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 야전이 벌어지면 그 형태는 대강 양군이 서로 조우한 뒤, 그 군대의 특징을 잘 살리는 대열을 형성하고, 적에게 접근해서 맞붙어 싸우는 것으로 정형화되곤 하였음




그리고 로마군의 경우에도 그 전개는 비슷해서 진영에서 나와 특유의 체커보드식 지그재그 포진을 하고, 적에게 접근한 뒤, 각 백인대별로 마주한 적들에게 투창을 던지며 접근전을 펼치는 것으로 전투를 시작하곤 함





이때 이런 전투를 놓고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오해는 로마군이 사용한 타원형, 혹은 장방형 방패인 스큐툼을 보고


로마군이 방패와 방패를 맞대어 벽을 만든 뒤 그 사이로 검을 내찌르며 싸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임


보통 이런 밀집대형(피크노시스)은 팔랑크스처럼 방패벽을 만들고 창을 내지르며 적을 질량으로 밀어붙이는 전술(오티스모스)에 주로 사용되는데, 정작 스큐툼은 외견과 달리 오티스모스에는 적합하지 않았음


호플리테스가 사용하는 방패인 아스피스는 팔뚝, 혹은 어깨에 고정하는 방식으로 체중을 실어 밀어붙이는 전투에 적합했지만, 스큐툼은 가로로 놓인 손잡이를 쥐고 방패를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싸우는 방식에 특화되었기 때문임



방패가 적극적으로 움직여가며 싸우는데 적합한 형태였다는 점, 그리고 칸나이 전투나 사비스 전투 등의 기록과 폴리비오스 등 당대 역사가들의 저술을 종합하면


로마군은 실제로는 병사들 사이에 1m에서 1.4m 정도의 간격을 띄운 널찍한 대형을 이루어 검과 방패를 사용한 각개전투가 수월하도록 하였을 것임





이제 본격적으로 전투가 벌어진 시점으로 넘어가서, 고대 시대 전투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은 짤처럼 단위 부대의 병력이 한 덩어리로 적과 맞붙어서 밀착해 싸우는 것임


하지만 폴리비오스의 저술에 따르면 실제 전투는 꽤 널널한 공간을 두고, 단위부대의 맨 앞 1~2열만이 본대에서 공간을 두고 돌격해나와 적과 접전을 펼친 뒤 돌아가는 것을 반복하는 형태였음





이 점은 당대의 전투 자체를 꽤 유동적으로 만들었음


접전을 펼치던 최전열이 적에 의해 밀려나면 대기하던 후열들과 뒤에 있는 부대들은 아군과 뒤엉키는 일을 피하고 여유로운 전투 공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조금씩 물러났고


반대로 최전열이 적을 밀어붙이면 너무 뻗어나갔다가 적에게 차단당해서 봉변당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기에 조금씩 따라붙어 주었음


이런 식으로 전투가 벌어지는 영역을 후열의 병력에서 분리하는 것은 후열이 쓸데없이 피로나 사기 저하 등 전투의 직접적인 영향에 노출되는 것을 막아주었고


돌격해서 싸우던 양측의 최전열이 복귀한 뒤 부상자나 지친 인원을 후열의 쌩쌩한 병사들과 교체할 수 있도록 하여 전투 효율을 끌어올려 줌


그렇기에 보통 로마 시대의 전투는 돌격과 접전 뒤, 양측이 욕설과 투창을 주고받다가 한쪽이 다시 돌격을 가하면서 양측이 다시 돌격과 접전을 벌이는 것을 몇 시간 동안, 둘 중 하나가 먼저 패주할 때까지 반복하기 일쑤였음





로마군은 각 병사들 사이뿐만 아니라 백인대와 백인대 사이, 코호르스와 코호르스 사이에도 충분한 간격을 두도록 하였음


이는 지휘관들이나 전령들이 명령을 내리고 전달하기 위해 전선을 뛰어다니며 아군 대열을 헤집지 않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사기 저하로 패주하는 병력이 후방의 아군과 뒤엉켜 군대열을 무너트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임


또한, 각 백인대 사이에 간격을 두면서 하나의 백인대가 무너지더라도 그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이 주변의 백인대를 잠식하고 사기를 떨어트리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음





갈리아 전쟁기 등 로마군의 전투를 기록한 저술에서는 자주 코호르스(대대) 단위의 병력 운용을 묘사하곤 하지만 정작 전투 상황에서 트리부누스(대대장)가 코호르스를 지휘한 기록은 많지 않음



트리부누스는 참모 역할만을 수행하였고 코호르스를 구성하는 6개의 백인대는 전투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기동하는 편이었던 것


대대급 지휘가 없는데도 유기적이고 유연한 기동이 가능했던 것은 백인대마다 존재하는 3명의 장교 덕분이었음




백인대장은 각 백인대에 소속된 80명(코호르스 프라이마(1대대) 소속 백인대는 160명)의 군단병을 지휘하여 돌격을 선도하고 병력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음


옵티오(부백인대장)는 백인대의 후열에 서서 사기가 떨어진 아군을 독려하고 설득해 다시 전투가 가능하도록 사기를 고양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기수는 백인대의 한가운데에 서서 대열을 유지시키고 전열이 붕괴했을 때 아군이 다시 집결할 수 있도록 백인대의 구심점을 지정해주는 역할을 맡았음





이러한 장교진이 있었기에 로마군은 당대의 전장 환경에서 거의 대부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음


동시기 다른 민족들은, 문명인들뿐만 아니라 야만인들도 자체적인 전투 서열과 체계적인 군사 편제를 가지고 있었음


예를 들어 갈리아인들의 경우 부족별로 족장과 원로들이 고위 전사로서 하급 지휘관을 맡았고, 각각이 휘하의 암박티(가신)들을 그 숫자에 따라 수십에서 200명에 이르는 소부대로 편제하였음


무질서하게 돌격하였단 편견과 달리 이렇게 편제된 갈리아인 소부대들도 고위 전사의 선도 아래에 꽤 체계적으로 돌격하였고



하지만 로마군은 백인대마다 배치된 장교진들 덕분에 훨씬 강력한 돌격을 적이 무너질 때까지 더욱 자주 퍼부어댈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매우 빠르고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었음


대기병전 상황에서 기수가 백인대의 구심점을 잡는 사이 백인대장이 전위를, 옵티오가 후위를 통솔하여 고속으로 밀집대형으로 전환하기도 하였고



아예 전방의 백인대가 수적으로 열세할 경우 후방의 백인대장이 자의적으로 옵티오에게 일부 병력을 떼어주어 전선에 가세시켜 주는 것도 가능하였음



이런 다양한 병력 운용이 가능했기에 로마군이 당대 최강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었던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