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야!"

"히야앗!"

등 뒤에서 작은 손이 뻗어나오더니, 채 여물지 못한 보드라움을 간직한 희미한 언덕 두 개를 재빠르게 잡아챈다.

등골을 통해 전해지는 저릿한 감각에 당혹스러워하며 짐짓 화난 듯이 손의 주인에게 쏘아붙였다.

"정말, 쿠로! 이상한 장난 치지 말라고 했지!"

"에~ 하지만 최근 이리야의 반응이 더 재밌어졌는걸!"

구릿빛 피부를 제외하면 자신과 똑 닮은 소녀와 토닥토닥 거리고 있자, 또 다른 손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르듯 슬며시 끼어들어 와 내 오른팔을 감싸 안았다.

팔뚝에 전해져오는 푸딩같은 말캉함에 눈 앞이 아찔해져온다.

"쿠로는 좀 더 조신해져야 해. 그리고 이리야는 내 거야."

"훗후,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빼앗길지도 모른다구?"

날카롭게 노려보는 미유. 다만 그 눈동자에 경계는 담겨있을지언정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리야에 대한 독점욕이 과할 뿐, 기본적으로는 친구이자 전우이겠지.

다행히 내가 알던 정보와 크게 다르진 않다.

두 사람이 알게 되면 기겁할 일이겠지만, 지금 이리야의 몸에는 상상도 못 할 불청객이 자리잡고 있다.

향년 25세, 한창 대학교에서 졸업 준비에 바빠야 할 건장한 군필 남자 김장붕.

그것이 두 여아의 사이에서 샌드위치 꼴이 되어버린, 가엾은 이리야의 정체였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약 2시간 전-


"으아... 머리 아퍼..."

나는 징징 울려대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혼란스런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기억을 되짚어본다.

"분명, 폰겜 하던 중이었는데..."

남아 도는 한가한 시간을 어찌 할까 하던 중, 페그오란 게임의 신규 스토리가 호평을 받고 있다는 커뮤니티의 글을 봤다.

페이트 시리즈는 좋아해서 이것저것 챙겨봤지만, 쪼들리는 경제 상황에 가챠겜은 엄두를 못 내서 페그오엔 손을 못 대고 있었지만 스토리 정도라면, 이란 생각으로 설치 버튼을 눌렀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 설치가 완료되고 아이콘을 눌러 기동했는데...

스마트폰의 광량이라기엔 터무니없이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기억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배터리가 폭발하기라도 했.. 어, 아, 아, 크흠, 아!"

상황이 어이가 없어 혼잣말을 내뱉던 중,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눈치챘다.

얇은 하이톤의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

무언가 이상하단 본능적인 직감에 벌떡 일어났다.

"호에...?"

생전 입 밖에 꺼내본 적 없는, 본래의 목소리였다면 속이 울렁거렸을 묘한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시야가 굉장히 낮다.

분명 두 다리로 서 있는 감각을 느끼고 있는데 무릎이라도 꿇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의 불일치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방금까지 누워있던 침대를 어떻게든 짚어 쓰러지는 것만은 면했는데, 눈에 들어온 내 손이 뭐랄까.

굉장히, 작고, 귀여워서.

"꺄아아아아아악!"

"이야아아아아악! 뭡니까, 뭐에요 이리야 씨!"

막을 틈도 없이 비집고 터져나온 비명소리에, 어디선지 갑자기 날아온 빨간 마법봉이 덩달아 소리치며 주위를 맴돌았다.

"으, 아, 아, 루비?"

사물이 날아다닌다는 기이한 광경에 놀랄 만큼의 여유 공간은 뇌내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마법봉의 비주얼이 이전에 본 프리즈마 이리야의 마법봉과 똑같다는 사실만 겨우 재생해 내어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 볼 뿐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갑자기... 음?"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사이, 루비는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흠, 오, 같은 영문 모를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어쨌든 언어를 구사하는 무언가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부들부들 떨며 호소했다.

"이, 이거, 내 몸, 내 목소리..."

사내는 일생에 세 번 운다고 했던가.

