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애타게 불러도, 수도 마법대학의 이론 교수 토머스는 힘없이 양 손을 들어올릴 뿐이었다.


"음, 미안하지만 전 마법을 못 써요. 첫 수업 시간에 말하지 않았나요?"


"마법 대학 교수님이 마법을 못 쓰면 어떡...으악?!"


검은 머리의 남학생은, 날아오는 화염구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어이쿠."


말과는 다르게, 덤덤한 감탄사와 함께 방어벽을 펼쳐 화염구를 막아내는 토머스를 보며 학생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반짝였지만...


파삭.


"에고, 부서졌네. 마지막 마도구였는데, 어떡하죠."


마도구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태연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그들은 또다시 낙담했다.


"하, 학비도 다 못 갚았는데..."


"이딴 현장 학습 오는게 아니었는데..."


눈앞의 괴한들은, 그런 것은 아랑곳않고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진정하고...방어벽 쳐 보세요. 다른 거 할 필요도 없으니까, 방어벽만."


"그렇게 싸워 봤자 얻어맞다가 마력 다 떨어지고 죽을 텐데 무슨 의미가 있...으아악!"


투덜거리는 것도 잠시, 날아오는 마력탄을 방어벽으로 막으며 검은 머리의 학생, 알렉은 몸을 덜덜 떨었다. 어찌저찌 막아내기는 했다만, 그의 방어벽은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당황하지 말고, 방어벽 복구하세요. 여러분도 보기만 하지 말구요. 같이 다른 건 필요없고, 방어벽만 치세요."


그의 말을 의심하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끝없이 날아오는 공격 마법에 학생들은 별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방어벽을 펼쳤다. 물론 토머스의 지시를 따르면서도, 의심은 멈추지 않았지만. 사실 당연한 것이, 기본적으로 방어마법은 공격마법에 비해 낭비가 심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었고, 동 실력을 기준으로 방어만 하는 쪽은 결국 먼저 마력이 고갈되어 패배하는것이 정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방 한 방이 방어벽을 박살내기 직전까지 가는 것으로 보아, 실력적으로도 자신들보다 우위일 지도 몰랐다. 주변에 휘몰아치는 마력은 덤이고.


"이러다 진짜 다 죽어요! 차라리 몇 대 맞아줄 각오 하고 공격하는 게...!"


갈색 장발의 여학생이 거의 토하듯 내뱉었지만, 토머스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차라리 모험가나 할 걸...! 학교에서 책만 보니까 할 수 있는게 없잖아...!"


"음, 그건 이론 교수로서 조금 슬프네요."


"시끄러워요!"


"그나저나 슬슬, 힘 빠질 때가 됐는데."


"예?"


학생 중 한 명이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그 학생의 잠시 집중이 흐트러진 탓에 방어벽이 조금 약해졌고, 본인도 기겁하며 다시 마력을 집중했지만...더 이상 공격이 날아오지 않았다.


"...어?"


먼지가 걷히자, 일행을 습격했던 괴한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공격을 계속할지 도주할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마침내 그들이 뒤로 돌아 도망가려 하자, 학생들은 이때다 싶어 방어를 풀고 공격하려 했지만-


"아르테, 알렉, 유리아. 세 명만 공격하세요. 나머지는 방어벽 유지하시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챈트된 단검 여러개가 날아왔다. 방어벽을 반쯤 관통한 채 멈춤 단검들을 보며 적은 도주하려 했지만, 역으로 자신들의 머리 위에 내리꽂히는 벼락에 꼼짝도 못한 채 기절했다.


"어우야, 누가 범죄자 아니랄까 봐 꼼수는 하여튼."


"어, 어? 이, 이거 기절한 거 맞아요? 막 품에서 칼 꺼낸다거나..."


"걱정되면 침묵 걸고 한번 더 지져요."


"어...그러다 죽으면 어떡하죠?"


다른 학생들은 그 질문에 약간의 눈총을 주었지만, 토머스는 오히려 기쁘다는 듯 손뼉을 치며 웃었다.


"훌륭하네요. 그럼 침묵에 속박 정도만 걸고 대화를 나눠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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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자, 일어나세요. 언제까지 퍼질러 자는 거죠?"


토머스가 대충 적들 중에서 가장 화려한 옷을 입은 인간의 머리를 지팡이 끝으로 툭툭 건드리자, 남자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 씨발새ㄲ-"


남자가 말을 미처 끝맻기도 전에, 토머스는 지팡이로 남자의 옆통수를 후려쳤다.


"입에 걸레를 물었네요. 뭐, 아무튼...누구시죠?"


남자는 가래침을 뱉었다.


"좆까."


"음...유리아 학생. 최면 걸어줄래요?"


"어...안 통할 것 같은데..."


"아 통해요. 100% 통해요. 절 믿고 걸어보세요."


"내 머리에 장난질하면 죽여버린다 이...으어?"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움찔한 유리아가 마법을 걸자, 남자의 얼굴에서 즉각 힘이 풀렸다.


"자, 다시. 너네 뭐 하는 놈들이세요?"


"...쿠르타 갱단이다. 우린 골목에서 외지인들 짐 뺏는 게 주 업무고...뭐야 씨발?"


너무나도 완벽하게 걸린 최면에 유리아 본인도 놀랐지만, 정작 토머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뭐, 양아치들이 양아치 짓 하면서 산다는 거네요. 우리가 누군지 알고는 있어요?"


"지랄 말고 이거 풀...대충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쪽 말마따나 옷차림만 봐도 마법대학 학생이랑 교사인데 무슨 깡으로 덤볐어요?"


