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충년(沖年, 10세).


남대륙 사대국 중 하나인 월국(鉞國)의 시골 마을에 사는 장가(長哥)네 셋째 아들, 장삼월(長三越)에게는 특별한 비밀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삼척동자일 때부터 유창히 말하던 그 아이가, 사실 글을 이미 전부 떼었다는 것이 그 비밀은 아니었다.


"들어줘서 고마워요. 형."


가족 중 몸이 가장 약하다고 여겨지던 그 아이가, 사실 열살 나이에 만근거석도 거뜬히 들 수 있을 정도로 기이하고 강인한 신체를 타고났다는 것도 그 비밀은 아니었다.


"아···."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 보던 그 아이가, 사실 밤하늘에 뜬 달과 별이 아닌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본다는 것도.


그 비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이의 비밀은 무엇인가.


'············행복하다. 정말로.'


그것은 언제나 미소지으며 감사하는 아이의 속내를 살피면 알 수 있었다.


'옛날보다, 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는 행복해하고 있었다. [옛날]과 현재를 비교하면서.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읊조렸다.


"···죽어서 다행이야."


[옛날]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아이가 아이가 아닐 때의 과거였다.


즉—.


아이의 비밀은.


'다시 태어나서, 정말로 다행이야.'


아이가 전생자(轉生者)라는 사실이다.




***




아이의, 아니 그의 전생은 삭막했다.


가문에 재산은 많았지만 가문의 구성원은 그 재산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었고, 그것은 그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의 누이도, 형도, 동생도 모두 서로 다투었다.


심지어는···.


'···망할 것들! 다 내가 일군 것들이다, 네놈들이 모두 집구석에서 처자고있을 때. 내가 피땀흘려서 일군 내 돈! 내 땅! 내 것들이란 말이다!!!'


언제나 자상하던, 그리고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그의 조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것이 싫었다. 너무, 싫었다.


재산은 많았지만 이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서로 사랑해야하는 가족들끼리 싸우고 서로 원망하는데.


누군가 보면 사치스러운 고민, 가난해본 적이 없어 하는 고민이라 하겠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아무튼 이제 그런 그의 고민도 무용(無用)한 것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죽었으니까. 횡단보도 초록불에, 어째선지 미친 듯 달려드는 자동차에 치여 죽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태어나 장가네 셋째 아들, 장삼월이 되었으니까.


편리한 현대사회의 문명도 없는, 역사도 들어본 적 없는 괴상한 이세계에 태어났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그는 행복했다. 아이는 행복했다.


매일매일 너무나도 고된 일을 해야하지만, 병에 걸리면 그대로 죽어버리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렇게 하나뿐인 작은 동생을 떠나보내버렸지만.


이번 삶에서 가족은 가족을 사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고, 또 자식을 사랑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사랑했으며 자식을 사랑했다.


형도 부모와 동생을 사랑했고, 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사랑해요. 모두들."


아이도 가족을 사랑했다.


자신의 비밀을 숨긴다는 죄악에, 그 미안함에, 언젠가 들켜 가족들이 자신을 '장삼월'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볼 수도 있다는 공포에 언제나 겁먹고 마음속으로 가족들에게 닿지 않을 사죄를 건네지만.


가족들이 가족인 이상, 아이는 행복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말해야겠지.'


충년, 10살. 아직 어리고 어린 나이였다. 아직, 함께한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만일 진실을 말한다하여도, 그것이 지금은 아니었다.


아이는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하며 오늘도 행복하지만 죄스러운 하루를 보냈고, 다음날.


"오오··· 진실이었어. 진실로···."


한 나그네가 월국의 시골마을, 장가네 작은 초가집에 찾아왔다.







