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난 가짜가 아니다.




난 나일 뿐이지. 




몇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뇌어 가슴에 새겨질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흐흐... 그 얼굴로, 그런 표정을 짓고서 이리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냐. 참으로 생경한 기분이구나."




곧 죽을 새끼가 흘리듯 내뱉는 말 몇 마디에 또 마음이 흔들리고 마는 것이다.




"역시 폐에 구멍을 뚫어줬어야 했는데 말이지. 갈 때도 뻔한 도발이나 하는군."




"크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지 마라 애송이. 세상 풍파 다 겪은 것처럼 굴어도 네놈은 결국 태어난 지 10년이 채 안된 핏덩이에 불과한 것이 진실이다."




"흐음. 지금이라도 폐에 바람구멍을 내주는게 맞을까?"




"뇌제 장현산의 그림자놈아. 아니지. 재대로 이어받은 것 하나없는 실패작이니 찌꺼기인가? 으하하하하! 그럼 난 그 찌꺼기한테 져버린 웃기지도 않-"




 콰직!




요괴를 신봉하는 요종교의 장로는 그렇게 머리가 터져 죽었다.




뚝. 뚝.




뇌수로 범벅된 오른손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씨발. 기분 더럽게."




손을 좌우로 턴 나는 장로의 시체를 잡아끌며 그대로 길을 되돌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산하는 길 곳곳에 시체가 즐비하다. 산림의 녹색 반, 시체에서 쏟아진 적색 반이니 어지간히도 죽였다.




사실 이 장로놈을 추적하는 과정 중 손에 묻힌 피를 생각하면 이곳의 이름을 혈림으로 바꿀 정도기에 어지간한 수준도 넘어섰다.




"그래도 대가리 한놈 땄으니 당분간은 좀 널널하려나. 간만에 느긋하게 낚시할수 있겠는데? 크큭."




그래. 난 일이 끝나서 즐겁다. 그 늙은이 새끼가 한 말에 긁힌게 절대 아니라고.




이름도 모를 야산에서 얼추 내려왔을까. 저만치에서 사람 무리가 보인다.




그 무리에 앞에 한 노인이 나를 앞서 마중나왔다.




"그래. 일은 잘 풀렸는가? 보아하니 해결된거 같긴 한데."




"어. 요괴 빠는 광신도들 윗대가리라 뭔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머리 터지니까 죽는건 똑같더라고."




"반요의 경지까지 넘어선다면 모를까. 그전까지 머리 깨지는 것 앞에는 평등하지." 




"그럼 앞으로는 대가리 깨는걸로 해결 안되는 놈들도 있다는거네."




"확인된 바는 없다만, 그럴 확률이 높지."




"썅."




"어쨌든 수고했네. 늘 하던대로 뒷처리는 우리쪽에서 하겠네."




우르르-




몇번인가 겪어봤던 익숙한 처리 과정이다. 딱히 신경 쓸것도 없다.




장로 늙은이의 시체를 눈앞의 노인에게 양도하는데,




"많이 다친 거 같군."




"심각한건 아냐. 빡세긴 했는데."




"자네도 알겠지만 이놈은 장로들 중에 말단에 속하는 놈이네. 그나마도 놈을 속여 따로 고립시키는데 성공했기에 망정이지-"




"알아. 알아. 슬슬 내 수준으로는 간당간당하다는 거 아냐. 조만간 날고 기어도 내 팔이 날고 내 다리 없이 기는 거지?"




"그렇게까지는 말 안했네만."




"비슷할 거 잖아. 아무튼 당분간은 숨좀 돌리게 큰건 아니면 부르지 마시고. 내집 앞에 돼지고기 좋은거나 보내주쇼."




난 그렇게 노인을 지나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노인의 말이 들린 건 그때였다.




"산현, 혹시 아직인가?"




멈칫-




"오해하지 말게. 정말로 산현 자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니."




아. 기분이 좀 더 더러워졌다.




"여노. 내가 그 이야기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 우리 그 정도는 아는 사이잖아?"




노인, 여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마저 이었다.




"싫은 소리라도 물어볼 수 밖에 없다는 걸 이해해주게. 놈들이 슬슬 움직이는 판이야. 이제는 시간이 없네."




"내가."




"..."




"알아서 해."




"...후우."




"내 기분 잡친 대가로 제철 생선도 한 상자 보내. 얼음 꽉 채워서."




"...큰 놈들로 골라 보내주지."




"엉. 수고하시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로 손만 대충 흔들고 그대로 떠났다.




미처 다 털어내지 못한 뇌수가 묻은 오른손을 다시 들어올려 가만히 쥐어봤다.




꽈악-




"하. 조금은 쉬려 했더니."




정말 기분 더럽지만,




아직은 몸을 더 움직일 때 인가 보다.










*









쉬익- 팡- 




쉬식- 파파팡-




가볍게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며 몸 상태를 점검한다.




본격적으로 내공을 운용한 것도 아닌데 깔끔한 파공성이 울린다. 장인이 신중히 탑을 쌓듯 기초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못할 현상이다. 




"좋아."




호흡을 가다듬고 단전에 의지를 보낸다.




구우우-




단전으로부터 시작된 내부에서 울리는 파동이 극점에 도달한 순간.




일점에 모아 외부로 방출한다.




콰과광!




5장 앞의 절벽에 지름 2장이 넘는 균열이 생겨났다.




무림 전체를 따져봐도 이 정도의 현상을 실현해낼 수 있는 무인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그럼에도 내 표정은 밝을 수가 없었다.




"하. 아직도 무소식이야. 이제 그만 말좀 들으라고."




오늘로 벌써 몇번째 던가.




방금 발출한 권력은 순전히 내가 쌓아올린 노력의 결과물이다.




내가 의도한 것은 단전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패도적인 기운, 뇌기를 깨우는 것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함께했던 기운이지만 이제 와서는 족쇄 같다.