그러나 이미 영문을 알 수 없는 충격적인 사태에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있었다.

"에잇!"

순간 루비가 예고도 없이 내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까약!"

건장한 사내의 존엄을 모조리 담고 터져나온 새된 비명이 방 안에 울려퍼졌다.

"무, 무슨 짓이야!"

"어라, 마법의 일격☆으로 어떻게 되려나 했는데 효과가 없네요.

결코 이리야 씨의 영혼이 잠든 틈에 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니라구요?"

"어, 이리야... 씨...?"

"자, 거기 신사인지 숙녀인지 모를 분! 진정하고 저와 이야기를 나눠 보실까요?"


물리치료 요법으로 조금이나마 진정된 나는 루비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곳은 내가 지금 막 플레이를 하려던 페그오의 세계관 속이고, 이 몸은 이리야스필 폰 아인츠베른, 이리야라 불리는 아이의 것이라는 것.

페그오는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라 세세한 설정은 모르겠지만, 빙의처가 프리즈마 이리야 콜라보 쪽의 이리야인 건 다행이다.

프리즈마 이리야는 영상화된 곳까지 전부 봤으니, 영 모르는 다른 캐릭터보다야 낫겠지.

원본 이리야에 비해 평범한 여자아이에 가까우니 마법이고 뭐고 모르는 나라도 덜 어색할 것이고.

어쨌든 나는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리야의 몸에 빙의하게 되었고, 이리야의 영혼은 깊은 곳에 잠시 잠들어 있다는 모양이다.

루비 왈, 평행세계의 힘을 너무 끌어다 써서 뭔가 기능 고장이라도 난 게 아닌가라고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는 모양이다.

"아무튼, 우선은 이리야인 척 하고 지내면서 돌아갈 방법을 찾아보시죠!

제가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리.야 씨!"

"고맙긴 한데... 내가 이런 말 하긴 뭣 하지만 갑자기 이 아이의 몸을 뺏은 날 왜 그렇게 쉽게 도와주는 거야?"

"그야 물론 재밌... 흠흠 잠들어 계신 이리야 씨를 위해서죠!

당신이 빨리 돌아가야 이리야 씨가 깨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지금이 되었다.

여전히 미유와 클로에는 나를 사이에 두고 티격대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등 뒤와 상완근에 전해져 오는 은밀한 꽃봉오리의 감촉과 어린아이 특유의 젖내에 몸둘 바를 모르는 중이다.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어린아이들의 진득한 스킨십이 무려 두 배!

'진정해라! 난 페도가 아니야!'

뒤틀려버릴 듯한 성적 가치관에 필사적으로 브레이크를 걸고 있자,

"오, 세 사람은 여전히 사이가 좋구나."

"앗, 마스터!"

"마스터..."

두 사람의 반응을 보아하니 저 사람이 주인공, 즉 마스터인 모양이다.

'이리야는 마스터 씨, 라고 부른답니다♡'

머릿 속에 울리는 루비의 보조 설명에 맞춰 나도 반응한다.

"마, 마스터 씨."

"하하, 이리야는 인기가 많아서 좋겠네!"

"우으..."

몸의 기억이란 게 영향을 주는 걸까.

말투, 몸짓이 나도 모르게 어린 여자아이 같아지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원래 몸으로 돌아갔을 때 습관이 남으면 대참사일텐데...

아무도 모를 걱정을 하고 있자, 마스터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보니 전투 시뮬레이터 훈련, 세 사람하곤 안 한 지 좀 됐지?

이왕 모인 김에 어때?"

"오, 간만에 몸 풀기? 난 좋아!"

"네, 마스터가 원하신다면."

전투! 피가 튀고 몸이 끓어오르는 야만의 행위!

흐려져가는 나의 남성성을 보충하는 은혜의 시간이 될지도!

"저, 저도! 좋아요!"

"오, 웬 일로 이리야도 의욕적이네! 좋아, 다들 가자!"

호기롭게 외치긴 했으나, 게임을 해 보지도 않아서 페그오의 이리야는 어떻게 싸우는지 모르는데...