"오오··· 하늘이 뇌령종(雷令宗)을 버리지 않았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청객에 아이의 아버지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버지가 바라본 불청객의 모습은 멀끔한 흰옷을 입고 광나는 옥가락지를 낀 청년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바라본, 아이의 [시야]에 비친 불청객의 모습은 눈을 부릅뜨고 망집에 사로잡혀 광기로 가득찬 노괴였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묵은 노괴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마. 너희 범인(凡人)들은 금을 좋아했지? 이 산을 전부 채울 금을 주마! 그러니 저 아이를 내게 팔아라!"


그것은 거래가 아닌 통보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소중한 가족을 팔라고 하는 미치광이 노괴의 말에 아버지는 소리쳤다.


"그게 무슨 말이오! 삼월이는 내 소중한 아들인데 어찌 팔 수 있겠소. 난 돈에 자식을 파는 그런 이들과는 다르오. 내 죽는다 하여도 말이지! 그러니 이만 나가주시게나!"


아버지의 말에, 노괴는 아이를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아버지 쪽으로 눈을 굴렸다.


데구르르···.


섬뜩하게 안구가 굴러가고, 노괴는 잠시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스스로에게 말하였다.


"···안될 일이야 안될 일이지. 이토록 경사스러운 날에 피를 흘려서는 안될 일이지···."


그렇게 중얼거린 이후, 노괴는 다시 아버지에게 물었다.


"죽어도, 안되겠다라. 진실인가?"


"···그렇소! 내 죽어도 아들은 팔 수 없소!"


노괴의 섬뜩함과 기이한 중얼거림에 아버지는 긴장하였지만, 그럼에도 해야할 말을 하였다.


그것은 용기였고, 사랑이었다. 그의 말대로 변하지 않을 의지였다.


노괴 또한 그것을 느꼈고,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범인. 허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 뇌령종의 부활에 너의 의지 따윈 중요치 않으니···."


노괴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노괴의 시선은 아이를 향했다. 노괴는 아이를 바라보며 탐욕을 숨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본래 본좌의 의지에 반(反)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산 채로 전기에 튀겨버릴 죄였으나. 하늘께서 내려주신 재(才)를 지금껏 키워왔다는 공으로···."


중얼거리는 노괴를 보며 아이는 직감했다.


뭔가, 무언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고.


아이는 그 무언가를 막기 위해 손을 뻗으려 하였으나 이미 늦었었다.


"···죽이지 않으며, 금 또한 주도록 하마. 그러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한때 대 뇌령종의 위대한 지도자를 키웠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며 백년도 되지 짧은 범인의 삶을 살아라."


아이가 직감하고, 손을 뻗으려 다짐하고 손을 뻗으려는 그 순간.


노괴는 말을 끝맺고,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쿠르르릉!


[번개]가 있었다.




***




아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사흘 뒤였다. 눈을 뜨고, 아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의 광경은 지금껏 아이가 본 적 없는, 전생에서도 보지 못한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새하얀 석재와 기이한 청색, 황색 광물로 만들어진 건물. 건물의 내벽 안에 새겨진 네모난 틀.


틀 안에는 꿈틀거리는 뇌전으로 감싸여진 거대한 뇌수(雷獸) 그림이 있었다. 아니, 그것은 그림이 아니었다.


네모난 틀은 창(窓)이었으며 그 너머로 보이는 머리가 구름까지 닿는 저 짐승은 창 밖의 풍경이었다.


아이는 깨달았다. 이곳은 나의 집이 아니란 것을.


쿠르릉!


그리고 아이가 깨어난 것을 눈치챘는지 창 밖에서 [번개]가 치고, [번개]가 침과 동시에 아이의 앞에 노괴가 나타났다.


"깨어났구나, 제자야!"


그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노괴는 아이에게 미소지었다.






노괴가 아이를 향해 미소짓고, 잠시 몸을 살펴본다면서 몸 구석구석에 손가락 데어 맥을 재어보고, 그러면서 탄성을 내지르고, 이내 어디론가 다시 [번개]가 되어 사라지고.