'넌 끝까지 날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냐. 내가... 진짜가 아니라서?'




진짜 못해먹겠네.




이젠 슬슬 단념하고 내 힘만으로 앞을 헤쳐나갈 궁리를 고민할 찰나에.




"여기 있었나. 산현."




"엇. 뭐야. 여노가 직접 왔어?"




큼지막한 봇짐을 메고 언덕을 올라오는 여노가 눈에 띄었다.




"겸사겸사라네. 말할 것도 좀 있어서."




"그래? 하지만 물건부터 확인해 볼까?"




"쯧쯧. 아주 정도 없는 놈일세."




혀를 차면서도 봇짐을 내려놓은 여노를 시야 밖으로 밀어내며 물건을 확인했다.




"음. 고기 좋고~ 생선도 살이 단단해 보이는게 썩 괜찮은데."




"감탄은 나중에 혼자 하고. 나도 바로 본론을 꺼내겠네."




"뭐야? 삐진거야?"




"내가 자네처럼 애 인줄 아나. 여기선 말 꺼내긴 좀 그러니 자네 집으로 가지." 




"그러지 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어느 곳에서나 볼법한 방 안.




"그래 우리 엉덩이 무거우신 여노께서 무슨 일로 직접 행차하셨는지 들어볼까."




"미리 말해두겠는데 싫은 소리 하러 온거니까 귓구멍 잘 뚫어두게."




"아니 씨발 또."




"다만."




손을 들어 내 말을 끊은 여노가 이어 말했다.




"이번엔 말뿐만은 아니라네."


스윽-




그러면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는데.




"뭐야. 구슬인가?"




여노가 품속에서 꺼내 보인 것은 한손에 잡히는 크기의 구슬이었다.




은은한 비취색을 띄는 와중 중심부에서 옥청색의 기류가 맴도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사실... 이걸 완성한 것은 2년 전이네만, 자네에게 건네주는 것이 맞는지 고민을 계속 해왔어. 이젠 고민할 시간도 부족한지라 이리 가져왔네."




"그래서 뭔데 이게."




"뇌제의 잔류사념으로 빚어낸 일종의 술법구지."




"...!"




"정신을 조금 집중해보게. 뭔가 느껴지지 않나?"




여노 말대로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뭔가 날 끌어들이는거 같다. 그저 흥미가 아닌 내 정신을 빼앗는 듯한...




아니 잠깐만.




"여노, 선을 넘네? 뒤지고 싶은거야?"




쿠구구구구구-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영향으로 절로 기가 일고, 방 안의 가구들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이제와서 급해지디? 꼴에 뇌제의 복제품이라고 만들어뒀더니 빼다박은건 면상 뿐이라 고민이었는데 이젠 원본의 기억을 덮어씌워서 부활이라도 노리려고?"




"그런 것이 아니란걸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아주 미안하게 됐습니다 씨발! 눈 떠보니 뇌제라는 대단한 양반이 이미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해서 존나게 죄송합니다아아!! 멀쩡히 뇌기도 가지고 있는데 쓰지도 못하는 병신이라 면목이 없습니다아아악!!!"




"...'




"후우...후우..."




"한바탕 소리 질렀으면 이제 마저 말해도 되겠나."




"망할 늙은이. 눈 하나 깜짝 안해."




숨을 마저 고른다.




"... 내가 흥분했다.  안그래도 심란한데 뇌제의 잔류사념으로 만들었다는 구슬을 내 눈앞에 들이미는데 눈 안돌고 배겨?"




"이해하네만, 가져온 의도라도 듣고 화냈으면 좀더 모양새가 좋았을 테지. 그리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자네는 뇌제를 소생시키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태어난 것이지 처음부터 의도하고 자네를 만든게 아니네."




방구석에서 술법 연구만 하던 늙은이라 그런가 감정이 아주 메말랐다 메말랐어.




"어디까지나 자네를 돕기 위해 한 결정임을 알고 듣게. 이걸 쓴다고 자네에게 뇌제의 자아가 덧씌워지는 일 또한 없을테니 걱정 말고."




"말해 봐."




 "말했다시피 이건 뇌제의 잔류사념으로 만들어낸 술법구인데, 정확한 용도는 기억재생이네. 뭐, 기억이라 해봐야 뇌제의 기억 중 가장 강렬했던걸로 추측되는 기억 일부 정도만 재현되는거지만."




"내가 그 기억을 봐서 얻는 이득이 뭔데?"




"애초에 이건 자네만 사용할 수 있네. 좋든 싫든 자네는 그로부터 비롯된 존재이니 뇌제의 잔류사념이 반응하는 건 자네뿐이야."




"그래서 그걸 봐서 나한테 좋은게 뭐냐고."




"경지. 막혀있지 않나?"




"쓰읍."




"뇌제의 기억 중 가장 강렬한 순간이 담겨있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도움이 될까 싶은거지. 혹시 아나? 뇌기라도 다룰 수 있게 될지."




"오. 듣기만 해도 꺼림칙한데."




"강요는 아니야. 선택은 자네 몫이지."




껄끄럽긴 하지만, 그건 여노를 못 믿어서 그런 건 아니다. 뭐라하든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곁에 함께했던 사람이니까. 




단지, 원본의 기억을 들춰본다는 행위 자체에 거북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럼에도.




"딱 한번만 속아 준다. 다음에는 국물도 없어."




"감사함에 몸둘 바를 모르겠네."




여노의 호의를 믿어보기로 했다.




"이걸 어쩌면 되는건데?"




"어렵지 않네. 그냥 손에 쥐고 내공을 주입하게."




넘겨 받은 구슬을 쥐고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집중하니 도리어 정신이 흐릿해지며 의식이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게 느껴진다.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 멀리서 여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지.]




내 의식은 그 말을 끝으로 가라앉았다.














