처벌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더 이상 리우에게 농락당해선 안돼."


제이콥이 말했다. 그의 손에는 단단한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엘라도 눈물을 거둔 채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희생되어서는 안돼요. 리우는 우리 모두에게 해를 끼쳤어요."


마틴은 농기구를 들고 서 있었다.


"맞습니다. 이번 일로 마을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생각해보면 그는 절대 용서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손에 무기를 들었다. 몽둥이, 농기구, 그 외에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각종 잡다한 것들이었다.

자크는 사람들을 이끌고 리우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단호했고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의 분노와 결의가 하나로 모아졌다.


"오늘 우리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 우리 마을에 가뭄을 몰고 온 외부인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자크가 선두에서 크게 외쳤다.


일행은 리우의 오두막에 다다랐다. 그곳은 조용했고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크는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리우! 네 놈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썩나와라!"


하지만, 오두막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긴장한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리우를 처벌하려는 결의와 함께, 이 모든 일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묵직한 의문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가뭄이 깊어가는 가운데 리우의 오두막앞에선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리우를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챕터 3: 끝났던 악몽의 시작


 끝났던 악몽의 시작처럼 마을 사람들은 분노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안고 리우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몽둥이와 농기구는 그들의 단단한 결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그들은 망설임 없이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두막 안은 음산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기계 장치들은 모두 동작을 멈춘 상태였고, 바닥에는 마을 사람들의 상태를 나타내는 기록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리우가 마을 사람들을 실험한 증거는 그 종이들에 충분히 드러나 있었다.


"이게 무슨..."


자크가 입을 열었다. 그의 손에 들린 종이에서 자신의 이름과 옆에 적힌 스트레스 지수를 보고 경악했다.


엘라는 자신의 기록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제이콥은 어떤 마을 사람이 충격으로 토하는 모습을 보며 격한 분노를 느꼈다.


"리우는 우리 모두를 실험 쥐로 생각했던 거야!"


그때, 어둠 속에서 리우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여러분, 마을로 돌아오세요. 여러분이 진정 원하는 것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공허하고 차가웠다. 일부 마을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자크는 단호히 말했다.


"우리는 마을로 돌아갈 거야. 이건 끝내야 해."


자크의 말에 힘을 얻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리우에 대한 분노와 함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교차했다.


마을로 돌아온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들이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마을 광장 한가운데에는 리우가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주위로는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물이... 물이 나와!"


한 마을 사람이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물에 달려들어 허겁지겁 손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자크는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리우... 그가 정말로 이걸 우리를 위해 만든 걸까?"


제이콥과 엘라도 그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모든 게... 리우의 계획이었던 거야?"


엘라가 속삭였다.


"우릴 살리려던 거였던건가?"


제이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틴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기계를 바라보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마음이 풀렸다. 자크는 깊은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뱉었다.


"리우... 자네가 무슨 의도로 이걸 했든 물을 되돌려준 건 사실이네. 우리가 자네를 잘못 평가했던것 같군."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 모든 상황을 즐겼다. 이제 가뭄 걱정없이 마을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토마스가 돌아왔을 때, 그는 인간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한 말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 위에는 리우가 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도망쳐! 여기서 빨리 떠나야 해!"


토마스는 고통 속에서도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절박했고 공포가 그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났다.


 리우는 상황을 침착하게 지켜보았다. 그는 고삐를 조용히 당겼고, 토마스는 고통에 더 이상 외칠 수 없었다. 그 순간 마을의 공포는 절정에 달했다.


자크, 마틴, 그리고 제이콥은 리우를 마주하고 서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리우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여러분! 두려워 하실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 모두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데이터로 된 인격체들입니다. 감정을 가진 인공인격체죠. 맞습니다. 시뮬레이션 내에 존재하는 인격체들인거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나는 이 시뮬레이션의 관리자인 리우라고 합니다."


리우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뭐? 우리가... 인공 인격체라고?" 자크가 중얼거렸다.


"맞아요 자크, 여러분의 모든 감정, 기억, 심지어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모두 프로그래밍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형태는 내가 원할 때마다 변경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여러분을 가구나 물로 바꿔 다른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게 만들 수도 있어요! 놀랍지 않습니까? 하하. 진짜 장난아니죠."


엘라는 그 말을 듣고 겨우 정신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게... 가능한 일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리우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럼요! 가능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실험인데... 하지만 이제 실험은 끝났구요. 아쉽네요. 더 즐기고 싶었는데."


그 순간, 엘라는 리우의 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실신했다. 제이콥이 그녀를 부축했다.


"엘라! 괜찮아?"