'걱정 마시죠! 제가 보조해 드릴 겁니다!'

루비의 호언장담에 일말의 불안은 있었지만, 정체성의 위기가 더 심각했기에 마스터의 뒤를 졸졸 따라 시뮬레이터로 향했다.


"퀸텟 포이어!"

루비의 조언에 따라 냅다 보구를 쏴갈기고 나서, 즉시 후회했다.

그러고 보니 이 기술, 설정 상 온몸을 갈아가며 쓰는 거였다!

"히에엑, 흐윽..."

격통에 부들부들 떠는 나를 보고 시뮬레이션은 그대로 중지.

평소보다 아파하는 모습에 컨디션이 안 좋아보이니 쉬라는 마스터의 상냥한 배려로, 이리야의 방에 다시 돌아가는 중이었다.

'루비, 너...'

'아하핫! 어차피 몇 번은 쓸 일이 있을 텐데 빨리 익숙해지시죠!'

딱히 돌려줄 말도 없어 비틀거리며 묵묵히 걸었다.

통증 외에도 몸이 무거워지고 머리가 멍해지는 듯한 감각이 있는데...

'마력 부족인가 보네요!'

마력... 아 그렇지... 난 지금 서번트지...

마력 보충은 어디 보자, 페이트에선...?

순간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가는 탕 속의 고기.

세차게 머리를 휘저으며 사고 밖으로 털어냈다.

일단 쉬자. 쉬면 나을거야...

그 때 클로에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한심한 내 동생. 오늘은 더 미덥잖은걸?"

"으... 내가 언니야..."

반사적으로 반박한다. 이것도 몸의 기억일까, 작품에서 본 내 기억일까. 슬슬 혼란스럽다.

"쿠로, 나 어지러우니까 매달리지 마..."

"오...♡'

얼굴을 붉히며 클로에를 밀어내려 하자, 갑자기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이 된 클로에.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내 양 뺨을 붙잡더니, 입술을 부딪혀왔다.

"으읍?! 읍, 읍!"

"하읍... 츕♡"

혀까지 밀어넣어 오는 클로에를 밀어낼 힘도 남아있지 않았던 나는 무자비한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뜨겁게까지 느껴질 정도의 따뜻한 혓바닥이 내 혀를 휘감고, 가뜩이나 달아오른 머리는 더욱 몽롱해져갔다.

몽롱해져... 몽롱...

이 도둑고양이가 내 마력을 뺏어가고 있다!

"푸핫!"

생명의 위기에 온몸비틀기로 클로에의 키스 공격에서 빠져나오자, 살짝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후훗, 이리야, 그렇게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면 확 잡아먹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잖아?"

"쿠로, 너...!"

"아핫! 잘 먹었습니다~ 그럼 푹 쉬어!"

바람처럼 복도를 내달려 사라지는 클로에.

나는 진창에 걸린 쪽배마냥 가라앉아가는 기분을 느끼며 패닉에 빠졌다.

'루비, 마력이 거의 바닥났어! 서번트는 마력 없으면 사라지는 거 아냐?'

'이런이런, 조심하셨어야죠. 빨리 보충하러 가시죠.'

'보충이라고 해도 어떻게?'

'원래 계시던 데서 매체의 형태로 보신 적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거기선 어떻게 하던가요?'

물론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마스터의 방 위치는 제가 알고 있답니다. 방금 전투 시뮬레이션을 끝냈으니 방에 얌전히 있을 터!

자, 가시죠!'

어지럼증이 점점 심해져간다.

판단력이 갈수록 흐려져가고, 생존 본능은 반비례해서 강해진다.

그래, 이건 살기 위해서다. 살기 위해서야!

나는 어느새, 마스터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네, 누구세요?"

방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마스터를 밀치며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우앗, 이리야?!"

등 뒤에서 자동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아랑곳하지 않고 마스터의 바지춤을 풀어헤친다.

"잠깐, 이리야! 뭐하는거니?!"

"하아.. 하아... 마스터 씨... 마력 공급..."