*









어지럽다.






쿠구구궁.




조금만 더 눈을 감고 있고 싶은데.




와아아아아-




머리가 울릴 정도로 시끄러워서 그러지는 못하겠다.




'뭐가 어떻게 된...'




개슴츠레 눈을 뜨자 보이는 광경은.



"이거 뭐야."


전쟁터다. 


진한 피냄새와 그리고


물냄새.


시궁창에서 맡아본 듯한 역한 물비린내와 피냄새가 섞여서 어지간히 험한 꼴 많이 겪어본 나로서도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다.


'여긴 내가 알기로 제국 남쪽...인데.'


지금 내 발밑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고 있는 인간, 그리고 비늘과 지느러미가 돋아있는 요괴의 군단들 저만치 넘어 수평선이 보인다.


몇년 전 제국 남쪽에서 봤던 경치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잠깐만, 밭밑이라고?'


그제서야 현재 내 상태가 파악되기 시작한다.


"아니 날고 있잖아. 그리고 몸이, 투명한데?"


언젠가 보았던 사술을 쓰는 요괴가 부렸던 유령이 딱 이런 상태였다.


"거지같은 늙은이. 이 안에 어떤 기억이 있는 지도 파악못했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늙은이한테 따지는 건 나중 일이다. 지금은 상황파악이 먼저다.


'제국 남쪽. 생선 요괴들. 전쟁. 그리고 뇌제 장현산의 기억.'


추측해보건데 이 곳은 30여년 전 뇌제가 전사한 해령절 대전투의 현장이다.


'분명 4대 요괴왕 중 하나인 요해왕 영곡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던 그 전투잖아.'


요괴들에게도 계급이 있고 왕이 있다. 


요괴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들보다 우월한 신체능력을 가졌고 초능력 같은 것을 사용할 줄 아는 놈들도 많았다.


흔히 말하는 하급요괴를 상대하려면 이류 무인 서넛은 데려와야 한다고 할 정도로 선천적으로 많은 격차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요괴들의 왕이라 불리우는 네 존재.


그들은 생명체긴 하지만 차라리 자연재해라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고 기록에 나와있다. 


생포한 요괴들을 고문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뭔가 제약이 있어 전력을 사용하진 못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대적할 수 없는 별격의 존재들이었다.


'나는 전쟁 끝나고 20년도 더 지나서 태어났기 때문에 직접 본건 아니지만.'


잡생각은 여기까지.


아래 쪽 전장을 가만히 살펴보니 해저에서 올라오는 생선비린내 나는 요괴들을 인간측에서 방어하는 형국이다.


'미친. 무슨 고수들이 저리 많아.'


인간측에서 요괴들을 도살하는 고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거칠게 말해서 개나소나 검기 권기를 뿜고 간간히 강기도 날아다닌다.


30여년 전 요마대전 때 대다수의 고수들이 명을 달리하고 실전된 무공도 많아 이후 세대의 무림 수준이 최소 2단계는 떨어졌다는 호사가들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마 저들이 전쟁시절 결성되었다던 인류수호맹의 무인들.'


그렇게 많은 고수들이 분투하고 있지만 적측인 요괴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마치 메뚜기 아니 멸치떼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되나 아무튼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이러다간 뚫리겠다 싶어 도와주고 싶지만 내가 여기서 개입하면 어떤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영체 상태라 도움을 줄수도 없는 상태였다.


번쩍- 콰아아앙!


나의 이런 고민은 느닷없이 울린 폭발음과 함께 날아갔다.


전장 한복판에 꽂힌 한줄기의 낙뢰.


"여러분. 걱정 마십시오! 이 무적의 뇌전권! 장현산이 왔습니다!"


차착- 착!


그곳엔, 전신에 뇌기를 휘감고 마치 무림열전의 주인공마냥 기수식을 취하며 폼을 잡는 한 남자가 있었다.


'저 남자가..'


그래. 내가 느낀 기분은 음. 어렸을 적에 날 버리고 떠난 부모가 길거리에서 약을 팔며 차력공연하는 광경을 본 기분이라 해야되나? 물론 부모는 없지만!


언젠가 내 자신의 원본을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좀더 절절하든 분노하든 뭔가 마음을 적시는 감상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경험하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함만이 내 정신을 어지럽혔다. 


"왜이리 늦었어!! 지금 이 생선이 나한테 뽀뽀하려는 거 안보이냐!!!"


"이 씨발 장어새끼야! 거긴 출구다!! 입구가 아니라아악!"


"왔으면 가오 잡지말고 튀기기나 하세욧!!"


주변의 정겨운 인삿말과 함께 장현산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움직였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없었다.


콰콰콰과광!


끼에에에엑!


구과과과과광!


키요오오옷!


순간순간을 단위로 뇌광이 인 지점에서는 수십의 생선요괴들이 바짝 태워진채 비산하는게  눈에 보였다.


안력을 집중하자 그제야 흐릿하게나마 장현산의 모습이 보였다.


다수의 잡졸들을 상대하는데 있어서는 속도와 힘이면 차고 넘친다.


그저 뇌전을 온몸에 두른 후 벼락같이 움직이며 이동선 상의 모든 요괴들을 갈아버리고 도착점에서 권이든 각이든 내질러 뇌기를 폭발시킨다.


단순하기 그지 없는 전투법이지만 난 알수 있다. 그 단순한 과정 속에 녹아들어있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기술 완성도를!


'개쩐다...!'


같은 권사의 입장에서 그는 이미 나보다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선배나 다름없었다.


"권을 뻗음과 동시에 움직이는 기는 마치 스스로 동하도록... 다시 기가 움직이는 걸 보조하는 육체는 마치 굳건히 떠받치는 거목처럼..."


장현산이 움직이는 걸 보며 나도 모르게 허공에 권을 내지른다.