그런 어지러운 상황 이후, 너무나도 피곤하고 어지러운 아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아이는 어느새 자신이 위치한 방에 나타난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은 자신을 '장문'께서 붙여준 시녀라 하였고 이곳, [뇌령종]에서의 적응을 도와주겠다 하였다.


아이는 그런 여인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입을 열고 물었다.


"···제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인가요?"


시녀는 그 질문에 싱긋 웃으며 답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데려온 자는 이 [뇌령종]의 장문(掌門). 신(神)을 이루어 남대륙 수도계(修道界)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시는 위대한 분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그런 장문의 재능조차도 빛을 바래게하는 엄청난 재능을 타고났다고.


우연히 월국 내부를 지나던 중, 장문께서 재능을 썩히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참지 못해 자신을 이곳에 데려왔다고.


아이는 열성적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입에 담는, 그 '장문'이라는 작자가 붙여준 시녀에게 물었다.


"그러면 아버지와 어머니는요?"


시녀는 아이의 질문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했다.


"어찌 신선 되실 분께서 그러한 속세의 범인을 신경쓰십니까···?"


시녀의 눈이 번들거렸다. 노괴, 장문의 눈에 보았던 것처럼 기이한 광기였다.


이 주제를, 끌고가서는 안된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주제를 돌렸다.


뇌령종이 무엇인지, 신이 무엇인지, 수도계가 무엇인지.


"예! 뇌령종은 극국(戟國) 휘령산맥에 자리잡은 수선문파로···."


아이의 물음에 시녀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시녀는 열성적으로. 아니, 광신적으로 아이의 물음에 답하였다.


아이는 시녀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내 수 시진 뒤, 깨달았다.


자신이 바라고, 또 실감하였던 그 행복은 이제 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또 어쩌면 자신이 지난 10년 간 담아 온 죄스러움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아이는, 그는 깨달았다.






그렇게 아이가 뇌령종 장문, 전헌(電獻) 반선(半仙)의 직전제자가 되고···.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




15년이 흘렀으나 아이는 여전히 아이였다.


생김새는 여전히 지학(志學, 15세)을 넘기지 못했고, 눈에는 버리지 못한 순수함이 남아있었다.


허나 뇌령종의 수사들은 아이를 아이로 보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그들에게 아이는 태생적으로 단(丹)을 가지고 태어난 기이였으며 하늘같은 장문께서 들이신 제자였다.


그런 위대하신 분을 어찌 감히 아이로 보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15년이 지난 후, 아이가 온연한 단(丹)을 이룬 이후 더욱 심해졌다.


그것에 아이는 괴로워했다. 자신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이들이 즐비한 것이 아이에게는 너무나 괴로웠다.


아버지가 보고싶었다. 어머니가 보고싶었다. 형이 보고싶었다. 집에 가고싶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아이의 스승은, 아이를 납치한 노괴는, 종문의 미래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문은 아이에게 말했다.


"—결단을 완료하였으니, 근 10년 간. 남대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는 네가 원하는대로 하여도 좋다."


말을 듣고 아이의 마음에 기대와 희망이 찼다.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뇌령종을 벗어나는 것도요?"


"그것이 종문의 부지를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상관없다.


쿠르르릉!


스승의 말이 끝나고, 아이는 [번개]가 되었다. 그리고 눈깜빡할 사이에 뇌령종을, 휘령산맥을 벗어났고 아이는 극국의 국경으로 향했다.


아이의 경로 끝, 그곳에는 월국이 존재했다.






쿠르릉!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뇌둔술(雷遯術)을 펼치며 아이는 월국으로 향했다.


주르륵···.


과도한 힘의 사용으로 아이의 칠공에서 조금씩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이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집이었다, 가족이었다.


15년이 흘렀으니 자신이 알던 가족은 없을 수도 있었다. 허나 그 얄팍한 희망을 위해 자신은 15년을 버텼다.


월국의 국경을 넘고,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산을 지나며 아이는 기도했다.


