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여기 천엽볶음에 호엽말주 한병 더 가져와!"


거나하게 취한 젊은 사내가 객잔 구석에서 소리쳤다.

그 몸매가 제법 단단하고 금속제 아대를 차고 있는 꼴이

무예를 수련하던 인물 이라는걸 알아보기에 충분했다.


"이보게, 장형. 자네 부친이 맡겨놓은 외상값은 진작에 

다 써버린지 오래일세. 이젠 정산을 해줘야 술을 내줄 수 있어."


"뭬라고.."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푹 쳐박고 있던 사내가

술에 취해 번들거리는 눈을 치켜뜨고 주인장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멱살을 잡고 늘어졌다.


"이 사기꾼이! 그 돈이 얼마인데 벌써 다 썻다는 거야..!"


"그만하게 장봉! 이게 무슨 행패인가!"


소리를 들은 기도들이 몰려와 몸을 가누지 못 하는

장봉을 붙들고 가게 앞에 패대기 쳤다. 데굴데굴 구르다

축 늘어진 장봉을 내려다 보며 주인장이 혀를 끌끌 찼다.


"내 자네 부친과 호형호제하던 사이라 밥이나 거르지 말라고

외상값을 후하게 쳐주었거늘, 값비싼 술과 안주로 탕진해놓고

한껏 취해 난동까지 부리다니..두 번 다신 얼씬도 하지 말게."


"끄우우우.."


세상이 빙빙도는 듯한 느낌에 돌바닥에 드러누운 장봉을

뒤로한 채 객잔 주인은 가게로 들어가 버렸다. 저녁시간이

한 참 지난 야밤이지만 유흥가의 거리엔 사람들이 가득했고

다들 그의 한심한 꼴을 보며 킥킥거리고 지나가는 것 이었다.


장봉, 약관 22세. 장씨가문의 샘대독자로 모자랄 것 없이

자랐으나, 학문에 뜻이 없어 무도에 몸담고자 하였다.


허나, 재능의 부재인지 그 의지가 얄팍했던 것인지

이름난 무파에 모두 낙방하고 관아의 군졸로도 들어간지

얼마 안되어 퇴출. 동네에서 주먹패로 전전하다

그의 부친마저 홧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유산도 노름과 술값으로 탕진하니 

그 신세가 지금의 꼬라지에 이르고 만 것이었다.



한참을 바닥에 누워 있던 장봉은 돌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버티기 어려웠는지 비틀거리며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흑흑, 씨발것의 세상.."


처량한 달빛 아래 갈지자로 휘청 대며 걸어가는 그의 시야에

길에 깔린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삿갓을 쓰고 뒷짐을 진 사내이건데

서있는 폼이 나이깨나 먹은 모양이다.

길 한가운데를 쳐막고 서 있는 노인네에게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지나가려는 찰나, 그 인물이

마치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중얼 거렸다.



"기골은 곧고 넓으며, 심장은 기를 내뿜는 것이 화산과

같고 머릿 속에선 삼라만상이 빠르게 몰아치니, 어떤 기예이든

익히기만 하면 높은 경지에 오를만 하나..."


"?"


"체내 곳곳에 막힌 혈이 무엇이든 오래 집중하지 못하고

당장의 주락을 쫓게 하며, 그 재능을 좀먹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처지로다."



"..이보쇼 노인장, 야밤에 사람 신경 긁지 말고...우웁,

가던 길이나 가쇼.."


화를 낼 기운도 없어 옆으로 지나치려는 장봉을

노인네가 옆으로 한발짝 움직여 막아섰다.


"뭐 하자는거요?"


"내 자네의 막힌 혈을 뚫어 모든 잠재력을 끌어내 준다면


자네는 나에게 뭘 내놓을텐가?"


"아 좀! 저리 꺼지쇼! 보는 이도 없는데 험한꼴 당하기 싫으면.."


장봉이 버럭대며 지나가려는데 별안간 노인네가

배를 부여잡고는 미친듯이 웃어대는 것이었다.


"오호호하하하하핫...!큽..!흐흐흐! 으핫, 하하하하핫_!"


별안간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대는 꼴에 장봉이 반쯔 넋이나간 채

쳐다보고 있으니 노인네는 힘겹게 웃음을 멈추더니

코를 풀고 헛기침을 하는 등 별 지랄을 떨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날 험한꼴을 당하게 해준다면 내 이걸 줌세."


그리고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드는데 잘 보니 그것은

호두알만한 금 두꺼비였다. 족히 30돈은 넘어 보이는 것이

이런 동네에서 집 한두채는 우스울 물건이다.