권을 움직일수록 정신은 내 스스로에게만 집중되어 주변을 의식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나를 강제로 끄집어낸 것은 또한 장현산이었다.


쿠구구구구구- 지지-지지지직-!


영체인 내가 찌릿거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강대한 뇌기의 덩어리가 허공에서 발광한다.


"생선튀김은 이젠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아! 앞으로 평생 먹을 일 없으니까! 꺼져라!!"


있는데로 뇌전을 둘러 땅으로 급강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혜성과 같았다. 그리고 그 혜성은 땅 위의 요괴들에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겠지.


쿠-과아아아아아앙!!


낙하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0장(30M)의 모든 것을 태우는 막대한 뇌전의 폭풍이 생명을 앗아간다. 마치 신의 심판 같달까. 그 옛날 사람들이 어째서 번개를 신의 권능으로 여겼는지 이해했다. 


그 일격으로 인해 요괴측 진형이 붕괴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요괴들은 바다 속으로 일거 후퇴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살아남은 기쁨을 나누는 함성.


그 함성들을 등지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어 승리를 알리는 남자.


"저게, 뇌제 장현산."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나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뭔가 일렁였다.








*







영체인 상태였을 때부터 혹시나 싶었던거지만 역시나 난 이 세계에 관여할 수가 없었다. 여노의 말대로 기억재생의 술법구이기 때문에 그저 관람하듯 이곳을 경험하는 게 전부였다. 


물론 그 무대관람의 핵심은 뇌제 장현산이다.


"콜록! 콜록! 이걸로 몇번이나 저희를 구하셨는지 모르겠군요. 당신은 그리고 여러분은, 저희들의 영웅입니다."


뭔가 안색이 좋지 않고 자꾸 기침을 하는 노인이 인류수호맹 측 무인들을 대표하는 장현산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과례이십니다. 우리는 제국 북쪽에서부터 급히 떨어져나온 별동대나 다름 없습니다. 제해권을 잃어버리면 전쟁은 지는 것이고 양쪽 방향에서 협공을 당할 수 있으니 이곳의 중요성은 실로 말이 필요가 없지요. 그럼에도 이 정도의 인원밖에 오지 못한 것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 늙은이도 듣는 귀가 있습니다. 북쪽에.. 콜록. 요괴왕 둘이 연합을 하여 침공을 해왔다는 것을 압니다. 없는 여력을 쥐어짜 구원의 손길을 뻗어온 것만 해도 감사하기 차고, 콜록! 넘칩니다."


"… 그만 쉬십시오. 계속 말하시다 보면 증세악화가 빨라질 겁니다."


"허허허! 제가 또 걱정을 끼쳤나 봅니다. 말씀대로 푹 쉴테니 신경을 너무 쏟지 마시길."


노인은 허허롭게 웃더니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아저씨! 엄청 강하다던데. 같이 온 어른들도 그렇구! 그런데도 동네 어른들은 저 괴물들이 우릴 잡아먹을거라고 불안해해요. 


지는 거에요?"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어린 여아가 장현산에게 그리 물었다.


장현산을 손을 들어 여아의 머리에 얹고 그대로 쓰다듬으며.


씨익-


"이겨."


"이 뇌전의 주먹 장현산과 인류수호맹의 영웅들은 무적이란다. 우리가 있는 한 저 요괴들은 우리 꼬마아가씨를 절대 넘볼 수 없을거야.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는 법! 마을의 안전을 걱정하는 일은 우리에게 모두 맡겨다오. 그리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거다. 마을 어른들에게도 그리 전해주렴."


장현산은 뒤로 물러나더니 


착! 차작!


아까 싸울 때 취했던 기수식으로 또 폼을 잡았다.


"모두들 걱정 마시라! 내가, 그리고 우리가 있으니까!"


"네에! 알겠어요! 모두한테 켈록. 그렇게 전할게요!"


그리 말한 아이는 돌아서 달려나갔다.


"..."


장현산은 멀어져가는 아이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쓰다듬었던 손을 바라봤다.


"대장님이 이리 연기에 소질이 있는 줄 알았으면 변검술(순간적으로 가면을 바꿔쓰는 기술)이라도 진작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부하로 보이는 무인 하나가 다가와 장현산에게 그리 말했다.


'음? 뭐야.'


지켜보던 나에게도 흥미가 생기는 발언이다.


어느샌가 만면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던 장현산의 표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아 있었다.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는, 특히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필요해. 그 어떤 위험과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여유만한한 태도로 나아가 앞을 밝히는 영웅이. 그런 영웅이 등장해 모두의 구심점이자 우상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모두가 절망하여 주저앉지 않으려면."


'그런 거였나.'


난 뭔가 무림열전 같은 것에 심취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그저 그 나름대로 모두를 일으켜 세우고자 행하는 방안이었던 것이다. 


'장현산. 이런 남자였나.'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대화는 이어졌다.


"그보다, 알아본다는 건 알아봤어? 이거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거 같은데."


그러면서 자신의 손을 보여주는 장현산. 그 손에는 비늘 조각이 붙어있었다.


"그것이. 예. 예상대로 더군요.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고 쇠약해지거나 요괴화 증상을 보이는 이유. 요괴들이 요계를 넘어오면서 생긴 차원 간 흐름의 변화가 원인이었습니다. 요계의 환경이 우리 차원에 간섭하면서 생긴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병에 걸린 듯 쇠약지거나 변이하는 것 같습니다."


"치료 방법은?"


"이제 막 원인을 알아낸거라 당장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저 요괴놈들을 다 회쳐야 한다는 겁니다. 요괴놈들이 이곳에서 활보하는 한 차원간 간섭현상은 멈추지 않을테니까요."


"당장 해야 할 일이 명쾌해서 좋아."


스읍- 후우우우우-


한바탕 심호흡을 장현산을 혼자 넋두리 하듯 말했다.


