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오천 하고도 삼백…뭐시기.

 사실 안 세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잘 모른다.
 
 나 말고 다른 놈들은 진작에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렸는데, 나이 같은 걸 세서 어디다 써먹게?

 혼자 남은 드래곤 치고는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함부로 산 밑 세상에 관여하지도 않고, 적당히 산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랑 동물들이나 먹으면서 살고 있었으니까.

 가끔씩 밑에 사는 놈들이 이제 드래곤이 뭔지 알고는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인간들은 쉽게 죽어버리는 주제에 기억력은 쓸데없이 좋았다.

 괜히 내려갔다가 또 싸그리 뒤엎기는 좀 미안해서, 궁금한 것도 꾹꾹 참고 산꼭대기에만 살았다.

 이 곳에서는 내가 가장 젊으니까.

 내 동굴 앞에 늘어진 산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산이었고, 이곳에 쌓인 눈들은 설령 내 재체기에 녹을지언정 비가 되고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눈이 되어 쌓였다.

 하늘 높이 걸린 태양은 내가 늙어죽는 날에도 똑같이 느긋하게 창공을 가로질러 저물어가겠지.

 지루하기 짝이 없던 때도 있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이곳이야말로 드래곤에게 딱 걸맞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내가 가장 젊고, 내가 가장 기운 넘치는 존재니까.

 내 멋대로 날아다니고 불도 뿜고 때려부수다가도 겸허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여기 있었구나, 이 사악한 드래곤!”

 말하는 철덩이가 이쑤시개를 들고 찾아왔다.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라, 나도 모르게 콧김을 내뿜고 말았다.

 쉬이이익~!

 “이익! 뜨겁다! 이것이 소문으로만 듣던 드래곤의 숨결인가…!”

 소문으로 들어? 나를?

 “야.”

 내가 말을 꺼내자, 말하는 철덩이는 화들짝 놀라더니 이쑤시개를 위협적으로 치켜들었다.

 “ㄴ, 네 이놈! 네 까짓 도마뱀이 그 어떤 간사한 말을 내뱉어도 난 속지 않겠다!”

 “도마뱀?”
 
 그건 또 뭐야. 뱀이면 바실리스크 말하는 건가? 그러면 그 앞에 붙은 도마는 무슨 뜻이지?

 “ㄱ, 그렇다! 이 도마뱀 놈! 내 칼을 받아라!”

 깡.

 “어, 어라?”

 깡! 깡!

 “이, 이럴리가 없는데?”

 깡! 깡! 깡!

 내 발톱을 쿡쿡 찔러대던 이쑤시개는 금세 휘어지고 말았다. 휘어진 이쑤시개를 멍하니 바라보던 철덩이는 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보았다.

 “저 그냥 돌아가면 안될까요?”

 얘 진짜 뭐하는 놈이냐? 좀 재밌는데?

 “…뭐, 그러던지.”

 “어, 지, 진짜요? 진짜?!”

 “그럴리가 있나.”

 간만에 대화할 놈이 생겼는데 누가 가만히 보내줘?
 
 앞발로 벽을 쿵, 때려서 산사태를 일으켰다.

 우르르, 하고 돌덩이며 흙 따위가 무너져 내려 동굴의 입구를 막았다.

그러자 말하는 철덩이는 “우아아아악!?” 하고, 나도 조금 놀랄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이야. 조금 감동인데?

 허겁지겁 막힌 입구를 앞발로 더듬던 철덩이는 곧 내 앞에 넙죽 엎드렸다.

 “ㅈ, 저 진짜 잘못했어요…다시는 나쁜 짓 안 할테니까…”

 응?

 “너 나쁜짓 하고 다녔냐?”

 “아아아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그, 어, 드래곤 님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라거나, 그 뭐냐, 아무튼 뭐든지 잘못 했습니다! 제발 잡아먹지 말아주세요!”

 아하, 그랬구만.

 아까부터 좋아하는 것 치고는 조금 이상하다 싶었더니, 겁을 먹었던 거였군.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실망이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보고 도망 안 치는 동물은 여지껏 하나도 없었으니까. 왜냐하면 도망 안 간 놈들은 다 먹어치웠거든.

 하긴, 나도 갑자기 산 하나가 벌떡 일어나서 나를 깔아뭉게려고 하면 무섭긴 하겠다.

 으~음, 기왕이면 이 모습 그대로 있고 싶은데, 이대로 철덩이를 겁에 질린 채로 두기는 곤란하다.

 그냥 두면 익숙해지지 않겠냐마는, 원래 남이랑 친해지고 싶으면 내가 몇 수 지고 들어가 줘야 한다고 고뉘아가 말했었으니까…

 “야, 철덩이.”

 “…?”

 “너, 임마. 너.”

 “아! ㄴ, 네!”

 철덩이를 두르고도 곧게 차렷도 하네. 대단하다.

 점점 보내주기 아까운 녀석이야.

 “너, 내 말상대가 되어라.”
 
 “ㅈ, 잘못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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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떠오른 소재였는데

생각보다 너무 고전적인 맛이라

소재로만 남겨두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