제발 무탈하길, 제발 건강하길. 그리고 제발···.


이런 자신도, 사랑해주길.


그리고 아이는 자신이 살던 집터에 도착했다.


집터는 폐허였다.


아이는 허망한 눈으로 잿더미가 되고 풍화되어 또 풍화된 집터를 보았다.


거뭇한 폐허 사이, 회색빛 뼛조각이 보였다.




***




거짓으로의 도피를 선택하기에는 아이의 술법은, 아이의 사랑은 너무나도 뛰어났다.


칠주야 후.


아이는 새까맣게 타버린 어느 시체 앞에서 생각했다.


왜 죽였냐고 물었다.

그들이 과분한 것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하였다.


가지고 싶다면 준다하지 않았나.

그가 소문을 낼 것이 두려웠다.


그가 도대체 왜··· 소문을 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그 말에.


아이의 형은 말했다.


'나라면 그랬을 거니까.'


쿠르릉!


그리고 번개가 쳤다. 우발적이었다. 그저 아득한 분노에 아이를 이루던 번개 한 줄기가 흘러나간 것 뿐이었다.


허나 그것으로 하찮은 범인은 죽었다.


덜컹.


새까맣게 타 연기가 나는 시체 앞. 아닌 밤 중에 천둥소리를 듣고, 방에서 여인이 나왔다.


처음보는 여인이었다. 여인은 뒤에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있었다.


············아이는 아이와 닮아있었다.






얼마나,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저 아이는 새까맣게 탄 폐허 앞에서 수십, 수백일 째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폐인의 모습으로 앉아있는 아이는 그저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에 대해서.


···자신이 무어라 말했더라.


배상한다고 했나. 무엇을? 형을? 죽여버린 형을?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인의 남편인 형을 죽이고? 아니야 형은 아빠를 죽였어.


아들됐음에도 아비를 죽였고 또한 금을 갈취했으니 그토록 큰 죄가 없었어. 허나 형은 그런 이가 아니었는데 왜···.


그래, 그래. 금이 있어서 그런 거야. 평소 돈없던 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금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을 것이야. 근데 왜 그들에게 금이 있었지.


왜.나는가만히앉아서새까맣게타버린폐허사이의뼛조각을보면서고민했다왜그들에게금이있었나하여수백일간진실을피하고또피하고떠올리지않으려했으나나는결국떠올려버렸다15년전찾아온스승이나의아버지에게하였던말을.


'하늘께서 내려주신 재(才)를 지금껏 키워왔다는 공으로 죽이지 않으며, 금 또한 주도록 하마. 그러니···.'


···나, 때문인가.


아이가 스스로 묻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어찌 그것이 자신의 죄일 수 있겠는가. 그것은 스승의, 아니 스승이라고도 못할 악적의 죄이다.


허나, 그렇다면. 형을 죽인 것은···.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어찌 그것이 자신의···.






···수천일 지나고, 아이는 결론내렸다. 세상 모든 죄는 뇌령종, 전헌 반선 때문이었다.


자신이 괴로운 것도, 자신이 형을 죽인 것도, 세상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도. 모두, 모두 전헌 때문이었다.


결론을 짓고, 아이는 뇌령종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이가 뇌령종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절망했다.


"돌아왔··· 무슨 일이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돌아온 자신을 보고 전헌은 분노하고 있었다. 자신의 몰골에, 누군가 자신을 이리 만들었다는 생각에.


그것은 걱정이었고, 사랑이었다. 자신의 가족을 그리 만든 이의 사랑이었다.


허나, 아이에게는 그러한 사랑이라도 주는 이는.


전헌, 그 악적 밖에 없었기에.


아이는 절망했다.


그리고 35년이 흘렀다.




***




35년이 더 흐르고, 아이가 예순이 되었을 때. 아이는 신(神)을 이루었다.