"전쟁이 무사히 종식되고 난 후에는 혼자서 천하 곳곳을 돌면서 낚시여행을 할까 했지. 그런데 이곳에서 평생 볼 양의 생선들이랑 찐하게 살을 부딪히다 보니 그 생각이 쏙 들어갔네. 작은 텃밭이나 일굴까봐."


"대장님. 말이 좀 이상한거 같습니다."


"왜? 내가 생선한테 박을까봐?"


"하. 대장님..."


"흐흐. 가자. 쉴거 다 쉬었으면 집합해야지."


"예."


나는 시덥잖은 농이나 던지는 장현산을 따라서 날기 시작했다.









*









제국 남쪽 해안에서도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


중앙은 비어서 바다로 이뤄져있고 그 주위로 몇 개의 섬들이 빙 둘러져 있는 일종의 군도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대해 알고 있다.


'뇌제 장현산이 전사한 곳.'


그를 따라 다니며 관찰하다보니 어느새 이 시점까지 온 것이다.


쿠르릉. 쿠릉.


하늘은 먹구름이 끼고 그 구름 속에서 뇌광이 번득인다.


하늘의 뇌광은 당연한 것이지만 여기는 땅에서도 뇌광이 충천한다.


군도 중앙 해역을 노려보며 한껏 뇌전을 끌어올린 장현산.


이제껏 그를 관찰하면서 한번도 본적 없는 경계심이 그를 감싸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경계심이 아니고, 긴장감? 어쩌면...'


필사의 각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군도 중앙 해역에서 무언가 솟구쳤다.


쿠와아아아-


그것은 촉수였다. 검푸르고 미끌하고, 끈적하고 불길한.


'대충 물 위로 나온 것만 해도 10장이 훌쩍 넘어가는데.'


저 시커먼 바다 밑에는 무엇이 있을 지 상상하는 것도 거북하다.


그렇다. 저것이 바로 4대 요괴왕 중 하나 '요해왕 영곡'이다.


출진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나선 적이 없다시피 하던 요괴들의 왕이 그 거체를 일으킨 것이다.


단지 기억으로 이뤄진 허상임에도 그 존재의 편린만 목격하고 있음에도 확신할 수 있다.


'저건... 이기라고 있는 존재가 아냐!'


요마대전의 기록에 어째서 요괴왕 그들을 재해라고 표현했는지 영혼이 울리도록 느끼는 중이다!


영체가 아닌 온전한 육체를 지니고 이 자리에 내가 섰다 하더라도 주먹이나 한번 휘둘렀을 수 있었을 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고오오오오오-


이것은 단순한 위압감을 넘어선 어떠한 권능. 


그야말로 격이 다른 존재의 앞에 선 격하의 생명체로서의 필연이다.


'저런 놈이랑 싸운다고? 저 남자는?'


지켜보는 입장임에도 똥줄이 탄다.


그 때였다.


[그것]이 말을 건 것은.


[네 녀석의 활약은 심해에 몸을 뉘이고 잘 감상했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꽤나 특출나더구나. 이 몸의 자식들 중 몇을 죽이기도 했더군.]


이건 언어라기 보다는 의지가 전해져 뇌가 감각적으로 그 의미를 번역하는 것에 가까웠다.


 혜광심어인지 뭔가하는 것도 이 정도의 공능은 펼치지 못할 것이다.


"네 자식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하나는 확실히 교육했어야지. 목욕 좀 자주 하라고. 그 썩은 비린내 때문에 코가 떨어지는 줄 알았단 말이다."


장현산은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도발을 걸었다. 내가 보기엔 그것은 감정을 숨기기 위한 허세였다.


꿈틀-


[딱히 그럴 필요가 있나. 항상 물 속에 있기도 하고. 그 녀석들이 목욕을 안해서 네놈한테 맞아 죽은거랑 나랑 상관 없는 일이기도 하지.]


요해왕 영곡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여상한 투였다.


[그보다는 제안을 하지. 이 몸의 피를 받아들여 '심해의 요족'의 진혈로 거듭나는 것이 어떠한가? 네놈은 잠재력이 있다. 어쩌면 언젠가 이 몸 다음가는 존재로 발돋움할지도 모르는 일이니라.] 


기록에는 없었는데 당시에는 이런 제안도 있었던 모양이다. 요괴왕의 직계라...


"나보고 생선 비린내나는 비늘괴물로 변하라고? 농담으로도 못 듣겠군. 더군다나 뇌기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허접들이던데."


[이 몸을 그런 하등한 것들과 동일 시 하는 것이냐. 이무래도 교육이 조금 필요한 듯 하구나.]


"헹. 해볼테면 해보던가 촉수괴물씨."


촤아아아아아!


물밑에서부터 수백 줄기의 작은 촉수들이 솟구쳐 나와 장현산을 덮쳐온다. 촉수 하나 하나만 하더라도 강기를 사용할 줄 아는 초절정 고수들을 일격살할 위력을 품고 있다. 


콰광-!


한 줄기의 뇌전으로 화한 장현산이 일직선으로 궤적을 그리며 돌진했다. 


전방위로 기묘한 나선을 그리며 장현산의 사각을 노리는 촉수들을 장현산은 양손은 교차로 휘둘러 뿌리쳐냈다.


때로는 직선으로. 때로는 곡선으로.


보면서도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장현산의 손짓에 따라 춤추는 뇌전 줄기들은 촉수들과 격돌하면서 동시에 흘려내어 방향을 유도하고 있다.


충돌과 흘려냄을 동시에 성립시키고 있다. 그것도 패도적인 뇌기를 사용해서!


이는 가히 모순의 경지. 적어도 현 무림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신기다.


'현 무림의 최정상 고수들 다섯이 합공한다 해도 장현산의 십초지적은 될수 있을까?'