마틴과 자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와 이 세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것이... 실험이었다는 겁니까?" 마틴이 중얼거렸다.


자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리우! 우린 네 녀석의 실험 대상이 아니야! 우리에게는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어! 우린 데이터가 아니라고!"


리우는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러분이 느끼는 모든 것은 진정한 감정이 맞아요. 하지만 여러분은 시뮬레이션 내에서만 진짜인거죠. 그걸 기억하세요."


그 말을 남긴 후, 리우는 토마스를 타고 마을 밖으로 가려고 했다.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제이콥의 복제체가 어디선가 나타나 리우를 덮쳤다.

그 충격으로 리우는 토마스의 등에서 내동댕이쳐졌고, 고삐가 심하게 잡아당겨진 탓에 토마스도 함께 쓰러졌다. 리우의 하반신이 토마스에 의해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복제체는 으르렁거리며 리우를 위협했지만, 그를 죽이진 않았다. 오직 그의 행동만을 막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마틴과 자크는 제이콥을 거의 괴물처럼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안관 자크는 그 찰나를 이용했다.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리우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리우의 머리를 관통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우는 웃으며 자크를 비웃었다.


"아니 내가 관리자인데 그 무기로 죽겠어요? 자크?" 리우가 조롱하듯 말했다.


그러나 그 순간, 복제체가 리우의 머리를 강하게 쥐어뜯었다. 리우의 형상은 오류 난 그래픽 버그처럼 치지직 거리며 사라졌다.


리우가 사라지자,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토마스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자크가 침착하게 모두를 다독였다. "괜찮나? 이제 끝났네. 이놈. 이놈은 죽었네."


마틴이 제안했다. "술집으로 갑시다. 뭐 좀 마시고 쉬자구요. 일단 저부터 좀 쉬어야 겠습니다."


모두가 술집으로 들어갔을 때, 엘라가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제이콥에게 물어봤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많은 일이 있었어. 보안관님이 리우를 제압하고 우리가 이겼어." 제이콥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때 토마스가 자신의 경험을 모두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모두는 토마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이야기는 믿기 어려웠지만, 모두가 겪은 일들이 그를 더욱 이해하게 만들었다.

토마스는 술집의 어두운 구석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그의 눈은 멍하니 멀리 빈 공간을 응시했다.


"마을을 떠난 지 얼마 안됬을때야.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어. 해가 져야 할 시간인데 해가 지지 않더라고. 몇 일이 지나도 목도 마르지 않았어. 그리고 주변 풍경이 똑같다는 걸 알아챘지."


그가 이야기를 계속하자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들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갑자기 투명한 벽에 부딪혔어. 그 벽을 부수려고 주먹으로 치기도 했는데 아무 느낌이 없었어. 근데도 그 벽 너머로는 갈 수가 없었다고."


토마스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그 순간을 회상하며 계속 말했다.


"그때 내가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노래 소리가 들렸는데 그때 리우가 나타났어. 나는 도망치려 했지... 그... 내 발이 땅을 딛지 못하고 허공에서 허우적거렸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기 저기서 경악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리우가 피리 같은 걸 꺼내더니 규칙적으로 소리를 냈어. 그 소리가 내 머릿속을 비우더라고. 나는... 나는 그대로 말이 되었어."


그의 이야기를 듣던 엘라는 공포에 질려 속삭였다. "뭐라구요?..."


토마스는 고통스러운 눈으로 엘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되고 나서 리우가 다시 피리를 불었어. 내 얼굴만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지. 그는 내 귀에 속삭였어, '잘있었어? 자기?' 난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입에서 나온 건 푸릉푸릉 하는 이상한 소리뿐이었어. 그러고 그는 날 몰아서 여기까지 왔.. 왔어... 흑흑"


자크는 깊은 분노와 슬픔을 느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리우... 이 놈..."


마틴은 토마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토마스. 토마스. 자네가 겪은 일은 정말 끔찍했지만 지금 넌 안전하잖나. 괜찮네. 이거 마시게."

 그리고 언제인가 토마스가 술주정으로 항상 마시고 싶다던 고급 술을 건내줬다.


마을의 술집에서, 토마스의 말이 끝나자 고요가 찾아왔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얼어붙은 듯한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겼다. 리우의 죽음 이후의 사건들이 너무나 초현실적이었기에 모두가 그가 정말 죽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공포로 가득 찬 분위기 속에서 자크가 제이콥에게 물었다. "어이 제이콥, 자네의 그... 아까 그게 도대체 뭐지? 설명해보게."


제이콥은 깊은 숨을 쉬고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복제체는... 제가 어릴 때 처음 봤습니다. 제 감정, 특히 분노와 슬픔을 반영해서 움직이죠. 걱정마세요. 우리를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보호하려고 하는거죠."