이르길 원영신(元靈神)이랴. 상계(上界)로 발돋움할 최소한의 자격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예순이 되었을 때, 아이의 스승은 죽어가고 있었다.


쿨럭!


"············."


죽어가는 스승 앞에서, 침묵하던 아이는 물었다.


"왜, 죽어가시는 것입니까."


"···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스승께서는, 반선이 아니십니까. 원영신을 이루신 반선이 아니십니까. 헌데 어째서 수명에 죽으신단 말입니까."


허허허.


아이의 질문에, 투정에 가까운 울부짖음에 스승은 웃음을 흘렸다.


"너도 이제 반선이 아니더냐. 이미 다 아는 것을 가지고 물어보다니 짖궂구나."


아이도 알고 있었다. 반선이니 뭐니 해도 영생을 살 수는 없다고.


단을 이루어도 수십 년도 더 살지 못하고 죽는 이도 있었고, 정말 희박한 확률이지만 원영신을 이루어도 수명이 늘지 않는 이도 있었다.


원영신을 이루고 수백넘 넘게 살아가던 스승이 특이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명은 정해져있었으니.


애초에 만날 때부터, 죽어가기 때문에 스승은 자신을 발견하고 그렇게 기뻐했던 것을 반선에 이른 아이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저 아무말 없이···.


"············."


아이는 스승을 바라봤다.


스승도 그런 아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네가 내 제자여서 정말 고맙구나. 그리고···."


널 슬프게 해서, 미안하구나.






다음날, 아이의 스승은 죽었다.


육체는 중심을 잡고있던 원영신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바스라져 세상에 환원되었고 그것을 보며 다른 뇌령종의 인원은 시해(尸解)를 이루었으니 상계로 갔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아이는 알고 있었다. 그저 시체는 바스라져 뇌령종 곳곳에, 남대륙 곳곳에, 세상 전체에 흡수되어 사라진 것이란 것을.


"···········."


아이는 하늘 위에서 침묵하며 뇌령종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스승은, 상계로 갈 수 있었다. 허나, 뇌령종은 갈 수 없었다.


홀로 상계로 가 모든 연을 끊고 고독하게 죽을 바에, 스승은 이곳에서 죽었다.


아이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내 결정했다.


다음날, 뇌령종의 새로운 장문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90년이 흘렀다.






90년 후, 150살.


원영신을 하늘로 삼고, 오행상도(五行相道)에 따라 땅을 만들어 순환자연을 이룬 아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준비는 되었다. 경지또한 무르익었다. 그러니···.


후웅!


아이의 손짓에 따라 뇌령종이 자리잡았던 휘령산맥이 작아진다.

산맥에 살고있던 모든 이들의 크기가 작아졌다. 아니, 그 공간이 괴리되어 아이의 손 위에 올랐다.


휘령산맥을 소중히 들고, 아이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계를 감싼 허(虛)의 공역을 뚫고, 아이는 위로 날아올랐다.


계속, 계속 날아올랐다. 그러다가, 어느 장소에 도착하였다.


그 장소의 이름은 상계.


그것이 삼천대천세계 최초의 종문비승이었다.




***




스승의 말과는 달리, 아이가 느끼기에 상계는 지옥도(地獄圖)였다.


수라(修羅)들의 지옥도였다.


상계로 비승하고 한 달. 아이는 용암으로 녹아버린 휘령산맥에서 그리 생각했다.






스승은 상계의 신선들은 영생을 산다 하였다. 그 말대로, 이들은 영생을 살았다.


순환자연을 이루면 천지영기가 존재하는 한, 죽지 않는다. 하여 그것은 영생이라 부를 수 있었다.


허나 자연에 가까워져, 자신을 잃음으로 미쳐버리기 시작하니 완전한 영생이라 하기에는 부족했다.


미치기 싫었던 신선들은 방법을 찾았다.


그건 인간이었다. 지성이었다. 하늘과 땅이 있으니 인(人)으로 삼재(三才)랴, 그것은 곧 자신이었으니.


