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자.
죽을 운명을 타고나지 못한 저주받은 자들.
이 저주받은 자들이 태어나는 국가, 셀 베드로에서는 저주를 피하기 위해 자국의 왕녀를 산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여러 왕녀들 중 가장 새하얀, 왕가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딸을 악마에게 바치는 관습.
이 빌어먹을 관습으로 저주받은 자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냐 묻는다면, 글쎄.
아마 모두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확실한 건 산제물로 지정된 왕녀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성을 잃고 불사자로 변한다는 것.
그런 왕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셀 베드로는 자국의 관습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 앉아있는 순백의 왕녀, 아델도 그럴 운명이었다.
"흐악! 하악!"
그러나 그녀는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났다.
의례용 단검에 심장을 꿰뚫려 죽었어야만 했을 지금, 그녀는 맨발로 비 내리는 평원을 달리고 있었다.
아델은 죽고 싶지 않았다.
의미도 없는 관습에 제 목숨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시야가 흐려질만큼 열심히 달렸으나 빈약한 체력으로 경비대를 따돌리는 건 무리였다.
뒤쪽에서 그들의 횃불이 내뿜는 불꽃이 보인다.
그들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와 날 선 장검이 내는 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렸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찰나.
"왕녀님! 아델 왕녀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델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어릴 적부터 그녀와 함께 자라며 왕녀의 수호기사로 커왔던 사내, 쟝.
어차피 제물이 될 아델이었기에 수호기사또한 평민에 고아 출신이다.
그런 그가 아델을 애타게 찾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목소리를 내어 쟝의 이름을 부르짖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바닥난 체력으로 인해 시야가 흐리다.
아델은 비 오는 평원에서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
"으, 으음..."
아델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눈을 뜬 곳은 어두운 지하감옥도, 의식용 제단도, 천국도 아니다.
누군가의 무릎 위였다.
목덜미 너머로 전해져오는 차가운 갑옷의 감촉이 느껴졌다.
"쟝?"
그녀가 뒤척이는 것을 느낀 누군가가 그녀를 바로세우고는 투구를 벗었다.
그녀의 수호기사인 쟝이었다.
"쟝? 쟝 맞아?"
쟝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아델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가락을 땅바닥에 가져다 대더니 글자를 써내려갔다.
[무사. 다행. 왕녀.]
쟝은 고아다.
게다가 평민이다.
왕실의 수호기사라 한들 어차피 죽을 산제물의 기사였다.
제대로된 교육을 받았을리는 만무했고, 그는 몇가지 단어를 제외하면 글을 쓸 줄 몰랐다.
"쟝? 왜 그래?"
이상함을 느낀 그녀가 물었다.
쟝이라면 익숙지 않은 필담을 나누지 않을 것이다.
쟝은 그녀의 질문에 피식 웃으며 자신의 목을 가리키고는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크게 두 팔을 이용해 X자를 그렸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야?"
아델의 질문에 쟝이 비로소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때, 아델은 할머니가 해주셨던 말 한 가지가 떠올랐다.
'불사자가 되면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그녀는 그제야 그 말의 뜻을 깨달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쟝의 마지막 말을.
'왕녀님! 아델 왕녀님!'
그녀는 쟝의 마지막 말에 대답조차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쟝은 말없이 피식 웃으며 우는 그녀의 뺨을 건틀렛으로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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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순애도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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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은 오직 진희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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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수호기사와 산제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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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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