엘라는 이미 눈물을 다 쏟아내고 이제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틴은 토마스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토마스, 혹시 리우가 말실수로 중요한 것을 언급하지 않았나? 뭔가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가 될 만한 걸 말일세."


토마스는 제이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리우가 마을로 향할때 중얼거렸어. 이번 시뮬레이션에 찾지 못한 버그가 있대. 그 버그 때문에 시뮬레이션이 망가질 수도 있다고... 그것 때문에 계속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


이 말에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희망의 빛을 보았다. 제이콥과 그의 복제체가 그 버그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우리가 그 버그를 찾아낸다면 어떤가?" 자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술집 구석에 리우가 다시 나타나며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토마스는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그의 몸은 점점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변해갔고,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토마스!..." 마틴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공포에 빠진 모두는 급하게 술집에서 달아났다. 


제이콥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엘라를 업은뒤 온힘을 다해 숙소로 달려갔다. 그런 그의 귀에 리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모두 서로를 믿고 의지한다면 분명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마틴이 항상 하던 말이었다. 제이콥은 끔찍한 공포를 느끼며 계속 해서 달렸다. 그러나 자신이 점점 허공에서 달리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등에 업고 있던 엘라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자 제이콥은 엘라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 팔을 휘저으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도 허공에 띄워진 모니터에 제이콥의 스트레스 지수가 표시되고 있었고 그의 스트레스 지수가 100%를 찍는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제이콥의 복제체가 리우를 비롯한 모두를 집어삼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허공을 휘저으며 제이콥은 엘라를 찾았다. 제이콥은 저멀리 어디선가 엘라의 우는 소리를 들었다.


 제이콥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되어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나아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컴컴한 와중에 제이콥은 엘라의 얼굴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엘라! 엘라! 나야! 제이콥이야!"


 자신의 눈앞까지 엘라의 얼굴을 당겨 가까이서 보려고 했다. 곧 제이콥은 엘라의 얼굴을 당겼고 하얗게 질린체 허공을 보고 있는 엘라의 얼굴을 보자 감정이 폭발하며 외쳤다.


 "엘라! 안돼! 안... 안돼!!! 일어나 제발! 내가 잘못했어! 제발 제발!!"


 제이콥은 울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절규했다. 순식간에 엘라의 얼굴이 리우의 얼굴로 바뀌며 그 얼굴이 외쳤다.


"아이스크림!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여기 있어요!"


 제이콥은 공포에 질려 입을 벌린채 리우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굴은 다시 엘라의 얼굴로 바뀌며 언제나 그렇듯 제이콥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저두요. 근데 저는 기분전환이 필요한데,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어볼까요?"


제이콥은 정신을 잃을것 같은 아득함 속에서 입으로 들어오는 눈물의 짠맛이 느껴졌다.


그때 모든것이 사라지고 시뮬레이션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아득하게 노래가 퍼졌다.

토마스가 싫어하던 그 멜로디. 러시안 폴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폴은 성장한 모습으로 마을 입구에 섰다. 어린 시절 당뇨병을 앓았지만, 선한 의사의 도움과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 덕분에 이제는 증세가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 마을로 들어서며 그는 잠시 목을 축이고자 술집에 들어섰다.


술집 안은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마틴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카운터에서 묵묵히 컵을 닦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엘라와 제이콥이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밖에서는 봄날의 따뜻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환하게 빛나는 태양 덕분에 멋진 무지개가 하늘에 그려졌다.


폴은 마틴에게 소다를 부탁하고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그 순간, 옆자리에 한 카우보이가 앉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비는 새로운 시작에 정말 좋은 징조죠. 새로 오셨나요?" 카우보이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폴은 카우보이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웃으며 대답했다. "네, 여긴 처음 왔습니다. 정말 좋은 곳인 것 같아요."


카우보이는 호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모자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바로 리우였다. 놀랍게도, 마을의 술집에서 폴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카메라는 점차 마을 밖으로 멀어져 갔다. 마을 전체를 비추며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카메라는 마침내 위성 궤도에 도달해 행성 전체를 비췄다. 행성 위에는 'F97'이라고 넘버링이 붙어 있었다.


거대한 모니터 앞에서 똑같이 생긴 리우 수십 명이 복잡한 기계 장치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저기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들을 빠르게 정리하며 모니터를 파란색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모니터로 카메라가 점점 다가가며 구석에 표시된 글자를 보여줬다. 글자는 깜빡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모니터에서 지워지지 않으려는 듯이 보였다.


'bug report -string 31337 jacob.obj status dele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