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신선이 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인간을 단약으로 고아 먹는 수도 세계에서 선(善)과 협(俠)을 행하였으며.


마침내 상제(上帝)의 좌에 올라, 수도자들에게 의협(義俠)의 가르침을 전파했답니다...




 ***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린 시절. 

나무를 패느라 멍든 손을 어루만지며 어머님께 한탄한 적이 있었다.


저희는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요?

아버님과 어머님이 가진 신통이라면 저 권문세가 못지 않게 누릴 수 있을 터인데.

어째서 저희는 이런 폐허에서 나무 껍질로 배를 채워야 하나요.

어째서 저 탐욕스러운 주민들을 위해 노동하고 봉사해야 하나요.


이에 어머님은 쓴 웃음을 지으며 답하셨다.


그것이 선(善)이기 때문이란다.

아이야,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 마려무나.

방금 네 질문으로 우리 가족의 3년 수행이 흩어졌으니.


충분하지 못한 답이었으나 더 물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의 굳은 표정이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


미간을 두드리는 빗방울 탓에 잠에서 깨어났다. 


또 천장에 구멍이 뚫린 것인지. 아니면 저번에 임시로 묶어둔 볏짚이 바람에 날아간 것인지.

어느 쪽이든 귀찮게 되었다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돌바닥에서 잠들며 잔뜩 굳은 몸이 당연한 비명을 질렀다.

개의치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익숙했던 일인지라 불평도 불만도 없다. 

그저 익숙한 몸짓으로 팔을 돌리며 집안을 살폈다.


'다른 가족들은... 역시 나가셨나.'


폐허에 가까운 집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예상한 일이었다. 시간은 이제 갓 묘시(卯時, 5시 30분)가 되었다만, 수도(修道)에 뜻을 두신 가족들에게는 이조차 늦은 시간일 터.

아마 지금쯤 그분들은 시내에서 한창 선(善)을 행하고 있으실 터였다.


'오늘은 어떤 일을 하고 오실런지.'


가볍게 떠올려 보았다가 금세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영근이 없는 나로써는 수도에 뜻을 둘 수조차 없다. 

그렇다면 괜한 상념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어서 빨리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나무 껍질도 뜯어야 하고, 혹시 모르니 덫도 둘러봐야 하고. 지붕도 확인한 뒤 보수해야 하니...'


편히 쉴 시간은 결코 없었다.

음식을 구하는 것. 먹기 위해 사냥하는 것. 빗방울을 막고 돈을 버는 것.

스스로의 평안을 위해 청빈을 저버리는 것.


그 모두가 수도 가문의 유일한 범인(凡人)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


몸이 고될수록 정신을 맑아진다.

덫에 빠진 동물을 붙잡고, 함께 먹을 나무 껍질을 뜯고, 천장을 보수할 목재를 패고.

범인의 몸으로는 하나같이 고된 일이었으나, 덕분에 정신을 선명하고 예리해졌다.


맑아진 정신 안쪽으로 평소와 같은 생각이 스쳤다.

어린 시절 충동적으로 던진 질문.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못했으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


[어째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똑같은 말로 자문하고 생각을 그러모아 답해 본다.


'그것이 수도이기 때문에.'


이제는 동화로만 내려오는 상제의 등극 이후.

선업을 쌓으면 인간조차 신선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영근은 축복이다. 범인에게 신선이 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영근을 타고난 수도자는 남을 돕고 선을 쌓으며 신선으로의 단계를 오른다.

매번 선행을 쌓을 때마다 사용할 수 있는 신통이 늘어난다.


하여 신선이 되고자 하는 수도자들은 매 순간 스스로를 희생한다. 


괜한 살생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절식(絶食)한다.

탐욕을 줄이고 청빈을 실천하기 위해 하늘을 지붕 삼아 살아간다.

오로지 범인들의 구세만을 위하여 신통을 사용한다.


듣기 좋은 말이다.

듣기에만 좋은 말이다.


가족들은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하였으나, 내 나이도 지학(志學, 15세)이다.

그들이 행하는 선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본 것은 옷을 사러 갔을 때였지.'


나무를 패 내다 팔며 돈을 모았다.

가족들에게 선물하고자 포목점에서 옷 한 벌을 골랐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했다. 마을 이장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 채 설교를 듣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내 분명 말하지 않았던가! 나무의 잎을 치되 낙엽이 땅에 닿지 않도록 하라고!


무슨 내용인지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으나, 짐작할 수는 있었다.

정원의 조경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장의 마당에 심은 나무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모양을 바꿔 달라는 요청이었지.