이번 질문에 대한 대답만큼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 남자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책상에서 글자나 끄적이는 등신 새끼들 죽이는 게 제일 쉬우니까. 꼴에 엘리트랍시고 쳐 나대다가 한 대 맞고 어버버하다 뒤지는 게 일상이거든."


"와, 열등감에 그냥 찌들어 있네요. 하긴, 실력이 그따위밖에 안 되니까 마법을 쓸 줄 아는 인간들이 강도짓이나 하고 자빠진 거겠죠."


"이 개-"


"욕만 할 거면 입 다무시고. 뭐, 그냥 널리고 널린 강도였네요! 적당히 경비대에 넘기고 이동합시다."


학생들은 잠시 우물쭈물하다, 입을 열었다.


"그...나중에 혹시 복수하려 한다거나..."


"하라 그래요. 그땐 죽여도 뭐라고 안 할게요."


"교수님, 이런 말 하기 자존심 상하지만, 솔직히...이길 자신 없어요. 저 인간이 한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고요. 저흰 전투 경험이 별로 없기도 하고."


그러자, 토머스는 피식 웃었다.


"아까 그 공격들이 어지간히 인상깊었나 보네요. 근데, 이거 좀 볼래요?"


토머스가 가리킨 곳에는, 남자의 검게 타버린 옷소매가 있었다. 옅은 화상도 입었는지, 피부 역시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쏜 마법에 자기가 불타는 바보들이에요. 왜 저들이 화염 마법만 썼는지 알려줄까요? 계산도 젬병이고 센스도 구려서 전격 마법은 죄다 빗나갈 거고, 물이나 대지 마법같이 물질을 조작하는 마법은 압력과 밀도가 한없이 낮아서 공격이 성립이 안 되서랍니다. 그나마 화염 공격은 대충 날려도 맞고, 일단 고온이라 맞으면 다치니까 그것만 날리는 거에요."


남자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며 항변하려는 움직임을 취했지만, 입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아까 주변에 마력이 거칠게 몰아쳐서 그거에 겁먹은 학생들도 있을 텐데...뭐, 전교에서 순위권에 드는 파르티잔 학생이나 율리시아 학생 같은 사람들은 마력이 정말 넘쳐나서 억누르고 억눌러도 새어나오는 거지만, 이 인간들은 그냥 마력을 조절할 줄 몰라서 사방으로 힘이 줄줄 새는겁니다. 그래서 몇 발 쏘자마자 힘은 다 빠지고, 결국 도망가는 척 하다가 뒤로 마법이 걸린 칼 던지기 같은 꼼수나 썼던 거죠."


 토머스는 크흠, 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음, 이건 제가 이론 교수라서 하는 말이지만...이딴 인간들이 말하는 '실전 경험'같은 건...정말 별거 없어요. 이런 길거리 범죄자들이 쓰는 수법은 거의 항상 똑같답니다. 선제공격, 기습, 그리고 극단적인 공격. 그거에 상대가 당황해서 흐트러지면 달려들어서 죽이고, 안 통하면 도망가는거죠."


"...하지만 대학에선, 그런 건..."


"안 가르치죠. 이유는 간단해요. 그런 잔머리는 졸업하고 수습기간 한 석 달만 뛰어도 개나소나 다 알거든요. 이 놈들은 졸업생 몇 명 습격했다고 자기들은 실전에 강하니 뭐니 꺼드럭대는 모양이지만. 사실, 경험의 차이라던가 그런 것보다 제일 중요한 건...여러분 중에서, 공격받자마자 이 사람들을 전부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사람 있나요? 단순히 스스로를 지키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 사람들을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학생들 중 몇몇이 머뭇거렸지만, 끝내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토머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이 비겁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여러분처럼 정식으로 교육받은 마법사나 기사가 함부로 살인을 일삼지 않는다는 '선의'에 기대는 찌질한 인간들이에요. 여러분이 졸업한 뒤에는, 아마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그럴 의지를 품는다면 마을 하나쯤은 손쉽게 몰살할 수 있겠죠. 그런 무분별한 폭력을 막기 위해 저희가 교육하는 도덕과 윤리의 틈을 노려서 습격하는 범죄자 주제에 등신이니 뭐니 헛소리나 하니, 참 한심하죠?"


토머스의 말에, 옆에서 아직도 '고작 학생'이 건 최면 마법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남자가 신뢰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토머스는 슬슬 움직일 때라며, 손뼉을 치며 걷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공부나 이론을 너무 무의미하다고 여기지 말아주세요. 이론을 익히는 것, 계산하는 것, 마법을 최적화하는 방법...그 모든 것들도 결국에는 경험의 일부에요. 괜히 기사단이든, 길드든, 영지든 제대로 교육받은 기사나 마법사를 우대하는 게 아니에요. 경험이 어느정도 쌓이고 나면, 기초부터 철저히 쌓아올린 마법사와 대충 마법을 발사할 줄만 아는 사람과는 그 한계점이 차원이 달라서랍니다. 그러니까,"


그가 학생들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겠죠? 현장 학습에 관한 것도 시험 문제로 낼 거니까, 집중해서 보도록 하세요!"


도시에, 한 교수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여러 학생들의 우울한 원성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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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카데미물엔 주로 실전이나 경험 위주, 그리고 주인공은 일신의 무력을 앞세운 교육 스타일이 많다보니 역으로 본인의 무력은 일반적인 학생보다도 약하고 (스스로 마법 사용불가) 가르치는 과목이 이론 및 계산같은 순수한 학문 위주인 건 어떨까! 싶어서 쪄와봄.


'대학' 이라는 이름답게 책과 수식, 이론을 이용하는 아카데미물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