촉수들을 유도하고 뇌광을 충천하며 허공을 가득채우는 선은 모이고 모여, 얽히고 섥혀.


마치 저 밤하늘의 별자리. 그것을 너머 은하수를 보는 듯 했다. 











*









요해왕 영곡과 뇌제 장현산이 맞붙었던 군도는 꽤나 수림이 우거진 곳이었다.


짙푸른 수풀과 나무 탓에 군도의 땅이 거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많던 풀과 나무들은 죄다 뽑히고 태워져 해류를 타고 어딘가로 쓸려나갔다.


맨살을 드러 낸 땅도 여기저기 균열이 일고 구렁이가 지나간 듯 구불구불한 흉터가 아로새겨져 있다. 


서로의 거리를 따지자면 수백장은 될듯 한 거대한 군도 각각의 섬들 모두가 그랬다. 


이제서야 내가 알던 그 군도의 모습과 좀 비슷해졌다.


싸움이 시작된지 일각(15분).


그러한 참상을 만들어 낸 두 존재 중 하나는 이제 빛을 잃었다.


[제법 괜찮은 재롱이었다. 요괴족 전체를 통틀어서도 네놈만한 전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족이란게 한도끝도 없이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다. 비록 터럭같은 촉수에 불과하지만 이 몸에게 상처를 내는 것을 성공하지 않았나?]


군도 어딘가에 깊숙히 처박힌 장현산을 향해 영곡은 조그맣게 상처가 난 촉수 하나를 흔들며 그리 말했다.


'이건 싸움이라고 할수 있나?'


그말대로다. 장현산은 분명 강했다. 내가 보았던 그 어떤 무인보다도 압도적으로. 


인간으로서 이룰 수 있는 무의 극한을 이룬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신위를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그러나 그뿐. 상대는 아예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괴물들의 정점. 생명체의 궁극.


극한으로 단련된 인간의 무다 어쩌다 싶은 것으로 승산을 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영곡은 본체를 꺼내지도 않고 그저 몸에 난 촉수 몇개를 움직여 저 맹랑한 인간을 놀아준 것 뿐이다.


개미가 극한으로 단련한다 한들 코끼리를 이기겠는가? 단순히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문득 대가리를 깨버렸던 요종교의 장로가 떠올랐다. 


그들은 단순한 광신도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압도적으로 강하고 위대한 무언가를 섬기는 점이 기존의 다른 종교들과 그리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심지어 실존하지 않는가?


그런 무력감이 온 몸을 휘감는 중에도 나는 비행으로 장현산이 처박힌 지점으로 이동했다.


무한하게 넘쳐흐를 것 같던 뇌광은 어디가고 전신에 피칠갑을 한채 기식이 엄엄한듯 보였다.


놀아준 것이라지만 그 요괴왕의 공격을 처맞고도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이 무인의 위대함을 증거하는 것 아닐까.


"씨발. 이게 뭐야."


나는 육성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어차피 나는 관찰자 입장. 말을 건다하여 전달되는 것도 아니건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에 계속해서 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무슨 말을 들은 줄 알아? 넌 역사상 최강의 무인의 재림이다. 뇌제 장현산은  구세의 영웅이니 너 또한 그러리라. 어째서 그의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거지? 그의 반만이라도 닮아야 할 것 아니냐?! 개좆같은!! 니새끼가 내가 보고 들은 그 뇌제 장현산이라면 여기서 끝나면 안되는거잖아! 내가 귀에 피가 나도록 들은 너의 위상을 생각하면 여기서 이렇게 뒈져 나자빠지면 안되는거라고!!!"


"..."


"내가!!! 씨발!!!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개쩌는 위업을 보여줘야 할 거 아냐!!! 평생을 비교질 당하던 내가 끄덕이고 받아드릴!!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뚫고 나아갈!!!! 야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나 혼자만의 절규다.


투둑...투두두두둑... 쏴아아아아아아아-


언제 내릴까 싶었던 비가 이제야 오기 시작한다.


진작에 바닷물로 쫄딱 젖은 장현산 위로 빗물이 새로 덧칠된다.


"일어나라고... 좀...'


만져지지도 않는 손으로 장현산의 따귀를 때린다.


-! -! -!


"아직. 끝이 아닌 거 알아. 왜냐면 난 봤단 말이야.'


-! -! -!


"여기서 이렇게 끝날 거였으면 현재가 말이 안된다고."


방금 전까지 악을 쓴건 감성에 기반한 것이지만 지금의 언동은 이성을 기반한 것이다.


기록과 내 경험에 의하면 이 군도의 지형은 이런 형태가 아니었다. 뭔가 사건이 더 있었지 않은 한 현재의 그런 형태가 될수 없었다.


두번째로 영곡에 대한 기록이다.


요해왕 영곡은 이 날을 기점으로 그 존재가 포착되지 않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요괴족들이 물러나 요마대전이 종식될 때까지도 별다른 행적이 없다. 


기껏 본체를 드러내서 한다는게 인간 하나 조지고 다시 잠수? 손익이 안맞는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다.


혹시나


혹시나 장현산이 


기적을 일으켰지 않았을까 하는.


그렇게 다시 따귀를 때리려는 순간이었다.


'...!'


장현산이 눈을 떴다.


'어디를... 보는거지?'


막상 의식을 되찾은 장현산의 눈은 어딘가 흐릿했다.


마치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그러면서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느낌도 있다. 


동공의 움직임 하나 없이 멍하니 한곳만 쳐다보는 장현산은 미친게 아닌가 싶었다.


'진짜 머리를 다친건가?'


그리 생각한 것도 잠시. 장현산의 동공에 초점이 잡히고 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눈을 마주쳤다.


"뭐..!"


지금 날 쳐다본 건가? 그럴리가. 착각이다.


쿠구구구구구-


섬이 흔들린다.