허나 요청한 사안대로 정원이 다듬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장은 관련 없는 트집을 잡으며 아버지의 뺨을 때리고 있었다.


-신선이 되겠다는 이들이 이런 것도 못 하나? 도무지 쓸 데가 없어서는!


저게 화풀이라는 건 어린 나조차 알 수 있었다.

수도자가 범인의 손짓에 고통을 느끼지 않음도 알고 있었다.


허나 그날을 기점으로 내 마음속에는 어떤 불길이 타올랐다. 

그렇게 며칠을 고뇌하던 나는, 결국 아버지께 몰래 찾아가 여쭈었다.


-아버지, 어째서 이장의 말을 들어 주었나요? 남의 정원을 손질해 주는 게 선행(善行)인가요?


그분은 퍽 놀란 반응을 보이셨다가, 금세 표정을 관리하며 답하셨다. 


-이장님의 노모께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풍경이라고 하더구나.


-하지만 이장의 어머니는 이미 눈이 멀었는걸요. 이장이 거짓말을 한 거예요. 그저 아버지를 종놈처럼 부릴 핑계를 댄 거라고요.


-아들아, 사람의 말을 함부로 거짓이라 폄하하면 아니된다. 타인을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선인 게야.


-그래도...


-그만. 여기까지만 하거라. 


아버지는 손짓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평소의 아버지와는 너무도 다른 반응이었다.

무엇을 물어도 웃으며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던 그분.

이리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조금 더 크기를 키웠다.

이후 나는 저잣거리를 암행하며 '수도'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선을 행한다는 미명 아래에서 노비처럼 혹사 당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똑똑히 내 눈에 담았다. 


-옆 마을 김씨에게 이걸 좀 전해주게. 김씨가 한둘이 아닌데 어찌 찾냐고? 하, 그대의 신통은 놔뒀다가 밥이라도 말아 먹으려는 겐가?


-가축의 분변이 쌓여 냄새가 고약하다네. 두 시진 내로 치워 두게나. 혹여 그 과정에서 가축이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내 그대를 가만 두지 않을 걸세.


-그 머리카락, 색이 꽤 예쁘구려? 아이의 선물로 주고 싶은데 조금 잘라 주시오. 거부? 어허, 지금 감히 청빈의 예를 어길 생각이신가?


이는 영근을 가지고 태어난 순간부터 예정된 노동이었다.


악을 참살하는 것 또한 수도자의 선업이 되기에.

남을 도울 능력이 있음에도 돕지 않는 수도자는, 다른 수도자의 '선행(善行)'에 잡아 먹힌다.


태어난 순간부터 강제로 끌어 들여진 수도의 길. 

나는 그것이 그리도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수도자들은 선을 행한다.

이 얼마나 과히 함축되고 농밀히 오염된 말인가.


*


여느 때와 같은 상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해는 저 아래로 떨어졌다. 어두운 폐허에서 주섬주섬 천장을 고치고 있자니, 얼굴에 분진을 가득 묻힌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친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그보다 조금 뒤로, 이제 갓 수도 활동을 시작한 누이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불쌍하고 안타까웠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로의 말도 자칫하다간 죄업이 될 터. 


나는 지친 모습의 가족들을 맞이하며 저녁 상을 차렸다.


"빨리 드세요. 식겠어요."


다행히 오늘의 덫에는 토실한 암탉 한 마리가 걸려 있었다.

평소 먹던 나무 껍질 죽에 드문 기름기가 올라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근엄하게 예를 차리셨으나, 아직 충년(沖年, 10세)한 누이는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했다. 


"아이야. 수도의 길을 걷는 이가 육식을 탐해서는..."


아버지는 그런 누이에게 작은 충고의 말을 던졌다.

불살생, 금욕, 절식과 선도 따위의 듣기 좋은 말.

애초에 내가 아니었다면 저녁조차 먹지 않았으리라.

아직 절식에 익숙하지 않은 여동생은 굶주림을 참으며 억지로 잠을 청했겠지.


나는 그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다.

하여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 손을 뻗어 고깃덩이를 누이의 입 안에 넣었다.

수도자인 동생의 힘이라면 날 밀쳐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나, 그조차 악업이 될 터.


결국 여동생은 별 말 없이 입에 온 고기를 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허례를 거치고 나서야 아버지도 입을 다무셨다.

어머니는 그런 풍경을 나름 즐겁고, 나름 귀엽다는 듯 지켜보셨다.


이미 익숙해진 저녁 풍경이었다.


*


다음날.