"뭐?! 이리야, 잠.. 으읍!"

손이 떨려 작업의 진전이 더뎠기에, 급한 대로 점막공급을 시도한다.

조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의지대로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다시 아랫쪽으로 돌아가, 목적을 이루었다.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육봉을 보자, 아랫배가 따뜻해져온다.

배시시 웃음을 흘리며, 하반신의 계곡을 갖다댄다.

밑에서 무언가 벗어나기 위해 꿈틀대고 있는 것 같았지만, 힘을 줘서 누르자 비척거림이 잦아들었다.

아핫, 어린애라도 서번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마스터 씨는 벗어날 수 없답니다.

맞닿은 부분이 벌어지며, 찌르는 듯한 고통이 몸을 엄습한다.

"흐읍...!"

과연, 아직 다 익지 않은 몸이라 고통이 심하구나.

그러나 나는 생존을 위해 이러고 있는 거다.

마력 공급이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걸 꾹 참고, 조금씩 조금씩 허리를 떨어뜨린다.

마스터 씨의 발버둥이 더 심해진 것 같지만, 무의미하답니다.

몸이 익숙해지길 기다린 후, 상하운동을 시작한다.

머릿속에서 정전기가 연발하듯, 따끔따끔한 불꽃이 난무한다.

허리를 흔드는 속도가 빨라지고, 이윽고 정상에 다다르자 뇌가 풍선이 되어 터진 것만 같은 충격이 머리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움찔움찔 몸을 떨며 마스터의 가슴팍으로 무너져내렸다.

무언가가 충만하게 몸을 채우는 감각과 함께 몽롱하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 호에...?"

정신을 차리자 눈 앞에는 아연한 듯한, 죄책감에 절은 듯한 복잡한 표정의 마스터가 보였다.

"우아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자각한 나는 빠르게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도망치듯 마스터의 방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아, 이리야~ 마력은 잘 채웠어?"

"..."

다시 마주친 클로에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에이, 아직도 삐져있는거야? 칼데아는 마력을 자동으로 채워주니까 조금만 쉬면 원래대로잖아?

나는 모자라단 말야. 조금 나눠받을 수도 있지!"

"...뭐?"

"응? 왜 그래?"

나는 클로에의 말에 대답할 새도 없이 내 방, 이리야의 방으로 뛰어갔다.

뒤에서 클로에가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쾅 하고 문을 닫은 뒤, 루비를 불러내어 손에 쥐고 미친듯이 흔들었다.

"너, 너! 알고 있었지! 알고서 입 다물고 있었지!"

"으아아아, 당연히 아시는 줄 알았죠! 갑자기 마스터를 덮치길래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웃기지 마! 얼마든지 멈출 수 있었잖아!"

"에엥, 제가 왜요?"

"너... 이 몸은 이리야의 몸이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

"아, 걱정 마시죠. 당신이 넘어온 순간부터, 이미 평행세계는 갈라졌답니다.

지금은 말하자면 한여름밤의 꿈. 당신이 돌아가면 물거품처럼 사라져, 모두 없던 일이 될 거에요.

그러니 무거운 생각은 하지 마시고, 이왕 넘어온 새로운 세계를 즐기시죠!

겸사겸사 저도 좋은 구경 좀 하고!"

루비의 말에, 힘이 탁 풀려서 그대로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인생을 망가뜨린 게 아니라는 안심 때문일까. 그럴 것이다.

"으으... 이번엔 속아서 그런 거야! 두 번 다신 안 해!"

루비의 깔깔거리는 웃음을 들으며 마음 속으로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살고 싶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거다. 몰라서 그랬던 거다.

마스터의 그것을 본 이후로 홀린 듯이 움직인 건 내 의지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마스터 씨, 라고 교성을 흘린 것도 결코 내가 아니다.

아직까지도 따뜻하게 울리는 아랫배의 저릿함도... 그저 착각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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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미쳐서 망상하다 쓸데없이 길어졌노

농 조아요 농

19금 안 되면 후반부 묘사 쳐내게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