[아직 살아있었는가. 이것 참 몇번을 놀라게 하는군.]


영곡의 촉수들이 이쪽으로 스멀스멀 몰려든다.


궁지에 몰린 사냥감을 유린하듯이 느릿하고 느긋하게 조여오고 있다.


"끙...!"


바닥에 처박혀 있던 장현산이 일어섰다.


'...'


그리곤 다시 멍하니 뭔가를 생각한다.


이 상황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리 태평한지는 짐작할 수 없으나 생각해보면 급하게 행동한다 해서 결과는 바뀔 리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의 입이 열렸다.


"잘 봐라."


"!"


설마.


"세상아."


아니 이 자식이.


"세상은 아무래도 무(武)라는 것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춤사위로 결코 이 세상을 먹으러 온 괴물들을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방금까지는? 어쩌면 그 전까지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더라."


"근데 그게 아닐수도 있겠더라고."


기절하다 깨어나더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기 시작하는것 인가?


"근데 동시에 다른 것도 깨달았어. '무'라는 놈은 생각 이상으로 잔혹하고 이기적인 것이란걸."


"후우. 별 수 있나? 애초에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데. 원하는대로 해줘야지."


고오오오오오-


말을 마친 장현산은 자신의 내공을 도야시키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활성화된 내공은 곧 뇌기로 화해 몸을 감쌌다.


[의미없는 발악이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네놈의 투지. 그를 높이 사 네놈의 시체는 궁으로 가져가 손수 강시로 만들어주지. 꽤 좋은 작품이 나오겠어.] 


영곡은 자못 유쾌하기까지 한듯 했다.


"하하. 할수 있다면 해봐라. 아마 못하겠지만!"


뇌전으로 온몸을 감싼 장현산은 다시 도약하여 영곡의 촉수, 상처난 그 촉수로 날아갔다.


[크크크. 귀엽기까지 한 발악이로다. 얼마든지 해보도록.]


영곡은 촉수로 따로 쳐내지 않고 그대로 장현산이 자신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방치했다. 어차피 터럭과도 같은 촉수.


잘려나간다하여 문제 될것이 없다.


촉수에 안착한 장현산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쯧쯧. 방심은 곧 죽음이라는 걸 모르냐? 넌 이 생면부지의 타지에서 객사할 예정이다. 내가 그렇게 되도록 하고자 하니까. 잘 봐라 이 괴물아. 내가 무얼 할 수 있는 지."


쿠콰과과과과과과과-


장현산의 뇌기가 끝도 없이 증폭된다.


'선천진기를 태우는 건가?'


사람의 수명이라고도 할수 있는 선천진기.


이를 연료로 사용하면 기존의 수 배에 달하는 출력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선천진기를 태운다고 메울 수 있는 차이가 아니야!'


선천진기 정도로 해결되는 차이였으면 아마 진작 태웠지 않았을까. 


잠깐만.


저게 뭐지?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한도 없이 커져가는 뇌전. 


잘못 본것이 아니라면, 저 뇌전은 장현산 본인마저도 태우는 것 같았다.


이제껏 본 적 없던 기세의 뇌전이 먹구름 낀 해역을 대낮처럼 밝힌다. 내가 영체상태가 아니었다면 결코 쳐다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저건 선천진기가 아니다!.'


선천진기 따위보다 아득히 너머에 있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극한의 깨달음이.


장현산에 의해 구현되고 있다.


[호오. 아까보다도 흥미롭군. 인간족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될지도.]


영곡은 아직도 여유만만이었다.


한치의 틈도 없이 뇌전으로 뒤덮혀 완전한 뇌인의 형태가 된 장현산이 뭔가 아득한 느낌의 소리로 외쳤다.


-자!!! 전부 가져가라아아아아아아아!!!!!!! 모조리!!!!!  내 육(肉)!!!!! 내 혼(魂)!!!!!!! 내 꿈까지!!!!!! 그러니 내놔라아아아아아!!!!!!-


쿠과과과과과과과!!! 화라라라락!!!


[무슨?]


인간이 불을 언제 처음 발견하였는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로 인해 불이 붙어 그것을 인간들이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그것으로 인간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하지 않는가?


느껴진다.


뇌전으로부터 화한 불꽃.


그 불꽃이 '장현산이란 인간 자체' 를 삼키고 있다.


그의 육신.


그의 영혼.


그의 꿈.


그를 이루는 모든 것을 장작 삼아 화려하게 타오른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익!!


[크아아아아악! 이게! 이게 뭐란 말이냐!!]


영곡의 상처로 속으로 후벼파 들어간 불꽃은 촉수를 타고 그의 본체까지 도달한 듯 했다.


이정도의 불이라면 인근 바다가 모조리 끓어올라야 마땅한데 그런 기색은 조금도 없다.


[끄아아아아악!!! 하찮은 인간놈이!!!!]


쿠구구구구! 촤아아아아악!


'저게... 영곡의 본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해수면 밖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솟구쳐 나왔다.


그것은.


용(龍).


하지만 뒤틀리고 불쾌한 촉수로 온몸이 이뤄진 불길한 형상이었다.


온 몸에서 검은 액체 같은 것이 떨어지다 채 물에 닿기도 전에 기화한다.


요괴왕의 본체를 본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친듯이 뛰고 시야가 뱅글 돌았다.


[이깟 불꽃...! 몰아쳐라! 파도여! 쏟아내려라 비여!]


콰아아아아아-!!!


꼴에 용은 용인지 영곡은 날씨를 부리기 시작했다.


파도가 거의 회오리 치듯 몰아치고 비가 땅이 패일 정도로 내리친다.


인근의 바다가 뒤집어질 듯 미쳐 날뛰었고 군도가 여기저기 박살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놈의 체내로 파고든 불꽃은 마치 화병처럼 안에서 끝없이 타올랐다.


[크오오오오오오!]


기류가 심상치 않다.