달빛을 받아 노랗고도 푸르게 빛나는 두꺼비를 보자

장봉을 술기운에 대번에 달아나며 심장이 뛰는것을

느꼇다.


"정말로 주는거요..두 말하기 없는 겁니다!?"


"내가 두 말한들 무슨 소용인가? 여기엔 보는 눈도 없으니

자네가 날 때려 눕히고 가져간다면 이것은 자네 것인게지."


듣고보니 정말로 그러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시가지를

벗어난 외곽의 논 두렁길엔 사람은 커녕 괭이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갑니다!"


무방비하게 서있는 노인을 향해 장봉은 빠르게 정권을 내질렀다.

노리는 것은 명치, 힘을 싣지 않아도 한 번 얻어 맞으면 사지가 오그라드는

급소이나 그래서 큰 상처를 입히지 않고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장봉의 주먹을 제대로 들어갔다. 묵직한 타격감이 손을 타고

전해지고 그는 흙바닥에 코를 쳐박고 있었다.


그는 땅바닥에 정권을 지른 것이었다.


'으윽, 취기가 가시지 않았구나..스스로 넘어지다니.'


허둥지둥 일어나 다시 자세를 갖추는 그에게

노인장이 싸늘한 눈빛으로 흘겨보며 말했다.


"두 번은 안 될것이야."


"?"


"다시 한 번 날 덜 다치게 할 심산으로 어설픈


주먹을 날린다면.. 자네는 죽네."


"뭐,뭐요.."


터무니 없는 허풍. 몸무게가 15관도 되지 않을 법한

노인이 신체 강건한 젊은이인 자신을..


하지만 장봉은 등줄기에 고드름이 구른듯한 서늘함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노리는 곳은 목젖 바로 아래, 가볍게 맞으면 잠시간 호흡이

곤란하고 제대로 타격하면 그대로 혼절하여 심장을 멎게 만드는

진짜 '살점' 이었다.


노인은 주먹이 꽂히기 직전까지도 미동조차 없다.

장봉이 진짜 시체를 치워야할 것을 걱정 하려는 찰나,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것이 보인듯도 하더니 눈앞의 시야가

탁 트이고 눈 앞에 보름달이 들어왔다.


자신의 몸이 붕 떠있음을 느끼려는 찰나, 송곳을 뼈에 박아넣는

고통이 신체 곳곳을 찔러왔다.


"윽,그아아아앗-!!!"


왼쪽 3번째 갈비뼈 중간,  우측 견갑골 윗 가장자리, 간장,

단전.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노인의 검지와 중지가

그의 신체 곳곳을 파고 들었고 그 일련의 공격이 끝난 후에야

장봉의 몸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우왁, 헉... 억...."


기묘하게 비틀린 자세로 숨 조차 내쉬지 못하는 장봉을 보며

노인이 껄껄 웃었다.


"단 한개만을 제외하고 자네의 막힌 혈점을 모두 뚫었네."


"헉....무슨 소리요...우욱,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요..!"


"요즘 무림이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 이렇게 나서서라도 


인재수급을 해야 될 것 같아서 말일세."


간신히 호흡을 추스르고 있는 장봉에게 노인이 금 두꺼비를

툭 던졌다.


"매값일세, 술사먹든 계집질을 하든 맘대로 쓰게."


장봉은 뼈를 찌르는 고통에 여전히 헉헉 대면서도

잽싸게 금 두꺼비를 움켜쥐었다.


"하하하하핫!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난 확실하다니까.

역시 자네는..."


노인은 말을 끝맽지 않고

삿갓을 고쳐쓰더니 밤 안개 속으로

뚜벅두벅 걸어갔다.


"..잠깐..! 함자라도 알려주고 가시오-!"


간신히 목청을 내어 소리치는 걸 들은채도

하지 않고, 노인은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장봉은 몇 번 숨을 몰아쉬고는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


강렬한 햇빛의 눈뽕. 몸을 일으켜 보니

어느새 집안에 있었다. 기억은 없으나 어떻게든

집 까지 돌아와 곯아 떨어진 모양이었다.


장봉은 옷을 풀어 헤치고 어제 노인에게 호되게 당한

곳을 살펴보았으나, 몸에는 연한 멍자국 하나조차 없었다.


"뭐지? 그렇게 엄청난 공력으로 얻어맞았건만..아차!"


퍼뜻 정신이 든듯 옷소매를 뒤적여보지만 헐렁한

소매엔 아무것도 없다.