내 하루는 똑같이 흘러갔다. 

안타깝게도 덫에 걸린 짐승은 없었으나, 지붕을 고치지 않아도 되는 만큼 나무를 더 팰 수 있었다.

목재를 내다 팔아 얻은 잔돈으로 무엇을 할까 상상하며 가족을 기다렸다.


부모님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어제처럼 지치고 굳은 얼굴이었다.

익숙한 일이었기에 저녁 상을 준비했다.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은 건 그때쯤이었다.


"아버님. 누이는 어째서 오지 않습니까?"


별 생각 없이 던진 질문.

허나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답을 하지 않았다.

굳은 얼굴을 더욱 찌푸리며 방 안으로 들어가실 뿐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저 '평소와 같은 표정'이 사실 '최선을 다해 평정을 노력하는 표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머님. 무슨 일입니까."


내 질문을 받은 어머니는 똑같이 얼굴을 굳혔다가, 조금씩 설명을 시작했다.


마을의 거지에게 자식이 하나 있다.

그놈이 자폐증을 앓고 있다.

성욕에 미쳐 누군가는 풀어주어야 하는데, 마땅한 인력이 없었다...


어머니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장작이 되어 불길을 키웠다.

나는 분노를 억지로 억누르며 물었다.


"...그래서. 제 누이가. 그곳으로 시집이라도 간단 말입니까."


"얘야, 그것도 선행이란다. 신선이 될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그걸 하겠느냐."


거기까지만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친 채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 마지막 순간.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아들아. 네게 영근이 없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불길에 몸을 맡겼다.

타오르며 일렁이는 시간들은 내 것임에도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복수심일지 모를 감정에 휩쓸리며.

그저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께서 여긴 어찌-"


애써 의연한 척 하는 누이에게 찾아갔다.

거지의 집은 이미 알고 있었다. 종종 우리 집에 와서 물건을 훔쳐갔기 때문이다.

그조차 용서해야 하는 게 수도자의 업이었으니. 제 집인 양 물건을 훔치고 되려 청빈의 가르침을 논했다.

당시의 감정을 불길의 연료로 삼으며. 말리는 누이를 뒤로 한 채 손을 뻗었다.


'이것이 선행인가?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정녕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답은 명확했다.

세상이 그것을 선이라 칭할지언정. 내게 그것은 선이 아니었다.


선(善)과 선(仙)이 다른 획을 쓰듯.

선행과 선행도 달라야 마땅할 터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뻗은 손을 내려쳤다.

내 손끝에는 닭을 잡느라 썼던 낡은 식도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무디고 낡아 싸움에는 적합하지 않았으나. 

제 욕망에 충실한 짐승, 깊이 잠든 돼지 하나를 도축하기에는 충분했다.


다행히 밤은 길었다.




***




20년 후.


수도자들의 세상에 마선(魔仙)이라는 이름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영근이 없는 범인임에도 불구하고 수도자의 추적을 능히 따돌리며.

수도자들이 활동하던 마을에 숨어들어 하룻밤만에 모든 주민을 살해하는 악인(惡人).

수도자의 신통을 알고 있었다는 듯 피하며, 주민의 시체를 단약 삼아 몸을 강화하는 기인.


마선을 척살하기 위해 전국의 수도자들이 연합했다.

천라지망을 만들어 몰아넣었다. 강대한 마선조차 수도자의 연합은 당해내지 못했다.


천라지망의 마지막 날.

최후를 직감한 탓일까. 마선은 어떤 저항도 없이 수도자들의 공격을 받아들였고.

수천 수도자의 법구를 하나하나 손수 맞아가며 피를 뿌리고 죽어갔다.


그가 쌓은 죄업은 실로 막대하였기에, 그를 처치한 선업(善業) 역시 거대했고.

덕분에 천라지망에 참여한 수도자들은 단숨에 신선이 되기 위한 선행을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수천 수도자가 단숨에 비승하는 역사적인 날.

인간 단약으로 뒤틀린 얼굴의 마선은, 만연한 빛줄기 속에서 깊은 미소를 지었다. 

오직 비승하는 수도자들에게만 들릴 단말마였다. 


"보아라 상제여... 선(善)이 아님에도 선(仙)을 행할 수 있음을..."









한국식 선협은 기본적으로 [미친 사이다패스 사이에서 행하는 의협심] 느낌이라서

아예 그 반대로 가면 어떨까 하는 느낌으로 써 봄.

'미친 수도자 놈들에게는 구속이 필요해!'란 주인공의 선택에 고통받는 후세대 수도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