뭔가 다른 권능을 사용하려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에 장현산의 불꽃은 이제 영곡의 표면까지 덮기 시작했다.


인근을 모두 밝히는 맹렬한 불꽃을 보면서 느꼈다.


그것은, 저 스스로를 불살라 만들어 낸 최후의 불꽃이지만.


동시에, 모두에게 바치는 생명의 불꽃이라.


마치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모두를 이끌고 누구보다 앞에 서 길을 밝히는 선구자의 횃불처럼.


불꽃은 의지가 있음이라.


'아아...'


내 귓가에 아스라이 스치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 것도 그때였다.


-이 나의 불꽃. 다음의 모두의, 그리고 다음의 무의 초석이 되리.-


무(武)는 한없이 잔혹하고 이기적이다.


저를 따르는 존재들이 다른 것에 한눈 팔지 않고 오롯히 자신만을 바라보길 원한다.


만약 자신을 원하거든, 모든 것을 바치고나서야 비로서 무언가를 내어준다.


어쩌면 무의 길을 걷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인생이랑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참으로 불공평한 관계다.


[커...컥!]


권능 사용을 준비 중이던 영곡의 움직임 멎었다.


[이 내가... 이딴 곳에서... 전력만 사용 할 수 있었어도 이딴 것에....]


파스스- 


영곡의 육체 곳곳이 가루로 흩날린다.


번-쩍-!


이윽고 영곡의 몸에서 최고로 강렬한 빛이 터져나왔다.


귓가의 아스라한 목소리와 내 입에서는 같은 말이 나왔다.


-빌어먹을 무(武)...-

"빌어먹을 무(武)..."


한 무인의 염원을 담은 불꽃은 곧 별로 화해-


──────────── !


천지를 모두 채웠다.










*











"허억!"


"깨어났군. 몸은 괜찮나?"


"허...어...? 어...?"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군."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로 돌아왔음에도 전신을 절이는 듯한 아찔한 압박감에 내가 대화를 할 수 있게 된건 일각이 지난 이후였다.


......


"그러니까, 사실 영곡이 요마대전 끝자락부터 행적이 없었던건 장현산이 그놈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그 요괴왕을?"


"이게 구라라고 생각한다면, 여노가 만든 이 술법구 자체가 구라인거야. 알아서 잘 받아들여."


"믿기가... 어렵군... 허어... 직접 요마대전을 겪고, 다른 요괴왕들도 목격해 본 내 입장에선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야. 기껏해야 북쪽의 요괴들이 물러날 때까지 영곡을 붙잡아 둔 정도로 생각했거늘..."


"그러고보니, 요마대전 당시 제국 북쪽에서 싸웠다 했지."


"정녕,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래. 갑자기 한창 우세하던 북쪽 공략에서 나머지 요괴왕들이 갑자기 물러간 것도 이해할 수 있어. 한 인간에 의해 요괴왕이 명을 달리 했다고."


중얼중얼 거리던 여노는 갑자기 뭔가 술식으로 호를 그리는 듯 하더니 합장하며 눈을 감았다.


"뇌제 장현산이여. 그대는 진실로 인류를 구원한 영웅이오. 모두에게 '다음'을 선물했으니 구원받은 이 목숨. 부끄럽지 않게 써나갈 것이오."


"..."


한동안 침묵이 지속됐다.


장현산을 위한 나름의 예를 끝마친 여노는 내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혹여 얻은게 있는가?"


"음. 그러게 말이지."


가만히 눈을 감고 기억을 떠올기며, 장현산에 대해 반추(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하다.)한다.


한동안 고민하던 눈을 다시 떴다.


"그를 조금 동경하게 됐어."


"이제껏 의식적으로 따로 떼내려 했는데, 좋든 싫든 난 결국 그에게서 나온 존재야. 그의 존재감에 눌려 허우적대는거 보단 자발적으로 그의 뒤를 밟아보는게 낫다 생각해."


"아. 오해는 하지마. 그의 뒤꽁무니만 쫓겠다는게 아니니까. 나는 여전히 나일 뿐이야. 그저 뭐라해야되지? 그의 후예? 그의 제자? 그의 유지를 이은 자? 아무튼 다음을 넘겨받은 사람이라고 그게 그 사람이랑 동일시 된다는 소리는 아니잖아? 그런 의미야."


"...호오. 확실히 성장했구나."


"뭐야. 그 기분 나쁜 눈빛은."


"기분탓이네."


"..."


모처럼이고 하니 그냥 넘어가주기로 했다.


"딱히 뇌기를 다룰 수 있게 된건 아니지만, 마음정리를 했으니 헛수고는 아니었어."


오른손을 들어 꽈악 쥐어본다.


"이제 할 일을 또 하러 가야지."


그때였다.


단전 속의 '기운'이 움직인 것은.


화륵-


"뭐...!"


"그건?"


비록 일순간 이었지만, 촛불이랑 비교해도 민망한 미약한 힘이었지만.


분명히 


불꽃이었다.


 "다시 해보게!"


"... 또 반응이 없는데."


"우연이었나..."


"아니야. 거의 잿더미 속 불씨 같은 느낌이지만. 분명히 있어. 다시 살려낼 수 있다고."


"이거, 책임이 더 막중해진 거 같군."


"에휴. 그러게 말이야."


"서로서로 진을 뺏으니 하는 말인데, 오늘 밤은 묵고 가지. 밥도 해주는가?"


"쯧. 오늘은 특별히 봐준다. 뭐 해먹을지 고민해봐야겠어."


"후후. 기대하겠네."


"아주 상전이야 상전."




────────────────────────────


3일동안 질질 끌면서 안쓰던거 오늘 밤새고 바짝 써서 단편 완성.


이것은 로망이다.


메모장에 중간중간 백업 안해뒀으면 글 날아가서 다 치워버릴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