"아,안돼..안돼!!"


정신없이 침대 이불을 들춰내고 난리법석을 떨던

와중에 탁자위에 영롱한 노란빛의 물체가 보인다.

노인이 던져주고간 금두꺼비였다.


"휴우...그래도 저거 챙길 정신은 있었구나!"


다시 한번 두꺼비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감상하는

와중에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장봉은 재빨리 이불속에 두꺼비를 숨겨놓고는

문앞으로 갔다.


"뉘시오?"


물어보며 문틈으로 바깥 상황을 살펴보려는 찰나

쾅 소리와 함께 문짝이 박살나며 그를 덮쳤다.


"으악"


"오랜만이요, 장형. 남의 돈 떼먹고 아주 꿀잠 자고 계셨던 모양인데?"


"떼먹다니, 오해요! 내 안그래도 금새 갚으려던 차요!"


검고 붉은색의 옷을 입은 자들 서너명이 장가를 둘러쌌다.

이들을 만난 건 일주일 전, 주사위 도박을 하던 중 노름돈이

바닥난 장봉이 옆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돈을 빌린 것이었다.


물론 장봉은 도박에 재능이 없었고 돈은 모두 잃었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한 노름꾼이 아닌 마침 유흥을 즐기던

화산파의 무리였다는 것.


여러 무파 중에서도 거침없고 잔혹하기로 이름 높은 화산파는

근래에는 관아에도 줄을 뻗쳐, 자기들에게 거슬리는 인사는

산채로 젓갈을 담궈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 그럼 갚으시게. 2각 (약 30분)에 두배를 따 갚겠다는 돈을 이제

일주일 쯤 되었으니.."



가운데 선 화산파의 남자가 고개를 몇번 갸웃 거리며

수를 세더니 장봉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자잘한거 쳐내고 650배. 원금이 은 3푼이니


은전 2000개만 갚으면 되겠소이다."


"뭐, 뭐요! 그건 말도 안 돼! 술 한 번 사먹을 푼돈을


빌렸을 뿐인데..! 사정 좀 봐주쇼-!!"


"이 양반아, 어찌 돈으로 두 말 하는가? 돈으로 못 갚으면

몸으로 갚아야지."


"형님, 그럴 걱정 없겠수다! 이것 좀 보시오!"


뒤쪽에 있던 화산파 놈의 손에 어느새 금 두꺼비

들려 있었다.


"이야, 어쩐지. 이런 실한 놈을 숨겨두고 있었소? 

갚겠다는게 빈 말은 아녔구만."


"아,안돼 그건! 내 전재산이라고!"


장봉이 굼 두꺼비에 손을 뻣으려는 찰나 매서운 주먹이

그의 오른쪽 빰을 강타했다.


우당탕 나자빠진 장봉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서며 

우더머리로 보이는 화산파 놈이 한마디 뱉는다.


"장형은 운이 좋은거요. 원래 돈 떼먹는 놈들은

한푼만 모자라도 바로 담궈 버리거든. 이 뚜꺼비가

장형 생명의 은인 이구만 하하핫."


'개..개같은 놈들...!!!'


저 정도 금덩이면 은전으론 3000푼도 넘을 것이다.

화산파 놈들이 기분좋게 돌아갈 만도 했다.


'그래..어차피 꽁으로 얻은 것.. 화산파 놈들과 엮이고

목숨부지한 것만도 다행이야.'


평소와 같은 패배자의 자기 합리화. 여러 무파에 낙방 했을때도

도박으로 큰돈을 날려 아버지가 드러누웠을 때도,

어린 시절 좋아하던 동네 아가씨를 왠 검은 피부 양아치가 낚아채 갔을때도

장봉은 언제나 이렇게 넘겨왔던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 장봉은 여전히 똑같은 생각으로 쓰라린 순간을

못 본척 넘겨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물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힘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잠자리에 들기 전마다 생각이나서

자기혐오에 빠지긴 하겠지만 어쩌겠나?


화산파 놈들의 등뒤로 다가간다.


장봉은 언제나 이런식으로 뜻뜨미지근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살아있는 것이다. 비참한 몰골이긴 하지만

살아있는 것이다.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의 뒤 통수에 있는 힘껏 주먹을 날린다.


".....!?"


장봉 자신도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찰나, 주먹에 맞은 화산파 놈의 머리통이 3층 누각에서 떨어진 수박처럼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박살이나며 사방에 피를 뿌렸다.


주변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에 휩싸인 가운데

장봉이 입을 열었다.


"내 두꺼비 내놔 이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