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 나부랭이의 삶이라는건 대체로 비슷하다. 


낭만을 쫓는답시고 도시 조합에 발을 들이는 멍청한 놈인가, 무일푼에 가진건 몸뚱아리 뿐이라 입에 풀칠할 길을 찾는 놈인가, 척 봐도 위험한 냄새가 나는 놈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어 모험가가 되느냐... 그저 각자의 시작점에 사소한 차이가 있을 뿐.


멋 모르는 신참일 때 2~3할 정도는 죽고, 어찌저찌 살아남아도 써먹기 좋은 용역 취급이나 당하는 삶이다. 뭐 개중에는 운 좋게 연줄을 얻어서 구석진 농토한 뼘 수여받고 하급 귀족이 되는 놈들도 있지만, 평생 싸우는 것 밖에 모르는 놈들이 농사 같은걸 지을 수 있을리가. 대다수는 강도 귀족질이나 하다가 다른 모험가나 기사한테 목이 따이는 걸로 생을 마감한다.


아무튼간에, 모험가 같은걸 직업으로 삼을 바에야 반듯한 영지에 상비군으로 입대를 하는게 처지 면에서 비교도 안 될 만큼 양호하다. 


것도 싫으면 용병... 은 경험자로서 차마 추천은 못 하겠고. 


왜냐고? 바로 내가 용병단에서 구르다가 모험가로 이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똥통에서 똥통으로 갈아 타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똑똑하단 말이야.


씨발, 왜 그때는  용병단이 마을을 행군하는 모습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해 버렸는지. 


아무리 무지한 농노의 아들로 태어났다곤 해도, 자기 주제를 알 만큼의 현명함은 갖추었어야 했다.


그럭저럭 악운이 좋은 편이어서, 마왕이 어쩌고, 용사가 어쩌고 하는 현장에서 구르고도 지금까지 살아 숨 쉬고 있기는 하지만.


'나도 나이를 먹었나... 이래서야 조합의 홀 구석에서 술이나 퍼마시는 늙은이들이랑 다를 게 없는데.'


대충 거창하게 읊을 띄었지만, 그냥 전직 모험가이자 현직 시골 아카데미의 경비병인 한 퇴물 나부랭이의 회한에 불과하다. 


'어디 보저, 시간이... 태양이 거의 중천까지 떠 있으니까 슬슬 점심 시간인가? 조금 있다 보고하고 쉬면 되겠는걸?'


아카데미 건물 근처 풀밭에 누운 채 늘어지게 하품을 한 나는, 한쪽 팔을 머리맡에 올려 지긋이 눈을 감았다. 투구 사이로 난 눈구멍이 팔에 가려지면서, 딱 편안한 느낌의 어둠이 투구 내부에 조성되었다.


절대로 농땡이를 피우는게 아니다. 이건 그, 뭐냐, 기만책 같은거다. 수상한 이가 경계심을 풀고 다가오게끔 하는 고도의...


"또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아, 이건 상정했던 상황이 아닌데. 


나는 적당히 무시하기로 마음 먹었다. 


"여보세요? 다 알거든요, 무시하는거."


가만히 두면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갈 것이다. 대꾸해 줄 필요는 없다.


"이봐요오? 게으름뱅이 경비병 아저씨이~? 안 일어나요? 진짜 자는 거에요?"


"또 왜."


끝내 인내심 싸움에서 져 버린건 나였다.


굳은 몸을 낑낑거리며 일으킨 후, 조잘거리는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어느 불량 학생의 얼굴을 나는 무심히 바라보았다.


"뭐야, 역시 깨 있었네요."


검푸른 색갈의 긴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끼자, 향긋한 냄세가 풍겨 왔다. 또래에 비해 체구가 다소 작은, 마르고 가녀린 몸 위에는 아카데미의 교복이 정갈히 입혀져 있다. 


전반적으로 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차분하고 조용한 인상의 학생이었다. 그럼에도 아카데미 내에서, 그녀는 나름 유명인이었다. 


"가만 보면 아저씨, 제대로 일 하는 날이 하루라도 있긴 한 거에요?"


그래 봤자 불량 학생이지만 말이지.