신선들은 수만의 인간을 갈아, 순수한 인간성을 뽑아 자신에게 심었다.


그럼에도 모자라 더 격 높은 것을 찾았고, 그것은 그들 옆에 있었다.


신선이 되고자 수도(修道)하는 것들.


잡기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그럼에도 쉬이 잡을 수 있다. 범인 일만보다 단을 지닌 것이 더 효율이 좋았고, 또한 범인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법열(法悅)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원영신을 지닌 것도 마찬가지였고··· 순환자연을 이룬 것도, 삼재를 이룬 것도 마찬가지였다.


영생을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고 싶은 것을, 느끼고 싶은 것을 느끼며 살아야 진정으로 즐기는 것. 그것이야 말로 '내'가 살고 싶어했던 [나의 삶] 아닌가.


누군가가 그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상계는 수라지옥도가 되었다.






자신의 앞에서 상계의 역사를 설명하며, 살려달라 빌고 또 비는 신선을 보았다.


사지가 까맣게 타고, 원영신이 깨지고, 천지자연 또한 무너져있는 신선.


아이는 휘령산맥을 지옥도로 만들고, 자신에게 패해 그리 비는 신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신은, 이리 되고 싶지 않다고.

자신은, 지옥의 수라가 되고싶지 않다고.

자신은···.


신선에게 손을 뻗으며, 그 안에 담겨있는 인간성을 바라보며.


콰직!


아이는 삼재의 인을 잡아 뜯었다.


신선의 입에서 귀곡성이 터져나오고, 인에 갖혀있던 수백 만의 혼들이 튀어나왔다. 그 안에는, 방금 죽어버린 뇌령종 수사들의 혼들도 있었다.


지금이라도 원한다면 이를 자신의 인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는 그저 가만히 혼들이 본래 가야할 곳으로 가는 것을 지켜봤다.



··················.



그렇게 한참이 흐르고, 인을 잃은 신선이 자연으로 환원되는 것도 끝났을 때.


아이는 뇌령종에 대해서 생각했다.


처음에 뇌령종은, 스승은 원망스러웠다.

15년이 지나고서는 지낸 시간이 있어 정이 들었다. 아니, 이곳밖에 지낼 곳이 없었다.

거기에 35년이 지나고는 너무나도 정이 들었다. 

그리고 90년이 지나고서는···.


아이는, 자신의 가족들의, 집터의 흔적을 바라보다가 결심했다.


저 신선들에게는, 아니 스스로가 신선이라 생각하는 악귀(惡鬼)들에게는 벌(罰)이 필요했다.


어지간한 벌로는 안됐다. 아주 강하고, 또 강한 벌이 필요했다.


이른바, 천벌(天罰)이 필요했다.


생각을 마친 아이는 하늘을 보며 손을 뻗었다.


쿠릉!


아이의 손짓에 휘령산맥이 반응했다. 아니, 이 공간의 천지영기 전부가 반응했다.


쿠르르릉!


공간 전체가 [번개]로 화(化)하며, 아이는 공간을 자신과 연결하였다.


삼재(三才)가 하늘과 땅, 사방 전체. 하여 육합(六合)을 인식하고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지금 이 순간, 아이와 공간육합은 완연히 일체(一體)되어 있었다.


세상과 합체(合體)하고.


아이는 직감했다. 자신의 유년기가 끝났다. 이제 해야할 것을 할 때가 온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흘린 눈물을 닦고 가야할 곳으로 발을 내딛었다.




***




이는 삼천대천세계 초기, [하늘]에 삼천육백오십의 법칙이 전부 새겨지기도 전.


진선(眞仙), 천벌(天罰)의 좌주(座主). 이른바 천겁(天劫)의 좌주라고도 불리던 #%□(長&越)의 기록으로···.






대충 옛날부터 생각하던 천겁이 번개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