주변에 있는 나무둥치에 기대어 무릎을 모아 앉은 불량 학생이, 얼굴을 살짝 파뭍으며 내게 곁눈질을 해 왔다.


"얌마, 너는 공부 안 하냐? 젊다고 그렇게 막 살다가는 나중에 후회한다?"


"아저씨처럼요?" 


"... 거 쬐끄만게 못 하는 말이 없어선."


원래 어른인 내가 적당히 접어 주는거다. 찔려서 그러는게 아니다. 


"하다 못 해 땡땡이를 칠 거면 아예 광장이나 시장이라도 가던지, 왜 꼬박 꼬박 재미도 없는 경비 옆에서 노는 거냐?"


"... 가 봤자에요, 저는."


그녀가 무릎 사이로, 아까보다 더 깊게 얼굴을 파 뭍었다. 


깜빡거리는 그녀의 남회색 눈동자가 그늘져 있었다. 그 눈동자를 저도 모르게 바라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보통의 인간에게선 볼 수 없는, 세로로 길게 나 있는 동공. 


전쟁 기간동안 질리게 보아 온, 마족의 눈이다.


"아, 미안, 해요... 기분 나빴죠?"


그녀는 마주친 눈을 황급히 피한 다음, 나에게 사과를 해 왔다. 


반사적인 반응일 것이다. 저 녀석에게는. 


"신경쓰지마."


마왕의 딸들, 재앙의 씨앗, 저주받은 아이. 


대전쟁 시기, 마족과 그들의 첩으로 끌려간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을 일컫는 단어들이다.


그저 순수한 피해자에 불과한 이들이지만, 멸칭이나 다름없는 저 단어들을 보면 알 수 있 듯, 그들이 어떠한 취급을 받고 있는지 알기는 어렵지 않다.


평민의 배 속에서 태어난 이들은 기사수도회에서 씨를 말려 버리고, 귀족의 혈통일 경우라도 보통은 치욕스럽게 여겨 살해당한다. 설사 어미 쪽이 마족의 혼혈아를 자식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딱 목숨만 부지하는 정도.


내 가까이 앉아 있는 저 녀석이 딱 그런 경우라 할 수 있겠지. 추측컨데 이런 별 볼일 없는 시골 아카데미에 진학시킨 것도, 저 알아서 가문과 연을 끊으라는 무언의 압박일 것이라 생각된다.


'후우..."


점점 고개를 수그리더니, 이제 완전히 얼굴을 다리 사이로 감춰버린 그녀를 보며, 나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방금 가 봤자라고 했지? 그럼 안 가봤다는 소리잖아? 꼴에 귀족이라고, 여기 학생중엔 질 나쁜 놈들이 있긴 하지만, 몇 년 눌러 살아본 바론 지역 사람들 인심은 꽤 좋은 편이야. 너무 지레 겁먹지 말고." 


"거짓말..."


"거, 답답하네... 알았어,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녀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까와 같이 반사적으로 눈을 피하려 들자, 나는 그 작은 어깨에 손을 턱- 하고 얹으며 말했다.


"나랑 같이 가. 너더러 뭐라는 놈 들 있으면 내가... 그, 폭력까지는 영주님한테 신세 지는게 있어서 함부로 못 쓰겠고, 최소한 같이 욕정도는 먹어 줄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녀석의 처지나, 상황이나, 배움이 짧아 다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여러가지 것들이 모두.


그래서 뭐랄까, 이상한 폼을 잡게 되었다. 흠씬 패 주겠다는 말도 아니고 같이 욕을 먹어 주겠다는,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개폼을 말이다.


"..."


아까 뱉어버린 말을 끝으로, 서로의 대화는 끊겨 버렸다. 그녀는 살짝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아, 씨발. 나 뭔가 엄청 주책맞은 짓 한 것 같은데, 무슨 바람이 들어서 내가 이런 쪽팔린...


"푸... 흐흣!"


고장난 것 처럼 여태껏  정지해 있던 그녀의 입술 사이로,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대로 내게서 등을 돌린 그녀는, 잠시 웃음을 삼킨 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대꾸해 왔다. 


"후우... 뭐야 그거, 기분 나빠요."

  

여러가지로 멋쩍었던 나는 뒤통수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정작 긁을 머리카락이 투구 안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렸다. 나의 손이 어중간하게 허공을 멤돌았다.  


"그래도... 좋아요. 이대로 차이면 불쌍하잖아요? 같이 가 드릴게요."


"이거, 엎드려 절받기 같은데."


"아무렴 어때요?"


'후후'하며 그녀가 다시 미소를 흘렸다. 다시 나에게로 고개를 돌린 얼굴엔, 아까와는 다른 밝은 기색이 베어 있었다.


"그래, 아무렴 어떠냐. 아, 나 슬슬 시간 차서 보고하러 들어가 본다? 이따 봐."


"아저씨가 유일하게 일하는 시간이네요?"


"시끄러."


여차저차 해서, 나는 그 건방진 꼬맹이를 두고 등을 돌렸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 저기 아저씨!"


그러나 배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내 발걸음은 다시 멈춰섰다.


"그, 저희... 그래도 몇 번 봐온 사이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그녀의 입이 우물쭈물하며 움직였다.


"얼굴 한 번... 보여줄 수 있어요?" 















"총장님~ 정기 보고하러 왔..." 


"오오! 자네로군?"


늘상 그래왔던 것 처럼 총장실의 문을 연 나는, 의외의 굵직한 목소리에 조금 놀랐다. 


하지만 총장의 목소리가 아니었을 뿐, 나에게는 그 또한 충분히 익숙한 목소리였다.


"영주님...? 여긴 어쩌신 일로."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 도시를 비롯한 토지를 아우르는, 다름아닌 이 영지의 주인 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서 영주라 불리는 그 노인은, 언제나처럼 소탈한 미소를 입가에 품으며 내게 말을 건냈다.


"꼭 무슨 일이 있어서 찾아와야 하나? 이 친구 얼굴도 보고, 겸사겸사 자네 얼굴도 보러 들른게지."


'간만에 보니 좋구만, 헛헛!' 하며 웃음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듣기는 좋은데, 자네 안주인 피해서 왔다는 소리는 왜 빼먹나?"


직후 노인의 목소리와는 상반된, 젊은 여성의 목소리도 들려 왔다. 총장의 목소리였다. 초록빛 머리칼을 뒤로 넘기는 총장의 외형은, 복장 정도만 제하고 보면 아카데미의 학생과 착각할 정도로 젊어 보였다.


"어허, 굳이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예예, 아무튼 자, 보고해 봐."


총장의 말에, 나는 적당적당한 예법으로 인사를 한 후, 보고를 올렸다.


"평화롭죠, 아무렴. 오늘도 전혀 이상 없어요."


"자네 보고대로면, 우리 아카데미는 늘상 무사고여야 하는데 말이지."


'저번처럼 약초학 실험실이 녹아내리거나, 그런 일 등등만 빼면 말이야' 덧붙여진 총장의 말에, 나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래도 그, 인명피해는 없었지 않습니까. 자잘한 실수는 있을지 몰라도, 저는 항상 이곳의 안전을 생각해고 있다구요."


"호오? 예를 들면?"


"아까 들어올 때 굵직한 목소리가 들리길레, 드디어 총장님이 자랑하는 노화 방지 마법의 약발이 다 해버린게 아닐까, 심각하게 걱정-"


말을 이어나가던 나는, 급격히 몰려오는 구토감에 채 문장을 끝마치지 못 했다. 조심스레 눈동자를 굴리자, 총장의 얼굴에 소름끼치는 미소가 걸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죽을 죄를... 우욱! 죄송... 그만..!"


"허허, 이래서 내가 발걸음을 끊질 못 하겠다니까."


괴로워 하는 나와, 뚜껑이 열린 총장의 모습을 번갈아보며, 영주는 즐거운 듯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왔다.





"이러이러해서... 오늘은 정말로 이상 없습니다... 마법관련 기자재 있는 방들도 싹 살펴봤고..."


한차례 소동이 끝나고, 이번에도 보고를 대충 넘기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을 느낀 나는, 아주 정성스럽게 총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좋아, 수고했어."


총장의 흡족한 답변이 돌아오자, 나는 비로소 한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것보다, 슬슬 살펴볼 때가 됐는걸?"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게 되자, 다시 마음 한 구석이 복잡해졌다. 


"살펴볼 거라면... 아아, 자네 몸 말이군..."


말의 속뜻을 알아차린 영주는, 아까와 달리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노인에게 조심스레 제안했다.


"영주님, 여러모로 불결한 작업이니, 자리를 잠깐 비우심이..."


"아닐세."


영주의 어투에는, 단정적인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영웅의 상처를 바라보지 못하는 이가, 어디가서 본인을 지도자라 말 할 수 있겠는가?"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영웅일세, 적어도 나에게는."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나의 목소리가 확연히 무거워지자, 총장이 우리 둘 사이를 끼어들었다.


"자자, 후딱 살펴보자고."


나에게 다가온 총장은, 흉갑과 투구 사이의 고정을 풀면서, 드물게도 다정한 목소리로 말 해 왔다.


"그때 네가 홀로 맞서 싸워서, 이 영지가 살아남은거야. 그건 명백한 진실이지. 잘난 용사나 검성은 오지 않았어. 기사수도회나, 다른 고명한 마법사들도 마찬가지, 이런 별 볼일 없는 영지를 구하겠다고 달려온 사람은 없었어."


잠금쇠들이 모두 풀리고, 총장이 묵직한 투구를 조심스래 들어 올렸다. 세상으로부터의 작은 가림막이 걷어지고, 그 내용물이 마침내 드러났다.


"많이 곪아 있구나."


그것은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다만 몇 가지의 특징점이 존재했다.


우측이 사선으로 베여, 다른 이의 얼굴 조각으로 간신히 형체만 꿰메어져 있었다. 왼쪽 턱에서 부터 뺨까지 이어지는 화상 자국이 질척한 고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간 부분에는 단도 같은것이 박혀 있다 빠진 듯, 움푹 패여들어간 피딱지가 굳어진 상태다. 왼쪽 귀는 잘려서, 나머지 반쪽 만이 남았다. 그 외에도 수만은 자상, 절상, 화상, 타박상과 피멍의 흔적들이 그 얼굴에는 가득했다.


비단 얼굴뿐만이 이런 상태인 것이 아니었다.


두터운 천갑에 가려진 몸뚱아리역시, 이름 모를 전사의 팔, 다리가 바느질로 꿰메어 붙여져 있었다.


끝없이 자제를 교체해나간 끝에, 본래의 부분이 전혀 남지 않은 배 이야기처럼, 그 누구의 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기괴한 살덩이의 집합.


그 조잡하고, 이리저리 뒤섞인 몸뚱이를 움직이는 이가 몸의 소유권자라고 한다면, 거기까지 가서야 나는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몸이 나의 몸임을.   











"...기다렸냐?"


건방진 불량 학생이, 아카데미의 정문에 꼿꼿히, 아주 고집스러워 보이는 태도로 서 있었다. 


"조금요."


아, 이거 화 난거 같은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말로 어쩔 수가 없는, 그런 일 때문에 늦어 버려서, 이번 만큼은 별 도리가 없다.


"... 갑옷이네요?"


"어? 어... 이게 편해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근래 몇 년간은, 이 갑옷이라는 작은 세상 안에서 살아왔다. 좋든 싫든, 익숙해 질 수밖에 없다.


"괜찮다고 생각해요."


"뭐가?"


"그 모습도 좋은 것 같아요. 예, 봐 줄 만 해요."


무언가를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그리 말했다. 어쩌면 저 눈이 본 것일까? 이 허술한 철판 너머의 것을. 


"... 뭘 멀뚱히 있어요? 가요."


나의 팔목을 먼저 덮썩 잡은 그녀가, 성큼거리며 나아갔다. 지금 우리 둘의 모습이, 주변에 어떻해 보일까를 생각하니, 상당히 우스웠다.


아마도 마왕의 사생아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 경비를 잡어먹으려 든다거나, 아니면 어리석은 경비가 상대의 무서움을 모르고 마족의 잡종에게 손을 댈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뭐가 어떻해 보이든, 전혀 상관은 없었다.  그런 기분이었다.  


"고맙다."


"뜬금없이요?"


"그냥 말 하고 싶었어."


"... 이상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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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량은 이 정도 감성이 한계니까, 누군가 비슷한 느낌으로 '써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